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진보신당에 입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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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04일 08: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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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여태까지 진보신당 관련 문제들을 꽤 자주 논하면서 실제로는 입당 수속을 정식으로 밟은 적이 없었습니다. 약 2년 몇개월 전에 입당 원서를 쓰려다가 제게 없는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원서 작성을 멈추었다가 그 뒤로는 다시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주민등록번호와 입당

    주민등록번호가 생기자면 국내 주소가 있든지 외국 거주자의 경우에는 외국에 나가기 전의 옛 번호가 말소되지 않고 계속 존재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어야 하는데, 저처럼 외국에 나간 뒤로 귀화 수속을 완료한 "교포 귀화인"의 경우에는 그 번호는 있을 리가 없고, 그 번호가 없다는 것은 늘 현실적인 차별로 느껴집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이상 특히 인터넷상으로 하지 못하는 일들이 제법 많기 때문입니다. ‘주민’이 아닌 저로서 ‘주민등록’도 문제이었지만, 무엇보다 노르웨이에서 살면서 당원다운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부분에 대한 회의가 좀 강했고, 그저 명의만 빌리는 식의 ‘무늬만 입당’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민등록번호’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꼭 입당을 해서 할 수 있는 대로 당을 위해서 일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당장에는 육아와 마감이 급한 논문 작성에 몰두한데다가 몸이 다소 안좋아서 못하더라도, 신변 정리가 어느 정도 되는대로 바로 원서를 쓰렵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는 이유는 제가 평소에 존경하는 홍세화 동지가 당 대표로 출마되시는 것만은 아니고, 지금 국내외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입니다.

    세계는 지금 공황과 불안의 시대로 접어들어, 어떤 본격적인 사회, 정치적 변혁을 위한 계기가 주어질 가능성은 다소 높아집니다. 일단 세계 중심부의 지배자들이 최근 수십 년 동안 추구해온 프로젝트 하나 하나가 실패로 돌아가거나 각종의 균열을 노출하면서 지지부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실패한 미제국 지배자들의 프로젝트

    예컨대 미 제국의 지배자들은 "인권", "민주주의" 등등의 핑계를 대면서 1999년3월 이후의 세르비아 공습 이후로는 노골적인 군사적 개입을 통한 전세계적 패권 공고화의 프로젝트에 착수했지만, 지금 이 프로젝트는 완전한 실패로 끝나가는 것입니다.

    이라크 침략 8년의 결과로 미군이 금년말에 이라크의 땅에 기지 하나 남기지 못하고 철수되는 것이고, 아프간에서의 서방측의 괴뢰정권이 수도 카불에서마저도 치안유지를 못하는 만큼 저항세력의 제압에 완벽하게 실패하고 있습니다.

    3~4년 후에 서방측 군대가 철수되는 대로 아프간이 저항세력의 통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미 거의 정해진 순서로 보입니다. 이라크, 아프간 민중의 영웅적 저항은 이란과 북조선에 대한 미-일-한 불륵의 침공을 방지한 역할도 해낸 차원에서, 우리 모두가 2004년11월의 팔루자 전투와 같은 치열한 싸움에서 거의 맨손과 가벼운 화기로 미군을 끝까지 막고 포화 속에서 목숨을 잃으신 이라크의 투사들에게 깊이깊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의 희생 덕분에 미 제국의 이라크 점령, 지배는 불안하게 되어, 계속 저항하는 이라크를 놓아두고 북조선까지 침공할 여력은 몰락해가는 미 제국에게 없었습니다. 이라크, 아프간의 투사들이 한반도를 전쟁으로부터 지켜냈다고 봐야 합니다.

    미국의 세계침략이 패배하면서 동시에, 유로존과 같은 서구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프로젝트도 벽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낮은 인플레이션, 낮은 이자율을 골자로 하는 유로존 프로젝트는 그리스와 같은 준주변부 경제들의 경기부양 가능성을 앗아가 그들을 파국으로 몰아넣었으며, 그리스 등지 민중들의 가열찬 저항에 부딪쳤습니다. 미 제국과 함께 유럽의 금융자본적 ‘유사 제국’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제국의 위기와 저항의 가능성

    제국의 위기와 패배들은 저항의 가능성을 넓혀갑니다. 그런데 자연발생적인 저항은 치열해져도, 좌파 정당, 단체의 전위적 역할 없이 그 저항은 결실 맺기는 물론, 이론적으로 정연한 강령 하나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미국의 ‘월가 점령 운동’에서 발화되는 이야기를 보시지요. 이 운동이 다수 미국인들의 정당한 분노를 그대로 담은 것이지만, "욕심이 많은 은행가"의 ‘과욕’을 도덕주의적으로 질타하는 표어들을 보면 그저 씁슬한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자본가의 문제가 ‘과욕’인가요? 미국에서의 금융자본의 오늘과 같은 과도 팽창과 기생적인 성격은, 말기의 자본주의의 종합적인 위기 상황, 특히 산업부문에서의 이윤률의 하락과 전체적인 과잉생산의 위기 등을 반영하는 것이지, 과욕의 문제는 전혀 아닙니다.

    과욕이 없는 자본가는, 독이 없는 독사와 같죠. 그런 자본가는 존재한다 해도, 동종 사이의 적자생존적 경쟁 속에서 그저 보다 ‘독한’ 경쟁자에게 먹히고 말 것입니다. 이 도덕주의적 언사와 그리스 공산당의 논리정연하고 구체적인 입장 표명(http://inter.kke.gr/)을 비교해보시지요.

    데모에 나가는 그리스 노동자들은, 추상적인 ‘과욕’이 아닌 구체적인 이념과 정책을 토론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공산당이 대중의 혁명적인 분위기에 비해서 지나치게 온건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좌우간 대중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반대를 정치강령화할 수 있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좌파 정치가 거의 죽은 미국의 비참한 상황과는 큰 차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박원순은 상식 있는 중도 우파

    미국만 그런가요? 좌파정치가 여태까지 제대로 없었던 것은 우리 대한민국도 똑같습니다. 저는 예컨대 나경원씨에 대한 박원순씨의 승리를 적극 환영하지만, 소액주주 권리운동과 소액대출 확대운동을 벌여오신 분을 ‘진보’라고 불러야 하는 우리의 정치적인 상황은 너무나 비참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 어떤 합리적인 기준으로 봐도, 박원순씨는 "상식이 있는 중도 우파" 정도가 되시면 됐지, ‘진보’와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복지 확대’는 진보적 의제와 연관성을 보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이 나와야 그 성격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박원순씨마저도 ‘진보’로 불러지는 이유는, 그만큼 진보정당다운 진보정당이 여태까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지우고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민주노동당 지도부 같은 경우에도, 실은 ‘자유주의 진영의 좌파’로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필자.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진보신당도 여태까지 계급정당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소 타협적이었던 종전의 지도부가 탈당하고, 자본주의 극복의 이상을 지금도 간직하는 홍세화 선생이 새로운 대표로 출마하시고, 당의 성격을 ‘계급의 대표자’로 보는 분들의 위상과 비중이 강화되는 오늘날 상황에서는, 진보신당은 적어도 계급정당이 될 가능성을 보이기라도 합니다.

    사회당 등 일각의 소수의 정당을 제외하면, 국내의 다른 정당들은 그러한 가능성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계급정당이 없으면 공황, 위기, 그리고 변혁적 가능성의 이 시대에 우리 계급이 정치적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은 저로서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저는 그래서 진보신당에 입당해서 당이 계급정당으로서의 그 역할에 보다 충실하도록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그래야 중도우파가 ‘진보’로 호명되어지는 오늘날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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