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NHS의 변화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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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17일 1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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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7월, 영국은 그동안 고용주와 임금노동자의 보험료에 근거해서 운영되어 오던 국민건강보험(National Health Insurance)체계에서 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국영건강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로 전환하였다. 

사실, 이전의 국민건강보험은 국민의 약 50%만 포함하고 있고, 제한적 급여만을 제공하는 반쪽짜리 의료보장제도였다. 이에 비해, 새로 탄생한 NHS는 ‘보건의료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포괄적 보건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하였다.

NHS 변천사

이후 정권의 변화에 따라 NHS 개혁은 몇 차례의 급격한 변화가 있었으나, 이 기본 정신에는 변함이 없었다. 영국의 NHS는 스웨덴 등의 북유럽 복지국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의 남유럽 국가들의 NHS 도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NHS는 정권이 바뀜에 따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 왔다. 특히, 오일 쇼크로 인한 영국의 경제위기와 이로 인해 정권을 잡은 대처 수상의 보수당 정부는 공공부문을 민간에 매각하는 등의 대대적인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NHS에는 긴축재정 정책과 함께 내부시장 전략을 통한 경쟁(NHS 내의 공급자들 간 경쟁)을 추진하였다.

긴축재정 정책으로 인해 NHS에 대한 정부 투자는 사실상 중단되었고, 병원시설의 낙후와 고질적인 환자 대기시간의 악화, 병원노동자들과 환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였다. 또한, NHS 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채택한 NHS 내부의 시장원리인 ‘내부시장’ 전략은 의사들 간의 계층 분화만 초래했을 뿐, 의료서비스의 질적 개선에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이렇듯 만신창이가 된 NHS를 다시 살리겠다는 것이 토니 블레어가 당수였던 신노동당의 핵심 공약이었다. 신노동당 정부는 정권 초반 의료의 질 개선 효과는 별로 없고, 불필요한 경쟁만 야기했다고 평가받은 내부시장 전략을 폐기하고, 상호 협력에 기반을 둔 개혁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NHS에 대한 자원 투입 계획은 이전의 보수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2000년 어느 날 아침 “역사상 가장 비싼 아침식사”로 표현되는 “NHS 지출을 유럽연합 평균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블레어 총리의 발표 이후, NHS는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NHS 개혁

다른 유럽 선진국에 비해 영국의 낮은 건강수준과 낮은 의료서비스의 질, 그리고 국민들의 NHS에 대한 높은 불만은 다름 아닌 NHS에 대한 낮은 투자에 있음을 영국 정부가 인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목표의 설정과 성과에 따른 자원배분’, ‘민간의료부문의 NHS 참여 대폭 허용’, ‘NHS 운영의 효율화’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NHS 개혁이 추진되었다. 그 결과, NHS 지출은 2002년부터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증가하였는데,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전년대비 NHS 지출 증가는 연평균 약 10%에 달하였다.

   
  ▲그림. 영국 정부의 NHS 지출 추이(2006/07년 화폐가치로 환산)

  자료: Gavin Thompson, NHS expenditure in England, 2 June 2009를 참고하여 재구성한 것임.

영국 NHS의 만성적 문제였던 대기시간은 획기적으로 감소하였고, 의료서비스 질의 개선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개선되었으며, 의사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입을 보장받았고, 국민들의 NHS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제 NHS는 더 이상 ‘과거의 NHS’가 아니었으며, 영국 국민들의 NHS에 대한 지지와 자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자원의 신속한 투입과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거두기 위해 도입되었던 병원 부문 등의 민자 유치 사업(Private Finance Initiative, PFI), 민간의료기관들의 NHS 참여를 위한 인센티브, 공공병원에 대한 규제 완화 등 각종 시장화 정책들은 NHS 제도의 큰 위협으로 인식되었고, 보수당으로의 정권교체 이후 급진적 NHS 개혁의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

금융위기 직후에 실시된 총선에서 어떤 정당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였고, 가장 의석수를 많이 확보한 보수당이 자유민주당과 연합하여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보수당, NHS 개혁 배경

당시 자유민주당은 NHS와 관련해서는 보수당보다는 노동당에 더 가까운 입장을 취했으며, 보수당은 선거 기간 동안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강력한 긴축재정 기조 하에서도 NHS에는 손을 대지 않고, 실질적 지출을 계속 늘여가겠다고 공언을 한 바 있었다. 따라서 NHS의 대대적 개혁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공약(公約)은 연립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약(空約)이 되어 버렸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수준을 뛰어 넘어, 현 정부의 NHS 개혁안은 NHS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개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개혁안에 대해서는 노동당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심지어 영국의사협회까지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지난 노동당 정부 기간 동안 NHS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따라서 현재 NHS에서 필요한 것은 시장화로 인한 문제점의 보완이지 급진적 개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오고 있다. 하지만, 보수당은 연립정권의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급진적 NHS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의 NHS 개혁안은 이전까지는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국가의 NHS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급진적 내용이다. 왜 그러한지 현 연립정부에서 내놓은 개혁안에서 그 이유를 살펴보자.

"문제는 역시 정치다"

첫째, NHS 지방조직의 근간이며, 핵심적 공공조직인 10개의 대진료권을 관리하는 전략보건당국(Strategic Health Authority)과 152개의 중진료권을 관리하는 일차의료 트러스트(Primary Care Trust)를 모두 폐지한다는 것이다.

실제 NHS 전체 예산의 80%는 이들 일차의료 트러스트로 배분되고, 일차의료 트러스트가 해당 지역의 지역보건사업을 수행하고, 또 각 개원의들과 병원들에게 재원을 배분한다. 그런데, 이를 모두 폐지하고 지역의 개원의들이 중심이 된 컨소시움을 중심으로 지역의료체계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에 대해 상당수의 개원의들이 반대를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개원의들은 환자 진료에는 전문가이지만, 지역의 보건의료 전반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관리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민간 컨설팅 회사가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들 회사들은 공공적 역할의 수행보다는 주로 이윤 추구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둘째, 모든 공공병원을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바꿈으로써 운영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하되, 병원 간의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병원의 관리감독권은 보건부장관이 아닌 의회로부터 영향을 받는 모니터(Monitor)라는 별도의 규제자를 설치하여 관리 감독을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영국 NHS의 법적 최종 책임자인 보건부장관의 권한은 치명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국가의 NHS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개혁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NHS는 이름은 그대로일지 모르나, 더 이상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을 생명으로 여기던 과거의 NHS는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미 2009년까지 급속한 감소를 보였던 ‘대기시간’은 현 정부가 들어선 2010년 이후 다시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영국 국민들의 불만 역시 커지고 있다.

현재 NHS 개혁법안은 수많은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난 9월 하원을 통과하였고, 상원에서 표결을 기다리고 있다. 법안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더 많은 상원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올 지는 미지수이다. 영국 NHS의 경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역시 문제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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