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 '보이는 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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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21일 09: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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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육아휴직을 받아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저로서는, 추리소설도 액션 영화도 하나도 필요없습니다. 10개월짜리 딸과 보내는 한 순간 한 순간이 다 최고급 액션입니다.

    철없는 아이가 큰 아들(9살)의 만화책을 찢어서 그 종이를 먹어버릴 것 같아서, 약간 높은 침대에 기어서 올라갔다가 거기에서 자칫 잘못해 떨어지면 꽤 아플 것 같아서, 청소기를 흔들어 무너뜨렸다가 무너지는 그 청소기 밑에서 반주검이 될 것 같아서, 순간순간 그런 ‘스릴’을 안느낄 때가 없습니다.

    영화나 소설로부터의 자극을 전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말씀입니다. 생각해보면 10개월짜리 아이도 저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일단 주변 환경에 적응해 자기 보존의 능력을 키울 만한 적응력, 인지력 등이 없는데다 완력이 미약해 이러는 것이죠. 어른이 그 옆에 늘 붙어 있는 것은 그 생명 보존의 유일하다 싶은 담보입니다.

    자기 보존 능력없는 자본주의

    그런데,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으로 자기 조절 능력을 완전히 갖춘 것으로 잘못 알려진 자본주의도, 생각해보면 10개월짜리 아이와 본질상 똑같습니다. 실제로는 기본적인 자기 보존 능력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보존, 장기 지속을 보장해주는 것은 그 ‘보호자’로서의 국가의 정치력과 군사력, 경제 조절 능력이지, ‘시장’ 그 자체는 궁극적으로 자기 조절에 완전히 실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본주의란 기본적으로 이윤 추구를 통한 자본의 지속적인 확대재생산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이윤률이란 지속적일 리는 없습니다.

    콘드라티에프라는 20세기 초반의 러시아 경제 학자가 묘사한 ‘장기 주기'(약 70~80년) 동안 이 이윤률이 점차 떨어져 나가는 것인데, 특히 콘드라티에프 주기의 후반기(현재로서는 1973~1980년 이후)에는 제조업 등의 이윤률은 매우 현저히 떨어져 제조업 주요 부문들의 위기를 촉진합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손’은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합니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대응 방법들이 관찰되는데, 이 모든 방법들은 궁극적으로 한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의 위기를 더욱더 심화시키는 역효과를 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저임금 노동의 과도한 착취에 의한 초과 이윤 수취

    이 방법은, 중국이나 월남 등 과거 ‘현실 사회주의’ 나라였던 사회에 자본이 침투해 저임금 노동력을 무차별 착취하는 것과, 핵심부/준핵심부 (특히 한국이나 스페인과 같은, 노동자 보호가 잘 돼 있지 않은 사회에서)에서 상당수 노동자들을 비정규화시켜서 그 임금 착취를 강화하는 것 등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자본 증식 속도 가속화의 일시적인 효과를 낸다 해도 결국 벽에 부딪치고 맙니다. 저임금 국가 노동자들의 투쟁에 탄력이 붙어 그 쪽 임금은 결국 꽤 오르기 시작하고, 핵심부/준핵심부의 비정규화된 노동자의 구매력이 떨어져 소비 시장의 위기가 오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이윤 극대화의 효과는 있어도 결국 장기 지속이 불가능한 수법인 셈이죠.

    2. 기술 혁신에 의한 신상품 개발, 새로운 상품 시장의 창출

    여기에서는 컴퓨터, 인터넷, 소프트웨어, 휴대폰은 대표적 사례가 되지만, 그 신시장의 이윤이 처음에 좋았다가 결국 과잉 생산, 괴잉 경쟁에 의해서 깎아져 궁극적으로 위기가 오는 것입니다.

    10여년 전에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닷컴’ 주식(인터넷 업체 주식)이 일체 떨어지는 등 인터넷 기업 버블이 터져 경제 위기가 조성됐다가 이라크 침략 등의 특수로 일시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군수 업체 주식의 리드에 따라 증시 전체가 올라간 것을 잘 기억하시고 계시지요?

    신상품 시장의 불가피한 버블 형성과 위기를 모면하는 값은 폭탄, 포탄, 총탄, 수류탄의 연기 속에서 비참하게 죽고 질병, 영양실조로 죽어나간 약 60~70만 명의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들이었습니다. 물론 이 체제 안에서는 비서구인의 목숨은 기본적으로 ‘인명’으로 인정되지 않기에, 이라크 침략을 주도한 부시 등의 전범들은 지금도 이 나라 저 나라를 즐겁게 돌아다니면서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름의 흉악범을 잡아갈 만한 기개가 있는 사법 체계는 어디도 없습니다. 하기야, 흉악함에 있어서는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든 전직 대통령이든 역사 속의 그 어떤 대통령이든 대체로 그 밥에 그 나물, 오십보백보입니다.

    3. 산업부문에서 금융부문으로의 자본의 유출

    주택담보 대출, 가계 대출의 미증유의 활성화에 따라 부동산 버블이 생겼다가 터지고, 가계빚의 피라미드 밑에서는 궁극적으로 신용 불량자들이 하늘만 아는 고통을 겪게 되고 소비시장은 결국 위축됩니다. 지금 국내 같으면 가계대출 금액은 가처분 소득의 146% 정도 되는데, 이건 이미 미국, 일본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지금까지는 다수의 가계부채를 늘리면서 은행 자본이 짭잘한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었는데, 머지 않아 파산자의 대량화에 따라 은행 자본도 위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가계부채의 버블은 한국형 신자유주의 위기의 도화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금융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원자재와 자원, 특히 석유 등을 놓고 투기를 벌여 소득을 올리는 수법이 발전되는 것인데, 그 투기의 효과로는 지금 유가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배럴당 100불 이상)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위축되는 것은? 산업부문과 소비자들이죠. 결국 이윤의 최대화를 노리는 투기자본은, 경제 전체의 수익성을 죽이고 마는 것입니다. 도대체, 높은데에 잘못 올라갔다가 결국 거기에서 떨어져 죽을지도 모를 10개월짜리 아이하고는 무엇이 다르단 말에요?

    4. 비시장적 부문의 시장화

    이는 무엇보다 의료와 교육의 시장화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국내 같으면 예컨대 ‘의료 관광객’의 극심한 유치 정책 등은, 바로 잉여자본들이 의료 부문에 마구 진출하려 하는 상황과 직결돼 있습니다. 사립대학의 실질적인 영리기업화와 등록금의 살인적 급등도 이 경향의 일환입니다.

    학생들을 등쳐먹고 비정규직 교원들을 등쳐먹고 청소 노동자까지 등쳐먹어야 대학 자본이 건설 자본에 발주를 해서 필요도 없는 새 건물을 짓게 하는 등 토건 자본주의 기본틀을 유지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결과는? 상당수 학생들의 빈민으로의 전락인데, 이것도 – 그 비인간적인 측면들을 차치하더라도 –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적 소비 시장의 장기 지속에 전혀 기여하지 못합니다. 소비 시장으로서는 여유 있는 고객들이 필요하지, 등록금을 내기 위해 굶다시피 해야 하는 고학생들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이윤률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잉여자본들이 어딜 가도 결국 그 결과는 수백, 수천만, 수억 명의 죽을 고생과 폭사, 병사, 전사, 그리고 궁극적인 경제의 치명적 위기와 공황의 도래입니다. 자본의 부채를 국가가 도맡아도, 결국 국가가 파산 위기를 맞는 것이죠.

    그러면, 자본주의를 살리는 궁리를 하느니, 차라리 ‘자본주의 그 다음’ 사회를 상상해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 살인적인 체제는 수정자본주가 되든 그 어떤 자본주의가 되든 어차피 결국 고통과 사회적 위기만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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