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朴 위해 뛰지만 불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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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24일 01: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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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이런 글을 쓰는가? 선거운동 기간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어이없는 공방만 오가는 이 선거에 지쳐가고 낙담하는 주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그렇다. 선거가 빨리 끝나기만 기다려진다.

    낙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눈에 띄는 정책 쟁점 없이 서로 ‘네가 부자다’라는 공격만 오가고 있는 선거 분위기. 여당의 토론회 제의를 야권 후보가 거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 등 모든 것이 이전 선거에 비해 너무 낯설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박 후보가 상대방과 보수 언론에게 빌미를 던져준 ‘협찬 노선’도 내 입장에서는 동의가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배에 타 있다. 내가 오르지 않은 배에 나도 모르게 내가 실려 있는 것이다. 진보신당 당원으로서 나는 승선한 사람이라기보다 오히려 짐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나처럼 이 선거의 중심에 서지 못한 채 선거운동을 하고 투표를 독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들을 보며, 모든 것이 내 탓이오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어 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누구나 이야기하듯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를 소극적으로 지지하나 적극적 투표의사가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투표소에 끌어들이느냐가 관건이고, 그런 사람 중에는 나와 같은 진보정당 당원과 지지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할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들과 나의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나서야 하는 이유를 곰곰이 곱씹어 보고 싶었다.

    박원순 후보라는 인물과 그의 선거 일선에 선 시민운동에 대해 부족한 것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가 못다 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서로 확인하는 것이 나와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투표소에 가게 할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이 글을 쓴다. 선거가 끝나고 해도 될 얘기는 아닌가 여러 차례 갈등했지만 글을 쓰기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운동가가 당연히 맨밥만 먹고 가난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지나친 재산 공방과 라이프스타일 공격에서 느끼는 것은 박후보 스스로가 시민운동가이면서 동시에 변호사라는,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에 한 발을 들여놓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점을 겸허하게 (한나라당이 아닌) 대중들 앞에서 인정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선거 운동 중인 박원순 후보.  

    책임 정치와 시민단체

    보증금 1억, 월세 250만원의 60평 강남아파트, 97년 창립선언문에 "가장 잘하는 자에게 맞기는 경쟁원칙을 사회 각계에 확산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당시 이명박 국회의원 등 우익이 대거 참여한 ‘경제자유찾기 모임’에 박 후보가 운영위원이었던 사례 등은 박 후보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나와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가지는 껄끄러운 심정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오랫동안 인정받는 시민운동가였다는 사실이 그의 민주-진보 후보로서 자질에 대한 검증을 대신한 듯하다. 그러나 지금 선거에서 우파들의 일관된 공격의 빌미는, 진보정당 후보였다면 이미 당내 사전 선출 과정에서, 아니면 몇 차례 출마 과정에서 충분히 검증되었을 것이다. 재산문제든 운동의 과정에서 그가 내린 어떤 결단의 옳고 그름이든 말이다.

    현재 진보정당은 그야말로 찌그러져 있지만, 그동안 진보정당에서 10년간 선거를 치러오며, 본 선거의 장에서 후보 개인의 문제로 지저분한 흙탕질이 일어났던 경험은 없었다. 이번 선거가 너무 낯선 이유를 곱씹어 보면, 그것은 우리 진보정당이 가져온 노선과 후보 선출의 과정, 정책에 대한 검증과 책임의 경험이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물론 현재 진보정당 운동은 실패를 뼈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틀과 제도와 경험이 축척되어 있고, 비록 우리가 실패를 했다고 하더라도 진보정당이 갖춰온 검증의 과정과 제도 등이 함께 폄하될 이유는 결코 없다.

    그런데 박원순 후보를 만들어온 시민운동은 어떤가. 정당이라는 관료적이고 고인 물 같은 정치조직 자체의 한계를 비판했고, 지금 한국사회의 어떤 정당도 ‘시민’을 대변할 수 없다며 정당을 우회한 정치세력화 전략을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과연 시민운동은 책임의 정치를 대체할 어떤 장치를 마련했는가?

    시민운동이 추진해 온 정책 비전과 운동의 방식 – 예컨대 재벌의 후원을 운동의 기초적인 재원으로 구축해온 것 등 – 에 대해 충분한 대중의 평가를 받았는가.

    선거 후 성찰해야 할 것들

    나는 이 질문이 선거의 공론장에 펼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박 후보측이 인지하지 못했든가, 아니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은 채 너무 준비 없이 선거에 뛰어든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후보 개인에게 그리고 정치세력화를 추구해온 이른바 ‘시민운동계’가 이번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선거가 끝난 후 이 질문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시민운동 진영은 당신들의 리더라고 믿었던 후보를 온 국민들이 똑같이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후보의 인품이 훌륭하다고 사람들에게 항변할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어야 한다. 선거는 누군가를 선출해야 하는 서바이벌 라이브 무대이니 가수의 됨됨이만 얘기할 수만은 없다. 무대에 오른 이상 가창력과 관객을 향한 무대 장악력 등 모두가 겸비되어야 하는 판이다.

    당선권에 근접한 선거에서도, 결국 선거 승리의 화룡정점은 ‘정책과 그 이상’을 요구하는 한 부류의 유권자를 누가 어떻게 설득해서 지지하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 분명하게 확신하건대 난 소수일지언정 우리의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더더욱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동안 메이저 정당의 후보와 토론회 한번을 할 수 있기를 학수고대했고 우리 후보가 출마하는 이상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 여당 후보의 토론회 제의를 야권이 거절하는 선거에 진보정당 당원들이, 지지자들이 낯설어하며, 일종의 모욕감까지 느끼는 건 이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선거운동 기간에 그동안 준비했던 시민운동진영이 내놓은 공약과 비전을 어떻게 쏟아 부을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달라고 충고한다.

    정봉주 말 못 들어주겠다

    나는 꼼수다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박 후보측의 정봉주 전 의원이 “나경원 후보가 (피부관리 뿐 아니라) 비만관리도 했고 어느 부위인지도 안다”고 말했다. 아는 거 많아서 좋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정말이지 남은 선거기간 더 이상 정봉주의 이 같을 류의 얘기는 듣기도 보기도 싫다. 

    상대방이 네거티브를 한다고 그것과 함께 맞장구를 치며 설전을 할 것이 아니라, 네거티브를 무력화 시킬 정도로 더 밀고 나갈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정당 지지층들이 투표소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나경원 후보가 만약 당선된다면 민주당은 박원순 후보 개인과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에 동조하며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해갈 가능성이 높다. 박원순 후보측은 거꾸로 다른 정당과의 연합이 가져온 득실을 따질 것이란 것이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왜 졌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을 깊이 성찰하면서 평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또한 서로를 합리적으로 비판하고 수용할 가능성도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선거가 되어버릴 공산이 크다.

    우리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연합정치에서 후보단일화까지는 일도 아니라는 것, 문제는 그 이후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연합정치로 돌파할 수밖에 없다며 이미 그 틀을 규정한 총선과 대선, 또 그 이후의 모든 선거에서 ‘결과에 대한 책임’ 없는 선거가 가져올 후폭풍은 특히 진보정당의 입지를 더욱 좁힐 수밖에 없다. 연대로 안됐으면 연합, 연합으로 안됐으면 합당. 근거 없는 단합만이 강조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 떨어뜨리기 위한 선거해본 적 없다

    나와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누구를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선거를 한 적이 없다. 남들이 볼 때는 미련해 보일 것이고, 서로에게는 눈물겹도록 애잔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되게 하려는 선거운동에 익숙하다. 사실이 그렇다. 그런데 이번엔 한나라당이, 나경원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하는 것만 같다.

    이 사람들에게 진보정당의 리더들은 메시지를 던져 주어야 한다. 투표장에 가고, 선거운동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속이 끓어오르는 그 마음이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우리가 투표해야 할 후보라는 이유로, 타당한 비판도 못하고 입 닫고만 있을 수는 없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은 선거라는 공간에서 이번처럼 공동의 지지 후보가 있다고 하더라도, 진보정치의 색깔을 어떻게 알려나가며 지지층을 넓힐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박 후보 측 선거대책위원회와 똑같은 논평이나 성명으로는 새로운 시각을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

    앞으로도 유사한 형태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많다. 자칫 잘못하면 메이저들의 틈바구니에서 진보정치는 질식하고 말 것이고, 우리의 색깔을 다 잃어버리며 그저 한나라당의 심판을 위해 동원된 세력으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처럼 진보 양당의 지지층이 캐스팅 보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에서는 더욱더 각자의 위치에서 상황을 적절하게 판단하며 대응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어쩌면 통합이니 독자이니 하는 논의보다 우선 순위였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에서야 되돌아보게 된다.

    2004년 진보정당의 등장과 안-박의 등장

    박원순 현상이든, 안철수 현상이든 그 배경은 다양하게 분석되고 있고, 실제로도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기존 정당 정치가 ‘고장’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진보정당이 개척해나가야 할 ‘블루 오션’에 ‘시민파’과, ‘IT파’가 나타나 폭풍을 일으킨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진보정치도 지난 2004년 그렇게 등장했다. 지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노선과 정책을 가지고 바람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부유세 도입을 얘기했고, 무상급식과 무상교육 등 보편적 복지를 추구했다. 이젠 우리의 노선은 맞았다고 그들도 얘기하고 있다.

    그럼 무엇이 문제였나. 우리의 힘과 실력, 즉 주체를 강화하는 데 실패한 것이 그들을 불러온 것이다. 동심원의 중앙을 단단히 하면서 외연을 넓혀가지 못한 채 오히려 분화됨으로 인해서 이제 진보는 존재감마저 상실할 위험에 처해 있다. 이제 진보정당에 속한 우리에게 커다란 숙제가 생겼고, 이에 대한 답은 나도 아직은 물음표다. 다만 문제의식을 서로 공유해야 이 숙제를 풀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남은 기간 박원순 ‘무소속’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뛴다. 그 동안 진보신당과 좋은 협력 관계에 있는 이 지역의 몇 개의 상인회와 후보가 만날 수 있는 자리도 기획하고 만들었다. 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흔쾌해 하지 못하는 진보정당 당원이나 지지자들에게도 이번 선거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다니는 중이다.

    노동과 진보정당, 시민사회 모두가 그를 위해 뛰고 있는 이 현실이 슬프지만, 나는 이 같은 행동이 우리의 주체를 강화하는데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찜찜한 선거 운동에서 마지막까지 내 위치에서 유권자를 설득해 그들을 투표장으로 가게 만들 작정이다. 망설였던 그들이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게 만드는 것이 지금 순간에는 진보정치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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