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고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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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27일 04: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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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과 대학생 주거권 해결모임인 ‘민달팽이유니온’이 서울시장 투표 하루 전날인 25일 저녁 7시 반 서울 서대문의 레드북스 카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각자의 "청년, 주거권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1부 행사는 청년유니온 조합원인 김정우 씨가 영화학과 졸업 작품으로 만들었던 <고시원 체류기>란 영화감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박민규 작가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란 단편소설을 각색해서 만들었습니다. 

    고시원 거주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고시원에 살면서 ‘정숙’과 동거하는 줄 알았다”는 영화 주인공의 대사와 방귀를 뀔 때조차 소리가 날까봐 조심하는 영화 속 모습이 특히 공감이 갔습니다.

    영화를 연출했던 김정우 씨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주인공이 결혼해 아파트를 장만하고 사는 모습)이 정말 천국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에게 천국은 먼 것 같다”라고 말해 많은 이들의 고개를 주억이게 했습니다.

    2부는 일명 ‘지 ‧ 옥 ‧ 고’.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실제 거주하는 청년들의 증언과 대담으로 채워졌습니다. 먼저 지하방을 대표(?)해서 최근 커피전문점 주휴수당 미지급과 관련해 카페베네 사장을 고발하여 일약 아르바이트들의 영웅(!)으로 떠오른 김민수 씨가 나섰고, 옥탑방 대표는 정재영씨, 고시원은 박주희씨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들은 모두 청년유니온 조합원들로 전부 20대입니다. 가장 좋을 때이죠.

    ‘지옥의 고통’에 비견되는 청년들의 주거 현실

    하지만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 가장 기초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의 터전인 집은 말 그대로 ‘지옥고’, 지옥의 고통을 연상케 했습니다. 반지하방에 거주하는 20대 초반의 김민수 씨는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어 집에서 독립했습니다. 그가 살게 된 곳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45만원짜리 신림동의 투룸.

    청년유니온 조합원 두 명이 이미 거주하고 있던 곳에 월세 15만원을 내며 더부살이 하게 됐습니다. 자기만의 공간을 꿈꿨지만 방 두 개짜리에 세 명의 총각들이 함께 북적거리며 살게 됐으니,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은 성공했으되 자기만의 공간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고충은 완벽한 자기 공간의 부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 하나짜리 집에 세 명이 붙어살다 보니 아침 출근 시간이 되면 화장실 쟁탈전으로 애를 먹었답니다. 게다가 햇빛도 잘 안 들고 습기가 많아서 곰팡이가 슬고 이불이 눅눅해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는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쥐가 나온다는…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대한민국, 아무리 G20회의를 개최하면 뭐 합니까! 밝고 푸르러야 할 20대 청년들이 쥐가 나오는 곳에서 살고 있는데…)

       
      ▲토론회 모습. 맨 오른쪽은 청년유니온 김영경 위원장.(사진=조성주)

    한편 역시 신림동의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7만원짜리 옥탑방의 정재영 씨는 “요즘 옥탑방은 드라마에서 보던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옥탑방이 아니다. 마당 공간을 전부 방으로 개조한 형태의 옥탑방이다”라며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는 옥탑방의 낭만을 경계했습니다.

    사회자가 가장 큰 고초가 뭐냐고 물으니 “기후 변화에 민감하다”라고 답하네요. 웃기기도 했지만, ‘벌써부터 날씨가 쌀쌀해지는 데 겨울 되면 재영 씨가 엄청 고생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왔습니다.

    쥐가 나오는 반지하방, 여자와 남자가 같은 층에 사는 고시원

    여성으로서 고시원에 살고 있는 박주희 씨의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산에서 상경해서 월세 30만원짜리 고시원 방에 살고 있는 주희 씨는 서울시 곳곳을 뒤져서 지금 살고 있는 비교적 저렴한 값의 방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남녀가 같은 층을 쓰는 고시원이라는군요. 남녀가 별도의 층을 쓰는 고시원이나 여성전용고시원은 지금의 고시원보다 5~10만 원가량 더 비싸기에 지금의 고시원을 선택했답니다.

    주희 씨는 공용 샤워실이나 화장실을 이용하러 가다가 복도에서 아저씨들과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무섭기도 하고 어색하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깟 돈 5만원 때문에…’라고 할지 모르지만 청년들에게 돈 5만원은 하루를 꼬박 일하고도 벌 수 없는 큰 돈입니다.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끼고 싶은, 아니 아껴야만 하는 돈인 거죠.

    세 청년은 모두 자기 집은커녕 전세조차 꿈도 못 꾼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보증금이 없어서 고시원에 사는 주희 씨는 보증금을 모으는 청사진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70여만원을 받고 월세로 30만원을 내고 나면 남은 돈으로는 밥을 먹고 핸드폰비를 내야 하거든요. 사실상 돈을 모을 수가 없는 거죠.

    자기 집, 아니 전세, 아니 그것도 아니고 도대체 월세 보증금 300만원조차 모을 수 없는 청년들은 딴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름 아닌 ‘우리의’, ‘우리 주변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자가 집? 전세라도? 보증금 300만원 마련도 어렵다

    명문대로 불리는 연세대 학생들에게도 집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3부 순서는 기숙사 문제, 보증금 마련, 월세 부담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연세대 학생들이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한 모임인 민달팽이유니온의 활동 소개로 꾸며졌습니다. ‘민달팽이’란 말은 집이 없는 달팽이란 뜻으로, ‘달팽이는 태어날 때부터 집이 있는데 우리는 집이 없다’는 의미에서 모임 이름으로 지어졌다고 하네요.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에서 나와 주거해결모임 민달팽이유니온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조성주)

    이들이 가장 공 들여서 벌이고 있는 사업은 학내 기숙사 건립 요구라고 합니다. 연세대의 경우 정원의 40% 가량이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로 구성되는데, 기숙사의 수는 너무나 제한적이라는군요. 해서 매 학기마다 기숙사 입주 경쟁률이 대학입시 경쟁률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들은 일반기숙사는 짓지 않고 외부에서 건립하는 민자기숙사 수만 늘리고 있다네요. 민자기숙사비는 한 학기 기준(4개월) 무려 120~160만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돈이면 차라리 자취나 하숙을 하는 게 나을 텐데 말이죠.

    아무튼 민달팽이유니온은 향후 청년유니온과 연계해서 공공의 영역에서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달팽이도 집이 있는데, 우리는…민달팽이 청춘들

    4부 마지막 순서는 민주당 이미경 의원실과 청년유니온이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 데이터를 기초로 조사한 청년층 주거현황 실태 보고서 발표 시간이었습니다. 이 보고서가 가리키는 가장 중요한 청년주거 환경 변화는 우리 청년들이 전세에서 월세로 급격하게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20~24세 청년층의 경우 2005년 당시 전세와 월세비율이 각각 25.1%, 64.6%였으나 2010년에는 17%, 74.8%로 월세 비율이 무려 10.2%포인트 상승했습니다. 25~29세의 청년층 역시 2005년에는 전세와 월세의 비율이 38.5%, 40.3%였으나 2010년에는 33.3%, 47.8%로 나타났습니다.

       
      ▲자료=이미경 의원실 

    30~34세 청년층 역시 2005년 24.4%에서 2010년 28.3%로 월세비율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40~44세, 45~49세의 장년층의 월세증가비율이 3% 수준에 그쳤던 것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청년유니온 조성주 정책기획팀장은 “1인 가구의 증가와 혼인연령의 상승, 그리고 주거 상황 악화로 인해 청년들의 다수가 월세로 살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자가 소유 중심의 주택정책만을 펼치고 있어 청년들의 주거가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향후 청년층 주거실태에 대한 더 면밀한 분석을 통해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복지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전세에서 월세로 밀려나는 청년들

    하지만 수도권의 경우 지하(반지하), 옥상(옥탑) 주거비율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의 경우 1인가구의 지하(반지하) 주거 비율이 18.5%에서 14.5%로, 옥상(옥탑) 비율은 3.3%에서 2.3%로 하락중인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청년들이 실제로 악명 높은 거주 공간 ‘지 ‧ 옥’에서 탈출하고 있다는 거?

    그건, 물론 아니고요. 이에 대해서 청년유니온 조성주 팀장은 현재 수도권에서 청년층 1인 가구의 주거형태에서 지하(반지하)나 옥상(옥탑)보다는 최근 50% 이상 증가한 고시원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고시원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과거 지하와 옥탑방에 거주하던 인구가 그쪽으로 유입된 것이라는 거죠.

       
      ▲자료: 서울시정개발원 2010

    참고로 고시원은 공식적으로 주거공간으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주거 담당 부처인 국토해양부가 아닌 소방방재청에서 관리되고 있다고 하는군요. 실제로 고시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노숙자, 홈리스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공식적으로나마 몇 년 사이, 청년노숙자가 상당수 늘어난 것이겠죠.

    고시원 거주자는 홈리스다

    자유토론에서 청년유니온 교육팀장 이대원 씨는 “서울에 비해 지방은 주거 문제에 민감하지 않다. 대전의 경우 월세 20만원이면 혼자 살기 괜찮은 방을 구할 수 있다. 원주는 2500만원이면 방 두 개의 15평짜리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지방에 가서 살 수 없는 이유는 지방에 가면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며 “주거와 고용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습니다.

    청년들의 취업난이 극심한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있는 비정규 일자리라도 구하기 위해서는 서울에 올라와야 되는데, 올라오면 집세가 너무 비싸서 월세나 고시원을 전전해야 하는 게, 요즘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인 것입니다. 이것이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 청년들의 주거문제에 대해 고민한 이유라 할 수 있겠죠.

    철학자 강신주 씨는 어느 강연에서 “시체를 발로 찼는데 소리를 내면 그건 더 이상 시체가 아니다. 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시체가 되지 않기 위해선”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날 토론회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들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어디선가 들어서 혹은 직접 경험하고 있어서 대충은 알고 있는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관에 누워있는 시체처럼,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관 크기만 한 고시원에 잠자코 누워있던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 자기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대안을 직접 고민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 같은 아우성들이 하나하나 늘어갈 때, 시체처럼 누워있던 젊은이들이 하나둘 미혹 같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까요? 마침, 미국의 젊은이들도 열심히 소리치고 있다는군요.

    이날 토론회는 아름다운 재단이 지원하고 하자작업장학교가 협력한 ‘오픈 컨퍼런스-2012년, 우리가 바꾸고 싶은 것들’ 일정의 첫째 날 행사의 하나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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