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사회, 일본 목격담
[일본의 일상-시작하며] "무시도, 제거도 만만찮은 재일 한국인"
    2012년 05월 21일 09: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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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를 무시할 수 없다. 역사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리도 무시할 수 없다. 위치가 우리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강한 연관성으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다른 역사성과 다른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14년을 살았다.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에 어떤 키워드를 배열해야만 할까를 고민해보았다.

작은 섬나라?

일본의 국토면적은 37만7,915㎢이다. 영국이 24만3,600㎢이니 일본의 70%도 채 되지 않는다. 한국은? 남한 면적은 10만210㎢로 일본의 약 26% 정도이다. 영국의 인근 유럽에서는 어떻게 말하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한국에서 영국을 “작은 섬나라”라고 부르는 걸 듣지는 못했다. 사실 작은 섬나라라는 말은 오히려 일본에 와서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2차 대전의 패전국, 원폭 희생 국가, 자원이 없고 국토가 작은 나라를 강조하는 레토릭들은 신문, 방송 등의 다양한 매체나 사람들의 대화, 강의 등에서 너무나 흔하게 들을 수 있었다.

세계 2위의 산업생산력, 20세기 후반부터 세계 5위를 벗어나지 않는 1인당 소득, 의료형평성은 2000년 이후 전 세계 5위권 내를 지키고 있는, 수두룩한 세계 상위랭킹을 두고도 일본사회는 자신들이 작은 국토와 빈약한 자원이라는 악조건을 가졌으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가져온 그런 인식이 일본을 부자 나라로 살게 한 원동력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실로 일본은 ‘작은’ 섬나라도 아니고, 인구가 적지도 않으며, 재정 규모는 엄청나며, 국제사회에서의 엔화 가치도 결코 낮지 않으며, 최근에는 최강 통화로 떠올랐다.

일본에서 살게 된지 14년째, 처음 일본에 도착해서 들던 의문들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나 그때 생소하게 느꼈던 현상이 지금 한국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예를 들면, ‘왜 기업과 국가는 부유한데, 개인은 가난한가?’ 하는 길었던 의문은 한국에서 같은 현상이 진행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명쾌하게 풀렸다.

큐슈 후쿠오카 국제컨벤션 센터.

재해국가

일본에 처음 왔을 무렵, 공공재의 으리 번쩍함에 간혹 기가 죽었다. 컨벤션센터, 지역공원, 음악공연장, 국제회의소, 각종 시설 등의 규모나 ‘장엄함’은 내가 사는 이 도시가 일본 내 지역경제 순위 6위인 지방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얼마나 잘 사는 나라인지를 과시했다. 유학생들이 자주 가는 정보센터가 있는 시영 커뮤니티 공연장은 너무 으리으리한 건물에 있어서 드나들 때마다 불편했다.

최근 몇 년간 서울에 가보니 명동이나 종로와 같은 도심지역이 아니라 부도심이라고 할 만한 강남 일대와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한 몇몇 지역이 엄청난 고층빌딩지역이 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알던 동네인데도 지인들과 약속을 하면 영락없이 길을 못 찾고 헤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초라해지고 그 화려해진 거리 속에 주눅 들고 있었다.

말한 대로 일본은 국토면적이 의외로 크다. 게다가 동북에서 서남으로 길게 펼쳐진 나라라서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의 기온 차는 엄청나다. 홋카이도가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한겨울에도 오키나와는 영상 10도를 웃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열대성 저기압이 뚜껑처럼 일본 전역을 덮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습한 기후를 가진다. 습한 기후는 질병에 취약하다.

전역이 화산지대이다. 홋카이도부터 가고시마까지 온천과 화산이 없는 곳이 없다. 당연히 지진이 항시적 위험으로 존재한다. 산은 가파르고 물은 깊다. 마을과 마을은 작은 재해에도 고립되기 쉽다. 이 부자나라가 재해가 일어나면 인명피해가 많은 이유 중에 하나이다.

공간의 역사 

전통적으로 강한 지방자치를 이어온 일본 사람들은 여전히 고향을 ‘나라’라고 부른다. 그래서 가계 세습정치인이 존재하고, 지역 은행, 지역 기업, 지역신문의 영향력은 한국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

비유로 말하자면, 경남에 사는 사람들은 중앙일간지가 아니라 당연히 경남일보를 보고, 하나은행이나 국민은행이 아니라 경남은행에서 돈을 찾고,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가 아니라 경남일대의 체인망이 있는 경남 00슈퍼에서 장을 보는 식이다. 물론 당연히 경남일보, 경남은행, 경남 슈퍼에 많은 지역민들이 취직하고 임금을 받는다. 재벌이나 전국규모에 예속되지 않는 지역자급경제가 가능하다.

이런 일은 규모의 경제와도 이어진다. 상당 규모의 지역 기업, 지역 언론, 지역 금융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가능하다. 국철이 민영화되면서도 역시 몇 개의 지역을 나눠 각 JR회사로 분화했다. 전력회사도 여러 개로 분화했다. 전화회사도 두 개로 분화했다. 지방자치 전통에서 일극독점은 가능하지 않다.

지방자치와 지역경제의 기반이 건재하면 재벌독점구조는 빠르게 해체할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한국에서 재벌해체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지방자치와 지역경제의 기반을 갖춘 기업을 만들어야만 없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큐슈에 있는 벳푸 온천

시간성 혹은 역사성

1868년 도쿠가와(에도) 막부가 천황에게 정권을 반환하고 평화로운(?) 권력이양이 이루어진 몇 년 후에 메이지헌법, 혹은 제국헌법이라는 법이 생기고 의회가 꾸려졌다. 이 의회는 기본적으로 에도시대의 번제도의 권력지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투표로 대의제를 실시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 제도를 이해한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25세 이상, 성인 남성, 15엔 이상의 세금을 내는 자에 한했다. 말하자면 가난한 서민이나 현금수입 따위는 없는 농부는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다.

1889년 이후 120년이라는 의회 역사도 일본사회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 보통선거가 이루어지고, 어떤 식으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2차 대전에 참여하게 되고 어떤 식으로 의회라는 기능을 통한 다양한 정치적 실험을 거쳐 왔나?

그리고 무엇을 이루었는가? 그리고 과제는 무엇인가? 많은 질문이 가능하다.

그래서 일본은 누구인가? 우리에게 일본은 복잡한 존재이다. 일본에게도 역시 그렇다. 일본에게 한국은, 특히 재일한국인이란 존재는 몸 어느 한 곳을 살짝살짝 찌르는 존재인데 무시하기도, 제거하기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은 애써 외면하고 살았지만 한류 붐은 그것조차 못하게 한다. 이제 일본은 내가 속한 사회이다. 앞으로 그저 나는 내가 살고 목격한 일본을 전하려고 한다.

* * *

* 이 글의 필자 김진희는 20대를 고졸 비정규직 미조직 여성노동자, 흔녀(흔한 여자)로 살다가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현재 일본 거주 14년째, 큐슈 후쿠오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산다. 필자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일본의 겉과 속을 독자 여러분들께 전달할 예정이다.

필자소개
토끼뿔
일본 후쿠오카에서 14년째 살고 있으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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