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녹색당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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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28일 10: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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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여러 나라에 녹색당이 있다. 독일 같은 지역에서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집권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정확한 당명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녹색당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10월 30일 창당발기인 대회가 열린다.

    입당이 아니라 창당이다

    나는 참여를 선언한다. 입당이 아니라 창당이다. 나는 고향인 구미에 돌아와 무소속으로 구미시의원에 당선되었다. 정치적 자수성가의 과정이었다. 무소속은 출발점일 뿐 목표 지점이 아니었다. 임기가 시작된 이래 좋은 정당을 만들기 위한 암중모색을 거둔 적이 없다.

    일단 기존 진보정당들의 움직임을 주목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통합되어야 할지, 어디쯤에서 경계를 그어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남은 것은 애매모호하기만 한 결과 뿐이었고, 기다리지 말고 먼저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진리는 도전 뒤에 온다. 한나라당을 반드시 꺾고자 하는 개혁적 유권자들과 정치가 역겨웠던 무당파 유권자의 연합으로 안철수 현상이 생겨났다. 서울특별시에서는 야권과 혁신적 시민사회가 무소속 시장후보 주변에 뭉쳤다.

    한편에서는 줄기차게 야권대통합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람들이 꽤 모인다. 하지만 이건 나의 길은 아니다. 나의 길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닌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데로 향해 있다. 그 길 위에서 녹색당은 집권한다. 순리에 따라서.

    집권하지 못해도 당장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한다. 이 길이 나에게, 또 세상에게 어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작금의 월가 시위와 ‘99%의 저항’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세계의 뼛속깊이 닥쳐온 위기와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다. 해석과 실천은 근본적이며 가시적이어야 한다. 녹색당은 이에 부합한다.

    녹색당이란?

    녹색당은 실은 녹색당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색을 품는다. 짓밟혀온 녹색을 살려 모든 색을 살리려 한다. 녹색당은 ‘환경 부문 정당’이 아니다. 생태 자체가 모든 것을 품고 모든 것에 이어져 있다. 녹색당은 생태오염과 환경파괴만을 반성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회의하고 비판하며 성찰함으로써 삶과 세상을 긍정하고자 한다.

    녹색당은 구체적이면서 보편적이다. 그렇지 못한 녹색당은 불행한 녹색당이고, 그것을 이룬 녹색당은 행복한 녹색당이다. ‘자본보다 노동’이라는 기성 진보정당의 철학은 녹색당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대신, 노동계급운동마저 자본운동처럼 자연을 착취하는 사태를 막는다.

    또 녹색당은 강제된 일이나 불안정노동, 해고와 실업을 뚫고, 일을 삶에 맞춰 조직한다. 돈벌이를 위해 시간을 죽이는 것을 반대하고, 쉼과 잠과 놀이를 일로부터 해방시킨다. 삶을 구속하는 연령과 성별, 민족과 인종 등에 따른 차별을 폐지해 나간다.

    필요하다면 차별을 휘두르는 자를 차별하려 투쟁한다. 평화롭게 존재해야 할 것들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평화는 거대한 권력쟁탈전이 아니라 풀뿌리에서부터 출발한다. 나는 세상을 해석할 수 있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바꾸기는커녕 읽을 수도 없다. 녹색당 활동으로 이를 재확인한다.

    녹색당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당이며, 세상이 자신을 바꾸지 못하게끔 하는 당이다. 투기, 억압, 착취, 폭력에 젖은 세상에게, 인류를 비롯해 부속품으로 전락한 존재들은 마구잡이로 휘둘려 왔다. 이제 유토피아의 꿈을 꿀 것이 아니라, 악몽에서 현실로 깨어나야 한다. 그때 꿈은 비로소 의미가 있고, 이 순간까지 간직해왔던 소중한 가치들을 지킬 수 있다.

    녹색당은 어떤 것이든 바꿔야 할 것은 바꿀 각오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변혁정당이며, 동시에 지켜야 할 것들을 반드시 지킨다는 점에서 수호정당이다. 녹색당은 진보와 보수의 역사를 새로 쓸 것이다. 낯설지만 이질적이지 않고, 익숙하면서도 신선하게.

    녹색당의 구미

    낙동강 파괴의 정점에 서 있는 구미보에서 행사가 열리고 사람들이 들끓었다. 학생 강제 동원 논란이 불거졌다. 강제 동원도, 자발적 참석도 모두 나쁜 일들이다. 낙동강 파괴의 여파로 수돗물이 끊어졌다. 신공항과 과학벨트를 목 놓아 부르는 동안, 실생활의 근간이 흔들렸다.

    보는 강을 끊는다. 끊어진 강은 강이 아니다. 수돗물은 다시 나오고 있지만, 구미시민은 강물을 얻고 있는 게 아니다. 구미시는 낙동강 주변에 골프장, 수상비행장, 오토캠핑장을 짓겠다고 한다. 강과 땅은 단절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저러한 것들은 생기면 생길수록 땅과 강을 갈라놓는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는 ‘자전거’와 ‘강’이라는 소중한 존재들을 이간질시키고 있다. 땅의 번뇌를 강에 흘리면, 강의 고통을 땅이 받는다. 악순환을 멈추고, 자연은 자연스럽게 되돌려야 한다. 그 선두에 녹색당이 설 것이다.

    골프치지 않는 사람, 수상비행기 타는 데 관심 없는 사람, 캠핑이 아니라 그냥 바람 쐬러 강에 들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발걸음을 다른 이들이 제약해선 안 된다. 본디 큰 돈은 큰 돈으로 흘러가기 쉬우며, 주머니가 위축되면 놀러가는 돈부터 묶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미시의 관광산업정책은 관광을 파괴하는 관광과 ‘한방에 훅 가는’ 산업을 추구하고 있다.

    자연생태계의 파괴가 산업생태계 붕괴까지 초래하는 것이다. 녹색당은 이에 대항해 내발적이고 사회적인 선순환 경제를 구축해 나갈 것이다.

    경북의 녹색당

    예전 한 잡지는 ‘영남은 21세기 대한민국의 타자인가?’라고 물었다. 영남은 현재 그렇게 되어가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경북’이 가장 심하다. 학교 의무급식, 혁신학교, 주민참여 예산제의 불모지다. 같은 경북 출신끼리 겨루는 도지사 선거에서도 당선증은 늘 특정정당이 가져갔다.

    일본 제국주의를 성토하면서 정작 일제의 제자인 박정희주의를 청산하지 않는다. 한발짝만 떨어져 놓고 보면 안다. 비정상적인 정치 현실이다. 경북인들은 경북이 근대화의 산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만 폭력적 근대화까지도 자랑스러워 하고 말았다.

    그 대표적인 결과가 경북 여기저기에 도사린 원자력발전소다. 바로 바다 건너 일본에서 후쿠시마 핵사태가 터졌다. 한반도 북부에서는 핵무기 모험까지 벌어졌었다. 그러나 경북의 정치인들은 독도 방문에만 열을 올리고, 대부분의 한국 정치인들은 탈핵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

    핵은 지구가 마시는 독극물이다. 뒤처리는 얼굴도 보지 못한 미래세대가 감당해야 한다. 기획은 잘난 사람들이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는 것은 비정규 노동자들과 주민들이다. 핵은 게다가 효율성도 떨어진다. 대안이 아니라 문제다.

    이런 문제는 서양 선진국들의 핵발전이 멈칫거리던 즈음 한국의 독재정권을 포함한 국내외 친핵세력에 의해 발생했다. 독재와 식민주의의 비릿한 오욕이 핵을 통해 그대로 경북에 담겨져 있다. 핵은 생태, 평화, 노동, 문화, 보육과 교육, 풀뿌리,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적이다.

    경북의 녹색당은 핵발전에 비수를 날릴 것이다. 이는 경북의 피를 돌게 하는 침술이다. 녹색당 소속 기초의원 내가 정치하는 기초의원이 아니었으면 굳이 당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 불완전하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전제로 집단행동을 한다.

    정치라는 콘서트는 정당이라는 밴드를 필요로 한다. 나는 당적이 없지만 스스로를 ‘1인정당’으로 여기고 움직였다. 비교적 가까운 정당들과 유대관계를 맺었고, 주변의 동지들과도 마음으로나마 정당과 유사한
    조직에 같이 있다고 상상해 왔다.

    현재 한국의 녹색당은 풀뿌리 운동가들의 손에서 피어나는 중이다. 녹색당의 필연이다. 녹색당에 참여하는 건 기초의원으로서 더없는 행운이다. 나는 풀뿌리로 빨아들인 물과 영양분을 당으로 공급할 것이며, 당에서 내리는 단비 같은 정책들을 지역에 맞춰 실현할 것이다.

    나의 지역구인 인동동·진미동은 현대화에 따른 급속한 성장과 팽창을 겪었다. 하지만 공단지대에서 흔한 여러 오염, 원룸 밀집구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 상가 곳곳에 꽂힌 유해 환경, 젊은이들의 직장에 대한 불만과 구직 스트레스, 방황하는 청소년과 불안한 어르신들, 부족하기만 한 문화예술과 여가생활, 불편한 교통, 저평가 받는 교육이 동네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고도 여전히 개발과 투기, 자본의 논리가 횡행한다.

       
      ▲필자.

    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성숙이다. 성장지상주의야말로 한가한 단꿈이다.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다. 욕심보다는 생존이다. 이런 가치를 또렷이 하면, 동네 특성을 거꾸로 살려 지구적인 모범을 가꿀 수가 있다. 녹색당과 함께 쓰고 그릴 것이다.

    녹색당이 나의 전부를 규정하지는 못한다. 단, 풀뿌리민주주의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더 굳혀준다. 녹색당원이라면 제원칙을 지역에 맞는 전략전술로 자연스럽게 펼 줄 아는 법이다. 선거 시기부터 인연을 맺은 구미 지역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과의 연대 관계는 더 공고해질 터이다. 민주노총과 청년유니온 조합원으로서의 노동운동은 쭉 이어진다.

    시민단체와는 언제나 건강한 긴장 속에서 정책제안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함께 보편적 복지와 주민권력 확대 그리고 지방정치권력의 교체를 향해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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