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 등치는 자격증 상술 폭파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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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03일 09: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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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벌이 안 좋아도 자격증 있으면 되지! 이제 능력 시대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게도 그 사람이 멋져 보이기보단 또 다른 ‘권위’에 포섭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비판적인가.

    그 ‘능력 시대’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이자 역시 자격증이라는 권위에 의탁해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요가 강사인 나는 ‘자격증’이라는 아류 학벌 냄새나는 배지를 달아주면서 적지 않은 돈을 요구하는 ‘학원+현역 전문직 종사자들의 합작 상술’인 각종 자격증 과정이 불쾌하다.

    자격증 자체를 거부할 만큼 래디칼 하지는 못한 나, 소심하게 자격증 과정 안티소비하는 정도에 그쳤다.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들 덕분에 요즘 수입이 쏠쏠하다는 각종 자격증 과정, 진짜 얄밉게 돈을 긁어모으고 있는 그 탐욕스러운 손톱에 낀 때를 들춰보자.

       
      ▲영화 ‘요가학원’의 한 장면. 

    자격증, 탐욕의 산물

    “선생님. 요가 선생님 되려면 돈 얼마나 들어요?”
    종종 회원들이 물으면 나는 대답하곤 한다.
    “글쎄, 얼마 든대요?”
    그러면 회원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뭐야, 선생님 자격증 따신 거 아님?”하고 묻는다.

    오,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세요. 저 ‘자격 있는’ 요가 강사예요. 하지만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고요.
    “자격증을 공짜로 따셨다고요? 어디서?” “어디서요??”
    회원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한다.

    이어 쏟아지는 그 요가원의 이름과 연락처 캐묻기 공세. 그게 공짜라면 자기도 요가 강사 해볼 생각이 있다며(오 제발, 회원님들의 그 유연하지 못한 골반 먼저 좀 ‘선 조처’ 취하시고 ‘후 문의’하시는 건 어떨까요), 블라블라.

    나는 운 좋게도 ㄱ요가원에서 ‘공짜’로 요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대학 시절 요가를 독학으로 수련했지만 요가를 가르쳐 보고 싶어서 알아본 결과, 요가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자격증을 따는 방법을 알아봤지만 ‘괜히’ 비싼 요가 지도자 과정의 가격에 그냥 하지 말까, 차라리 그 돈이면 요가의 원류지를 다녀오고 말지, 하는 마음 상태로 요가 지도자 되기를 반은 포기한 상태였다.

    이미 4년 간 결코 그만한 값어치를 하지 않는 학사 과정에 수천만 원의 비용을 쏟아 부은 전적이 있었기에 내 공인교육 과정에 대한 신뢰도는 높지 않았다. 더 이상 부모에 손을 내밀 수도 없었다.

    돈 안 들이고 자격증 따기

    하지만 요가를 가르치고 싶기는 하고, 어떻게 할까 밤새 머리를 쥐어짜며 마우스를 이리 저리 휘두르던 그 때 내가 알아낸 건, 바로 요가원에서 인포(안내)를 봐주는 알바를 하며 알바비 대신 자격증 과정을 수료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 그 중 한 요가원인 ㄱ에서 그 해 끝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보냈다.

       
      ▲요가 학원.

    ㄱ요가원에서 인포를 보며 요가 지도사 공부를 하는 한편 생계를 위해 번역가 일을 병행했던 그 때는 내 짧은 27년의 생애 동안 가장 바쁜 6개월이었다고 고백한다. 마의 고3 시절에도 이만큼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할 의지는 없었는데. 매트 위에서 다리를 찢고 있던 나는 어느새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서서 한 손에 넷북을 들고 머릿속에서 영어 문장을 갈기갈기 찢으며 정신없이 번역가에서 요가 지도자로 환승하고 있었다.

    그 때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했다. 나야 철저한 조사와 시기를 잘 만난 탓에 요가 자격증 과정을 안티소비하고 자격증은 뺏어오는 알찬 기회를 얻었지만, 이걸 돈 내고 하려면 과연 자신이,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요가 자격증 과정을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

    실제로 요가 지도자 과정에서 만난 수강생들의 정체는 대부분이 아직 집에서 지원을 받는 대학생이거나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전업주부, 그리고 집에 돈 좀 있는 백수 노처녀들이 주를 이뤘다.

    보통 요가 3급 지도사 과정(보통 요가원에서 일반 요가강의를 시작할 수 있는 기본 자격증)의 가격은 80~ 400만 원대 정도. 이 정도면 집에 꼭 여유가 있지 않아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이 가격은 그야말로 ‘기본가’, 배보다 큰 배꼽은 따로 있다.

    새로운 요가 스타일 개발과 자격증

    다양한 필드(휘트니스 센터, 부쩍 많아지고 있는 핫 요가 센터 등지)에서 수업을 하려면 기본 요가 자격증만 가지고서는 어림도 없다. 요즘 대세인 핫 요가 자격증은 이제 기본 자격증과 함께 요구되는 ‘필수품’, 거기에 끝없이 밀려드는 외국산, 국산의 새로운 스타일의 요가 자격증들을 따기 위해서는 최소한 4~5개에서 많게는 10여 개의 자격증을 더 따야 한다.

    학벌을 따기 위한 수능이야 단 한 번(간혹 몇 번)이지만 계절별로 자격증을 한두 개씩 토해 내야하는 요가 강사들의 하드 트레이닝은 이쯤 되면 자기 계발의 왕좌에 올려 놓아도 좋을 정도다. 그럴 듯한(사실 억지스럽고 웃기기까지 한) 이름을 내건 새로운 요가 스타일들이 비슷한 내용을 조금씩 변주하며 쉬지 않고 계발되고, 수강생은 마루타, 요가원장은 과학자, 요가원은 실험실이 되어 자기계발을 주도하는 21세기형 요가원은 날로 번창해간다.

    이렇게 요가원이 새로운 요가 스타일의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뭘까. 바로 수익으로 이어지는 수강생들의 만족. 그건 단순한 이유고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요가수업보다 훨씬 더 비싼 ‘지도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 만들기.

    새로운 스타일을 개발하고 상표를 등록하면 그 과정에 대한 수업의 권한이 그 요가원에 소속되게 되고 그 요가원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요가강의보다 강의료가 훨씬 더 비싼, 지도자 과정 수업을 개설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실제로 내가 전에 근무했던 요가원에서도 원장이 요가원의 ‘고수익’ 창출을 위해 우리도 새로운 요가 스타일을 개발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내 이름을 딴 새로운 요가 스타일을 만들어 상표등록 시키고, 지도자들을 가르치는 지도자의 왕이 되라는 황망한 제안에 나는 그만 명예와 돈 벌이에 눈이 멀어 혹, 할 뻔 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나는 그 때 아직 요가 자격증에 적힌 자격증 취득 날짜가 6개월 채 지나지 않은 풋내기 강사였기 때문이다. 그보다 싫었던 건 이미 회원들, 아니 강사들조차도 이름을 헛갈려 할 만큼 포화상태인 너무나, 너무나 많은 요가 종류.

    이건 요가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번역을 할 때에도 비슷한 시스템이 있었다. 어디서 직업이라는 민감한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는지, 각종 ‘번역원’에서 ‘번역가 과정’을 들으라고 ‘텔레마케팅’을 당하곤 했다. 번역가 과정의 경우 요가 과정보다는 조금 저렴한 편이었지만 마찬가지, 번역원들이 잇속을 챙기기 위해 기존의 번역가들과 짜고 기획한 ‘상술’임이 틀림없었다.

    번역가 과정을 들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다만 미래가 불안한 사람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뭣 좀 빼먹으려는 그 심사가 빤히 보여 괘씸하고 얄미운 것. 방법이 있다면 뭐든 찾아내서 무한 ‘안티소비’해줘야 그 상술을 포기할 텐데.

    다행히도 내가 번역 일을 하던 작년까지만 해도 번역계에서는 공인 자격증보다는 경력과 실력을 보고 채용하는 관행이 강하게 뿌리박혀 있어 요가계처럼 자격증 과정이 활개를 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저 한 쪽 구석에서 스스로의 공신력을 스스로가 칭찬하며 그 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을 자기들 안에서 채용해주는 정도였으니까.

    자격증이라는 권위에 의탁해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나는 ‘자격증’이라는 아류 학벌 냄새나는 배지를 달아주며 돈을 요구하는 학원+현역 전문직 종사자들의 합작 상술인 ‘각종 자격증 과정’이 몹시 불쾌하다. 자격증 자체를 거부할 만큼 래디칼 하지는 못한 나, 가까스로 자격증 과정 안티소비 정도를 하는 데에 그쳤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들 덕분에 요즘 수입이 쏠쏠하다는 자격증 과정을 폭파시킬 방법을 공모 중이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악플: 니가 뭔데
    악플2: 너나 잘해라
    악플3: 그래. 요가로 돈 점 버니깐 배가 부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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