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진보정당을 어이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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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28일 11: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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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선거대책위원회 노동희망 특별위원회 상황실장으로 선거에 참여했다. 후보가 당선되어 기쁘지만 극심한 분열을 하고 있는 진보정당들의 앞날 때문에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선거에 임하였다. 이 글은 노동특위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개인의 판단과 소회를 쓴 것이다.

    8월 26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되자 시장직을 사임하였다. 이로 인해 실시하게 된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을 예고하는 중요한 선거였다.

    2012년과 진보, 도약이냐 지리멸렬이냐?

    9월 7일 필자가 <레디앙>에 기고한 글에서 9월 5일 진보정당 통합을 거부한 진보신당을 탈당하면서 그 이유와 나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나는 그 글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향후 정국에서 진보정당을 통합하여 진보세력을 결집하고, 총선에서의 야권단일화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고, 연말의 대선에서 정책연합을 기초로 후보단일화와 권력교체를 추진하며, 할 수만 있다면 공동정권을 만들어 한나라당이 다시는 재집권할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제를 개혁하자고 주장했다. 

    이렇게 하여 진보진영이 명실상부한 정치세력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이 과정에서 노동법의 재개정과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전면비례제를 관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전체적인 과정은 통합진보정당을 통해 대선후보를 조기에 가시화하여 5% 이상의 여론 지지를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총선에 이어 대선이 한해에 치러지는 20년 만에 한번 오는 기회이기 때문에 이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후보 단일화 발표 후 악수하고 있는 박원순과 안철수. 

    그러나 상황은 소망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오세훈 시장이 사임하자 안철수 교수의 출마 의사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는 여론조사 지지율이 50%를 넘기면서 정치권과 우리 사회에 폭풍을 일으켰다. 또 한사람 박원순 변호사도 출마하겠다고 밝혔고, 9월 6일 둘 사이에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5%에 불과하던 박원순 변호사의 지지율은 40%를 훌쩍 넘기면서 유력한 당선후보로 떠올랐다. 시민사회진영의 등장이 기존 정치질서를 뒤집어 놓고 있었다.

    9월 5일 진보신당의 대의원대회에서 통합에 대한 찬성이 54%에 머무르면서 통합은 실패로 끝나고, 조승수 대표는 사퇴하였으며, 이후 당내의 유력한 지도자였던 심상정, 노회찬을 비롯한 상당수의 전현직 광역대표들이 탈당하여 통합연대를 만들어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추진하는 등 진보신당은 분열되고 말았다.

    진보신당에서 통합이 부결되자, 기다렸다는 듯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과 통합하려는 대의원대회를 소집하고 결국 9월 25일 2%포인트가 부족한 65%의 찬성으로 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역시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해고자 복직, 노정협의기구의 설치 등을 요구

    작년 지방선거와 교육감선거 및 이후 몇 번에 걸친 보궐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한 것은 이명박 정권의 군사독재에 버금가는 독재에 민심이 이반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으며, 야권이 단일화되고 적절한 후보만 배치되면 서울시장 선거도 승리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을 가능케 했다. 

    특히 4.27 분당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88년 총선 이후 한나라당으로 계승된 보수정당이 한 번도 지지 않은 선거에서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가 승리한 것은 이러한 판단의 현실성을 더욱 높여줬다. 

    9월 8일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정치위원회 회의를 열고, 두 개 지하철노조의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본부 및 25개구에 노동복지 센터설립, 노정협의기구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요구안을 제시했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참여하는 야권연대를 통하여 이를 정책협약으로 관철시키고 야권단일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의 선거방침을 수립했다. 이런 방침은 21일의 민주노총 서울본부 운영위원회를 거쳐 확정되고, 23일의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서울본부를 중심으로 하는 서울시장 선거운동 방침을 추인했다.

    서울지하철노조 17명, 도시철도노조 18명 등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날의 파업투쟁으로 인해 짧게는 7년에서 길면 13년 동안 해고생활을 하고 있었다. 서울지하철의 경우 상당수의 해고자가 정년을 앞두고 있다고 하는 단순한 동정의 수준을 넘어 해고자의 복직은 전략사업장의 제거된 현장 지도력을 복원하는 중대한 노동운동의 과제이다.

    또한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조건에서 서울시 유관 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과 노동복지센터를 통하여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 또한 대규모사업장의 정규직으로만 국한된 기업별 노조체제를 장기적으로 극복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침 박원순 후보가 내세운 협동조합기업의 육성과 마을공동체의 건설이라는 공약은 노조로 조직하기 어려운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를 생활공동체운동으로 조직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노정협상기구의 별도 구성은 기존의 노사정위원회법에 근거한 노사민정 협의기구가 아닌 틀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들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설치된 이래 사실상 장기투쟁 노조를 지원하는 기구 수준에서 머물러 있던 것을 노사현안을 협의하는, 노동3권에서 얘기하는 단체교섭권은 아니지만 서울본부의 위상을 실질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었다.

    이외에도 공공운수연맹 산하 서울시 투자기관 및 출연기관 노조들의 정상적 노동조합 활동 보장, 보건의료노조의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문제, 보호자 없는 병원 만들기, 건설노조의 관급공사 하도급업체의 노동기본권 보장, 여성연맹의 철도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정규직화와 저임금해소, 공무원 서울본부의 노조인정, 전교조의 무상급식 확대와 학교 지원 등 서울시와 깊은 연관을 갖는 노동조합들의 요구가 결합되었다. 다만 공무원노조 서울본부와 전교조 서울본부는 선거법상 직접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배타적 지지방침의 딜레마

    추석이 지나면서 야권의 후보자들은 시민후보 박원순, 민주당은 당내 경선을 거쳐 박영선, 민주노동당의 최규엽 후보로 정리되고 있었다. 야5당과 시민사회 3개 단체가 모인 8자회의를 통해 야권단일화를 위한 경선 규칙과 공동공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박원순, 박영선, 최규엽(왼쪽부터) 

    민주노총의 요구는 민주노동당을 통해 반영키로 했다. 공동공약부터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경선 규칙을 정리한 후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독자 출마라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어야 했지만, 워낙 강력한 야권단일화 분위기 때문에 사전 협상을 해볼 여지도 없이 경선 규칙 논의에 들어갔다.

    1주일 이상을 규칙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9월 하순 정도에서 공동공약의 10대 원칙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노동복지센터 건립, 노정협의기구를 설치하는 정도가 반영됐다. 해고자 복직 문제는 2차 공동공약 협상에서 다루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이 해고자 복직 문제는 당선된 시장의 선의에 맡기자면서 공동공약에 넣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노정협의기구도 현행의 노사민정 기구를 활용하여 그 틀 내에서 별도의 노정협상을 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경선규칙은 여론조사 30%, 배심원 30%, 선거인단 40%로 결정되었다. 완전 여론조사를 원하는 박원순 후보 측과 선거인단제의 비중을 높이자는 민주당 측과의 힘겨루기에서 이 같은 결과는 조직력이 월등한 민주당의 승리로 간주되었다. 민주당은 선거인단에서 60% 이상을 확보하여 여론조사를 누르고 승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3자 경선구도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택한 원칙이었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에 따라 우선 최규엽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 특히 공공연맹 소속의 유관 노조들의 분위기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박원순 후보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선거방침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공공운수노조의 정치위원회나 서울본부의 정치위원회에서 배타적 지지방침을 없애야 한다는 노골적인 주장은 하지 않으면서도, 해고자 복직을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인 방침을 내려야 하지 않느냐 하는 강력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진보정당들이 분열하는 조건에서 대중 조직은 구체적 실리의 실현 여부에 따라 움직이는 매우 실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공공운수연맹의 한 간부는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배타적 지지 방침은 선전용으로나 할 때 이야기이고 해고자 복직 등을 위하여 자신들은 선거자금 5억원에 10만 명을 조직할 정도로 힘을 모을 수 있는데, 사실상 당선이 불가능한 데에 투자할 수 없노라고 주장하면서 "서울본부가 정신나갔다"며 힐난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의 요구가 공동공약의 논의 과정에서 명시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9월 29일부터 선거인단을 조직해야 했다. 민주노동당은 선거인단을 적극 조직해달라고 요청했고, 서울본부는 단위노조에 선거인단을 조직하라는 공문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의 요구에 대해 아무런 담보도 없는 조건에서 선거인단을 조직하는 것은 상당수가 박원순 후보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공유도 안된 채 민주노동당의 후보는 서울본부 지도부와의 면담 한 번 없이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선거운동을 하는 최규엽 후보를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TV 토론과 공동공약의 작성 과정에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켜줄 것을 주문했다. 그 결과 9월 30일에 있었던 TV 토론에서 최규엽 후보는 해고자 복직 문제와 독자적인 노정협의기구에 대해 제기하고 박원순 박영선 두 후보로부터 수용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이날 TV토론에 대한 배심원의 결과는 54 : 44로 박원순 후보가 박영선 후보를 앞섰다. 만약에 여론조사도 이와 비슷하게 나온다면 전체 지지율 50%를 확보하려면 선거인단에서 박원순 후보는 44% 이상을, 박영선후보는 58% 정도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10월 3일 선거인단 투표를 앞두고도 공동공약은 타결되지 않았다. 민주당의 입장이 완강하여 앞에서 주장했던 대로 해고자 복직을 공동공약에 반영할 수 없으며, 노정협상기구도 노사민정 기구와 별도로 설치할 수 없다는 분명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었다.

    2일 밤 자정을 넘기고 3일 오전까지도 공동공약은 타결되지 않고 있었다. 박원순 후보 쪽은 두 문제 모두 공동 공약에 담을 수 있고, 해고자 복직문제는 용어가 너무 강하니 과거의 노사 갈등에서 만들어졌던 문제로 우회적으로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나마 박원순 후보 쪽이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있었다.

    선거인단 선거에서 민주당의 구상대로 60% 이상을 확보하여 박영선 후보가 되면 우리 요구 실현은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재웅 서울본부장은 차라리 박원순 후보 쪽과 협약식을 맺는 게 어떤지 타진을 해보자는 입장이었다. 조합원들에게 뭔가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선거운동을 조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측에 협약안 타진을 해보니 최규엽 후보가 있는 상황에서는 협약안을 맺는 게 의미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최규엽 후보가 사퇴를 하든지, 우리가 배타적 방침을 파기하든지 해야 하는 문제였다.서울 본부 지도부가 잘못 나섰다가는 내부의 분란만 키울 것 같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선거인단들에게 공동공약이 타결되지 않았으니 두시까지 투표를 유보해달라는 정도의 지침을 내리는 수준이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의 강력한 문제 제기에 의해 가까스로 해고자 복직 문제는 과거 노사갈등의 문제로 노정협상구의 별도 설치 문제는 노사민정기구를 활성화하는 데 병행하여 필요시 별도 기구를 둘 수 있다는 정도의 내용으로 정리되었다. 10월 3일 선거인단과 여론조사 결과 박원순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결정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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