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는 집회 들러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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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10일 08: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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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흘 전, 자립음악가 단편선은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대학생연합의 반값등록금 집회에 음악가로 참여해 겪었던 사연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날 단편선은 오후 6시 경, 추계예술대학의 부실대학 선정에 항의하기 위해 예술계열대학생연합이 주최한 집회의 공연과 다음날 새벽 2시 경, 반값등록금을 주장하며 열린 한국대학생연합의 9.29 거리수업 행사에서 공연을 했다. 차분한 어조로 쓰인 해당 글에서 그는 집회에 섭외되는 음악가에 대한 대우(출연료와 무대 준비 등)에 대한 불만을 내비쳤다.

단편선은 당일 첫 번째 공연 직전에 청년 상호부조에 대한 토론회에 참석했던 까닭에 공연에 늦지 않기 위해 택시를 이용해 공연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집회의 한 꼭지로 기획된 공연이고, 두 팀이 공연했기 때문에 단편선이 연주한 곡은 두 곡, 세팅시간을 포함해 십 분 남짓이었을 것이다.

이 공연의 주최측은 단편선에게 출연료를 지불하기 어렵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고, 단편선도 그것과 관계없이 공연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참고로 단편선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음악가의 자립과 재생산을 위해 공연을 홍보의 기회가 아닌 노동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기본적인 ‘대가’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두고 있다)

   
  ▲거리수업 행사 웹 포스터. 

두 번째 공연은 이 날 자정에 예정되어 있었다. 참고로 9.29 거리수업 집회는 대규모 인원이 참가했으며, 당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되는 행사였다. 발언과 공연, 장터 등의 형태로 진행되던 집회는 11시쯤부터 체육수업이라는 주제로 가투가 시작되었는데, 이 순서가 되자 학생들은 을지로 방면으로 이동해 무대가 있던 현장에는 학생들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가투 등의 집회순서에 대해 미리 고지하지 않았던 공연담당자는 공연이 걱정된 단편선이 제 시간에 공연을 할 수 있냐고 문의했을 때 비로소 공연여부가 12시 반쯤에나 판가름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가두투쟁에서 돌아온 학생들이 정리집회를 끝마친 다음, 예정보다 2시간 가까이 늦은 시각에야 단편선은 무대에 오를 수 있었는데 이 때는 이미 학생들이 밤샘 뒤풀이를 시작한 시각이어서 음악을 들으려는 집회참가자는 열 명 정도에 불과했으며, 대규모 참가자가 모인 집회답게 좋은 시스템을 완비한 무대였지만 새벽 소음에 대한 민원을 우려한 주최측이 스피커 음량을 너무 낮추는 바람에 연주가 객석에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환경에서 세 곡을 부른 단편선은 공연담당자에게 만원을 공연료로 받았다. 섭외 당시 정식으로 출연료를 받지 못하더라도 택시비 정도는 챙겨주었으면 한다고 했으며, 공연 후에 공연담당자가 택시비가 어느 정도인지 물었을 때, 1~2만원 사이가 될 것 같다고 했음에도 불구 그에게 전해진 금액은 1만원이 전부였다. 단편선이 새벽에 집까지 타고 온 택시비는 1만 4천원이었다고 한다.

2.

집회에 음악가가 초청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집회참가자가 집회의 이유나 성격을 모른 채 올 리 만무하고, 결국 프로그램에 참가하거나 즐기기 위해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최근 경향이기 때문에 해당 행사에 섭외된 음악가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집회에 참석한다는 말이 틀린 말도 아니다.

예전에는 민중가수라고 불리는 소수의 음악가들이 집회 현장의 단골 초대손님이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장르와 주제로 연주하는 음악가들이 집회에 속속 참여하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공연이 곧 집회가 되는 경우도 등장하는 상황이다.(여성가족부 앞 현대차 성폭력 피해자 농성장 앞에서 열린 무키무키만만수의 단독공연 ‘무키무키대폭발’ 등이 그 예다.) 하지만 단편선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 여전히 많은 집회기획자들에게 음악을 집회의 분위기를 띄우는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의미있는 집회에서 공연하는 것 자체로 된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집회에서 공연은 왜 하는가?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 집회는 왜 하는가? 구색으로만 이루어진 집회가 구색맞추기 이상이 될 리 만무하지 않은가?

이날, 집회에 섭외된 단편선은 실질적으로 집회가 끝난 시각에 공연을 할 수 있었던 자신이 단지 집회참가자의 여흥을 위해 들러리로 동원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이에 다음 날 자신의 트위터에 해당글을 링크한 뮤지션 폐허(밤섬해적단 보컬)도 “집회 때 음악가를 왜 굳이 섭외해서 공연을 해야되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똥 취급 할거면서”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물론, 누구나 대부분의 집회가 부족한 예산으로 준비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한국에선 웬만한 집회를 여러 번 열어도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 오리무중인 것이 현실이다. 단편선도 재차 강조하듯이 이러한 까닭에 집회에 섭외된 음악가가 기본적인 출연료를 보장받지 못하거나 쾌적한 공연환경을 제공받을 수 없는 경우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고, 이는 음악가들도 대부분 이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단편선도 해당 글의 말미에 반값등록금 집회의 의의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반값등록금 대학생 집회에서 돌아오던 새벽, 청년 자립음악가이자 대학생인 단편선이 이 날 참석했던 집회가 자신의 문제를 외치는 자리였다고 여길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다음부터는 집회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집회에 섭외되는 예술가들과 어떻게 의사소통해야 할지, 음악가들의 공연환경과 정당한 출연료를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 재차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3.

사실, 이 문제는 집회에 섭외된 음악가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보정치 전반이나 구체적인 문제를 알리는 집회도 참여자들이 객체가 되었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순간 목적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 여럿이 공연하고, 여성, 장애인, 청소년, 예술가들이 초대된다 하더라도 이들이 행사의 도구밖에 되지 못한다면 그 정치나 집회는 유명 정치인의 동향 기사나 주최 단체의 실적 목록, 기껏해야 주최자의 훈련과 경력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음악가로서 예술가의 경제적 조건을 두고 투쟁하는 자립 음악가들을 집회의 객체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은 어떤 투쟁을 위한 집회에서 그들의 투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적합한 대우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일 것이다. 지금은 유적이 된 두리반에서 열렸던 2011 전국자립음악가대회 소개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여전히 홍대 앞엔 항상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온갖 재미나다고 소문난 작당들을 벌이곤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개들의 소유가 된다. 우리는 한평생을 죽쒀서 개주며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작년부터 이 개 같은 짓을 때려치리라 결심했다.

2010년, 5월 1일, 우리는 뉴타운컬쳐파티 51+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열었다. 무언가 작은 변화라도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우린 슬픈 소식들을 들었다. 비록 여기서 말하지 않더라도 다 알만한 그런 소식들. 사람들은 슬퍼했고, 분노했다. 크고 작은 행동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변한 것은 없다. 두리반은 여전히 힘들게 싸우고 있고, 우리 음악가들은 아직도 들러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당신들도 무급인턴과 자원봉사와 같은 멋진 이름 아래 헛지랄을 하고 있다.”

단편선의 글을 보면서 떠오른 이 글은 물론, 클럽이 연 공연에서 음악가들이 연주를 하고 이를 보러 온 관객들이 공연료를 내지만, 그 이익은 클럽과 음악가에게 돌아가지 않고 건물주에게만 돌아가는 괴악스런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지금도 많은 집회 기획자들이 집회의 의미를 더 잘 살리기 위해 음악가를 섭외하고 함께 행사의 조건과 내용에 대해 논의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한 예민한 음악팬의 노파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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