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김정일 싫어, 잡아가지 마세요이제 청년들 개드립이 국보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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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14일 04: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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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근이 자신의 트윗에 올린 사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불안하다. 먼저 이 말을 잘못 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국정원에서 급습할까봐 그렇다. 갑자기 내 집에 있는, 학생회 사무실에서 주어왔던 80년대 책들을 전부 갖다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나는 불안하다"

    혹시나 NL의 입장을 대변했던 책들이 있나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게다가 한 때 ‘독립운동가’ 김일성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PC통신 어딘가에 써 놓은 적도 있는 것 같다. 또한 언젠가 대학교 수업 때 김일성 주체사상과 관련된 문건을 정치학 수업 시간에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게 혹시 어디서 튀어나올까봐 불안하다.

    내가 김일성과 김정일 욕을 얼마나 했는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다 스캔할 방법은 없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또 고민이 시작된다. 생각해보니 2000년대 초반부터 이런 저런 ‘북한발’ 사이트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우리민족끼리’의 내용을 트윗으로 본 적이 있다. 혹시 이것도 다 ‘그들의’ 정보망에 ‘포획’되고 있을까?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는 ‘과대망상’이라며, 마치 내가 “내 귀의 도청 장치”를 뉴스 시간에 외쳤다던 그 미친놈 취급할지도 모른다. 근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한동안 이런 걱정을 잊고 산 적이 있었다. 심지어 군대에 있을 때도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2008년 ‘불온서적’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별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냥 냉소하고 국방부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준다고 신나하던 적이 있다.

    덕택에 장하준 책이 50만 부를 넘게 팔려서 출판시장의 파이를 키워준다고 좋아했었다. 내 책장에 모든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이 꽂혀 있다고 아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해보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우파들이 멍청해도 국가보안법으로 반대 인사를 때려잡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냥 죽어있는 법이라고 생각했었다.

    조선노동당을 싫어하는 간첩?

    ‘좌빨’, ‘친북좌파’라는 말을 아무리 공안검사들과 한나라당, 그리고 청와대에서 하더라도 별 일이 벌어지지 않고 그냥 ‘정치적 레토릭’으로 끝날 줄 알았다. 그랬었다. ‘민주정권’ 10년이 그렇게 긴장을 풀어놓았던 것이다. 아. 그랬다. 나는 긴장을 풀고, 정권을 너무나 ‘민주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각하의 ‘팔’들을 잊고 있었나. 아, 다시 외쳐야지. “나는 김정일이 싫어요.”

    2011년 9월 박정근에게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가 출동했다. 곧바로 가택 압수수색이 진행되었고, 11월 초까지 네차례 조사를 받았으며, 11월 15일 추가 조사가 진행되었다. ‘주사파’ 출신도 아니고, 통일운동을 했던 것도 아니며,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반조선노동당’(반조로당)을 강령에 명확하게 박아두고 있는 ‘사회당 당원’ 박정근이다.

    지금 진통을 겪고 있는 ‘진보대통합’의 꿈이 이미 10년 전에 성사될 뻔한 적이 있다. 2002년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통합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것이다. 근데 엎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회당이 워낙 비타협적으로 북한을 ‘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북한을 ‘깠던’ 사회당의 당원 박정근에게 걸린 혐의가 “북한 체제의 찬양고무”다.

    이제 이쯤 되면 정권의 ‘지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박정근에게 찬양고무죄 혐의를 씌우는 것에서 국가보안법이 ‘막걸리 보안법’ 수준에서 전혀 진보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차라리 ‘폭력 투쟁’과 ‘민중봉기’를 근거로 사노련에게 국가보안법 혐의를 씌웠던 것은 양반이었다. 박정근 사태를 통해 본 경기지방경찰청은 정말 코와 귀에 모두 걸 수 있는 ‘걸이’를 만들어내고 있나보다.

       
      ▲"내가 박정근"이라며 박정근 사진을 패러디한 트위터 사용자들.

    “웃자, 웃자, 웃자라자. 싸우지 맙시다.” 1990년대의 개그처럼. 그냥 웃고 실소에 그치고 ‘개드립’ 열풍을 운동권에 불러일으켰던(?) 김슷캇의 주장처럼 이 모든 게 개드립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박정근과 김슷캇의 트윗에서 뿌려댔던 수없는 개드립은 웃음을 주거나 짜증을 주었지만, 경기지방경찰청의 개드립은 그대로 ‘인신 구속’을 만들어냈다.

    젊은 잉여들의 ‘지랄’

    “오라, 가라, 들어가라, 마라”며 신체에 대한 통제를 자구의 앞뒤도 안 맞는 국가보안법의 해석을 통하여 경기지방경찰청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도 웃을 수밖에 없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잡혀 있는 박정근도 웃고 있다.

    2010년 사노련 사건에서 김세균 교수와 검찰과의 토론을 통해 드러났듯이, 이번에도 여전히 국가기관이 얼마나 ‘지적’으로 수준 이하이며, 그 무식함을 얼마나 ‘힘’으로 때우려는지, 그리고 그 ‘힘’을 누구에게 적용시켜주는지는 정확히 탄로가 나버렸다.

    그냥 ‘귀찮고 시끄러운’ 목소리 일반에 대해서 ‘본보기’로 하나를 랜덤으로 돌려 찍어내는 방식이다. 근데 하필 걸린 게 ‘반조선노동당’ 입장을 견지하는 사회당 당원 박정근이며, 자립음악가협동조합 등과 함께 하는 ‘젊은 잉여’들의 친구 박정근이다. 실수했다.

    여기서부터 덫에 걸린 건 경찰과 검찰이다. 분명 경찰과 검찰이 법정에서 찬양고무를 인정받기 위해서, 법적으로 정당 등록된 2차례 대통령 후보를 냈던 공당원을 ‘국가 전복’의 수괴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짹짹거리고 개드립을 칠지도 볼만할 것이다. 논쟁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기대하는 것은 이번 사건 덕택에 벌어질 이 땅에 있는 젊은 잉여들의 ‘지랄’이다. Chilling Effect(위협 효과). 이번 한미FTA에서 독소조항들의 효과처럼 이 정권 역시 국가보안법을 다시금 지렛대로 삼아 누구든 뭔 말을 하게 될 때마다 잡혀갈지를 고려하게끔 만듦으로써 체제의 재생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가보안법이 학자금 대출보다 안 무섭다

    하지만 이미 더 떨어질 곳 없이 바닥을 치고 있는 청년들에게 그 효과는 더 이상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는다. 청년들은 “닥치고 가만히 있어”라고 당신들이 협박할 때 “닥치고 정치”를 외치면서 투표장으로 나가고, 한미FTA 반대집회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국가보안법이 SNS에 대한 조사보다 조금 더 무섭다하더라도, 이미 밀려있는 휴대폰 요금과 방세, 학자금 대출보다 무섭지는 않기 때문이다. 계속 이런 식이면 감옥의 ‘복지’를 노리고 겨울 되면 ‘감옥 투어’가 유행할지도 모르는 시기다.

    자못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 사건의 본질은 딱 하나다. 경기지방경찰청이 보여준 어리숙함 덕택에, 그리고 이 땅에 있는 국가보안법이 가지고 있는 엉성함 덕택에 벌어진 이번 사태가 모든 청년들이 겪고 있는 ‘혼란’의 판도라 상자를 열려버린 것이다.

    하지 말라는 거 다 할 수 있는 임계치만큼 짜증이 가득 찬 거 아닌가. 오로지 사태를 끌고 가는 것은 뭔가 세상에 ‘빡친’ 젊은이들의 ‘지랄’뿐이 될 것이다. “안 그래도 맘대로 되는 게 없어 울고 싶은 데 난데없이 뺨을 때려”준 덕택에.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위해 박정근이 모든 억압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이 기회에 국가보안법을 악법이 아니라 ‘멍청한’ 법으로 선정해 날려버리고, 아무 데나 간첩이라 들이대서 간첩이 더욱 암약하게 만들고 있는 ‘멍청한’ 공안들을 쫓아내야 한다.

       
      ▲뉴타운 간첩파티 웹포스터.

    더 밀려날 데 없는 젊은 ‘잉여’들은 12월 3일 오후 5시에 모여서 ‘뉴타운 간첩파티’를 보러 오면 된다. 게다가 확실한 ‘반공 밴드’인 <밤섬 해적단>의 공연부터 ‘애국적 지랄’이 시작될 것이다. 박정근의 ‘반조선노동당’ 입장이 더욱 설파될 것이다.

    우리는 애국행위를 하고 있는 거다는 확신도 가지게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박정근이 풀려나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 혓바닥의 자유가 나불나불 펼쳐지는 날 간첩들의 암약이 멈출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겁나는 마음에 위안을 주어야겠다. “나는 김정일이 싫어요!” 그러니까 잡혀갈 걱정 말고 12월 3일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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