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꼬뮨, 나의 아지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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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25일 01: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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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팅’을 하기로 했다. 시민단체에서 만났던 언니가 소개해 주는 사람이니 아주 보수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 노무현을 그리워하거나, 안철수에 열광하거나, 민주당에 투표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저 중 한 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 세 가지 일을 같이 하기도 한다)

    저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죠?

    그가 내게 평소 뭘 하고 지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아마도 꿈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했던 불편한 청춘을 거쳤을 그의 최종 정체성은 대기업 직원일 텐데, 왜 대기업 인턴은 하기 싫고, ‘대학생 서포터즈’ 같은 건 할 수 없는지 설명하고 이해받을 수 있을까. 그러면 뭘 할 건데요? 글쎄 말예요. 저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죠?

    대학 졸업반에 이른 요새는 내 주위에서도 다들 그런 걸 한다. 대학생으로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많은 활동들이 저런 종류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겠지만 내 심정은 못 하는 것에 더 가깝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면 차라리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연극이나 록음악 같은 것이 더 옳다고 배우며 살아왔으니까.

    아버지, 왜 날 이렇게 키우셨나요. 어떤 남자를 만나라고! 그럼 아버지는 내가 언제 널 그렇게 키웠냐? 할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떠들어댈수록 공허하기만 할 때마다, 내가 속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새삼 깨닫고는 하지만, 어쩐지 그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못한 채 붕 떠다니는 느낌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얼마나 재미없는 사람이었는지 실감하고는 했다. 그런 세계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글 읽고 쓰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도,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지루한 인간. 글을 쓰고 싶다는 알량한 꿈과 빈곤한 현실감각.

    학생운동을 그만 두고 나서 친구들은 고시도 보러 가고, 유학도 가고, 연극도 하는데 나만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우두망찰 헤맸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지만 잘 되지 않았고, 여행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바쁘게 살 구실, 돈을 벌 구실이 필요했다.

    여행이 끝났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냥 내 인생이 이대로 목적 잃고 목표 없이 시시하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운 감정은 서서히 잊혀져가고, 사랑은 실패했다. 여행지의 위기상황에서 얻은 대처 능력은 현실 상황에서 아무런 빛도 발하지 못한다. 실제 삶은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200여 일간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내가 여행기를 쓴다면 실패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대안학교에 대해서 이야기하라면 역시 실패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 시절 나는 모두의 기대를 처참히 부순, 조금도 대안적이지 않은데다 예의도 없는 꼴통이었으므로.

    학생운동 역시 그렇다. 그것을 실패라고 불러도 좋을까. 도저히 좁힐 수 없는 차이를 알면서도, 타인의 인정에 집착하느라 싫은 것은 싫다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지 못한 채 아무 말 없이 뛰쳐나오기를 선택한 이후, 실은 아직도 그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그들과 그랬던 것만큼 강한 유대관계를 맺은 집단이 없고 여전히 그들에게 정체 모를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낀다. 때로는 그 때의 이야기를 너무 자주 하는 이미 오래 전 시절의 추억을 파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학교의 부총학생회장이 된 친구는 다크 써클이 턱까지 내려와 허덕이는데. 하지만 어쩌랴. 내가 나약하고 감상적인 사람인걸. 친구를 만나 잠깐 학교 벤치에 앉아 있는데 어딜 갔냐고, 올라오라는 총학생회실로부터의 문자가 끊이질 않는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고 싶은데

    무심코 뭐가 그렇게 매일매일 숨 쉴 새도 없이 바빠? 삼십 분도 네 맘대로 못 해? 묻고는 아차 했다. “언니도 해 봐서 알잖아.” 그래 맞아, 눈코 뜰 새 없이, 삼십 분도 내 맘대로 쓸 수 없게 바빴지. 이렇게 멀어져 가고 있는 걸까. 아직 누군가를 보면서 불편해 하기에는 나는 너무 어린데.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쓸쓸하게 집회 현장 뒤켠을 서성일 때면, 솟아오른 깃발들과 등판에 새겨져 있는 글자들을 바라 볼 때면, 동기들이 총학생회장이 되어 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없는 감정이 왈칵 치밀어 오른다. 그것은 말하자면 불순한 외로움이었다.

    주류 운동권 문화에서 밀려났다는 초조함, 내세울 것 없는 불안함, 인정 욕구로 가득 찬 사람들 사이에서 나 이러이러한 걸 하는 사람이라고 손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이름표가 사라진 갑갑함, 미래에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순전히 후회 그 자체에 대한 후회.

    이후 무수하게 이어진 ‘좌파 지식인 남성들’과의 관계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담론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도, 진지한 것이 싫다는 말도 아니다. 지루하게만 느껴져도 책을 읽어야 하고, 언제나 재미있고 재기발랄한 방식으로 집회를 할 수는 없다.

    요새는 집회가 너무 촌스럽고 지루하니 난 어려운 거 몰라요, 춤추고 노래하면서 집회합시다, 이런 대안들이 유행인가본데 모두가 예술을 하며 정치에 참여할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나야말로 쿨하다, 오글거린다 같은 말이 득세하며 진지함을 우스꽝스럽게 여기는 시대에 여전히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진지한 사람이니 어렵다, 지루하다, 진지하다, 라는 말로 뭉뚱그려서 누군가를 비판할 마음도 없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좌파 지식인 남성들’

    그럼에도 술자리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뒷맛이 썼다. 그들은 지적 과시와 자신의 정치적 급진성에 대한 토로와 인맥 자랑으로 몹시 바쁘다. 그들에게 당신이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라면 나 좀 알아달라고 스스로 아우성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며,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고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해 왔는지 말고도 당신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다른 많은 것들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깃든 말투, 섬세한 감수성,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씨, 유머감각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해 왔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가 궁금하다고, 글을 얼마나 잘 쓰는지 그 내용이 얼마나 어렵고 날카로운지보다는 망설이다 쓴 연애편지가 더 사랑스럽다고.

    그들은 쉬운 얘기는 할 줄 모른다. 그것밖에 할 얘기가 없어서인지, 그것을 빼고는 인정받을 자신이 없어서인지, 혹은 못 알아듣는 사람은 애초에 끼워주고 싶지 않아서인지 알 수 없다. 이런 불편함들을 감지한다는 것은, 정확히 나 역시 이런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은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의식이란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 술자리의 떠들썩함과 우리가 맞는 길을 가고 있다는 주변의 지속적인 자기 확인 작업이 없으면 지속되기 어려운 것일까. 왕년에 치열한 운동권이었거나, 혹은 여전히 치열한 부모들을 둔 수많은 대안학교 출신의 20대들이 내 주위에 있고, 우리들 중 진보적 가치에 관심가지고 살고 있는 애들은 거의 없다.

    학생운동 조직의 논리를 견디기에는 그 애들이 너무 자유롭기 때문일까. 자기도 모르는 새에 받은 선물에는 애착이 가지 않는 법일까. 치열하게 살고 있는 또래들의 대학 입학 이전까지의 인생 여정은 지금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고민한다.

    내 인생의 골목길에도 이름표가 필요하다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부모 밑에서, 대안학교에 다녔고, 유기농 음식을 먹고 자랐으며, 성장기에 온갖 문화적 세례를 듬뿍 받으며 자유롭게 자란, 인도에서 만난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그 시대 진보적 부모들의 유행’에 따라 양육된 나, 대학 입학 후 벼락을 맞는 것 같은 지적 충격도 없었고 또 다른 세계로의 전환도 없었다. 따라서 정치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의식을 물려받았을 뿐 등록금은 부모님이 대주고, 그래서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느라 허리가 휘어진다는 것도, 아르바이트 시급이 너무 적다는 것도 머리로만 아는 대학생, 이것이 나의 정체성임은 분명하다.

    경제 활동과 주변 인간관계가 정체성을 규정하고,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면 지금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물론 다른 20대 예비 인력들과 마찬가지로 졸업 후의 나는 비정규직으로 어딘가에 고용되거나 여기저기 시답잖은 글을 팔아먹고 사는 지식 노동자로 전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때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히 머리와 마음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분노하게 되리라. 그러나 그 전까지도 나는 살아야 한다. 존재를 넘어설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찾아 헤매고 있다. 전환점을, 나의 꼬뮨을, 공동체를, 혹은, 아지트를.

       
      ▲필자.

    어른들은 생전 처음 가보는 낯선 나라에서 어찌 용케 길을 잘 찾아 다녔냐고 물었지만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려는 곳의 정확한 주소와 여행 안내소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지도 한 장만 있으면 골목마다 전부 다른 정확한 길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길 이름을 하나씩 더듬어 가면 되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찾기보다는 살아가는 일이 훨씬 어려운 것이다.

    아. 그러니 스물세 살 인생의 골목길에도 이름표가 필요한 것이다.

                                                        * * *

    * 새로운 ‘진보, 야!’ 필진으로 합류한 박인해는 현재 재학 중인 대학생이다. 문학과 여성학을 공부하며, 지금은 아지트를 찾아 헤매고 있다. 재기발랄하고 쿨한 게 대세인 시대에 혼자서 진지하게, 언젠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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