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 유행과 위기의 병존
        2011년 10월 29일 11: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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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우프만이 30년 전에 분석한 미국의 상황이 작금의 한국 대학에서도 반복되는 것이 안타깝다. 학문과 교육은 반드시 비전을 추구하고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과 인문학은 인간에게 무엇이 귀중한 가치인지 묻고, 그것을 어떻게 보존하고 발전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인문학자와 교육자가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는지 의문스럽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확고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학문과 교육이 맹목적이고 허무주의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돈과 연구자들만 있다고 학문의 수준이 높아지고, 창조적 업적이 자동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자나 교수들의 비전에 대한 갈증과 미래의 인류를 위한 탐구의 열정과 진정성이다. 이런 몇 가지 점만으로도 이 책은 한국의 인문학자와 교수들, 대학생들, 교육 행정가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줄 수 있을 것이며, 반드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박이문(포스텍 명예교수, 철학) 

       
      ▲책 표지. 

    인문학이 유행하고 있다. ‘인문 경영’, ‘소통의 인문학’, ‘도심 속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등의 이름으로 각종 행사와 특강이 넘쳐난다. 대학을 벗어나 단체, 도서관, 백화점, 박물관 등에서 주최하는 인문학 강연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인문학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겠다며, 다양한 인문학 연구공간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인문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경영학이나 자연과학에서도 인문학과 접목된 연구가 눈에 띈다. 인문학이 전문 연구자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시대는 지나간 것이 분명하다.

    이제 인문학은 모든 학문과 계층을 넘나들며 삶에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인문학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깊어졌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없다. 인문학이 보편화, 대중화되는 동안 정작 인문학의 발본지인 인문대학이 자리를 잃어갔기 때문이다.

    2011년 9월, 숙명여대 여성학통합대학원이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했다. 대학원생 정원이 줄어 더는 학과를 유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국대도 이미 2005년 전공자가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독문과와 불문과를 통합했고, 동국대 독어독문학과도 같은 이유로 2010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았다.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이 유행하지만, 정작 연구의 근원지인 대학에서 인문학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취업이 잘 되지 않는 비인기 학과의 수업은 폐강되기 일쑤고, 인문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줄고 있다.

    정부는 대학에 연구소를 만들고 프로젝트 진행비로 수많은 비용을 지원하지만, 막상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졸업자들은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다시 말해 인문‘대학’ 즉 인문학 연구자들이 종사하는 공간과 인문학 분야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위기인 것이다. 

    새로 나온 책 『인문학의 미래』(월터 카우프만 지음, 이은정 옮김, 동녘, 15000원)의 저자는 인문학이 표류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인문학의 비전을 꾸준히 제시했던 대표적인 인문학자다. 철학과 교수, 편집자, 번역자, 서평가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그는 인문학 전반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1970년대 미국 대학의 인문학 풍토와 교양 교육의 문제점을 분석해 한 권으로 담은 이 책 역시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에는 인문학 대학의 현실을 읽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인문학 교육의 목표, 비판적인 독서 방식, 종교 교육 및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이 담겨있다.

    이 책은 지난 1998년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적이 있으며, 동녘에서 출간한 이번 책은 새로운 번역자가 다시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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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월터 카우프만 (Walter A. Kafmann) 

    인문학의 비전을 제시한 인문주의자. 1921년 독일의 유대계 가문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에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니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33년간 철학을 가르쳤으며 종교철학, 역사철학, 미학 등을 넘나들며 다수의 철학서를 쓰고 번역했다.

    인문학과 인문학 교육 방식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던 그는 동시대에 미국에서 함께 활동한 한나 아렌트를 ‘저널리스트 유형의 지식인’이라고 비판하기도했다.

    역자 : 이은정

    직업이 보장된 전공을 선택해 대학을 마쳤으나 인문학에 매료되어 다시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미학과 문학에 관심을 갖던 중 이방인을 주제로 하이데거와 레비나스에 관한 박사논문을 썼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중핵교과 객원교수로 재직중이며, ‘월요일독서클럽’의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옮긴책으로《아버지란무엇인가》,《황금노트북》(공역),《레닌재장전》(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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