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우리가 말해온 진보정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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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07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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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올 여름도 참 넘기기 힘들었습니다. 7월에 삼복더위를 겪다가 길고 난폭한 장마철 폭우 소동을 겪나 싶더니, 막바지 늦더위까지 기승을 부렸지요. 그러던 것이 언제 그랬나 싶게 맑고 청명한 가을 날씨입니다. 탈도 많았습니다. 

    8월 초 지리산 밑에서 몸을 다쳤습니다. 아차 넘어진 것으로는 후유증이 심하군요. 다 수습되려면 족히 1년은 걸릴 것이라는 의사 말이 처음에는 그저 그랬는데, 웬걸, 이러다가 남은 세월 다리 절고 허리 굽은 채 살아야 하나 겁이 나기도 합니다.

    언젠가 <연대와 소통>에 쓴 글에서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노동자들에게 입바른 훈수 한 마디 했었는데, 혀가 화를 부른다고, 그 입방정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막상 넘어진 김에 쉬어보려니,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아프게 느끼는 중입니다.

    말이 힘들었던 여름

    그래도 이런 일들이야 시간이 약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숙달과 체념도 가능하지만, 여름 내내 들었고 지금도 들리고 있는 말의 홍수는 참으로 참기 힘들군요.

    진보대통합이다, 소통합이다, 진보연합이다, 민주연합이다, 시간이 가면서 통합인지 연합인지 연대인지, 어느 쪽이 크고, 어느 쪽이 작은지 도통 헷갈리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점점 ‘막말’들까지 쏟아지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져, 말 그대로 오리무중에 지리멸렬로 치달았나 싶었습니다.

    오늘(9월 26일) 아침에 일어나니 좀 정돈이 되었나 싶기도 합니다. 어제 양당의 결정에 의해 민노당과 참여당의 통합은 무산되고, 진보신당은 직무대행 체제를 마감하고 비대위로 넘어갔군요. 통추인지 새통추인지에서 통합 이야기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럼 됐나요? 서로 좀 민망하고 객쩍기는 해도 파토가 나지는 않았으니, 컴퓨터 시스템 복구하듯 몇 달 전 시점으로 날짜 재설정하고 재부팅, 그러면 되나요?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하니 그래도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참 힘들군요.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 그 많은 날들을 이렇게도 비생산적인 자폐적 입씨름과 힘겨루기로 낭비하고, 그리고는 멀쩡하게 다시 ‘논의’하고, ‘연대’도 하고, ‘연합’도 하고 혹은 ‘통합’도 하고, 진보정치 그러면 되나요? 그동안 진보정치는 앞으로 갔나요, 뒤로 갔나요? 세상은, 시간은, 앞으로 갔나요, 뒤로 갔나요?

    말하라 합니다. 왜 가만히 있느냐, 지금이야말로 나서서 말해야 하지 않느냐고들 합니다. 이 글도 그래서 시작한 것이긴 하지만, 사실 나는 지금 말하기가 너무나 버겁습니다.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라 침묵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난무했던, 앞으로도 난무할 말들을 듣기가 너무 힘들고, 입 벌려 한 마디 하기도 너무 힘든 여름이었습니다.

    당, 노조? 우리가 무슨 일을 한 것이지?

    이 길고 지루한 ‘진보대통합’의 정치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겠지만, 나도 여러 가지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괴롭지만, 두어 가지만 짚어 보지요.

    민주노동당이 이 와중에 강령을 수정했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강령에서 삭제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로 대체했습니다. 아마도 참여당과의 통합, 나아가 민주당과의 정치연합까지 염두에 둔 것이겠지요. 그럴 수 있습니다. 정당의 강령이 만고불변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놀란 것은 강령의 수정이 아니라 그 ‘과정’이었습니다. 너무도 신속히, 너무도 조용히, 당 내외에서 이를 둘러싼 아무 논란도 없이! 이것이 내가 한때 몸담고 일했던, 이를 교두보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추진해갈 ‘전략당’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당의 실제 모습이라니. 나는 아연실색했지만, 주위에 이를 두고 놀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당연하다거나, 예상했다거나, 별 관심이 없다거나, 그런 것이겠지요.

    진보신당의 간판이나 다름없었던 세 명망가 정치인들의 행적 역시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당 대회에서 통합안이 부결되자, 그들은 미리 준비했던 것처럼 ‘통합연대’라는 정치조직을 띄워 당대회의 결정을 간단히 부정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당대회를 앞두고 두 사람은 간단한 성명서를 내고 탈당을 결행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전적으로 같은 생각’이지만 탈당은 좀 유보한다고 말했더군요. 나는 신속과감한 그들의 정치적 행보에 꽤나 놀랐습니다.

    민주노총이나 여러 대중조직들의 행보 역시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애초에 ‘통합’ 논의를 불지핀 것은 민주노총이었다고 해야겠지요. 진보정당의 분립이 대중조직에게 던진 부담을 덜고 싶었던 것이지요.

    민노당 당 대회 전날 민주노총은 참여당과의 통합을 ‘사실상’ 지지한다는 입장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했었는데, 막상 다음날 당 대회에서 위원장은 그것이 민노당에 대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상의(?) 반대 발언을 했다고 하는군요. 전날의 결의가 반대자들이 퇴장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었다 합니다. 그러면 민주노총의 입장은 무엇이었던 걸까요? “찬성이지만 반대”라는 것인데, 이건 무엇이지요?

    뱉은 말도 있었고 해서, 넘어진 김에 좀 쉬어보려고 했던 여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누구 말대로 “도끼로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었던 진보정당은 우리가 그렇게 비판해 마지않았던 보수정당들 못지 않게 낡고 진부한 과두제 정당, 계보 정당, 토호 정당, 엘리트 붕당에 불과했는지 모릅니다.

    나 스스로 전략당이니 전술당이니 이런 그럴듯한 논리로 설명해보기도 했는데, 그도 말짱 헛소리였나 봅니다. 민주노총은, 산별노조는 또 어떤가요. 노조가 계급적 대중조직이고 당은 그 정치조직이고, 양자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고, 도대체 나는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우리는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을 해온 것일까요?

    민주주의, 퇴행적 의제에 발목잡히다

    최장집 선생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요체를 정당이라 봅니다. 좀 단순화하면 민주주의의 수준과 성격은 결국 어떤 정당들이 정치적 민주주의의 수행자 역할을 하는가에 달린 것이고, 따라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정당의 건설이 민주주의의 핵심과제라는 것이지요.

    최선생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여야의 보수 정당들을 비판하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 많은 관심을 보인 것도 그런 맥락일 것입니다. 내 생각도 그분과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당 이전에 대중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이 제대로 된 계급조직으로 편제되고 운영되어야 한다는데 더 많은 관심을 두었던 것이라 하겠습니다.

    2004년 선거에서 약진한 민주노동당, 그 정책위원회에서 직을 맡아 한동안 당의 내부를 들여다 본 적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보기가 좋았고 기대가 높았지요. 30~40명의 젊은 정책위원들이 5개의 위원회에 배속되어 왕성한 의욕으로 다양한 정책 작업을 했던 때였습니다.

    몇몇 의원실에 배속된 보좌관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이들이 당의 핵심 정책역량으로 성장하면 한국의 정당사에서 유례가 없는 민주적이고 진보적이며 풍부한 정책역량을 갖춘 당의 건설이 가능하리라 생각했습니다.

    2008년 분당을 거치면서 이 소중한 역량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또한 민주노동당에서의 정치적 실천을 통해 대중적 정치가로 성장한 사람들은 자신이 확보한 인적, 물적 자원을 당으로 투입하기보다는 자기 중심의 캠프들을 만들어 그것을 ‘사유화’하기에 바빴지요.

    정파 조직이 했던 일이나 이 명망가들이 했던 일이나 그게 그것이었습니다. 정당을 정치의 중심으로 키운 것이 아니라, 조직 자원 찬탈자들의 ‘밥’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역과 현장에서 진보정당 운동에 희망을 걸고 헌신해온 많은 하급 간부들과 평당원들의 노력을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과 헌신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당의 건강한 리더십의 형성과 재생산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파벌과 계파, 인물 중심의 리더십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면 이를 언제라도 내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당내 민주주의라 하겠지요. 이번 과정에서 그나마 기성의 보수정당들과는 달리 진보정당들 안에는 이런 내부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음은 볼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불행히도 그 민주주의가 전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제가 아니라 퇴행적이고 과거지향적인 의제에 갇혀버렸습니다만… 진보정당이라면 좌고우면할 여지도 없이 단칼에 내치고 앞으로 내달려야 할 시간에 쓸데없는 의제를 놓고 서로 치박으며 그 소중한 시간을,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다니!

    하방의 자세로 살아보면 어떨까 하지만…

    홀로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면, 언제나 내 발목을 잡는 것은 나이지 다른 누군가가 아닙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튀세르가 자서전을 썼는데, 그 제목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였지요. 시간의 연속성에서 진행되는 철학적 사유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정치적 사유도 그럴까요?

    이태리의 정치가 안토니오 그람씨는 1926년 <리용 테제>를 씁니다.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이태리에, 나아가 유럽 전역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던 무렵이지요. 그가 당수로 있었던 이태리 공산당은 합법 정당이었고 그람시 자신도 국회의원이었지만, 이태리 내에서 당대회를 열지 못하고 국경 너머 프랑스의 도시 리용으로 당원들을 소집했습니다.

    그람씨는 <리용 테제>에서 5만의 당원 모두에게 ‘하방’을 지시합니다. 테제의 전반부는 이태리의 정치경제에 대한 치밀한 분석의 내용이지요. 이 분석에 입각해서 그람씨는 “오늘 이후 모든 당원들은 아래로 내려간다. 공장으로, 학교로, 농촌과 도시의 협동체로, 인민의 전선으로”라고 선언합니다.

    20여년 후, 그람씨는 이미 죽었습니다만, 무솔리니의 몰락과 더불어 재건된 당은 50만의 당원을 가진 유럽 최대의 대중적 좌파 정당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냉전체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30~40%의 지지율을 가진 대중정당으로 스탈린에 맞서 유로코뮤니즘을 이끈 당이 되었지요. 지금은 사민주의 정당이 되어 있지만요.

    하방은 중국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역사에는 항상 있었던 것이지요. 당 내외의 질곡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당 조직이나 방침, 자질구레한 기득권 따위를 일거에 버리고(강령은 아니고) 민중의 바다로 들어간다, 그런 것입니다. 단절의 정치지요. 어딘가 좀 낭만적이고 비장한 미학이 담긴 말이기도 합니다.

    아, 지금 이 이야기가 왜 나왔을까요? 지금 우리 노동운동, 진보정치운동에서도 하방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나요? 글쎄요, 하방까지는 몰라도 ‘하방의 정신’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것이 제일 필요한 사람들이 있겠는데, 누구라 말하기는 그렇고, 그냥 우리 모두라고 말해둡시다.

    웬 뜬금없는 소리냐구요? 하방은커녕 상방을 못해 모두가 안달인데,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구요? 그러게 말하기 힘들다고 했었는데, 김소장(창원 노동사회교육원 김정호 소장-편집자)은 꼭 자기는 뒤로 숨고 나보고 이런 글을 쓰라고 합니다. 아픈 것은 다리뼈지 손은 괜찮지 않냐고 하면서… 김소장은 아직도 사람이 글을 손으로 쓴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가을인가 했더니 아직 낮에는 무더위가 남았습니다. 그래도 여름의 끝입니다. 여름밤 꿈이 좀 길었나봅니다.

    * 이 글은 창원에 있는 노동사회교육원에서 발행하는 <연대와 소통> 27호(9~10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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