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고혈짜는 금융자본에 대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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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17일 08: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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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미국 뉴욕 월가에서 작은 게릴라성 시위로 시작된 반월가 시위는 초기 주류 언론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차츰 규모와 공감대를 확산시키더니, 10월 15일 세계 주요 도시에서 대대적인 군중을 동원한 동시 시위를 통해 전 지구적 규모의 운동으로 성장하였다.

보통사람들의 국제적 공감과 연대

이는 부와 권력의 횡포에 더 이상 무기력하게 당할 수 없다며 정의를 요구하는 전 세계 보통 사람들의 뜻을 드러내며, 마침내는 국제적 공감과 연대의 고리를 확인한 운동이 되었다.

“우리가 99%다”라는 구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상위 1%로 상징되는 소수층의 부와 탐욕, 그리고 그러한 부의 집중이 필연적으로 야기한 경제적 파국과 빈곤의 확산, 대중들의 희망 상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정치권력의 매수 등 극한에 달한 자본과 권력의 불의와 부도덕이라는 현실에 대한 도덕적 분노로 이 시위는 촉발되고 확산되었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고장난 체제"라며 투쟁하는 시위 참석자들.

이는 금융화를 성장의 동력으로 선택한 미국을 위시한 중심부 자본주의의 위기가 대중의 반격으로 자본주의가 또 다른 막다른 지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적 계기로 읽어볼 수도 있다. 지난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본격화한 전지구적 금융 위기는 3년을 경과한 2011년 9월 월가에서 촉발된 대중들의 시위를 통해 하나의 전환국면에 도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008년 말 미국 금융권에서 들려 온 연이은 파산 소식은, 마치 1997년 국내에서의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최초로 가능하게 하였듯이, 민주당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 등장을 가능하게 하였다.

오바마의 대선 구호가 “변화”(change)였다. 이는 미국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희망의 강렬함이 그 만큼 큰 것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아들 부시 정권에 이어 등장한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의 상층 경제관료층 및 자문단을 구성하는 인물들이 사실상 미국의 금융화를 추동했던 주요 인물들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러한 당초의 기대를 의심섞인 눈초리로 다시 바라보게 됐다.

기대 배반한 오바마

이에 더해 대선운동 시 오바마에 대한 월가의 정치기부금 규모는 당시 대선 후보들 중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이후 오바마가 월가에 반하는 개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월가 또한 이를 알고 있었기에 위기 직후 당당하게 정치권에 엄청난 액수의 구제금융을 요구했고, 대중들의 분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보너스 잔치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세금으로 회생한 금융기관들은 주택대출금을 갚지 못한 개인들의 주택을 대대적으로 차압하기 시작했고, 얼어붙은 내수 등과 더불어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개인들이 일자리를 잃는 일들이 속출하였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정부재정을 ‘양적 완화’라는 미사여구를 동원해가며 금융권 정상화에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정부 재정적자만 더 확대될 뿐이었다. 이러한 금융권은 이제 일종의 “세금 먹는 하마” 혹은 “국민들의 피(혈세)를 빨아들일 뿐인 뱀파이어”처럼 간주되었다.

차라리 정부가 같은 규모의 재정을 복지와 일자리 창출 등에 직접 투입하는 편이 오리려 더 큰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형편이었다. 따라서 대중들은 단지 월가에만 분노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해 자신들의 의지를 성실하게 관철하지 못한 오바마 행정부를 비롯한 정치권에 대해서도 참을 수 없게 됐으며, 이 같은 분노가 현재의 시위를 촉발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자신은 이러한 시위를 자신에 대한 지지로 전환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 2012년 대선을 의식해 얼마전 ‘시위대에 대한 공감 발언’을 하다. 하지만 이는 구조적으로 개혁을 실행할 수 없는 대통령이 자신의 개혁 이행에 대해 기대를 가졌던 과거 지지층에 대해 그들의 충성 의무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려는 제스쳐 정도로 보일 뿐이다.

시스템, 직접 뚫으려는 대중들

하지만 현실 변화의 가능성은 현재의 정치경제 시스템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시스템 안에서 강고하게 버티고 있는 벽을 대중들이 직접 뚫거나 넘으려는 시도가 이번 월가의 시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민간 부문의 금융 위기, 즉 애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알려진 부동산 부문에서 시작된 사태가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을 금융공황 국면에 빠뜨린 이유는 역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관련이 있다.

위기 전까지 일어난 일을 요약하자면, 집을 살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마구잡이 대출 후, 이 채권은 다시 우량채권들과 결합되어 높은 신용등급을 받은 파생상품으로 재가공되었고, 결국 미국 국내만이 아니라 유럽의 주요 금융기관들을 포함한 전 지구적 금융시장에서 주요한 투자대상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던 것이다.

무엇이나 보다 유동적인 투자상품으로 금융적으로 재가공화해버린 ‘금융화’ 및 ‘증권화’와 거래상의 국경을 없애버린 ‘세계화’가 초래한 괴물이었다. 이를 테면, 썩은 고기를 좋은 채소나 빵과 섞어서 겉보기에 좋은 햄버거를 만든 후 ‘유기농 버거’라는 식으로 전 세계 식도락가들에게 대대적으로 판매한 거나 마찬가지 였으니, 전 세계적으로 식중독이 일어나는 일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여기에 유럽의 주요 금융기관들도 좌초하는 사태들이 속출하게 되었고, 유럽 각국 정부도 막대한 정부재정을 투입하여 타격을 입은 경기를 되살리려 하였지만, 이는 다시 정부 재정적자를 증대시켜 민간 금융위기는 정부 재정위기라는 2단계의 덫으로 전이되었다. 경기침체 등으로 일자리 상실, 구직난 등 어려움이 증대되던 상황을 맞이하던 유럽 각국의 대중들은 이제 정부 재정위기로 인해 복지축소 등의 타격을 추가로 입게 될 판이었다.

   
  ▲1999년 ‘시애틀의 전쟁’ 장면. 

대안 제시와 국제적 연대 구축 필요

1999년 1백여개 국가에서 5만명이 결집하여 WTO의 협상을 결렬시키고 세계사회포럼 등을 낳게 한 ‘시애틀의 반란’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시애틀의 반란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이어진 러시아, 남미 금융위기 등 남반구의 비중심부 자본주의 국가들로 확산된 글로벌 위기가 계기가 돼, 이를 심화시킨 국제금융기구와 부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대한 대항적 측면이 강했다.

이번 2011년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뉴욕의 반란’은 마침내 미국과 유럽 등 중심부 자본주의에서까지 자기파멸적으로 위기를 초래한 자본주의적 상품화와 상층 1%의 독점적 지배 및 착취 시스템에 대한 대항이라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통해 내부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더 깊어지고 전면화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 제기’ 차원에서만 그치지 않고 전세계적 차원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구조적 힘’이 되기 위해서는, 대항운동의 보다 분명한 대안 제시, 전략적 체계성과 지속성, 강한 국제적 연대의 구축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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