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은 언제나 해로운가?
        2011년 10월 22일 01: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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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성찰하는 지식인들을 위한 대안적 지식과 담론을 소개하는 ‘한겨레 지식문고’의 8권 『안락사는 살인인가 – 사례로 만나는 의료윤리의 쟁점들』(토니 호프 지음, 김양중 옮김, 한겨레출판, 9800원)이 새로 나왔다.

    이 책은  ‘의료윤리’ 분야의 기본적인 문제들을 간략하지만 내실 있게 소개한다. 의사는 단순히 전문적인 기능인이 아니다. 생명을 앞에 두고 늘 어떤 선택에 직면하게 되고, 그 선택은 윤리적인 문제들을 담고 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는 말기 암 환자가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다고 애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생명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의 여성이 낙태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의사 개인의 선택을 넘어 정책적 판단의 문제도 소개한다. 제한된 자원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쪽에 지원해야 할 것인가, 위급한 한두 사람을 구해내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인가? 쉽게 정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생명과 윤리의 문제들이지만 생생한 사례를 바탕으로 저자의 논리적인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의료윤리의 세계에 빠져들 것이다.

    안락사는 살인인가?

    의사 콕스는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당해 유죄 선고를 받았다. 아주 심한 류마티스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70세 노인 환자가 있었다. 진통제를 아무리 써도 듣지 않을 정도로 심한 통증이 이어졌다. 며칠 혹은 몇 주 후면 이 세상을 떠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태였지만, 이 환자는 하루라도 빨리 자신을 죽여 달라고 담당 의사 콕스에게 애원한다. 콕스는 그 처지에 놓인 환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 환자를 위한 행동이라는 믿음으로 치사량의 염화칼륨을 환자에게 주사한다. 환자는 결국 죽었고, 콕스는 유죄 선고를 받았다.

    모든 안락사는 처벌을 받는가? 그렇지는 않다. 안락사는 여러 층위로 나눌 수 있는데, 크게는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로 나눌 수 있다. 앞에 나온 콕스의 예처럼 죽음을 당기기 위해 어떤 시술을 하는 것을 적극적 안락사라 하고, 이와 달리 일정한 치료를 통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 치료를 포기하는 것을 소극적 안락사라 한다.

    막대한 치료비를 들여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환자 자신과 주변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도 종종 있다.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는 널리 인정되는 편이다.

    단, 소극적 안락사가 인정되는 두 가지 근거가 있는데, ‘환자에게 가장 이로운 결정일 것’과 ‘환자의 요청과 일치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콕스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콕스는 왜 적극적 안락사 시술을 하였는가? 그것이 환자에게 가장 이로운 결정이라고 판단했고 또 환자의 요청도 있었다. 그렇다면 콕스는 왜 처벌을 받아야만 한 걸까?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와 콕스의 경우 사이 차이는 환자가 죽게 그냥 두었는가, 그 환자를 죽였는가의 차이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율법이 자리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살인을 금하는 율법에 문제를 제기한다.

    살인이 나쁘다는 결론은 죽음은 해롭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인데, 죽음이 해롭지 않고 이로운 경우에는 살인을 나쁘다고 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죽음이 해롭지만, 경우에 따라 죽음이 이로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적극적 안락사도 원칙적으로 반대하기는 힘들지 않느냐는 것이 저자 토니 호프의 주장이다.

    시리즈 9권 『인종주의는 본성인가』(알리 라탄시 지음, 구정은 옮김, 한겨레출판, 9800원)도 함께 나왔다.
     

                                                      * * *

    저자 : 토니 호프 (Hope, Tony)

    옥스퍼드대학교 의료윤리학 교수 겸 명예 자문 정신의학자. 보건의료행위의 윤리 및 의사소통을 위한 옥스퍼드센터의 설립자다. 

    역자 : 김양중

    1999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2년부터 <한겨레>에서 의료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건강기사 제대로 읽는 법》과 《의사가 말하는 의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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