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국적 기업, '국가'를 흡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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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07일 05: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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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국제법, 즉 국제조약의 주체는 국가이다. 국가 간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것이지, 개인이나 기업에게 직접 권리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하며 국제법이 사인(私人)게 직접 권리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례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권과 기업 이윤 그리고 국제법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권 분야이다. 국제인권조약 체약국은 자국 국민들에게 국제인권법이 보장하는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그런데, 체약국의 국민 개인은 그 불이행을 UN인권위원회에 ‘탄원’할 수 있는 제도가 생겨났다. 다만 국내 행정 및 사법적 구제절차를 모두 다 거쳐야 하고, UN인권위원회가 조사하여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결정하는 경우에도 해당 국가에 시정을 ‘권고’하는 수준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

    이것도 ‘주권침해’라는 이유로 가맹국이 많지 않다. 가맹한 국가도 갖가지 꼬리표(예외)를 달아 가맹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유명한 선진국도 마찬가지이고, 미국은 가맹국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정도의 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국가의 반발은 대단했다.

    투자자가 국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ISD 절차)도 이와 유사한 사례인데, 오히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그것이 양자간 협정이든 다자간 협정이든 투자협정은 기업(특히 다국적기업)의 ‘권리장전’이고 ISD는 이를 보장받기 위한 수단이다. 투자협정의 앞부분은 기업의 권리보장을 다루고 있고(국가의 의무), 뒷부분은 이를 위한 절차를 다루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시장(기업)이 국가의 위에 있다"는 말처럼 초국적기업(TNCs)의 힘이 점차 강해지면서 그들의 권리장전과 ISD는 끊임없이 강해지는 방향으로 흘러 왔다. 이제 다국적 기업이 정말 국가의 머리 위에 있는 것 같다. 그 최정점이 한미FTA의 투자 챕터이다. 개인의 인권보장을 위한 구제 절차를 많은 국가들이 ‘국가 주권’을 이유로 거부한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ISD는 투자협정의 출현과 함께 시작됐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고 사회주의 국가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구미제국의 식민지 자산을 국유화하기 시작한다. 이집트가 영국으로부터 수에즈 운하를 수용하여 국유화한 사건이 대표적으로 원래 자기 재산을 돌려받는 것은 독립국의 첫 번째 과제였다.

    제국주의, 투자자 보호 역사의 기원

    그러자 유럽제국들은 이에 맞서 자국 및 자국기업의 재산을 보호하려 한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투자보호협정이다. 배상도 하지 않고 자국(기업)의 재산을 물리적으로 빼앗지 말라는 협정이다. 일본이 패전국이었기에 망정이지 승전국이었다면 우리도 이와 유사한 갈등을 경험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간접수용(규제적 수용)이라는 개념도 없고 ISD도 뒤늦게 생겨났다. 이미 투자된 자산을 보호하자는 취지였기 때문에 한미FTA와 같이 투자인가나 투자허가 단계에 있는 투자자의 이득은 보호하지 않았다. 다만 이미 영업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를 법 적용에 있어 차별하지 말라는 취지의 협정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식민모국-식민국 간의 투자협정이 선진국-후진국 간의 협정으로 성격이 바뀐다. 선진국이 개도국이나 후진국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투자한 자산을 보호하려는 성격으로 협정이 변해간 것이다. 한국도 후진국의 입장에서 선진국과 이러한 투자보호협정(혹은 투자보장협정)을 많이도 체결하였다.

    이러한 투자보장협정이 1990년대까지도 광범위하게 체결된 주류 협정이었다. 협정의 강도가 조금씩 세지기는 했지만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ISD도 일반화되기는 하였지만 보호되는 투자의 범위가 좁고, 분쟁절차에 들어가기 위한 요건도 까다롭고 강제력도 약해서 위협적이지 않았다. 사실 1995년 이전에 발생한 ISD 분쟁은 대여섯 건 밖에 되지 않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은 20년 전 신자유주의의 부흥과 함께 시작됐다. 과거의 투자(보장)협정은 유럽 국가들이 주도한 반면 1990년대가 되면서 미국이 전면에 등장한다. 금융, 통신, 유통 등 다양한 분야의 다국적 기업의 세계 진출이 전면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미FTA의 투자 챕터의 모태도 이때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식과 유럽식의 차이점

    미국식 투자협정이 과거 유럽국가 주도의 투자협정과 다른 여러가지 특징 중 첫째는 개도국/후진국에게 외국인 투자의 광범한 자유화를 요구하는 점이다. 당연히 광범위한 분야에 진출을 원하는 미국 다국적기업의 이해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진 네거티브 방식(유보방식, 협정문에 특정해서 기재해 놓지 않으면 모두 투자 자유화)이나 래칫 조항(한번 개방되면 어떠한 경우에도 되돌릴수 없다는 역진 방지장치)과 같은 방식으로 투자 자유화의 강제가 전제된다. IMF 경제위기 직후와 같이 ‘외국인 투자의 일석오조의 효과’라는 식의 담론이 함께 유포된다.

    그리고 보호되는 투자자의 범위와 권리가 강해진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직 진출도 하지 않은 투자자도 ‘기업권리장전’의 주체가 되고 간접수용이 말하는 바와 같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법제도 공격의 대상으로 확고하게 자리잡는다.

    우리가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었듯이 금융위기 상황에서 취해야 하는 금융규제(세이프가드)도 기업의 이익 보장에 우선순위를 내주게 된다. 이러한 실체적 권리와 더불어 절차적 권리(ISD)가 강해지기 때문에 1990년대 중반 이후 분쟁 건수도 급격히 늘어난다.

    정부는 ISD가 국제표준이라고 말한다. 최근에 미국식 투자협정이 보다 널리 유포된 것은 사실이다. 또 ISD가 투자협정이든 투자보호협정이든 일반화된 측면에서도 맞는 말이다. 다만 투자자에게 국가를 제소하는 제도는 인류의 국제법에 있어서 아주 근래에 나타난 예외적 제도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투자자 권리보호의 범위가 과격하게 넓어진 점도 인정해야 한다. ISD라고 다 똑같은 ISD가 아니다. 1990년 이전의 ISD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진국 기업의 개도국 정부 대상 소송이 90%

    또한 ISD가 선진국 소재의 다국적 기업이 개도국 제소를 위해 이용하는 제도라는 성격을 가진 국제표준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발생한 400여 건의 소송 중에서 90% 이상이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을 상대로 한 소송이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애초의 투자협정이 선진국-개도국의 투자관계를 반영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호주 정부가 선진국과 협정에서는 ISD를 배제하는 선언을 한 것이다. 

    정부는 우리도 미국을 제소할 수 있다고 항변한다. 물론 한미FTA가 발효하면 어떤 한국 대기업이 미국 제도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여되는 보호의 요체는 ‘기업의 이익’이고 공격 대상은 ‘국가의 제도’라는 점은 변할 수 없다. 그것이 한국의 제도이든, 미국의 제도이든 간에.

    그동안의 소송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공격당한 제도의 상당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환경, 안전과 관련된 제도이었음도 인정해야 한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그러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또 이기고 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소하겠다는 의사의 표시만으로도 공공정책이 흔들릴 수 있는 위험도 인정해야 한다. 론스타에 대한 대주주 자격 박탈,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도입된 선물환 포지션 규제, 최근의 중소기업 적합 업종 등 등 수 많은 제도가 ISD의 도마에 오를 것이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국가주권을 이유로 국제인권법을 배척해 오던 국가들이 왜 대기업의 권리보호에 이렇게 앞장서는지. 우리의 세상이 인권보호보다 기업보호를 우선하는 세상으로 가야 하는지. ISD라는 제도를 생각하면 동물농장이나 1984년 같은 소설의 미래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로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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