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빨치산 부부의 일대기
    2011년 11월 05일 03: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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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나의 아버지 박판수』(안재성 지음, 산지니, 13000원)는 6·25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해온 박판수와 그의 부인 하태연의 일대기이다. 딸 박현희의 구술을 바탕으로 소설가 안재성이 재구성하였다.

박판수는 생존한 빨치산 가운데 최고위급인 경남도당 북부지구당 위원장을 역임한 인물로, 두 차례에 걸쳐 24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하고 비전향으로 석방된 후 통일운동에 전념하였으며, 부인 하태연 역시 빨치산 활동을 같이한 부부 빨치산이었다. 현재 부인 하태연은 생존해 있으며, 박판수는 1992년 75세 나이로 사망하였다.

1918년 경남 진주 진성면 함양 박씨 종갓집에서 태어난 박판수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해방 후에도 여전히 친일파가 득세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경남 함양 서하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박판수는 해방과 동시에 건국준비위원회 진양군 책임자를 맡아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47년에는 남로당 서하면 당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미군정 규탄대회를 주도하면서 경찰의 체포를 피해 입산하여 5년 동안 빨치산 활동을 하였다. 진주 인근에서는 명문고라 할 수 있는 진주공립농업학교(이후 진주농고를 거쳐 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를 졸업하고 동경 유학까지 갔다 온 박판수는 면당위원장, 군당위원장을 거쳐 경남 도당의 고위 간부로 활동하다가 1952년 2월 토벌대의 대규모 빨치산 토벌로 체포당하게 된다.

1926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하태연은 개화된 유학자를 아버지로 두어 그 시대에는 드물게 보통학교까지 졸업한 여성이었다. 17세 꽃다운 나이에 박판수와 결혼하여 남편의 영향으로 민족의식, 사회주의 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전쟁 중 인민군 치하에서는 진성면 여성동맹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국군이 다시 들어오자 우익의 보복극을 피해 지리산으로 피난하였다. 이때 여섯 살짜리 딸과 세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함께 입산하게 되는데, 이후 10개월 동안 아이들과 함께 토벌대에 쫒기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혹독한 겨울을 나기도 하였다. 결국 아이들을 맡아줄 곳을 찾아 하산하였다가 체포당하여 8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다.

출옥 후에는 흩어진 아이들을 되찾아 생계를 꾸리면서 남편의 옥바라지에 힘썼으며, 1994년 범민련 부산경남연합이 발족한 후에는 통일운동에 전념하였다. 1997년에는 범민련 활동을 하다가 71세 나이로 구속까지 당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요양 중이다. 산 생활과 감옥살이, 옥바라지 등으로 몸은 고생스러웠을지언정 하태연은 지금도 자신의 삶이 영광스럽다고 생각한다.

“나는 존경하는 네 아버지를 만나 영광스럽게 살았다. 감옥살이를 했지만 내 생애는 영광뿐이다. 나 죽거든 우리 엄마 고생만 했다고, 불쌍하다고 절대 말하지 마라. 내가 살아온 길은 떳떳하고 영광스러운 길이었다. 수십 년 보따리장사를 하며 힘들게 살았지만 조금도 부끄럽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 죽거든 절대 엄마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하태연이 딸에게 들려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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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안재성

1960년 경기 용인 출생.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광산노동운동과 관련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다. 장편소설 『파업』, 『황금이삭』, 『경성트로이카』 등을 썼고 이현상, 이관술, 박헌영 등에 대한 인물평전과 부산지역에 생존해 있는 빨치산 구연철의 생애사 『신불산』을 썼다. 노동운동 기록으로는 『청계 내 청춘』, 『한국노동운동사』 등이 있다. 이념대립으로 가려진 역사와 인물들을 복원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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