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과의 연대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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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08일 06: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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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측의 선거지원은 일사불란했다. 10월 11일, 민주노총 방침에 따라 열린 서울지역 간부결의 대회에서 서울본부의 ‘협약식 체결 제안’은 ‘핵심 요구사항 전달’ 로 수위가 낮아졌다. 무소속으로 시민들의 순혈적인 지지를 염두해 둔 박 후보에게 ‘노동자들’과의 협약식이라는 형식은 깔끔한 이미지의 시민 후보에게 껄끄러운 절차였을까?

    깔끔함과 껄끄러움

    협약식 체결보다 수위가 낮게 전달된 요구사항은 서울시 산하기관의 노사관계 속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의 원직 복직, 시장산하 노정협의기구 설치 운영, 지방공기업 등 산하기관의 임원 추천과 사장, 이사, 감사구성에서의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의 참여 보장 요구였다.

    이 자리에서 박 후보는 해고자 복직에 대하여 “크리스마스 선물이면 되냐?”라는 답변을 하였고 공기업의 거버넌스 구조개선 관련 요구는 시민운동가답게 당연히 대화 채널을 가동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이후 서울지역본부 산하의 해고 동지들과 조합원들은 선거동선 수행 및 유세 지원, 기부금 모금투쟁 등의 선거지원 투쟁을 ‘열외 없이’ 진행하게 된다. 과정에서 공공운수연맹과 보건의료노조의 협약식 체결에 대한 투지는 일관되었으나 보건의료만이 ‘국립의료원에서 건대병원’까지의 ‘집요한 정성’ 끝에 간단한 협약식을 맺었다.

    나는 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몸으로 돈으로 지원했던 모든 동지들께 불편한 언사를 건네고 싶지 않다. 동지들이 박 후보를 마음으로까지 지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큰 싸움이 끝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어용세력들의 준동과 정부의 탄압, 갈수록 해결사와 투쟁 대리인을 기다리는 조합원들의 정서적 합의 형성과정을 똑같이 목도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연원을 조합원들과 조합 간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정리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우리는 거리에서 작업장 내에서 노동자계급의 대의와 명분을 가지고 서로를 격려할 만큼 싸우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합주의’였고 자본가 정권의 지속적인 탄압이었다. 우리는 담장 밖과의 교통을 원했으나 담장 안의 문제에 갇힌 것이다.

    시민운동 시스템 고장?

    지하철은 1994년에 김영삼 정부의 노동탄압에 맞서 궤도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을 엮어냈고, 1999년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과의 대회전인 4.19 대파업을 성사시켰으며, 2004년 노동시간 단축 법제화에 따른 궤도연대 공동파업 투쟁을 조직하였다. 그러한 근거로 당당하게 해고된 동지들을 존중하며 그러한 투쟁의 장에 일개 조합원, 조합 간부로서 같이 할 수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론스타와 삼성에게서 돈을 지원받아 착한가게를 만들고 기업들에게 ‘착함’을 법과 도덕의 측면에서 강제해 낸 결과가 대한민국의 가계부채 1,000조이다. 착한 후원받아 착하게 사업했기에 본인은 월세 250만원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이 정도 되면 시민운동의 시스템도 고장이난 것 아닐까?

    참여정부 시절, 낙천낙선운동으로 그들을 보위해 냈던 ‘외곽 조직의 장’은 11월 7일 투자자국가제소권(ISD) 조항 재검토를 위한 서울시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당시 FTA 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노무현 정부의 김진표씨가 최근들어 “ISD조항만 한나라당에서 재검토해 준다면 협약안 인준해주겠다.”라는 발언을 서울시청에서도 공명하는 느낌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계급협정이다. 자동차와 IT자본가들의 축제이고 노동자, 중소영세상인들에게는 피착취의 기제이다.

    ‘국민’과 ‘시민’이라는 영역 안에는 노동자, 중소영세 상인들도 들어가지만 소수인 자본가와 정치권력가들도 포함된다. 그래서 시민운동은 누구를 위한 운동인지, 지향하는 세상은 누구 중심의 세상인지를 명확히 정리해 주어야한다.

    시작과 근본 돌아봐야 할 때

    자유주의 경제전문가들이 집권한 1998년 이후 아랫목의 열기는 윗목으로 옮겨가지 않았으며 상류를 막은 저수지의 물은 여전히 하류로 흐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세계경제 대파국의 상황에서 수출입에 가장 민감한 한국의 노동자 민중들이 대공황의 한복판으로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시작과 근본을 다시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민주노조란 민주성, 자주성, 계급성, 투쟁성, 변혁지향성 그리고 연대성이다.”라고 말하며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는 전직 민노총 위원장을 보았다. 20여 년도 지난 ‘낡은 확신’을 늙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젊은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전하고 다니는 모습에서 우리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재시도가 필요함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자칭 진보인사들이라는 다수의 명망가들이 노동자계급을 배신하고 ‘통합연대’의 깃발 아래 헤쳐모이고 있다. 자유주의 자본가세력인 국민참여당과 노동자투쟁을 희망버스에 파견한 민주노총을 포괄하는 게 그 건설 방침이다.

    2004년 10명의 국회의원 당선으로 출발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여정은 여기까지다. 공명과 명망의 정치는 그들의 것이고 더 이상 노동자 민중과 함께할 수 없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그 명망가들의 얼굴이 빠진 곳은 없었다.

    노동자들의 계급의식과 변혁의식을 중화시켜 자본주의체제의 바리케이트 역할을 자처하는 인사들은 이제 낯선 사람들이 아니다.

    학습하고 분석해야

    2,000년 이후 노동현장에는 학습과 교육이 없어졌다. 노동조합은 존재하나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노동조합은 연명하지 못했다. 기업노조의 외연은 확대되지 못했고, 조합주의는 항상 ‘정치적 해결’에 갈급해왔다. 어느 때는 어용과 변별되기도 난처했다.

    대안은 분석이고 학습이다. 우리가 시민운동이 노동자 민중의 운동인지 진보연하는 명망가들이 노동자와 중소영세상인들의 선두에 있는지를 학습하고 분석해야한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서울의 일부 조직된 노동자들은 선거를 주도할 수 없었고, 조합원들과 조합원 가족들의 표, 그리고 모금으로 노동자의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해 자유주의적 중도우파 후보에게 ‘부탁’했다.

    이게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극복되어야할 ‘아픈 현실’이며 이러한 현실 때문에 힘들어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아져야 희망이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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