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은 나의 원수죠"
        2011년 11월 20일 12: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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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이윤정 신송희 이희진 유명화 故 황민웅 한수영 故 김주현 故 연제욱 故 박지연 김옥이 한혜경.

    죽어가는 사람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나?

    삼성에서 일하다가 불치의 병을 얻어 투병 중인 이들, 생을 달리한 이들의 이름이다. 그들의 죽음과 병에 대해 삼성은 사과는커녕 “증거를 가져오라”고 도리어 큰소리를 친다. 유족 정애정 씨는 말한다.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더 어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강조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만들어진 산재보험의 법적 취지는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의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을 제공하고 산재를 예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 질환이라는 증거가 없다’면 산재로 인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은 이들의 목소리에 언제쯤 귀 기울일까?

    『삼성이 버린 또하나의 가족』(반올림, 희정 지음, 아카이브, 14000원)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다. 삼성반도체 노동자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딸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백방으로 호소하고 절규하며 시간을 보냈다. 결국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 문제를 최초로 공론화하고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라는 단체를 만드는 결정적 계기를 이룬다.

    한 사람의 외로운 몸짓이 마침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한편,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남편 황민웅 씨를 만나 누구 못지않게 행복했던 정애정 씨는 남편과 만나는 인연을 만들어준 직장, 자신이 10년 넘게 몸 담았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아이들의 아빠를 빼앗아간 원수로 삼아야 했다. 남편 황민웅은 분명 산업재해였다. 망자를 떠나보낸 가족들은 그들의 투병 과정을 지켜보며 이렇게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차라리 그렇게 빨리 간 게 다행이에요. 너무 힘든 병이야. 너무 고생을 해.”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씨)

    “너무 짧죠, 너무 짧아. 3년 살았으니깐. 1년은 애 낳는다고 떨어져 있고 그 뒤로는 바쁘고 아프고……. 9개월 아팠지.” (고 황민웅 씨의 아내 정애정 씨)

    "누구 한 놈 죽여버리고 싶다"

    소중한 아들딸을, 아내를, 동생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 역시 그에 못지않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삼성에 들어간 아들딸, 동생을 둔 이들, 결국 그 소중한 사람들이 이름마저 낯선 병, 다발 경화증, 중증 재생 불량성 빈혈, 베게네육우종증, 종격동암 등으로 힘겹게 투병 중이다. 그 가족들의 마음 역시, 떠나보낸 이들 못지않다.

    “하루는 소동을 부리더라고요. 나는 그냥 죽겠다, 죽는 게 낫다……. 보면 눈물이 납니다.”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

    “산재라고 밝혀져도 문제인 게 유전이 되는 병이면요? 만약에 삼성 다닐 때, 그러니까 애들 임신하기 전에 아내가 병에 걸린 거면……. 애들까지 그렇게 되어버리면……. 나는 진짜 가서 누구 한 놈 죽여 버릴 거 같아요. 아내도 그렇게 됐는데 자식한테까지 대물림된다면……. 제발 내가 바라는 거는 산재가 아닌 거, 우리 애들을 낳고 나서, 차라리 그러고 나서 병에 걸린 거예요. 만약 산재가 맞는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삼성이 죽일 놈이죠, 나의 원수죠.”(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

    “휴가 때 오면 집 안으로 안 들어오고 밖에 앉아 있던 게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던 거였어요. 일하는 데가 하도 냄새가 심하니까. 쟤가 삼성에 들어가고는 살이 쪽 빠졌어요. 힘들어서 그런 거였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애가 예뻐졌다고만 했어요.” (신송희 씨의 언니)

    그렇게 가족들을 떠나보낸 사람들, 병든 몸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삼성은 산재 가능성에 대해서 일축한다. 초일류기업 삼성에서 그런 후진적인 일은 절대 발생할 수 없다고. 심심한 위로의 말은 전하지만, 또 대기업이어서 장례나 치료를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 모두가 산재에 대한 응분의 대가가 아니라, 회사의 시혜라고. 그럼에도 산재 신청을 하려는 가족들에게 삼성은 외려 협박과 회유를 일삼곤 했다.

    “산재라니요, 증거 있으세요? 큰 회사를 상대로 싸우려면 싸워 보시든가요.”

    삼성식 계산법

    자식을 잃은, 형제자매를 잃은 가족들의 고통을 어떻게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삼성은 그 고통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명료하게 ‘계산’해주었다.

    “그러니까 아버님, 하나 유미 씨 죽고, 둘 그것 때문에 유미 씨 할머니 쓰러져 돌아가시고, 셋 유미 씨 어머니 우울증 걸리고, 넷 모아둔 돈 다 유미 씨 치료비에 들어가서 집도 못 옮기고. 이거죠? 이거 네 가지 회사에 전하면 되는 거지요?” ‘손해’는 금액으로 환산됐다. 2억도, 3억도 권해졌다. (삼성 직원이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에게 한 말)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한 사람들이 병에 걸렸고, 그것도 목숨을 위협하는 중병에 걸렸다면 과연 그것이 개인의 ‘불운’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나 불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한 ‘우연’이다. 특히 삼성반도체에는 이런 ‘우연’이 유난히 많이 일어났다.

    2인 1조를 이뤄 일한 두 명의 여성(황유미, 이숙영)이 모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한 작업장에서 일하던 이들이 같은 시기 혈액암 계열인 백혈병과 림프종에 걸렸다. 특정 공정, 특정 라인에서는 유달리 질병자가 많이 나왔다. 이상한 우연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피해 노동자가 직업병임을 인정받는 과정은 서럽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입증하러 다녀야 한다. 서류를 떼고, 회사에 정보를 요청하고,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과정이다. 시간에 지친 노동자들은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몸이 약해서, 불운해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화학물질에 노출된 채 12시간 이상을 일했지만 내 문제인가 싶어진다. 대개는 결국 산재신청을 포기한다.

    인간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가 오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전문가 집단은 짧은 시간에 명료한 판정을 내린다. 직업병 여부를 판단하는 전문가 집단은 서류 몇 장을 훑으며 노동자의 몇십 년 노동을 훑는다. 그 과정에서 종종 손쉬워 보이는 노동자의 단순반복 작업이 몇십 년 동안 365일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도 하고, 인간의 몸은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놓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과학적 입증’이라는 말은 잊지 않아, 직업성 암에 걸린 이들은 과학적으로 업무 연관성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른 나라보다 몇 배나 적은 수의 발암물질만을 규제하고 있는, 또 몇 배나 적은 직업성 암을 인정하는 이곳 대한민국의 과학을, 과학자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으로 크게 7가지의 발암물질만을 인정하고 있다. 1963년 제정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된 적이 없는 발암물질 기준이다. 또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매년 세계적으로 60만 명의 노동자가 직업성 암으로 사망하지만 한국에서 직업성 암을 인정받은 사례는 1년에 20∼30건에 그친다. 2005년에 249건의 신청 중 30건이, 2010년에는 125건의 신청 중 17건이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았다.

    의심을 품은 노동자들은 산재보험금을 내줄 수 없다는 근로복지공단을 향해 묻는다.
    “그럼 근로복지공단은 왜 있는 거지요?”
    근로복지공단은 직업병 노동자들이 낸 산재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 삼성이 고용한 대형 로펌을 부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2010년 1월 11일, 김옥이, 송창호, 고 이숙영, 고 황민웅, 고 황유미의 유족은 행정소송을 신청했다. 법원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을 낸 것이다. 소송 당사자인 근로복지공단은 “소송 결과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임을 감안하여 …… 소송 수행에 만전을 기하여주시기 바랍니다”는 공문을 삼성에 보낸다. 삼성은 이에 화답해 피고측 보조참가인 자격으로 대형로펌을 통해 재판에 개입했다. 2011년 6월 23일, 재판장은 조용히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세계 최초 반도체 직업병 인정 판결

    “망(亡) 황유미, 망 이숙영에게 발병한 백혈병의 발병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백혈병이 발병하였거나 적어도 그 발병이 촉진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업무와 상당히 인과관계가 있고, 따라서 피고(근로복지공단)의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은 위법이다.”

    이로써 황유미 씨와 이숙영 씨는 직업병을 인정받았다. 세계적으로 반도체산업에 있어 직업병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IBM 등 세계 각국의 노동자들이 반도체 회사를 상대로 법정싸움을 했지만, 공식적인 직업병 인정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백혈병 유발물질의 노출기간과 노출량이 적다는 재판부의 판단으로 나머지 세 명은 직업병을 인정받지 못했다. 물론, 근로복지공단( 및 삼성)은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1년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질병은 산업재해다.

                                                      * * *

    저자 : 희정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라 해서 르포르타주 글쓰기를 시작했다. <반올림>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2010년 10월 인터넷 언론에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열전>을 연재했다. 지금도 인터넷 언론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 : 반올림

    현재 반올림에는 건강한노동세상, 경기비정규노동센터, 노동건강연대,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다산인권센터, 다함께, 대학생사람연대, 민주노동당경기도당, 민주노총경기도본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사노위경기지역위원회, 사회당경기도당,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천산재노협,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진보신당경기도당, 청주노동인권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이 함께하고 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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