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 민족주의, 힘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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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07일 03: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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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분들께서 기억하시겠지만, 3년 전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 때에 한국 좌파 진영의 주된 화두는 "좌파 민족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였습니다. 좌파 민족주의자, 즉 1980년대 말의 NL 후예들의 패권적인 태도와 다소 비현실적이고 몰계급적인 북한관에 대한 항거의 뜻에서 복잡다양한 비NL 당원들은 들고 일어나 살림을 따로 챙긴 셈이었습니다.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주도적 역할의 배경

    3년이 지난 뒤인 지금에는, 그 당시 항거의 몇몇 주역인 노회찬, 심상정 전 의원과 조승수 의원 등은 본인들이 주도해서 만든 진보신당을 떠나 ‘진보세력 통합’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사실상 민주노동당의 주류세력인 좌파 민족주의자들과의 ‘관계 재설정’을 모색하는 모양입니다.

    좌파 민족주의자들과의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본인들이 익숙한 의회정치를 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라는 절실한 각오가 있었기에, 진보정치 진영으로서 비판 받을 여지가 큰 행동(조직의 민주적 결정에의 불복종과 탈당)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 행동에 대한 가치판단이야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한 가지 부분은 확실합니다. 의회정치에 필요한 ‘진보 표 동원’에는, 국내에서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거의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부분입니다. 그들은 운동사회의 주류이기에, 그들과의 관계를 설정하지 않고서는 운동사회를 발판으로 삼는 의회정치 등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죠. 의회정치를 하지 않는다면 장외의 노동자, 청년, 빈민 세력들의 조직자로서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는데, 이것은 의회정치를 이미 충분히 해본 사람에게는 대단히 어려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운동사회에서의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패권, 즉 매우 강한 영향력은 과연 한국만의 특징인가요? 그리고 어떤 이유로 인해서 생기는 특징인가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제가 지난 며칠간 가본 러시아의 경험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러시아 같은 경우에는 지금 실질적인 ‘전투적 반정권 활동’의 중심은 바로 비합법화된, 즉 푸틴 독재에 의해서 금지를 당해 지하로 들어간 민족볼셰비키당입니다. 이 당의 당명만 봐도 그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 약간 느낄 만합니다.

    러시아 민족볼셰비키당의 경우

    한편으로는 ‘민족’은 "세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매판세력의 포로가 되어서 각종 모욕들과 권리 침해를 당하고 점차 소멸돼 가는" 러시아 연방의 인민들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볼셰비키’는 1917년의 위대한 계급적 혁명에 대한 계승의 의사를 나타냅니다. ‘민족’과 ‘계급’이 하나로 겹쳐진 셈이죠.

    당은 1992년에 설립되었는데, 그 초기의 이념가인 ‘유라시아주의자’ 알렉산드르 두긴의 다소 국가주의적 성향에 따라서 애당초에는 소련을 대신할 새로운 러시아 제국의 건설을 강령에 담는 등 차라리 극우적 색채를 조금 띠었습니다.

    하지만, 두긴이 이 당을 떠나 푸틴 진영으로 합류한 뒤로는 당은 좌향좌하여, 지금 같은 경우에는 한국이나 남미, 중미의 좌파 민족주의의 원형에 가까워진 셈입니다. 당수인 유명작가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의 대통령 출마 선언을 보면 그 핵심적 공약은 에너지 관련 일체 기업들의 국유화, 건설업의 국유화, 국가에 의한 저가 주택 건설, 농민에게의 비료, 에너지 등 국가지원, 그리고 자본의 국외유출금지와 물가동결, 누직세율의 도입 등등입니다.

    이건 좌파적 의제임에 틀림없는 거죠. 그런데 이 좌파적 의제가 민족적 의제와 꽤나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습니다. 예컨대 리모노프가 이미 서방으로 유출된 러시아 대자본가들의 돈을 안보기관들이 찾아내 다시 러시아로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서는 ‘서방 세력’과 ‘매판 자본주의 세력’의 반대편에 바로 러시아인과 러시아 국가와 그 안보기관이 서 있는 것이죠.

    리모노프가 푸틴 독재에 항거하는 이유는, 이는 부자들의 독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근원적으로는 친서방적인, 즉 그 표피적인 반미 체스처들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반미 항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반민족 친외세’ 정권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국내 NL들의 세계관을 그대로 닮았다는 느낌은 없으십니까?

    목숨 담보하며 당원이 되는 이유

    한 가지 오해를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리모노프와 그 동지들의 항거가 민족적이라고 해서 저는 그 진정성을 전혀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러시아의 여러 반독재 민주화 운동 세력들 중에서는 리모노프의 세력이야말로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이고 열적적이고 자기희생적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리모노프 자신은 2001~2003년에 독재의 포로가 되어서 양심수 중의 한 명으로서 옥고를 치른 바 있었고, 지금 그 당의 적어도 10명의 당원들은 각종의 (대부분 조작된) 혐의로 감옥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3명 이상의 당원들은 경찰들의 살인적인 고문과 암살의 희생자가 되어 이미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적어도 한 경우("흑룡강 근방의 유격대" 사건)에는 민족볼셰비키당 출신이 푸틴 정권 경찰관의 처단 등 무장 ‘유격대 투쟁’에 적극 가담하여 그 투쟁을 주도했습니다. 지금 무장 항거가 화두가 되는 만큼 투쟁이 격화된 것이며, 이와 같은 투쟁에의 참가는 실제로 목숨을 담보로 해서 하는 행위임에 틀림없습니다.

    민족볼셰비키당의 당원이 되는 것은, 체포와 고문, 불구자가 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되는 것을 각오하면서 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수백, 수천 명의 젊은 투사들이 주저없이 이 길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 중의 대다수가 저임금 노동자 가정의 출신들인데, 빈부 격차가 이미 브라질 이상이 된 자본주의적 러시아에서 그들에게 어떤 미래도 없다는 각오는 투쟁의 주된 동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외에는 경찰과 보안기관의 상상 이상의 부정부패와 불법 고문, 민중 시위의 초강경 진압에 대한 의분, 독재와의 유착 속에서 강도적인 방법으로 자본증식을 도모하는 신흥 부유층에 대한 증오 등의 요인들도 그들로 하여금 각종 시위와 점거농성 등에 나서게 합니다.

    착취, 부정부패, 무법천하, 고문과 억압에 대한 분노… ‘민족/민중/민주’진영에 합류했던 과거 운동권 학생들의 마음의 풍경과는 그다지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들의 항거가 상당한 계급적 (반자본적, 반정권적) 성격을 띰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이면 이토록 ‘민족’ 사유와 수사로 포장돼 있는 것인가요?

    계급연대 관점의 결핍

    일언이폐지하자면, 세계체제 주변부/준주변주로서의 어떤 보편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이든 러시아든 투쟁에 나서는 ‘열혈 분자’들에게는 각각 그 지배층의 세계자본/미국/일본에의 종속은 수치이자 민중 본위 사회 건설의 주된 장애물로 인식되어집니다.

    물론 이 인식 자체가 꼭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중요한 결함은 세계체제 중심과 주변부를 망라하는 계급적 연대에 대한 관점의 부족입니다. 이러한 연대가 실행되지 않는다면, 이 위계서열적인 세계체제 전체를 무너뜨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계급 본위의, 계급 연대적인 관점이 부족하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비판 의식이 결여돼 있기에, 이 좌파민족주의자들이 본인의 ‘민족’이 억압의 주체가 되는 경우들에 대해서는(러시아 제국주의자들의 체첸 독립운동의 말살, 한국 자본에 의한 외국인 노동자의 살인적 착취 등등) 전혀 반성이 없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계급의식이 미성장된 상태에서 ‘민족’ 의식에 의해서 대체되다시피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노동운동의 침체와 경제주의적 한계 등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이나 러시아의 경우처럼 노동조합들이 수세적 입장에서 주로 당면 경제 투쟁에 매몰돼 있고, 상당히 관료화돼 있고, 전투성이 결여됐다면 급진적 청년 지식인으로서는 노동운동에 기반을 두는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가 매우 쉽지 않습니다.

    ‘좌파 민족주의’ 치료제는 노동운동 급진화, 계급정당 성장

    노동자들이 정치파업을 계속하고, 시위운동에 계속 전위로 나서는 희랍이나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쿠갈의 경우에는 운동진영에서는 아무리 반미 의식등이 강해도 언제나 ‘계급’이 본위가 되는 것이고, 국경을 넘는 연대에 나서려는 의지도 매우 강합니다.

    그런데 다수의 노동자들이 개별적인 경제이익을 넘는 범인민적인, 반자본주의적인 저항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한국이나 러시아의 경우에는, ‘민족 좌파’라는 기형이 결국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아쉽지만, 일종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하기도 합니다.

    ‘좌파 민족주의’라는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묘약은 노동운동의 급진화와 계급정당의 성장입니다. 이제 계급정당으로서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진보신당이 모든 난관을 뚫고 제대로 성장한다면 적어도 일부의 ‘민족 좌파’들이 ‘민족 모순 본위’ 인식의 허위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합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이미 ‘민족좌파’는 하나의 ‘전통’이 된 것인데, 이와 같은 전통이 한번 고착되면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주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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