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연대가 치명적 패착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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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5일 11: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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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노동운동을 이끄셨던 분들이 인제 와서 노무현 집권기에 반노동자적 정책을 폈던 유시민씨 등과 손을 잡고 같이 당을 만드는 모양을 보면서 한 가지가 제게 분명해졌습니다. 정치판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수많은 행위자 중에서는 다수는 정객이지 정치인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객과 정치인의 차이는? 아주 간단합니다.

    정객과 정치인의 차이

    정객의 목적은 당장 실현 가능한 권력 나누어먹기입니다. 절대적인 목적이 집권이기에, 집권을 위해서라면 세인의 상상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곡예를 다 할 것입니다.

    예컨대 1990년1월22일의 3당 합당 이후로는, 김영삼이라는 정치 행위자가 정치인이라기보다 바로 정객이란 사실은 만천하에 밝혀졌습니다. 아무리 보수적 자유주의자라 해도, 자유주의 그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자유주의를 탄압했으면 했지 자유주의를 위해 싸운 적이 없는 민정당과의 합당은 ‘정치인’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결국 정객 김영삼이 집권에 성공했지만, 사회적으로 봤을 때에 그 결과 무엇이었을까요? 1995년 이후의 ‘세계화, 국제화’의 강경추진은 오늘날 ‘미친 영어’ 현상, 즉 영어 구사력이 계급을 나누는 구분선이 되는 현상을 낳은 것이고, 전혀 준비도 없고 생각도 없는 금융규제 완화는 결국 IMF사태를 가능하게 만든 하나의 기폭제가 된 것입니다.

    1995~1997년, 북조선 인민들이 굶어죽고 북조선이 그 역사상 제일 어려운 시기를 거쳐갔을 때에 김영삼씨가 북조선 기근에 대한 그 어떤 제대로 된 구호정책도 펼치지 않았으며 국내 통일운동의 탄압에 혈안이 됐을 뿐입니다. 이게 간접적 대량 살인은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여간, 정객이 집권하면 사회에 좋을 게 별로 없습니다. 이에 비해서 김대중씨는 – 김종필과의 동상이몽적 동거는 바로 그 정객으로서의 일부의 면모도 보여주지만 – 적어도 자유주의 원리에 나름 충실한 차원에서는 참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도 가졌습니다. 그의 집권은 적어도 대북 화해정책이나 사형집행 정지와 같은 유산이라도 남겼는데, 그러한 차원에서는 그는 한국 정치판의 여타의 정객들과 그나마 약간 구분됩니다.

    레닌, 정치인의 표본

    정객은 지금 당장의 집권을 위해 그외의 모든 고려들을 다 버리지만, 정치인은 오늘보다 내일, 모레, 글피, 그리고 아주 먼 미래까지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일정한 상황이 조성되면 러시아처럼 공업노동자들이 전체 인구의 2%도 안되는 한심한 후진국에서도 노동자 주도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의회 정치 등을 비록 이용하되 전혀 절대시하지 않았던 레닌 같은 사람이야말로 ‘정치인’의 표본입니다.

    그는 오늘날의 ‘세’보다 내일의 ‘가능성’을 훨씬 더 중요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중도에 패배를 당해 집권에 실패한 정객들을 역사학자 아닌 정상적인(?) 사람들이 기억할 필요도 없고, 기억하지도 않지만, 실패한 참 정치인을 우리가 많은 경우에는 존경스럽게 기억하죠. 참 정치인은 좌절돼도 그의 비전은 후세에 유산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조봉암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도, 그가 처음으로 꾸었던 복지국가 건설의 꿈은 지금 같으면 거의 전국민적인 이념이 돼가는 셈이죠. 혁명가도 정치인이라는 의미에서는, 신채호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는 우리가 유독 신채호를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요?

    그는 단순히 ‘일제 구축과 민족국가 수립’이 아닌 세계 모든 피억압자들의 해방과 무정부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지향했으며 그 꿈을 <용과 용의 대격전> 같은 책에다 담았기 때문입니다. 세계혁명이야 그 때나 지금이나 ‘꿈’의 차원에 속했지만, 이 꿈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원동력이 되는 만큼 좌절당하고 옥사한 신채호는 뚜렷하게 기억됩니다. 참 정치인의 패배도 승리일 수 있죠.

    만약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본다면, ‘새진보통합연대’의 유시민 류의 부르주아 정객들과의 합당은 과연 정치인이 할 일이었을까요? 아마도 의회 진출가능성 등 여러 확률들을 정확하게 계산을 해서 이루어진 일종의 ‘타산적 동거'(?)이었겠지만, 이 정치공학적 계산들이 내일 유효해도 이미 모레부터 무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진보통합연대’ 분들께서 아셨어야 할 것입니다.

    복지국가 건설론의 한계

    그들이 ‘사랑 없는 동거'(?)의 명분으로 "복지국가 건설론"이라는 강령을 내걸었지만, 이것은 지금 세계 자본주의 역사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너무나 기계적인 정치적 행위입니다. 이제 프랑스까지 번진 유로존의 치명적인 위기, 점차 심화돼 가는 세계공황의 질풍노도 속에서 그 이윤 마진을 지키려는 자본가계급은 사실상 있는 복지국가마저도 점차 대폭 파괴하여 역사의 시계를 거의 복지국가 건설 이전인 1930년대로 돌리려 하는 것입니다.

    대학교 등록금 3배 인상도 모자라 인제 공공의료체계마저도 개악시켜 민영 의료업자들의 몫을 늘리려는 현 영국 정부의 행위만 봐도 복지국가가 점차 형해화돼간다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라마다 정치적 사정 등에 따라 그 속도는 아주 상이하지만 (노르웨이 같으면 복지국가는 거의 손실을 보지 않았습니다) 대체적 경향은 확실합니다.

    지배자들이 복지국가라는 1945년 이후의 대대적 양보를 철회하려고 하는 이 상황에서는, 피지배자들의 투쟁도 부득불 격화돼야 할 것이고, 그 표어도 "복지국가 사수/신설"에서 결국 "자본주의 극복"으로 가일층 급진화돼야 할 듯합니다. 복지국가와 같은 노동자 민생 최소한의 보장도 해주지 않으려는 지배자들이라면, 그 지배자들을 계급적 차원에서 타도하려는 표어 정도 투쟁의 성격을 잘 반영하지 않겠습니까?

    유럽 상황도 이처럼 절박하지만, 얼음 물대포까지 동원해서 극소수 재벌을 위한 한미FTA강행을 끝내 철회하지 않으려는 국내 정권의 최근 만행만 봐도 국내 지배자들이 복지국가 건설을 그냥 허용하지 않을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최소한의 양보를 따내기 위해서라도 체제 전체를 뒤엎을 각오를 전제로 하는 투쟁이 필요할 것인데, 유시민 류의 정객들과의 ‘사랑 없는 포옹'(?)을 하면서 그러한 투쟁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참 아쉬운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성통곡할 일

    오늘날 같은 상황에서 민중에 편에 서는 참 정치인이라면,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미래의 투쟁 지향까지 파악을 잘 해서 조직건설 등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파산을 맞는 상황에서 "자본주의 극복"의 전망도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은데다가 신자유주의적 성격의 부르주아 정객들과 연대를 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패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번 국회행을 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한 계급의 지도자가 되기가 힘든 셈입니다. 아, 국내 보수정계는 물론 진보정계에서마저도 정객이 아닌 정치인들이 왜 이렇게 드문지, 정말 대성통곡할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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