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가 발리바르의 생생한 면모
        2011년 10월 22일 01: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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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이 책은 실천가, 활동가로서 발리바르의 면모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 의미가 있다. 발리바르는 그 세대의 프랑스 철학자들(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장-뤽 낭시, 피에르 마슈레 등) 중에서는 국내에 가장 일찍 소개되고 또 가장 많이 읽힌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그의 저작들은 대개 아주 높은 수준의 이론적 논의를 담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들로서는 발리바르가 어떤 실천적인 문제의식을 통해 그의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게 되었는지, 그의 추상적인 논의 속에는 어떤 정세적ㆍ실천적 경험들이 녹아 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이 책은 90년대 이후 발리바르 사상의 주요 요소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정세에 대한 참여와 분석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서문’ 바로 다음에 나오는 ‘시민불복종에 대하여’와 ‘우리가 “미등록 체류자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라는 두 편의 글은 분량은 매우 짧지만 매우 강렬하고 생생하게 활동가 발리바르의 목소리를 전해주고 있다. (역자 후기 중에서)

       
      ▲책 표지 

    새로 나온 책 『정치체에 관한 권리』(에티엔 발리바르 지음,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15000원)의 주제를 한마디로 집약하면, 시민 불복종이 어떤 의미에서 국가 또는 정치체의 토대를 구성하는지 이론화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정치체의 토대로서 시민 불복종이라는 생각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소박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방종과 일탈, 불법 행동을 조장하려는 무책임한 발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나 최근 몇몇 정치철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종말론적 관점을 견지하는 사람들에게 시민 불복종은 계급투쟁이나 혁명 같은 본질적인 개념에 비하면 얼마간 사소한 도덕적 저항이거나 심지어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적 질서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혁의 시도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법치국가의 원칙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수호하려는 입장에서 본다면, 시민 불복종 행위는 여타의 불법 행위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정치체의 근본을 뒤흔드는 행위일 뿐 어떤 의미에서도 그 토대로 간주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발리바르의 관점은 양쪽 모두에게 비난받기 좋은 입장일 것이다.

    시민 불복종을 정치체의 토대로 사고하려는 발리바르의 관점은 한편으로 정치체를 시민권 헌정(constitution of citizenship)으로 개념화하는 것에 근거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권=국적’이라는 등식이 근대 정치체, 곧 국민사회국가의 핵심을 이룬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 * *

    저자 : 에티엔 발리바르 (E’tienne Balibar)

    프랑스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루이 알튀세르, 조르주 캉길렘, 자크 라캉에게 사사했다. 1965년 루이 알튀세르, 피에르 마슈레, 자크 랑시에르 등과 함께 유명한 『“자본”을 읽자』를 공동 저술했으며, 그 이후에도 계속 『역사유물론 연구』, 『민주주의와 독재』 등의 저작을 통해 역사적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했다.

    1980년 알튀세르가 정신병원에 유폐된 이후에는 역사적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하고 근대 정치 구조의 아포리아를 분석하며 근대의 철학적 인간학을 쇄신하려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또한 199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된 세계화 및 유럽 건설이라는 이중의 정세 속에서 대중운동의 확장 및 시민권 헌정의 민주주의적 전화를 모색하려는 이론적 작업 역시 발리바르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역자 : 진태원

    연세대학교 철학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석사),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피노자 철학을 비롯한 근대 정치철학에 관심이 있으며, 루이 알튀세르와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등의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HK)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라깡의 재탄생』(공저), 『서양근대철학의 열 가지 쟁점』(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자크 데리다의 『법의 힘』, 『마르크스의 유령들』, 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우리, 유럽의 시민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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