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국이 기회와 손을 잡고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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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14일 11: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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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대중행동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가 지난 9월 17일에 시작되어 10월 13일 오늘까지 27일째 진행 중이다. 대중행동은 지난 9월 30일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건물 앞에 2,000여 명이 모여든 이후로 미국 전역으로 확산했고 오는 10월 15일 세계 행동의 날(‘Occupy Together, United for Globalchange’)을 기점으로 전 세계로 확산할 것이다.

    이와 같은 확산은 역설적으로 금융자본주의 세계화의 기반이 되었던 인터넷과 SNS의 힘이었다. 월스트리트 점거의 공식 사이트인 occupywallstreet.org와 이와 같은 운동을 다른 도시, 그리고 전 세계로 확산하기 위한 사이트인 occupytogether.org에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는 트위터와 동영상이 실시간으로 업그레이드된다.

    9월 30일 2000여 명이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건물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을 헬리콥터에서 담은 폭스 뉴스의 동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라면, 이번 사건이 적어도 2001년에 있었던 9.11테러가 10년간에 미쳤던 영향력만큼 향후 10년간을 결정할 사건이 될 것이라는 예감을 할 만하다. 21세기 첫 10년의 시작이 9.11테러와 알 카에다였다면 그 끝에는 아랍 민주혁명과 알자지라가 자리했다. 두 번째 10년은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와 함께 시작된다. 두 번째 10년의 끝에는 어떤 사건이 자리하게 될까?

    월스트리트 시위대는 "1%가 아닌 99%를", "부자에게 세금을!", "달러가 아닌 인간을"이라고 외쳤다. 10월 15일 세계행동을 위한 선언문의 첫 마디는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 아시아까지, 아프리카에서 유럽까지, 전 세계 시민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참된 민주주의를 요구하기 위해 일어날 것이다.”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는 정확하게 세계금융자본주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 달러 레짐을 조준했고, 그들의 요구를 ‘참된 민주주의’(true democracy)라는 말로 요약했다.

    좌파 매거진(www.adbusters.org)을 중심으로 하는 행동적인 소수의 피케팅으로 시작되었으나 짧은 시간 안에 특유의 개방성과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확산한 이 운동은 당대의 문제가 어디에 있으며 해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한 방향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와 같은 방향성이 고립된 이론집단이나 정치집단의 기획이 아니라 SNS에 기반을 둔 소통을 통해 집단지성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신금융자본주의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와 더불어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공세는 집단 지성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반전은 어떠한 상태에 대한 반응인가? 이 질문은 세계자본주의 위기의 본질과 양상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영미를 중심으로 볼 때 1974년경부터 시작되었고 90년대부터는 대륙 유럽에도 관철된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자유화, FTA, 투기자본, 정리해고, 비정규직 등으로 익숙해진 개념이다.

    신자유주의는 한편으로 금융자본주의이며, 다른 한편으로 불안정노동에 입각한 노동사회의 재조직화이다. 여기에서 첫 번째 특징, 즉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주의다’라고 말할 때 금융자본주의의 의미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분명히 70년대 이전의 은행자본주의가 아니다. 은행자본주의는 생산기업의 장기적 사업전망을 중심에 두고 대출의 형태로 기업을 지배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의 금융자본주의는 단기적인 주식가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주주자본주의이며 은행은 기업을 상품으로 사고파는 투자은행으로 변모한다.

    M&A 시장은 지난 10년간 7배 성장했으며 2007년 거래 규모로도 이미 3조 달러이다. 새로운 형태의 금융자본주의는 더는 은행자본주의가 아니라 돈 되는 일이면 어떤 일도 마다치 않는 금융회사들이 주된 행위자인 금융시장자본주의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신금융자본주의와 더불어 세계는 주식시장과 파생상품시장이 경제의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금융화의 시대로 돌입했고 금융자본 주도의 세계화가 이루어졌다. 2006년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의 총 규모는 140조 달러이고 파생상품규모는 600조 달러에 달한다.

    한국 1조 달러, 독일 3.8조 달러, 일본 5.5조 달러, 중국 5.9조 달러, 미국 15조 달러 등 각 국의 경제규모(GDP)에 비교해 본다면, 금융자본의 총량이 얼마나 비대해졌는지 실감할 수 있다. 생산자본으로부터 금융자본이 탈구하여 ‘꼬리(금융)가 몸통(실물경제)을 흔든다’는 푸념은 이제는 사태에 맞지 않는 말이 되었다. 꼬리와 몸통이 바뀐 것이다.

    더욱이 총량만이 비대해진 것이 아니라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이동 속도도 빨라져서 극초단타 매매가 성행한다. 그리하여 미국 전체의 통화량의 단 3%만 실물화폐이며 나머지 97%는 컴퓨터 화면 상에만 존재하는 시대, 전 세계 금융거래의 98%는 실물경제와 무관한 금융거래이며 단 2%만 실물거래인 시대, 바로 신금융자본주의의 시대이다.

    불안정노동자(Precariat)

    생산자본의 이윤은 고용을 매개로 한다. 반면에 금융자본의 축적은 고용을 매개로 할 필요 없이 금융적 방식에 의한다. 그런데 사실 금융적 방식의 축적이란 생산자본이 만든 이윤에 대한 금융적 방식의 재분배, 곧 생산된 이윤에 대한 수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생산자본 역시 이와 같은 축적방식에 반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금융 수탈의 확대가 지속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윤이 늘어나야 하고, 결국 착취도 강화되어야 한다. 생산자본은 고용노동의 형태를 불안정노동으로 재편하여 착취를 강화한다. 기술혁신으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총량이 줄어드는 시대에 대량실업과 불안정노동은 사회적 노동의 일반적 형태가 된다.

    불안정노동의 확산과 더불어 50년대와 6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 질서의 한 축을 담당하던 산별노조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모델을 붕괴하였다. 사회 전반은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다. 신자유주의, 그 본질은 한편으로 금융적 수탈의 확대이며, 다른 한편으로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통한 착취의 강화이었다.

    불안정노동자(Precariat),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생산한 새로운 사회계급이었으며, 과거의 조직노동자층의 투쟁 방식과는 달리 공장이 아니라 가두와 광장을 주 무대로 하고 있었다.

    이번에 일어난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의 경우에도, 금융자본주의라는 분명한 타격점을 설정함으로써 단일 쟁점에 한정된 과거의 투쟁양상에 비교해 볼 때 한층 진화한 집단 지성을 표현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소규모 그룹에 의한 쟁점 제시, 대중의 자발적 참여와 개방적 운동구조, 인터넷을 통한 유포, 가두와 광장, 상징적인 건물의 점거 등 지난 20년간 불안정노동자 계층이 주도했던 저항의 기본적인 양식을 재현한다.

    신자유주의의 위기, 그리고 파국으로 가는 길

    불안정노동을 통한 착취 강화에 의존하여 금융적 방식의 축적을 지속시킨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금융자본은 이윤에 대한 수탈을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수탈방식을 발전시킨다. 사회국가의 해체가 진행되었으며 복지체계와 철도, 우편, 전기, 가스, 물 등 공공재의 광범위한 사영화가 진행되었다.

    이처럼 국가기구를 매개로 한 수탈 방식이 보편화하여 소위 ‘민영화’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기본적 가치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정보혁명과 함께 임금노동으로 포섭되지 않은 광범위한 활동이 정보통신자본의 수탈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윤율 하락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영업 등 노동자 대중에 대한 직접적 수탈이 등장하게 된다. 은행자본주의에서 주요 채무자는 기업이었지만, 오늘날의 금융시장자본주의에서 주요 채무자 기업이 아니라 가계이다.

    기업은 증권시장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고 금융회사는 채권이 아니라 주식을 통해 기업을 지배한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 사태는 이와 같은 방식의 가계 수탈이 한계에 도달한 지점에서 발생한 파국이다.

    주택버블의 붕괴와 금리인상을 통해 발생한 부실화는 주택담보부 채권의 증권화를 통해 금융시장 전체로 번져갔으며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2008년 파국 이후 미국은 1차 및 2차 양적 완화조치를 통해 2조 3천억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위기는 진화되지 않았다.

    지난 7월에 조성된 4,400억 유로의 재정안정기금로도 유로존 위기는 해소되지 않았다. 그리스는 10월에 만기도래하는 80억 유로의 국가부채조차 감당할 능력이 안된다. 전 세계 주요 은행의 이윤율은 1930년대 대공황 수준으로 하락했다.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는 금융적 수탈의 한계에 도달했고 이 위기를 재정적 수탈을 통해, 즉 조세나 채권으로 조성된 구제금융이나 양적 완화 등으로 버텼지만 이마저 한계에 도달했다.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책은 재정적 수탈이었으나 이는 재정위기만을 낳았을 뿐이다.

    출구는 어디인가

    재정을 통한 금융구제정책은 한계에 봉착했고 재정위기만 심화시켰다. 재정위기를 없애기 위해서 긴축재정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은 2008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병자에게 발병 전의 상태로 돌아가면 된다고 처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럽 국가의 경우, 사회복지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거대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편적인 노동 형태였던 신자유주의 초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관철에도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잔여적 복지는 불안정노동자 대중에게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자본의 위기를 없애기 위하여 끊임없이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면, 이와 같은 재정적 수탈기구로 변모한 국가는 더욱 확대된 대중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양적 완화에 의존할 수 있겠지만, 환율전쟁을 피할 수 없고 유럽과 중국 등 주요국가가 협력해 준다는 보장도 없다.

    파국으로부터의 출구는 정반대의 방향에 있다. ‘이득은 사적으로 취하고 책임은 사회적으로 짊어지는’ 재정적 수탈구조를 종식해야 한다. 즉 구제금융은 금융사회화 조치와 연동하여야 하며, 역외 파생상품시장은 전면 금지되어야 하며,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와 통제를 강화하여야 한다. 아울러 금융과세를 강화하여 재정을 건전화하고, 확대된 재정은 부실 금융자본의 구제가 아니라 사회복지에 투입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이와 같은 복지재정 확대정책이 과거의 케인즈주의적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재정정책을 통한 성장과 일자리 확대로 현재의 불안정노동사회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용노동자의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그래서 안정적인 일자리가 골고루 나뉘도록 하며, 그럼에도 노동자의 실질소득이 감소하지 않도록 하는 전반적인 사회적 이행이 필요하다.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의료, 주거, 교육, 보육, 노후를 완벽히 보장하고 모두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할 때만 사회적인 평균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전제조건이 충족될 것이다. ‘더 적은 시간을 일하면서, 모두에게 골고루 안정적인 일자리가 돌아가고, 모두가 잘사는 사회’로의 이행을 위해서는 위기를 심화시켜 온 자본이 이제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현재의 위기는 파국으로 가는 입구일 수도 있지만,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본에 대하여 더 나은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비용부담을 강제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이고,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는 그러한 힘이 전 세계적으로 조직되는 출발점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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