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국유화 강령 전면에 내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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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14일 11: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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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진보진영이 아직 대안세력으로 서지 못하는 이유

    자유주의자들의 배신은 이들의 계급적 성격과 그간 이들 자유주의세력의 정치 경력을 볼 때 필연적으로 예정된 것이기에, 현재 우리 진영의 힘만으로는 이를 저지할 방도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부터 이를 예측하고 준비를 갖춘다면, 우리는 이를 통해 이들 세력의 본질을 낱낱이 폭로함으로써 우리 진보진영이야말로 노동계급과 다수 대중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세력임을 입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현재 진보진영에 있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자기 완결적 강령’을 갖춘 대안정치세력으로 자신을 분명히 세우는 일이다. 차기 정권하에서 맞게 될 사회 위기가 ‘총체적’인 성격을 지닐 것이기 때문에 이는 더욱 필요하다.

    자신 스스로를 먼저 완결되게 구별정립하지도 못하면서 차기 신정부를 비판할 경우, 사회적 위기가 진행되는 엄중한 국면에서 그것은 대중의 눈에 적전분열로 비친다거나, 대안 없는 자들의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결국 대안을 찾지 못한 대중들은 고통스럽더라도 집권세력이 제시하는 일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진보진영이 그때 가서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서둘러 별도의 대안 마련에 착수한다 하더라도 때는 이미 늦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 진보진영이 제시하고 있는 강령의 한계는 무엇인가? 지난 5월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채택된 ’20대 주요 정책 과제’를 놓고 살펴본다면, 그것은 나름대로 그간 진보대통합 과정에서 논의되었던 논의의 성과들을 총망라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때문에 각각의 요구들을 따로 떼어 놓고 볼 경우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갖는다. 그러나 그것은 대안정치세력의 강령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할 상호 ‘연관성’과 ‘중심점’의 부각이 결여되어 있어서, 단순 명쾌한 대중적 구호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그야말로 여러 가지 요구를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든 것이다.

    예컨대 제1항인 "노동시간 대폭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해소" 운운은, 세계시장 경쟁에 사활적인 운명을 걸다시피 하는 한국의 ‘재벌주도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결코 해결 될 수 없는 문제이다.

    따라서 당연히 이 과제는 재벌 문제와의 연관 속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이렇게 보다 보면, 30대 재벌 매출액이 GDP의 80%에 이르는 한국적 상황에서 기타 농민 문제ㆍ중소기업 문제ㆍ보편적 복지체제 구축 문제ㆍ교육 문제 등 다른 사회 문제들도 ‘재벌 문제’를 떠나서는 설명되거나 해결책을 찾을 길이 없어진다.

    이렇듯 중요한 재벌 문제가 명확히 부각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해결책에 있어서도 위 연석회의 강령은 "재벌의 소유ㆍ경영 독점해소"(제5항)와 같은 식의 매우 모호한 표현방식을 사용한다. ‘독점해소’가 의미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인가?

    다시 자본주의 역사를 과거로 돌려 ‘자유경쟁 자본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재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그것을 국유화하지 않고 ‘해체’나 ‘민주화’ 하는 것과 같은 낡은 개량적 방식은, 그간의 재벌개혁과 관련한 우리 역사가 여러 차례 그 오류를 입증한 바 있다.

    예컨대, 한국 진보운동은 과거 80년대와 90년대 한때 ‘재벌 해체’를 주장한 적이 있다. 그리고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서는 기존 재벌체제에 대해 실제 ‘계열사 분리’라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지난 5년간 재벌 계열사가 오히려 그 이전보다 367개나 폭증한 사실이 보여주듯이, 재벌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전보다 훨씬 더 커져버렸다. 이는 재벌 주도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재벌 해체’가 아닌 ‘국유화’밖에 없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말해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식의 대안이 진보진영 내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사회의 근본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할 뿐이며, 진보진영이 왜 아직껏 대중의 눈에 진정한 대안정치세력으로 비춰지지 않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진보진영 일각에선 내년 선거전에 ‘보편적 복지’ 구호를 내세워 일전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구호는 현재 세계적 경제 위기가 바로 유럽의 ‘재정 위기’ 때문에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앞으로 이전투구가 난무할 선거전의 정치현실을 감안한다면 대중적으로 자유주의정치세력과 진보진영을 선명하게 구분시키기는 어려운 한계를 갖는다. 특히 이제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까지 각종 ‘복지공약’을 운운하는 지금에 와선 앞으로 ‘보편적 복지’의 약효도 점점 떨어져 갈 것이 분명하다.

    진보진영이 자유주의자들과 최소한 대등한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 서는 길은, 오로지 이들 자유주의세력이 집권하기 전부터, 즉 선거 과정에서부터 일관되게 자기 요구(재벌 국유화)를 명확히 내걸고, 비록 차기에 민주당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이들은 재벌과 타협할 것이기 때문에 결코 대중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한국사회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완수할 수 없다는 점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설파하는 길 밖에 없다.

    비록 우리가 한나라당을 패퇴시키기 위해 당면 선거에서 불가피하게 선거연합을 수행한다 할지라도, ‘민주당’의 기회주의성과 배반가능성 그리고 그들 대안의 허구성을 대중적으로 끊임없이 폭로하고, 우리가 선거연합을 수행하는 목적은 ‘단지’ 공동의 적인 반동부르주아지 정치세력인 한나라당을 패퇴시키기 위한 것일 뿐임을 대중이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끔 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야만 대중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개의 정치세력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이로부터 서로 다른 두 정치세력간의 주장과 요구 그리고 행동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비교하기 시작한다. 이후 자신들의 직접적인 정치적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점차 누구의 말이 옳았는지, 누가 진정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세력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검증된 대중들의 정치적 성숙화의 길이다.

    5. 지금시기 ‘재벌국유화’ 강령 전면화의 의의

    현 단계에서 진보진영과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구분선은 ‘소유 문제’를 둘러싸고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즉 한국경제의 근본 문제인 재벌 문제를 놓고 ‘재벌 주도 경제’를 인정하고 이 기초 위에서 부분적인 수습책을 제시할 것인가, 아니면 ‘재벌국유화’를 통해 근본적 개혁을 모색할 것인가를 통해 결정짓는 것이다.

    그 중간적인 다른 어떠한 구분선도 있을 수 없으며, 다른 방식으로 차별성을 찾고자 하는 시도들은 단지 이러한 근본적 차별성을 모호하게 할 뿐이다.

    지금 시기 노동계급과 진보진영이 ‘재벌국유화’를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이유와 의의를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재벌 국유화’ 강령만이 기존 진보진영의 나열적이며 상호간에 일관성을 결여한 강령에 대해 ‘완결적 자기체계’를 부여한다.

    앞서 지적한대로, 진보진영이 지금까지 여전히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대안정치세력으로 대중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바로 이 같이 스스로 완결되고 일관된 자기강령을 갖지 못한데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일반 대중들로선 이처럼 불구 강령을 보고서, 진보진영이 집권했을 때 과연 책임 있게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의혹을 풀길이 없다. ‘재벌 국유화’ 요구를 우리 강령의 기초로 세울 때라야 비로소 노동계급과 진보진영은 소유관계라는 기본 출발점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경제구조(국내와 해외시장 관계,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 농업과 공업 관계), 분배구조(사회보장제도 구축, ‘보편적 복지’), 계층 문제(영세상인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정치ㆍ외교개혁(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 민주적 정치제도 개혁), 교육 문제 등 사회전반의 개혁적 과제들을 일관성 있게 설명하고 그 해법들을 제시할 수 있다. 이 같은 완결적이고 일관된 강령 체계 없이는 앞으로도 진보진영은 대중들로부터 결코 책임 있는 정치세력으로 평가받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재벌국유화’ 요구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노동자계급과 대중에게 한국 사회문제의 근원과 해법을 간결하고 명확히 제기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근본 문제는 재벌경제로부터 나온다. 재벌문제는 독점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의 한국적인 특수 현상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재벌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벌 국유화’는 ‘재벌 주도 경제’라고 하는 우리 사회의 본질적 성격을 함축하고 있다. 또 이렇듯 우리가 재벌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룸으로써 ‘진정한 대안사회’와 관련한 진지한 논의와 연구도 비로소 가능케 된다.

    예컨대 재벌을 국유화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의 사회주의처럼 계획경제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현재 중국처럼 "국유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를 실시할 것인가? 또는 일부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생산자 직접경영’을 실시할 것인가?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우리운동의 현실에 대한 인식의 폭과 깊이를 높이게 될 것이다.

    셋째, ‘재벌국유화’ 목표를 명확히 함으로써 이를 달성키 위한 ‘수단’과 ‘방식’과 관련한 논의의 과학화가 가능해진다.

    지금 진보진영 내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우리 운동의 강령적 목표가 ‘의회’를 통한 방식으로 달성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 이 같은 시각을 가진 활동가들의 눈에는 현재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중투쟁은 결국 선거와 의회진출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진보정당이 의회에서 다수의석을 점하고 대통령선거를 통해 집권하게 되면 진보진영의 강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여진다.

    그런데 사실은 그러한가? 김진숙 동지가 300일 넘게 고공 농성을 하고 있어도 국회는 무력하기만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 청문회에 나온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이러한 무력한 국회와 의원들을 비웃어도 그의 손가락하나 다치게 하지 못한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에 대한 복직약속 위반으로 한 명 두 명 늘어나던 자살자 숫자가 이미 17명에 이르렀건만, 현재의 제도권이 제시하는 방법만으로는 마땅히 뾰쪽한 수가 없다. 아마도 전략사업장 2~3개만 항의 연대파업에 성공했어도 자본가들은 진작 백기를 들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운동의 중대한 사안들과 관련하여 노력의 방향을 국회에 두어야 할지, 아니면 대중의 물리적 힘을 조직하는데 쏟아야 할지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게 되었다.

    정리해고나 복직 약속 이행과 관련한 부분적 요구 사항들도 이러할 진대, ‘재벌 국유화’와 같이 한국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대개혁과 관련한 문제의 난도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현재 대한민국헌법 제126조에서 제한하고 있는 사적 기업에 대한 국유화 조치를, ‘헌법 개정’과 같은 합법적 절차를 통해 추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하는가?

    만약 이 공약을 내걸고 노동계급과 진보진영이 집권에 성공한 후, 막상 재벌 국유화 강령을 실행하려 할 경우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보수반동세력의 반발을 어떻게 무력화시킬 수 있으며, 그때 가서도 관건적 열쇠를 쥔 ‘군부’가 여전히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보장할 수 있는가?

    이러한 난관들을 예상한다면, 결국 이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인 노동계급의 조직된 역량과 전체 진보민중의 단합된 ‘물리력’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

    그것이 만약 오랜 세월의 우리 강령에 대한 꾸준한 선전과 선동의 축적에 의해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현재 전국적인 진보진영의 ‘일간정치신문’ 하나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선전선동을 대규모로 수행할 수 있는 노동계급과 진보진영의 ‘진보언론’은 어떻게 건설될 수 있을까 등등, 우리 앞에는 산적한 이론과 실천적 문제들이 있다.

    이런 문제들이 그간 ‘독점 해소’ 나 ‘민주화’ 와 같은 애매모호한 강령 속에 애써 모른 체하며 은폐되어 왔던 것이다. ‘재벌 국유화’ 강령의 전면화를 통해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간 노동운동과 진보진영 전술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와 함께, 이 강령목표를 달성키 위한 논의의 구체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혁명을 눈앞에 둔 시점인 1917년 9월 중순에 쓴 <임박한 대란, 출구는 어디에?>라는 글에서, 레닌은 전쟁이 몰고 온 재난 가운데 신음하는 러시아 인민을 향해 이렇게 결단을 재촉하였다: "멸망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가장 혁명적 계급에 맡기고 가장 빠른 속도로 더욱 고도한 생산방식으로 이행하든지". 지금 한국의 노동계급과 진보진영이 바로 강령 문제에 있어 이 같은 결단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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