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치에 걸림돌 될 수도"
    By
        2011년 11월 14일 09:09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나는 이번 홍세화의 진보신당 대표 출마가 오히려 진보정치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출마 이후 진보신당 당원들은 일제히 "홍세화와 함께 존엄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홍세화 본인도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에도 극렬히 반대하며, 독일 사민당이 100년의 장기전망으로 집권했던 것처럼 창당한 지 3년 된 진보신당도 보다 큰 관점에서 정치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존엄사?

    하지만 이는 정세에 대한 심각한 오판이다. 진보진영이 외면받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눈 앞에 닥친’ 민생보다는 뜬구름 잡기에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부유세, 무상급식 등 ‘바로 여기’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놨을 때, 진보진영은 떴다.

    이미 진보진영은 뜬구름잡기의 폐해를 똑똑히 지켜본 바 있다.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당력의 절반 이상을 소모했다. 2007년 대선에서 부유세와 무상급식, 무상의료는 실종됐다.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은 10%가 넘던 진보 지지율을 절반으로 끌어내렸다.

    당은 바뀌었지만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이 당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홍세화의 ‘100년론’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지금은 안되니까’ 자신의 정체성(또는 이념)을 공고하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신당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그동안 진보신당의 활동을 보면 민주노동당보다 좌파정당이라는 평가를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주노동당이 최근까지 강령으로나마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의 이상을 계승하겠다고 한 데 비해, 진보신당은 자본주의 자체를 공격하는 주장을 편 바 없다. NL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인지 주한미군 철수도 주장하지 않았다.

    노심조라는 명망가가 있었을 때도 민주노동당과 뚜렷하게 구별될 정체성을 수립하지 않은 진보신당이 이제 와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의 정체성을 수립하겠다는 것인가. 결국 홍세화의 대답은 ‘더 열심히 투쟁하자’는 것이다.

    내년 총선 성과 내기 어려울 것

    하지만 ‘투쟁’은 정체성으로부터 나온 실천일뿐이지 정체성 그 자체는 아니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도 열심히 투쟁하는 상황에서 홍세화의 ‘100년론’은 "대체 진보신당이랑 다른 야당이 다른게 뭔가요?"라는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줄 수 없다.

    각종 언론 보도나 정세를 고려해볼 때, 내년 총·대선 국면에서 진보신당이 기성 정치권으로 재진입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페이퍼 당원을 합쳐 5천명의 당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회당과 통합이 성사되더라도 3% 정당득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객관적인 조건 하에서 진보신당의 길은 둘 중 하나다. 정체성에 방점을 찍어 기존 좌파정당에서 올곧게 내걸지 못한 혁명적 사회주의를 표방하거나, 반대로 ‘발전적 해체’를 통해 진보진영 전체의 우경화를 막는 길이다.

    상징성 외에는 아무런 사회적 의미가 없는 활동을 통해 당원들에게 ‘희망고문’을 계속하고, 당 자체로도 끝없는 빚의 나락에 떨어지는 모습은 그만두어야 한다. 진보신당은 ‘정당’이라기보다는 ‘사회단체’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버린 사회당의 모습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발전적 해체’보다는 진보신당이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으로 재편됐으면 한다. 홍세화와 존엄사하자고 외칠 것이 아니라, 그동안 NL 핑계, 노심조 핑계로 하지 못했던 반자본주의를 마음껏 외치는 진정한 좌파정당으로 말이다. ‘지금 여기’의 문제를 풀 역량이 없다면, 정체성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100년 뒤에 집권을 하든말든 할 것 아닌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