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 궁상 떨지말고 희망을 낚아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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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14일 01: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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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노동자이다. 당신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이다. 당신은 100만 원에 달하는 노동력을 사업주에게 제공한다. 맑스가 이야기 한 잉여노동력 착취는 잠시 잊자.

    아무튼 당신의 노동력은 시장에서 100만 원으로 평가 받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급여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83만 원이다. 초등교육 수준의 산수를 통해 유추한 결과, 17만 원이 날아갔다. 사업주가 꿀꺽했든, 이명박 각하께서 내곡동 땅덩어리 구입하시는 데에 보태셨든, 신자유주의에 흡수 되었든, 아무튼 없어졌다. 월급이 사라졌다.

    2011년을 사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이야기

    자주 언급된 이야기이지만 간략하게 재탕한다. 근로기준법 55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일에 1일의 유급주휴일을 지급 해야 한다. 쉽게 말해 1주일 동안 ‘빡시게’ 일했으니 하루 정도 돈을 받고 쉬라는 의미이다.

    일하지 않고 돈을 받는다니? 어느 대기업 회장님께서 보시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혀를 차실 것이 분명하지만, 아무튼 법이 그렇다. 이렇게 발생하는 임금을 ‘주휴수당’이라 부른다. 주휴수당과 근로제공에 따른 기본임금의 비율은 17 : 83 수준이지만, 대다수 청년노동자들에게 ‘17’은 그림의 떡이다.

       
      ▲필자. 카페베네 대표이사를 고소하면서.(사진=청년유니온)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존재했던 유급 주휴일의 권리가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뿌리 내리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우리가 해봐서 잘 안다." 올해 청년유니온의 실태조사 결과 전체 편의점의 90%가,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의 80% 이상이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쉽게 말해 개판이다.

    다음부터는 익히 알려진 내용들이다. 청년유니온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고자질’ 했다. 언론은 자신들의 지면과 주파수를 할애했고, 시민들은 놀라움과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주휴수당을 받지 못한 전국의 청년들로부터 상담전화가 쇄도했고, 카페베네 측과는 사회적 교섭을 이뤄냈으며, 커피빈 코리아는 3,000여 명의 근로자에게 5억 원을 지급했다.

    주휴수당과 희망의 상관 관계

    주제 넘는, 혹은 나이브한 분석이겠으나 한국 진보운동은 대중과의 괴리라는 뿌리 깊은 고민을 안고 있다. 지구를 구원할 역사적 플랜이 있을지라도, 그 플랜이 주식회사 지구의 지분을 가진 대중들의 신뢰와 동의를 얻지 못하면 아미타불이다.

    이 상황에서 진보진영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처세술은 자신들의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매한 대중들을 가엾이 여기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처세는 자기 만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증명 되어버렸다.

    언제까지 이런 궁상을 떨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진보적 당위와, "그렇게 될 수 있겠어?"라는 대중의 의구심이 소통되는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 나는 이 길의 이름을 ‘가능성’이라 부르겠다.

    청년 노동시장을 발칵 뒤집었던 주휴수당 사업의 중요한 의미는 바로 이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닐까? "니들이 뭘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게 한다고 내 삶이 더 나아지겠어?"라는 대중의 물음표는, "어? 쟤들이 발광하니까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오네?"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앞으로 수많은 청년들의 통장에 찍히게 될 6~7자리의 숫자들은, 진보진영이 함께 고민해야 할 ‘가능성’의 새로운 지평이 아닐까?

    대기업 나쁘다고 욕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들과 싸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뜯어 낸’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사문화 되었다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들먹여서 사회에 그 뿌리를 내리꽂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이라면, 어쩌면 정말로, 세상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가능성을 끌어안는 것이다.

    주휴수당과 휴머니즘의 상관관계

    “사실, 우리의 움직임이 나 하나 돈 돌려 받자고 하는 일은 아니잖아?”

    나는 약 1년 동안 프렌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일한 청년유니온 조합원의 주휴수당 미지급 사안을 담당했다. 그가 지급 받지 못한 주휴수당은 약 150만 원에 달했다. 지난한 과정은 생략하지만, 그는 별도의 고발조치 없이 사업주로부터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더 많은 친구들이 정당한 권리를 되찾았으면 좋겠어.”

    28년 생에 걸쳐 가장 큰 숫자를 통장에서 확인한 뒤에 가진 소박한 술자리에서 그가 한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주휴수당 지급 이후 우리는 해당 사업주와의 만남을 가졌다. 사업주는 현 재직근로자와 신규채용 근로자의 노동조건 보호에 동의했다. 또한 청년유니온은 가맹 점주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해하며, 프렌차이즈 본사 측과 책임 있게 협의할 것을 약속했다.

    인간은 정말로 이기적인 동물일까? 자신의 끝없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하등 관계없는 타인의 기쁨을 위해 기꺼이 피곤함을 감수하는 존재 또한 인간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후자에 해당하는 인간의 속성이다. 이 속성은 운동과 진보를 추동하는 태생적 뿌리이며,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의미하고, 곧 휴머니즘이다.

    일면식조차 없는 이들의 권리를 위해 실태조사에 임하고, (우리에게 돌아오는 금전적 이득이 전혀 없음을 알지만) 5억 원이 청년노동자들의 가슴에 안겼다는 사실에 환호하며, 이름 모를 친구의 기쁨을 위해 기꺼이 고뇌한다. 우습게도 이 모든 과정은 상당히 즐겁고 재밌는데, 이는 우리가 특별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짧은 추신

    고백하건데, 굉장히 낯부끄러운 글이다. 대체 명망가들은 ‘평전’이 아닌 ‘자서전’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대단히 신기할 따름이고… 이 페이지에서 스크롤 내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으셨기를 바란다.

    마치 뭔가 대단한 업적을 마무리 한 듯 써 놓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시련은 깊다. 많은 응원과 격려, 그리고 동행을 부탁드린다.

    * 이 글의 필자는 20대 초반으로 현재 청년유니온 조합원이자 노동상담팀 팀장을 맡고 있으며, 자신이 일했던 카페베네가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을 함으로써, 주휴수당 되돌려받기 운동에 불을 붙인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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