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을 장사판으로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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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06일 08: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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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스템에서는 어떤 모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또 어떤 모순도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는 쌓이지 못한다." 무슨 시스템을 말하는 걸까요? 장강명의 소설 <표백>에서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이렇게 지칭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갇혀 아무런 시도도 할 수 없는 젊은 세대들을 ‘표백 세대’라고, 책 속에서는 일컫고 있지요.

    표백 세대

    여기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이 터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학자금 대출 때문에 졸업하자마자 신용불량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진부하게 들릴 정도가 되었지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냉매가스에 질식해 숨진 대학생의 이야기에 이르면 현실은 차라리 어느 부조리극의 한 장면으로 둔갑하는 것 같은 인상마저 줍니다.

    그 부조리극에 등장하는 꼭두각시가 또 하나 있습니다. 수익을 내기 위해 혈안이 된 자본과, 부족한 연구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80년대 이래 기업과 손잡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대학,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입법부라는 기치 아래 비민주적으로 날치기 법안을 통과시킨 국회의 손에 놀아나는 ‘서울대 법인화’라는 꼭두각시입니다.

    법인화는 곧 민영화, 기업화나 마찬가지입니다. 법인화가 시행되면 학외 이사들의 입김이 작용함에 따라 학교를 다니는 학생,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학내 민주주의를 구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법인화법 가운데는 서울대가 수익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조항도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대학은 학문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장사판으로 전락하고, 그러다가 사업이 실패할 경우에는 학교 운영에 아무런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았던 학생이나 노동자들에게 그 피해를 전가시키겠지요. 그리고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나머지 지방 국공립대들도 법인화되는 것은 정말 시간문제입니다. 대학들이 점차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논리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도 안 되는 부조리극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대 학생들은 ‘국립서울대학교’를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토론의 장, ‘500인 원탁회의’, 그리고 첫날 2명으로 시작해서 동맹휴업이 있는 날까지 매일 2배씩의 사람들이 모여서 미션을 수행하는 ‘미션 X2’와 같은 행사를 학교 안에서 진행했습니다.

    노동자와 서울대 법인화

    한편으로 서울 남부 지역의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간담회와 문화제 자리도 마련했습니다. 참석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왜 노동자가 법인화 문제에 결합해야 하는가’ 혹은, ‘왜 학생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여전히 풀어내지 못한 실타래 같은 단상들은 있지만, 그 자리에서 우리가 잡아낸 실마리, 나름의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각각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큰 문제로 연결되어 있으며, 단일 사안에 갇히는 투쟁은 결국 사그라지고 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요. 마치 주변에 공기가 없으면 이내 꺼지고 마는 불씨처럼요.

    그렇다면, 누가 모여야 하는 걸까요? 힘든 삶을 살고 있는 ‘표백 세대’들? 소설에서는 젊은 세대들의 얘기만 나왔지만, 어디 힘든 것이 그네들뿐이겠습니까. 등록금 비싼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힘들다면, 그 대학에서 셔틀버스를 운전하시는 운전기사도 힘들 것이고, 강의실을 청소하시는 청소노동자도 힘들 것이고, 등록금을 대야 하는 부모님들, 대다수의 노동자들도 힘들 것입니다.

    사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이 사람들인데, 세상은 이들에게 왜 이렇게 살기 힘든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모여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나 꺼내보고자 합니다. 프랑스에 가면 노천카페들이 거리에 즐비합니다.

    물론 저도 가난한 학생인지라 아직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요.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이라는 책을 쓴 목수정씨의 말씀으로는, 카페의 의자들은 나란히 거리를 향해 있는데, 마치 ‘나는 세상을 향해 언제나 열려 있으나, 지금 이 순간은 당신과 어깨를 마주하고 이 거리를 함께 바라보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대요.

    나와 네가 나란히 선 이유

    저는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모이면 어떤 모습이 될지, 이 말에서 조금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집회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둥그렇게 둘러앉거나 사방팔방으로 향해 있기 보다는 한 곳을 바라보고 나란히 섭니다.

    그건 마치 ‘나와 너는 지금 이곳에 서서, 세상을 향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아요.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와 행동은 한데 어우러질 수 있고, 또 그럴 때만이 우리에게 매정한 세상이 제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걸어갈 수 있도록 등이라도 한 번 떠밀어 줄 힘을 일궈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지 않는 시대,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직접 나서서 확성기를 쥐고 삭제되었던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입니다. 저도, 그리고 바라건대 당신도,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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