• "여기는 감옥, 나는 나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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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2일 11: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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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장 생활도 벌서 6일째. 내내 잠만 잤다. 이틀 전 들어온 세관법 위반 관련 사내도 내내 잠만 잔다. 아직 인사도 못해봤다. 어제 마지막 쫑파티를 하러 부산에 왔던 희망버스 ‘폐인’들은 모두 잘 돌아가셨는지 궁금하다. 구속영장도 떨어졌으니 나도 이제 다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가야 한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을 시작하다

    사실,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 섞인 기대들도 있었다. 김진숙 씨와 그의 동료들도 크레인에서 내려왔고, 그동안 무지한 검경에 의해 체포영장 집행과 구속영장 신청이 이어졌지만 모두 기각됐다. 주체들도 다 나오는데 연대했던 사람들이야, 하는 자연스런 생각들이었다.

       
      ▲필자.

    무엇보다 사태의 원인이었던 정리해고 문제가, 충분한 내용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그 부당함이 어느 정도 밝혀졌기에 ‘희망버스’ 운동을 과도하게 탄압할 명분도 없어졌다는 판단들도 있었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부속 내용으로 ‘희망버스 관계자들에 대한 민형사상 고소고발도 취하’한다고 합의하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지난 11월 15일 오전 11시, 5개월여에 이른 농성과 수배 상태를 접고 공개 기자회견 방식을 통해 밖으로 나섰을 때도 경찰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우린 너무도 평화롭게 서울역으로 이동해 고속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했고, 환영해 준 부산 희망버스 분들과 함께 꿈에 그리던 85호 크레인 농성자들과 오케이오병원에서 상봉 후 부산 영도경찰서로 향했다. 그 뻘쭘함이라니.

    이런 평화로움을 몇 달 동안 ‘체포’하겠다고 벼른 까닭이 뭔지가 의문이었다. (공지영 소설가와 백원담 교수는 부산역에서 혹 낚아챌지 모른다고 우리가 탄 열차 내리는 곳 바로 앞까지 나왔다. 그 따뜻함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역시 기대는 금물. 검찰은 출두 당일 기자회견 자료까지 들이대며 나와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인 정진우 씨를 잡아넣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내보내주면 다시 희망 버스를 타고 쌍용차로 갈 사람들이라고, 내일(19일)도 문제가 해결이 되었음에도 희망 버스가 오고, 풀어주면 다시 그 자리를 승리대회로 만들 사람들이라고 왜곡하기도 했다.

    "이제 쌍용으로 가야 한다"는 말

    19일은 그간 고생했던 크레인 농성자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희망버스 승객들이 수변공원에서 모여 마음과 음식을 나누자는, 그야말로 집회도 시위도 아닌 평화로운, 사람들이 만나는 마당이었을 뿐이다.

    난 무엇보다 우리가 나갈 수 없는 까닭이 ‘쌍용자동차’로 희망버스 승객들이 가주면 좋겠다는 발언 탓이었다는 게 가슴 아프다. 간 것도 아니고 가자고 한 얘기 정도가 구속 사유가 되는 것도 그렇고, 열아홉 명이라는 희생자가 나온 사회적 조문의 장소를 언급했다는 게 무슨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는 것도 웃기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들에서는 아예 대놓고 희망버스는 쌍용으로 가야 한다고 쓰고 있다. 트위터리안들은 한 달여 전부터 도배 수준이다. 이렇게 희망버스 배후들, 기획자들은 넓어졌다. 더더욱 희망버스에는 수만여 명의 승객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탑승했기에 누구만이 운전사요, 기획자며, 어떤 이들은 지시와 동원의 대상이었다고 말할 수 없음에도 자꾸 무슨 조직 사건 만들 듯이 있지도 않거나, 그냥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일들이나 관계들을 부풀리고 왜곡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내가, 아니면 기획단의 몇몇 깔깔깔들이 맘 좋게 내가 다 조직했고, 지시했고, 동원했으니 ‘독박’ 쓰겠다고 해서도 안 되는 운동인 것이다. 특히나 한 개인들의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서도 아직 그 법적 논거를 다투지 않은 상태에서 ‘희망버스’ 전체를 무슨 범죄단체라도 되는 양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그리고 그 참여 여부가 걱정되기에 구속영장을 발부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인권과 법리조차 망각한 반헌법적 행위들일 것이다.

    가파른 우리 삶에 옥살이는 힘든 일도 아니다

    하여튼 이래저래 다시 얼마 동안은 국민 세금을 축내며 부산의 구치소 신세를 져야 하나 보다. 생각해 보니 지난 몇 년 동안 집이 따로 없었다. 병원이거나 요양지이거나 농성장이거나 수배처이거나…. 이젠 더는 갈 곳이 없어 빵이 거처가 되는가 보다. 뭐 별 특별한 일도 아니다.

    “대공분실 세 번 가고, 징역 두 번 살고, 수배 5년 지내다보니 머리 희끗한 쉰셋이 되어 있더라”는 저 ‘김진숙’도 있지 않는가. 새도 둥지를 틀지 않는 35미터 철 구조물 위에서 309일을 살다 내려와야 하는 새로운 인류도 있지 않는가.

    이렇게 슬프고 가혹한 일도 ‘승리’라고 눈물콧물 찍찍 흘려야 하는 우리, 가파른 삶들을 생각하면 별 힘든 일도 아니다. 지금도 ‘전쟁 같은 밤일’을 치러야 하는 무수한 노동하는 삶들, 최소한의 존재 조건도 얻지 못한 채 ‘비정규직’이라는 신종 노예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900만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특별히 가혹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슬픈 것은, 다시 한 순간의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지나갔고, 그 시간 동안 더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수 있었을 많은 순간들을 놓치고 왔다는, 반성과 후회다. 모두의 일이라는 집단논리로 다시 어떤 한 소중하고, 여리고, 오히려 살아있는 가슴들을 죽인 적은 없었나. 작고 옅고 소박한 참여가 어떤 이에겐 최선임을 함부로 하진 않았나.

    결과라는 한 길에 빠져 과정이라는 수만 갈래의 길을 무시하진 않았을까. 왜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양보하거나 나눠서도 할 수 있는 일을 무겁고 어렵게 했을까. 오만가지 안타까웠던 순간들이 아쉽고, 아깝다.

    해방터, 수양처, 휴식처

    답답하긴 하지만 갇혀 사는 것도 다르게 생각해 보려 한다. 도대체 나는 지금 어디에 갇혀 있고, 어디에서 자유로운가. 따져보면 눈앞의 현상과는 전혀 다른 진단이 나온다. 내가 아직도 답답한 건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무지한 철창 몇 가닥 때문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이곳은 오히려 내 해방터이고, 과분한 수양처이고, 잠깐의 휴식처이다.

    오히려 지금 내가 혹독하게 갇혀 있는 감옥은 ‘나’라는 이 지지리도 못난 에고의 감옥이다. ‘너’라는 집착의 무덤이다. 현상 앞에서 늘 본질적 물음들을 후퇴시키는 삶의 보수주의이고, 내 안에도 도사린 어떤 역사와 진보에 대한 패배의식이다. 결코 깨끗하게 털어내 버리지 못하고 음습한 내 영혼이 기숙처로 삼는 이 뿌리 깊은 자본의 문화, 가부장제의 문화이다.

    실상 내가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런 일상의 달콤한 감옥으로부터 내가 탈출을 감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탈을, 다름을, 전복을 꿈꾸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문 앞에서 내가 나의 탈출을 게으름과 미련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상의 감옥을 부숴야 한다. 내 의식을 꽁꽁 묶어두고 있는 이 무지를, 게으름을, 관습적 틀을, 두려움을 깨부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순해지고 편해진다. 그래서 구속이다, 아니다로 그들이 묶을 수 있는 것은 미안하지만 단 한 가지도 없다.

    오히려 이 시간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그들은 내가 더 문화적으로 단련될 수 있는 시간을, 인간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을 내게 주었다. 이미 내 꿈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어서도 그렇지만, 이런 단순 감옥으로는 묶을 수 없게 벌써 나는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시공간들 속에 무한히 열려 있다.

    좋은 꿈을 꾸게 만든 곳

    처음으로 돌아오자면 여하튼 희망버스가 계속 달리자고 하는 한 난 아마도 계속 이곳에 잡혀 있어야 하나 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좋다. 희망버스가 첫 마음처럼 가볍고 경쾌하게, 무슨 정연한 논리와 정세가 아니라 사람의 뜨거운 마음들로 연료를 채워, 숫자를 떠나 쌍용으로 재능으로 콜트콜텍으로 현대차 비정규직 현장 등으로 씽씽 달렸으면 좋겠다.

    무엇을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이 아니라, 연대가 필요한 곳에 그냥 연대하러 가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냐는 그 간명한 마음들이 살아났으면 좋겠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자는 게 무슨 죄냐고 무슨 잘못된 일이냐고, 그리고 그게 무슨 그리 큰 어려움이냐고…

    국민의 1%도 안 되는 재벌들이 독점하고 있는 99%의 사회적 자산들이 원래의 사람들 몫으로 나눠지기만 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현대 민주주의가 그나마 실험된 게 몇 백 년인데 계속 이런 내용적 봉건영주들의 시대를 가만히 놔둘 거냐고…

    이런 세상을 놔두고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더하기, 빼기의 단순 정의를 가르치고 도덕을 얘기할 거냐고 사람들이 마구 얘기했으면 좋겠다. 희망버스를 출발시켰던 우리 지역에서만큼은 다시는 조남호 같은 이들이 없게 만들겠다는 지역 희망의 연대운동들이 만개했으면 좋겠다.

    아, 이런 좋은 꿈들을 꾸다보니 갇혀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정리해고는, 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다는 이 시대의 감옥에서, 모든 억압과 좌절의 감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나오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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