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백년 동안의 삶, 전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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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2일 07: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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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대학교 부속병원 6층 병실. 영화평론가 양윤모 교수 발목은 은색 수갑으로 침대에 묶여 있었다. 제주교도소에서 면회 신청을 하고 김경일 신부, 송강호 박사, 활동가 도라씨와 함께 그를 찾아간 2011년 5월 18일, 그는 제주 해군기지 공사 관련 업무방해와 폭행죄로 구속된 후 43일째 옥중단식 중이었다.

    형사 한 명과 전경 두 명이 부동자세로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면회가 시작되었다. 온몸이 버썩 야윈 양 교수는 마을과 주민들 소식을 물은 후, "주민들이 싫다는데 어떻게 400년 넘게 거기 살아온 주민들을 없는 사람 취급 하며 자기들 멋대로 공사를 진행하는가"라며 노기를 드러냈다. 장기간 단식이 강정을 지키려는 그의 열정을 꺾지 못하는 듯했다. 김경일 신부는 그의 손을 붙들고 단식 종료를 거듭 권했다.

       
      ▲양윤모 영화평론가.

    “단식 끝내고 음식 드십시오. 강정에 와서 우리랑 다시 싸우려면 건강을 회복해야 합니다. 단식 그만 끝내세요.”
    여느 교도소에서처럼 면회시간 10분은 짧았다. 일행이 차례로 작별 인사를 마쳤을 때 말없이 한쪽에 서있던 송강호 박사가 병실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선생님, 건강하셔야 합니다.”

    송 박사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으나 침대 아래 엎드려 절을 하는 것으로 많은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세계 재난 지역을 찾아가 난민들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탁월한 헌신으로 명성 높은 송 박사가 1년여에 걸친 아이티 지진 구조를 마치고 귀국한 다음날 곧바로 강정에 온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이곳이 심각하게 평화가 위협당하고 있는 재난 지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둘째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될 경우 우리나라와 제주도가 당하게 될 재앙이 불 보듯 빤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분들이 해군기지로 인해 닥칠 재앙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돌아보건대, 2007년에 시작된 강정 문제가 제주도 내에서도 외면당하고 마을 주민들도 지쳐 내부 동력이 거의 소진되어 보이던 2011년 3월에 이르러 송강호, 최성희(화가, 평화운동가)씨들이 피차 약속도 없이 홀연 강정에 찾아든 일은 기적 같은 사건이었다.

    3년 동안 중덕해안 구럼비 위에 천막을 치고 외롭게 투쟁하던 양윤모처럼 그들도 즉시 빈손으로 주민들과 연대하였다. 레미콘 트럭 밑에 들어가 공사장 진입을 막는 일, 목에 쇠사슬을 감고 베이스 텐트를 지키는 일들이야말로 그들이 가진 신념의 빛나는 표현이자, 목숨을 걸고 보여주는 ‘두려움의 힘’이었다.

    레미콘 트럭 밑에 들어가 있을 때마다 휴대 전화로 통화를 하는 최성희 씨에게 양윤모 교수가가 물었다고 한다.
    “왜 그렇게 전화를 해요?”
    “네, 무서워서요.”

    5월 14일 대규모 공권력 투입 때, 텐트 ‘대들보’에 쇠사슬로 목을 감았던 시간 동안 송강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무나 급박하니까 일단 그렇게밖에는 할 수가 없었어요. 쇠사슬 감고 매달려서 경찰들과 대치하는 순간 ‘아,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지요. 이렇게 죽을 만한 일인가 자문했고,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지금은 이들 외에도 1,000여명 강정 주민을 비롯해 50여 명의 예술가, 기자, 평화 활동가들이 강정지킴이로 상주하고 있으며, 국내 112개 시민, 인권 단체와 종교인,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국민 연대가 날로 확산되고 있다. 왜 그런가.

    강정 주민들의 고통과 해군의 부적절한 행태들이 급속히 제주 바깥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던 2011년 5월의 작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한 후 살펴보기로 한다.

    5월 인권영화제가 상영한 <Island of Stone>

    공사장 앞에서는 매일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레미콘 차량과 싸움을 벌이고, 옥중에서 양윤모는 50일 가까이 단식 중이던 5월 19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제 15회 서울인권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이미 5월 10일 동교동 두리반에 모여 강정평화 연대를 약속한 사람 중 한 명인 인권재단 ‘사람’의 김정아 사무처장에게서 ‘절대보전지역 해제 취소 서명’을 위한 부스를 내주겠다는 연락을 받은 건 개막 당일. 다음날 사발통문을 받고 서명 봉사자로 달려온 사람들은 인터넷 강정카페 회원들, 서울 강정당원, 한국작가회의 회원들이었다.

    비바람이 거세어서 부스 앞에 세워둔 홍보용 폼보드가 연신 넘어지던 첫 날을 지나 둘재 날은 다행히 비가 개었고 서명 반응도 좋았다. 트위터 강정당 당수 김세리 씨 전화를 받은 때는 바로 영화제 폐막일인 22일 오후 2시였다.

    “제인과 거쓰라는 미국인들이 양윤모 선생님 인터뷰랑 연행 장면을 담아서 보내준 다큐 필름을 어느 분이 받아 유튜브에 올렸는데요, 그걸 영화제 폐막 때 상영할 수 있을까요?”

    폐막이 7시인데 지금? 이라는 생각에 숨이 막혔지만, 무조건 성사되어야하는 일이었다. 김 처장에게 요청 전화, 실무자와 협의 후 알려주겠다는 답, 좋다 한번 해보자 그런데 유튜브 필름은 상영이 어려우니 빨리 원본을 구하라는 전화, 원본 받은 이가 도무지 전화를 안 받는다는 몇 번의 전화, 왜 필름이 안 오느냐 늦어도 5시 반까지는 상영본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전화가 오가는데 시간은 훌떡훌떡 3시, 4시.

    여전히 원본은 찾을 수 없는 채 서명 부스에 서서 손발이 저릴 지경인데 5시에 김 처장이 환하게 웃으며 나타났다. 아무래도 원본 구하기는 틀렸다 싶어서 어느 다큐 감독 도움을 받아 유튜브 영상으로 상영본을 만들었는데 원본이 아니라 화면 상태가 만족스럽지는 못할 것이고 더빙도 좀 뜰 것이라 했다. 감사할 따름이었다.

    영화제 운영팀인 <인권운동 사랑방>의 배려 또한 쿨했다. 폐막작 이후에 상영하면 관객들이 다 자리를 뜨게 되니까 폐막 선언을 마친 후 폐막작 전에 상영해주겠다는 것이다. 단서 하나가 붙긴 했다.

    “인권영화제 15년 역사상 정해진 프로그램 속에 끼워 넣기 한 건 처음입니다.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영화처럼 시작되고 진행된 과정을 통해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담긴 자연 파괴, 인권 유린 등이 서울 사람들 앞에 첫 영상으로 드러난 날이었다. 뒤이어 상영된 폐막작 <The Pipe>가 아일랜드판 강정 문제를 다룬 다큐라는 게 운명적으로까지 느껴졌다.

       
      ▲강정마을 앞바다.

    누구를 위한 날치기였나

    정부와 해군 당국이 강정 문제 책임을 거론할 때 사용하는 최종 병기는 늘 “노무현 정권 때 추진되어 오던 일”이라는 주장이며, 제주 도지사가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는 “전 지사가 결정한 일을 왜 나에게 해결하라고 요구하나?”이다.

    이 책임회피용 발언 뒤에 얼굴을 가리고, 정부와 해군과 도정은 강정 주민들이 당한 불운과 고통을 시종 폭력적 강제와 모르쇠로 일관한 것이다. 진실로, 그들에게 책임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불법 계약 체결과 공사 강행 근거가 드러난 신문 기사들과 제주도지사에게 과거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감안할 때 글머리에 쓰인 “노무현 정권…” “전 지사가…” 라는 주장은 얼굴만 가리고 엉덩이 훤히 드러내는 면피용 발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강정 문제의 근간을 이루는 토지강제수용 문제와 절대보전지역변경 해제 문제만 보아도 그들이 져야 할 무거운 법적, 도의적 책임은 파악된다.

    토지 강제 수용

    토지 강제수용 과정에 대해 현재 제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처음에 많은 주민들이 토지 수용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해군에서는 찬성 측 주민, 외지인, 풍림 콘도가 소유한 땅을 수용했는데 이걸로는 안 되는 거라에. 결국 농로를 수용하기로 계획을 세운 겁니다. 농로라는 게 주민들이 각자 자기 땅을 조금씩 내놓아서 길을 만든 거에요. 그런데 도에서 이걸 주민들이 기부 체납한 도유지로 만들어서 해군에게 팔아버렸고 해군은 토지 49%를 확보한 후에 나머지 토지에 대해 국책사업을 위한 강제 수용을 결정해버렸어요.”

    전국 최우수 화훼 수출단지로 지정 받아 수년간 백합을 키워오던 농민들을 포함한 강제 수용 대상 주민 모두가 저항했고, 2010년 7월 해군이 토지 대금을 공탁했지만 그 돈을 찾아가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나도 토지 대금을 찾아가지 않자 해군은 공탁금에 대한 월 10% 양도소득세 부과를 통보해왔다.

    4개월 후, 주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공탁금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 “땅값도 다 받아놓고 해군기지 반대하는 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 높이는 정부와 해군의 주장은 후안무치한 것이라는 데 강정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동의한다.

    토지강제수용 과정에서 도정이 협력한 농로 수용은 1년 후 ‘농로 폐지’와 ‘공사반대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인한 폭압적 형사처벌과 공사 강행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토지 수용에 관련된 해군의 독재적 강압은 또 있다. 고권일 대책위원장이 농사를 폐하는 과정에서 해군이 보여준 행태를 전해준다.

    “토지 수용이 끝나자 해군은 농사지을 수 있는 기간을 정해 통보해왔어요. 찬성 측 주민들에게는 5월 말까지, 다른 집은 2월 말까지 식으로요. 토지를 뺏긴 후라 논의의 여지가 없이 따라야 했지요. 이와 함께 밭에 있는 비닐하우스 등 시설물을 철거하고 나무도 옮겨가라고 했는데, 정한 기한을 지키지 않은 집에는 불법 국유지 점유 명목으로 과징금 고지서가 발부됐습니다. 세무서나 다른 기관이 아니라 해군이 자체 작성해서 발급한 고지서여서 법적 강제가 되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겁이 나니까 철거하고 폐농을 했습니다.”

    과징금이라는 게 보통 토지 임대료 시세에 맞추어 부과되는 게 상식이지만 해군은 그 6~10배에 달하는 비용을 부과해왔다. 2,000평 밭을 가진 고아무개씨에게 1,200여만 원 과징금을 부과하는 식의 협박용 고지서였다.

       
      ▲2010년 2월 26일 공사 직전.(사진=다음 블로그 hallasans)

    절대보전지역 해제

    제주에서 가장 기름진 땅으로 이름 높은 강정 옥답이 국토해양부에 강제 수용되고, 불가능한 공사를 가능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시녀 노릇을 한 고위 책임자들은 전, 현직 제주 도지사와 제주도의회이다.

    제주도 조례에 의하면 경관보존 1등급 지역이자 절대보전지역으로 등재된 곳은 절대 매립할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절대보전지역인 강정에서 이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해군기지 건설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그러므로 제주도의회가 2009년 강행한 ‘절대보전지역 해제안’ 가결은 해군기지 건설의 진정한 초석을 놓아준 ‘사건’이었다.

    한나라당 의원이 다수를 점한 도의회가 ‘절대보전지역 해제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켜버린 이 일은 지금도 제주 도의회 사상 최악의 날치기 사건이자, 당시 2년 넘게 지속되어 온 주민 호소를 도의회가 간단히 묵살해버린 사건이기도 했다.

    도의회 의결에 굴하지 않고 강정마을회가 제기한 ‘절대보전지역변경(해제) 처분효력 정지’ 소송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2009. 12. 17.

     

    8대 제주도의회

    절대보전지역 해제(변경) 동의안 가결.
    한나라당 의원 절대 다수가 강행.
    2010. 12. 15.
    제주지방법원
    “각하”
    이유 / “강정 주민들은 원고 자 격이 없다.”
    절대보전지역 해제 위법성에 대한 판단을 회피한 채, 주민들의 원고 자격 문제로 슬쩍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 비겁한 판결이라고 판단한 주민들은 즉시 항소.
    판결 후 12. 27. 기지공사 시작.
    2011. 3. 15.

    9대 제주도의회

    <절대보전지역해제(변경)취소 결의안> 가결.
    제주도지사
    <절대보전지역해제 취소>에 의한 해군기지 공사 중단 요구 권한 부여됨. 행사하지 않음.
    2011년 5월 18일
    제주지방법원 항소심
    “1심 판결을 확정한다.”는 짤막하고도 정치적인 선고.
    강정바다를 보호하기 위한 원고 자격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논란.

    절대보전지역이 해제되는 과정을 지켜본 일부 도민들은 절대보전지역을 마구 해제해도 되는 것인지, 어렵게 등재된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을 파괴해도 괜찮은 것인지 항의했지만 그들 앞에 제주도지사는 중앙 정부가 약속했다는 경제 보상 카드를 내밀었다.

    “지역발전계획안을 제안하면 행정안전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크루즈항 입항에 따른 관광 활성화와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관련 지역 발전 계획 수립 등에 관한 조항에서 정부 지원이 약속되어 있다.”
    지역 발전에 목말라있던 대다수 도민들은 결국 입을 다물었으며, 지금까지 제주 도지사는 강정 주민과 천혜의 자연 경관을 희생(조공?)하여 제주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백 보 양보하여 그의 주장을 제주도를 부유하게 만들기 위한 충정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과도한 주민 억압이나 자연 파괴, 문화재 파괴 등에 대한 그의 냉담과 모르쇠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중앙 정부가 하는 일이고, 이미 시작된 일을 어떻게 막는가라는 말로 여론을 끌고 온 제주도지사는 과연 해군기지 공사를 저지할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일까?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9대 도의회가 ‘절대보전지역해제 취소’를 결의함으로써 ‘해군기지 공사 중단’이라는 공은 제주 도지사에게 넘겨졌다. 도의회가 취소를 재의결할 경우 도지사는 해군에게 공사 중단을 요구할 권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진 문제를 최소한 재논의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우근민 도지사는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다. 이후에 지속된 과도한 공권력 탄압, 과도한 형사처벌에 따른 주민들의 억울함, 문화재 파괴, 구럼비 발파라는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시종 외면하였다.

    사법부 역시 주민 편은 아니었다. 도의회 의결이 항소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희망은 하릴없이 무너졌다.

    필자는 그날 제주법원 503호 방청석에서 ‘아~’ 하고 탄식하던 주민들의 절망을 지켜보았다. 법정 밖에 대기하던 기자들이 강동균 회장에게 항소심 결과에 대한 소회를 물을 때 그는 분개하여 답했다.

    “400년 넘게 이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이 강정바다에 대해 원고 자격 없으면 누구에게 원고 자격이 있단 말이꽈?” 

    * 이 글의 필자는 전남 영암 출생으로, 리얼리스트100/한국작가회의 회원이다. 제8회 거창 평화인권문학상을 수상했다. 펴낸 시집으로 『이발소 그림처럼』(실천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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