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수, 조규찬 & 진보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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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25일 03: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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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규찬이 탈락했다. 섭섭했다. 조규찬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 그의 출연만큼이나 그의 탈락은 매우 아쉬웠다. 해외 교민 공연이라는 현장 분위기와 맨 앞 순서인 1번은 패널티(?)라며 아쉬움을 달래도,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그를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기사들이 넘친다. ‘본인의 스타일과 나가수의 스타일을 보여줄 새도 없이’, 혹은 ‘나가수에 적응 하지 못한’ 또는 ‘채 보여주지도 못하고 최단시간 탈락, 충격의 싱어송 라이터’… 등등. (이하의 모든 음악에 대한 평가는 필자 개인의 것이다)

       
      ▲나가수 첫무대 박기영과 듀엣곡을 부르는 조규찬.

    듣는 귀는 ‘막귀’ 일지라도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항시 곁에 두는 필자는 조규찬의 음악을 사랑했다. 그루브(즉흥적인 흥겨움을 주는 일종의 리듬감-편집자)를 잃지 않으면서 정확하게 합이 똑 떨어지는 세분화된 박자를 자랑하는 세션의 편곡과, 섬세하고 여리지만 가장 아래의 뭔가를 긁어올리는 그의 보컬을 사랑했다.

    그가 단 두 번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탈락했다. 그 두 번마저도 한 번은 ‘듀엣’ 특집이었다. 첫곡인 박기영과의 보컬을 들으면서 감동했던 것은 이제껏 ‘나가수’가 보여주지 못했던(?) 음악적 특질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소라는 탈락했지만, 그녀의 음악 중 가장 멋졌던 것은 노래를 읖조릴 때의 감수성과 표정과 호흡이었다. 필자의 생각에 그 절정은 ‘No 1’이 아니라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다. 김연우는 탈락했지만, 그가 들려주었던 음악 중에 그가 F#에 이르는 기교를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라, 청아한 소리로 감성을 꾹꾹 누르는 그 보컬이었다. 토이와 함께한 그의 전작들은 아프지만 청아했다.

    인순이!

    인순이가 나가수에 출연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포털 뉴스에서 보았을 때 나의 느낌은 ‘이건 반칙이야’였다. 나가수는 이미 ‘나는 목청이다’라는 비아냥을 들어왔다. 여기에 인순이라는 최고의 보컬이 더해지면 이건 반칙이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인순이라니! 이건 톱밴드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출연하는 거랑 뭐가 달라! 라는 느낌이랄까?

    "인순이 등장은 반칙이야"

    그녀는 이미 최고의 ‘가수’다. 모든 장르를 뛰어넘는 호흡과 감수성과 무대 장악력을 가진 가수가 아니지 않나. 아주 어릴 때부터 다듬어진- 혹은 타고난 – 그녀의 소리는 이번 호주 무대에서 완벽히 보여주었다. 조영남과 함께 ‘자기 히트곡은 없지만 뭐든 잘하는’ 가수를 뛰어넘어 조PD와 함께 자신의 세계를 완벽히 세대를 넘어 보여주지 않았던가.

    차라리 같은 블랙 그루브의 감수성의 가수라면 ‘소냐’가 출연하길 바랬던 나는 욕심인 걸까? 인순이보다는 ‘제2의 인순이’라며 인간시대에 출연했던, 뮤지컬계를 뒤엎고 있는 소냐가 나와 대중에게 그녀의 진가를 알리길 바랬던 것은 과했던 걸까.

    나는 가수다. 이보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을 설명해 주는 것은 없다. 이 프로그램에 성시경이나 유종신이, 리쌍이, 루시드폴이 나왔다면 조규찬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김연우가 그랬고, 이소라가 그랬고, 조규찬이 그랬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알려지지 않는 숨은 진주’ 소냐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내가 블랙 그루브에 있어, 혹은 랩에 있어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윤미래보다 소냐를 원했던 것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숨은 진짜 ‘가수’가 나와서 대중을 휘어잡아 주길 차라리 바랬기 때문이다.

    나가수에 과연 래퍼가 나올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 가장 위대한 래퍼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전히 동어반복으로 라임(운율에 맞춘 노랫말-편집자)과 플로우(래퍼가 박자를 타면서 노랫말을 끊어부르는 방식-편집자)를 채우는 우리의 래퍼들이든 혹은 한국적 언어에 맞는 라임과 플로우를 새로이 창시했다한들 – 내가 겪어보지 못한 – 청중 평가단을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호주에서 인순이 무대는 최고였다.  

    그런 면에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전인권을 연상시키는 흰 머리와 킬힐, 선글래스, 블랙 수트, ‘빤딱이’ 포인트, 그리고 한손엔 메가폰을 손에 들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외치는 인순이는 그래서 최고였다.

    해외 교민의 인순이에 대한 인지도가 어드벤티지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외 관객을 노린 선곡과 인지도를 뛰어넘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왔던 ‘노장’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관객을 흥분시키는 아주 말초적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불렀던 ‘아버지’나 ‘서른 즈음에’는 방송보다 귀만으로 듣는 음원은 그 감동이 덜 했다. 그녀의 표정과 호흡이 아닌 순전히 ‘음원’은 그녀의 ‘잘 팔리지 않는’ 음반의 서브 트랙 같았다고나 할까. 그녀의 진심이 담겨 있지만, 왜일까.

    음향사고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영혼’으로서의 모든 것을 보여준 바비킴은 익숙하지만 새로운 모든 것을 창조해가는 중이다. 조영남과 조용필처럼 익숙한 멜로디에 그만의 것들을 얹어 그의 보컬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창조하고 있다면, 김경호는 그래서 조금 아쉽다.

    현장에서 김경호 같은 보컬은 확연히 매력적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주파수의 남성 보컬과 강력한 – 일명 ‘디스트 이빠이 건’(전자기타의 소음 효과를 최대한 내게 조작한-편집자) 기타와 더불어 – 보컬은 현장의 청중 평가단에게 매력적이다.

    칼 같이 쏟아지는 그의 목소리는 최고다. 음원으로 들어도 손색이 없다. 역시 최고의 보컬이지만 계속되면 식상할 수 있다. 그것은 하위권으로 근근히(?) 명예졸업을 앞두고 있는 장혜진이나 ‘너무 울부짖어 가끔은 부담스런’ 윤민수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나가수는 ‘버스커 버스커’를 낳은 슈퍼스타 K3 보다 나를 채워주지 못했다.

       
      ▲윤도현.

    나가수에서 진보의 미래를 고민하다

    진보정치는 늘 ‘소수’의 지지를 받아왔다. 대한민국 고정 빨갱이 3%를 넘어 원내의 ‘정치적 시민권’을 얻기 위해 그리도 전전 긍긍했던 과거와 더불어, 단병호가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보여줬던 눈물은 우리들 모두에게 심장을 움켜쥐는 저릿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어쩌면 진보정치는 조규찬이었는지 모른다. "뮤지션이 사랑하는 가수"’라는 윤종신의 소개처럼 대중이, 정치가 우리의 가치만은 인정했는지도 모른다.

    대중적으로 유명세를 떨치지 않아도, 엄청난 가창력을 가지지 못했어도, 90년대 ‘동아기획’(들국화, 김현철, 신촌블루스 등을 배출한 유명 음반제작 기획사-편집자)의 가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날의 음악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적이나 김동률처럼 싱어 송 라이터가 아니더래도, 마음을 알아주는 지인들과 술 한 잔 걸치고 나서 어설픈 달과 함께 터덜터덜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한 번 쯤 읖조리는 노래는, 소녀시대보다는 김광석의 노래였던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그런 ‘매니아’의 음악이었는지 모른다. 소시와 티아라의 음악도 좋고 그녀들도 좋지만, 어쩌면 우리만의 ‘팬’은 따로 있었는지 모른다.

    조규찬의 탈락을 두고 많은 언론이 ‘자신의 스타일과 나가수의 스타일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과연 진보정치는 자신의 스타일과 대중이 원하는 스타일 사이에서 어떤 줄다리기를 할 수 있을까. 가난하지만 자신의 음악을 견지했던 이름없이 스러져간 많은 딸깍발이 ‘예술가’들의 길일까. 아니면 때론 타협하는 음악일까. 아니 나의 음악을 고수했더니 알아주더라 하는 우연에 대한 기대일까.

    인순이가 한나라당이라면 –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미안하지만, 기존의 브랜드 인지도 및 호감도, 이름만으로 충성하는 팬들, 완벽한 무대위의 노련함을 빗대면 – 어쩌면 BMK나 장혜진은 민주당이 아닐까. 실험적인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불렀던 자우림은 진보일까?

    BMK가 김광진의 ‘편지’를 불렀을 때 나는 그녀의 진심을 곡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을 다해 노래를 목소리에 담았다. 하지만 절대적 가치로 보면 절대로 노래를 잘한다고 평가받기 어려운 김광진의 원곡과 비교했을 때, 나는 원곡이 더 좋았다. 첫사랑의 어설프고 풋풋한 그 목소리는 그 노래의 가사를 담기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과하게 풍부한 목소리는 차라리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을 담는 것이 더 좋았다.

       
      ▲자우림 밴드. 

    진보의 미래는 ‘밴드’인가

    나가수에서 밴드의 ‘캐릭터’를 담당(했고)하고 있는 것은 윤밴과 자우림이다. 오래 합을 맞춘 밴드는 ‘능구렁이’가 된다고 한다. 그네들은 무대에서 수도 없는 ‘현장’을 만나고, 또 관객과 호흡하는 노하우를 안다. 아니 그를 뛰어넘어 편곡에 있어 전혀 다른 과정과 결과를 보여준다.

    장혜진의 편곡에 대한 ‘디스’가 온라인 상에서 많은데, 최고의 건반 세션으로 유명한 황세준이 일명 ‘그따위 편곡’을 내놓는 이유는 보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대다수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많은 부분 공감한다.

    윤밴은 비록 명예졸업은 하지 못했지만, ‘밴드’로서 주말 예능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전을 보여줬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밴드가 보여줄 수 있는 편곡과 무대를 보여준 그네들은 나가수에서 유일하게 보컬만이 아닌 연주와 함께하는 ‘합’을 보여주는 팀이며, 그를 극대화한 편곡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가수’가 아닌 팀 컬러를 보여준다.

    소녀시대의 ‘런 데빌 런’을 편곡한 – 윤도현이 아닌 – 윤밴은 마이너한 코드 진행과 ‘기타 투 기타’ 리프의 매력을 보여줬고, 지상파 주말 예능이 아니라 아시안 게임 개막식 공연이 아닐까 의심했던, 김덕수 사물놀이와 함께한 자우림이 그랬다.

    ‘대표선수’들은 이미 유명하다. 예능을 통해 알려진 윤도현이 그랬고, 보기 드물게 인디 밴드 출신으로 ‘외모’가 출중한 김윤아가 그랬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은 ‘밴드’가 가지는 그루브와 합과 편곡을 보여줬고, 1등과 7등을 오가는 사이에서 대중과 호흡하는 법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보컬 밴드라고, 월드컵 때문에, 외모 때문에 떴다고 비아냥거려도, 그네들은 ‘밴드’를 보여주고 또 보여주는 중이다.

    ‘진심’과 ‘대중’ 사이

    나가수에 출연하는 모든 가수들은 모두 ‘최고’의 ‘보컬’들이며, 또한 각자의 진심으로 대중을, 청중평가단을 만나고 있다. 자신의 음악 색깔을 고집하든, 혹은 일명 ‘지르는’ 뭔가로 나가수의 시스템에 적응하든 뭔가 ‘보여주고’는 있다.

    진보정치는 과연 자신의 ‘진심’을 ‘대중’에게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래퍼든, 루시드폴이든 나가수에서 성공할 수 없지만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밴드의 ‘합’으로 이를 돌파할 것인가.

    조규찬에 대해 (그의 아버지나 형제들과 무관하게) 그의 음악세계를 사랑했던 나는 그의 음반을 살 것이며, 그의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 할 것이며, 대중이 그의 음악을 열광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을 못내 아쉬워 할 것이다. 또한, 자우림이 명예졸업을 하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고, 매주 ‘지상파 예능’에서 만나는 그네들의 ‘밴드’ 음악을 사랑하고 지지할 것이며, 기꺼이 게시판에 글을 쓰고, 문자 투표를 할 것이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나. 우리는 무엇이 되길 바라는 것일까. 진보정치는 무엇을, 어떻게,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뱀발 1 : 우리가 가는 길은 어설프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8개의 음반을 내고, 유명 아이돌과 함께 파트너를 맺는 ‘박명수’의 길일까? 우리는 지드래곤이나 제시카를 영입해야 하는 걸까? 리쌍은 예능에 나온 후 앨범이 더 잘 되었던가?

    뱀발 2 : 만약 상승세인 자우림이 탈락한다면 군 제대한 ‘넬’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은 아주 개인적인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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