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의 희망은 가짜다
        2011년 11월 13일 07: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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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을 자유화하면 투자자와 채권자의 “가상 의회”가 만들어져 정부 정책을 “사사건건 표결에 부칩”니다. 가상 의회는 어떤 정책이 비합리적이라고-즉 이윤이 아니라 사람에게 이롭다고-판단하면 자본 도피, 통화 공격 등의 수단을 동원하여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최근 사례를 들자면, 우고 차베스가 취임하자 자본 도피가 급증하여 베네수엘라 부유층이 해외에 은닉한 재산이 베네수엘라 GDP의 5분의 1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산티소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2002년 미국이 사주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시장은 열광적으로 환호했”으며 카라카스 증권거래소는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대중 시위로 민선 정부가 복원되자 증시가 폭락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본 흐름이 자유화되면 정부는 투표자와 가상 의회라는 ‘이중 유권자’를 상대해야 합니다. 부자 나라조차도 가상 의회가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합니다. – 본문 중에서

       
      ▲책 표지. 

    『촘스키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노엄 촘스키 지음, 노승영 옮김, 20000원, 책보세)의 원제는 희망과 전망(Hopes and Prospects)이다. 어떤 수사도 없다. 누구의 말버릇대로 주어가 빠졌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건 이루 말할 수 없다. ‘담대한 희망’은 오바마를 일컫지만 여기서 촘스키는 단언한다. 오바마의 희망은 가짜라고.

    단지 미국의 희망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뿐이라는 촘스키의 일갈이 책 전반에 걸쳐 집요하리만치 온갖 증거들과 인용문들로 넘쳐난다.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다면 당연 미국은 악의 집단이다.

    그럼, 선은 누굴까. 미국과 맞서 민중의 권력을 쟁취한 볼리비아? 맞다. 촘스키는 이들 라틴아메리카의 민중 권력들에게서 희망을 찾고, 전망에 대해 진단한다.

    촘스키가 천착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여기에서도 예의 불편한 진실들은 넘쳐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벌이는 끔찍한 살육의 현장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정당한 방어 행위는 테러로 규정된다.

    부시 정부나 오바마 정부 모두 똑같다. 오바마에게서 일말의 희망을 기대했다면 이는 ‘담대한 오해’다. 팔레스타인의 해법은 두 국가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와 이스라엘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는 “두 나라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더불어 살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겠다”는 화려한 수사에 대한 반박이다. 오바마에게서는 기대할 희망도 전망도 없는 절망의 상황일 뿐이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에도 미국의 질서를 강요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 원칙에 따라 라틴아메리카는 ‘민주주의의 폭력과 폭압’에 치를 떨어야 했고 숱한 세월 동안 피를 흘려야 했다.

    하지만 차베스, 모랄레스로 이어지는 민중 혁명이 새로운 물결을 이루고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래서 라틴아메리카를 이야기하는 촘스키의 희망과 전망은 어느 지역보다도 밝다. 촘스키는 “현재 라틴아메리카는 자유와 정의를 위한 끊임없는 투쟁에서 가장 역동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라고 말하며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민중 투쟁은 전세계의 양식 있는 민중의 목표가 되는 세계화를 향한 공동 노력에서 전세계의 귀감”이라고 단언한다.

    미국의 또 다른 경제 지배 전략인 자유무역협정. 여기서 촘스키는 신자유주의의 강요된 질서로 명명했으며 ‘무역’은 “국민의 의사는 빠진 채 국가가 뒷받침하는 무책임한 사기업의 횡포에 인간의 삶을 넘겨주는 행위를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정의한다.

    이름만 자유무역협정일뿐 실상은 미국의 군사적 지배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멕시코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은 ‘북미’ 말고는 모두가 거짓인 셈이다. 멕시코가 처한 위기의 상황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 이는 지금 우리가 미국과 맺으려는 한미자유무역협정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숭미주의자들에 의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해졌고 미국은 전망이 밝아졌다.

    이 책은 촘스키가 2006년 칠레에서 행한 강연을 시작으로 총 12장에 걸쳐 2009년까지의 강연과 기고문을 엮어 만들었다. 이 책의 1~3장을 묶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제목으로 스페인어로 출간한 바 있는데, 영어판은 2010년의 상황에 맞게 개정하고 내용을 대폭 증보했다.

    이 책의 제1부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세와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제2부는 미국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들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최신의 정보들을 바탕으로 최신의 이론과 견해를 밝힌 촘스키의 최신간이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호소한다. “25년이 지나는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민중이 봉기하여 정부를 압박했을 때뿐이었습니다.” 한국 사회를 향해 던지는 촘스키의 희망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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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노엄 촘스키 (Avram Noam Chomsky)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촘스키는 생성문법이론으로 언어학의 한 획을 그음으로써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1928년에 태어나 29세에 미국 MIT대학의 부교수, 32세에 정교수, 37세에 석좌교수, 47세에 ‘인스티튜트 프로페서’(하나의 독립된 학문기관에 상응하는 존재)가 된 그는 지금까지 70여 권의 저서와 10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촘스키를 “인류 역사상 가장 자주 인용되는 여덟 번째 인물”로 묘사했으며, <뉴욕 타임스>는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으로 일컬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언어학자로만 머물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언어학·철학·인지과학·심리학뿐 아니라 정치·경제·역사·문화·사회·사상 등 다방면에서 학문적 성과와 탁월한 성찰을 보여온 그는 세상의 왜곡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뜨거운 열정을 거침없이 불살라왔다. 온갖 편견과 음모와 거짓으로 얼룩진 미국(아니 전세계) 주류 지식인 사회와 지배 권력의 심장을 후벼대는 그의 야유와 독설은 나이를 먹을 줄 모른다.

    역자 : 노승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 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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