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사회투자국가는 신자유주의 국가다"
    By
        2011년 09월 24일 08:40 오전

    Print Friendly

    1. 유시민의 사회투자국가 전략은 ‘제3의 길’의 복제품이다.

    유시민은 『대한민국 개조론』의 「선진통상국가,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이라는 장에서 자신의 국가발전 구상을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했다. “대한민국은 밖으로는 세계화 시대의 선진통상국가로 나간다.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하기 위해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를 건설한다.” 그리고 이어진 「사회투자국가, 지구촌 경쟁에서 이기는 전략」이라는 장에서 이런 사회투자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선진통상국가로 나아가는 것을 ‘전략’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전략을 이렇게 정당화한다.
    “제 주장을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개방화를 즐기자. 동시다발적 FTA를 단순한 영업적 손익계산에 따른 비즈니스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구촌의 선진통상국가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발전전략의 한 축으로 자리 매김하자.

    둘째, 선진통상국가로 국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내적으로는 대한민국이 경쟁력 있는 국민을 제대로 길러내는 사회투자국가가 되도록 하자. 보수파는 선진통상국가를 좋아하고 진보파는 사회투자국가를 좋아하니, 각자 좋은 것을 하나씩 가지면 서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게 결사반대하며 피곤하게 사는 것보다 좋지 아니한가?”

    말하자면 성장도 적극 추구하고 하고 분배개선도 적극 추구하자는 이야기로 들린다. 누이에게도 좋고 매부에게도 좋다고 자화자찬하는 이른바 ‘제3의 길’ 노선이다. 실제로 그의 사회투자국가론은 전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에게 ‘제3의 길’을 가르쳐 준 스승인 기든스의 이론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점은 그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

    「전통적 복지정책과 사회투자정책」이라는 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 그 차이(복지국가와 사회투자국가의 차이: 필자)를 일반화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사회투자라는 용어를 널리 알려지게 만든 사람은 이른바 ‘제3의 길’을 창시한 영국 학자 기든스(Anthony Gidens)입니다. … 단순한 소비 지원을 넘어 인적자원 개발과 사회적 자본 확충에 집중하는 새로운 성격의 복지국가, 이것이 사회투자국가입니다. 사회투자정책은 사회투자국가를 구현하는 정책수단을 의미합니다.”

    2. 사회투자 정책은 복지국가 해체 정책이다.

    위와 같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길 – 자본도 좋고 노동도 좋은 신묘한 길 – 로 가기 위해서 그는 복지정책을 사회투자정책으로 바꾸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보파는 사회투자 국가를 좋아”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도 그는 이미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투자국가는 진보파에게도 좋고 보수파에게도 좋은 국가가 아니다. 보수파에게는 좋지만 진보파에게는 나쁜 국가이다. 진보파는 분배개선과 복지를 원하지 사회투자국가를 원하지 않는다.

    사회투자란 무엇이고 사회복지와 어떻게 다른가? ‘복지정책에서 사회투자정책으로’라는 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복지정책을 사회투자정책으로 바꾸자는 저의 주장은 그저 이름만 바꾸자는 게 아닙니다. 정책의 목표와 정책 수행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사회투자는 개방의 진전에 따라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보완적 정책수단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개방이 선진통상국가로 발전하는 데 불가결한 필요조건이라면, 사회투자는 대한민국이 국제 경쟁에서 성공할 가능성을 높이는 필요조건입니다.”

    이와 같이 사회투자는 개인, 개별자본, 국가적 총자본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수단이다. “사회투자정책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4조 규정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기존의 시혜적 복지정책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개념입니다. 대한민국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사람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겠지요. 좋은 기술, 풍부한 지식, 창의적인 아이디어, 사회적 신뢰, 이런 경쟁력의 원천은 모두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고 경쟁력입니다.”

    이와 같이 사회투자정책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통해 인간과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자본주의 경제정책이다. 사람을 인적자원이나 상품이 아니라 존엄성을 가진 인간 그 자체로 파악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기 위한 지출을 늘리자는 고전적 사회(복지)정책과는 그 접근방법이 정반대다.

    유시민에 따르면 지난날에는 이런 고전적 복지국가가 긍정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영국병’에서 보듯이 그런 정책의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이 인간중심의 복지를 추구하는 것을 “낡은 복지국가론”이라고 비판한다.

    이것은 진보운동세력이 추구한 민족경제론을 “경제가 그저 경제로서가 아니라 사회·문화의 발전과 조화를 이루면서 성장하게 하자는, 인간중심·가치중심의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무척이나 매력적인 대안이었지만 오늘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 그에게는 복지국가든 민족경제든 인간중심적인 경제나 국가는 낡았거나 비현실적이다.

    그는 이러한 인간 중심적 복지정책을 시혜적이라고 폄하한다. 거지에게 동냥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대급부 없이 주는 것이므로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기존의 복지정책은 사회보험으로 또는 세금으로 국민이 조성한 돈으로 개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조건에 처했을 때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방도이다. 이 때 받는 수혜는 결코 공짜로 받는 시혜가 아니다.

    공적 부조의 경우는 무상이므로 사회보험이나 연금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동냥과 같은 시혜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그 수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한 권리다.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의 경우에서 보듯이 무상으로 급여를 받는 이유가 이 사회가 빚어낸 사회적인 귀결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 귀결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에게 그 원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는 이 사람들에 대해서도 인간답게 살도록 도와줄 책임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사회, 인간적인 사회, 인간다운 사회이다. 그런데 사회의 이런 임무를 유시민은 시혜이므로 나쁘다고 하면서 깎아내리고 있다.

    사회가 어려운 개인에게 은혜를 베풀면 왜 안 되는가? 공짜에 길들여져서 노동력을 팔려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을 터이기 때문인가? 요컨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의 노동력을 팔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반대급부 없이 주는 복지는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또 반대급부가 있는 경우에도 보험료를 많이 내는 사람이 더 많은 보험금을 타 가듯이 능력에 따라 차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이런 사회투자정책을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한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노동력 상품으로서 더 큰 경쟁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 더 인간답게 살게 되는 길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더 큰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면서 군 생활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내고 학자금을 대출받아 대학을 졸업해 봐야 더 인간답게 살게 되기는커녕 룸펜 노동자가 되거나 자본의 채무노예가 된다. 국민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점점 더 깊이 이런 룸펜과 채무노예의 덫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그 덫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3. 사회투자 정책에는 사회가 없다. 이는 사회적 지출의 자본화(이윤-생산적 투자화)다.

    노무현 정부는 「비전 2030」이라는 장기 국가재정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유시민에 따르면 이것이 제시한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선도적 세계화 전략이고, 둘째는 인적자원개발 전략이며, 셋째는 사회적 자본 확충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첫째는 선진통상국가로 나가자는 것에 해당하고 둘째와 셋째가 시회투자국가 전략에 해당한다. 그러면 이것들 간의 상호관계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이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선진국과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맺음으로써 세계화를 선도하는 것이고, 충분조건은 국민 개개인이 유능해지는 것이란다. 이를 위해 “국민 개개인이 인지적․신체적․정신적․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 바로 인적자원개발 투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 개개인의 능력이 최대한 경제적 성과를 낳을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투자라고 한다. 사회투자국가란 이렇게 인적자원개발과 사회적 자본 확충에 전력을 다하는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인적자원개발 투자란 어떤 것인가? 그의 글을 인용해 보자.
    “지구촌을 무대로 경쟁하는 주체는 물질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실제로 사람은 대한민국 경쟁력의 유일한 원천입니다. 초고령 사회를 눈앞에 둔 대한민국은 이미 사람이 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더 많은 국민이 일하도록 해야 합니다.

    되도록 젊은 나이에 일을 시작하고, 나이가 많아도 되도록 오래오래 일하도록 해야 합니다. 경쟁에서 한 번 실패하거나 탈락한 사람에게 다시 도전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일하는 동안 더욱 생산적으로 일해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지금보다 더 똑똑하고 더 건강하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더 큰 정신적․정서적 능력을 기르도록 해야 합니다.”

    “이 전략은 … 유급지원병제도와 사회복무제 도입 등 병역제도 개편을 포함한 ‘인적자원 활용 2+5 전략’, 대학 특성화와 경쟁력 강화 방안, 정년조정과 임금피크제 도입 방안, 출산크레디ㅡ제도도입을 포함한 국민연금제도 개혁,국가 연구개발사업 확대, 초중등교육의 정상화와 방과 후 학교 활성화, 영어교육 강화, 보육 서비스 확대, 빈곤 아동 투자 확대를 시발점으로 삼은 사회투자정책, 학교보건과 사업장 보건, 지역보건을 연계하는 건강투자정책 등 인적자원개발과 관련해 참여정부가 추진해 온 다양한 정책조합과 연관되어 있습니다.”(밑줄 친 강조는 필자) (같은 책, 「‘비전 2030’, 사람이 희망이다」중에서)

    문제는 이와 같이 사람에 대한 지출이 자본의 투자로 파악되면서, 상품과 자본의 경쟁력 향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에 대한 지출’은 생산성이 있는 투자로 간주되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실행하지만 그런 경쟁력에 보탬이 되지 않는 지출은 제거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될 때 노동능력이 없는 장애인이나 노인에 대한 지출은 영순위로 축소 또는 제거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로 하여금 일을 더 많이 하도록 만드는 데 복무하게끔 설계된 사회적 지출을 영국 사람들은 기존의 사회-복지(wel-fare)와 대비해서 일-복지(work-fare)라고 불렀다. 유시민이 주장하는 것은 이 영국식 일-복지와 다름없는 것으로, 모든 사회적 지출을 경제적 지출로, 노동자의 노동능력을 만들어내고 향상시키는 이윤-생산적 지출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투자란 무엇인가?
    “사회적 자본은 ‘개인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자원’입니다. 한 인간집단의 구성원 또는 상이한 여러 인간집단들이 공유하고 있어서 서로 협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규범이나 네트워크, 유대관계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지요.

    가족, 학교, 지역사회, 기업, 노동조합, 언론, 정치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과 집단들이 다른 사람과 다른 집단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더 큰 사회적 자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자본이 풍부할수록 갈등이 덜 일어나고 갈등 해결 비용도 적게 들어갑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국민 개개인의 생산성과 더불어 사회 전체의 경쟁력도 올라가는 것이지요.

    정부혁신, 전자정부 구현, 행정투명성 강화, 병력제도 혁신, 노사관계 선진화, 국가 균형발전 정책, 사법제도 개혁, 언론 개혁, 자원봉사의 활성화, 식품·의약품 안전 강화,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복지정책의 합리화, 비정규직 차별 해소(비정규직 철폐가 아니라: 필자), 양성평등 실현, 엄정한 법질서 수립 등 참여정부는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정책에 힘을 기울였고, 「비전 2030」은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제도혁신과 선도적 투자계획을 담고 있습니다.” (밑줄 친 강조는 필자)(같은 책, 「‘비전 2030’, 사람이 희망이다」중에서)

    위의 인용문을 통해서 볼 때 사회적 자본이란 곧 국가권력이 지금껏 강조해 온 사회안정, 사회통합, 사회질서 같은 것에 다름 아니다. 개인과 기업이 상품과 자본으로서 치열하게 경쟁하되 사회질서가 파괴되지 않게끔 협력하게 하는 데 필요한 지출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에 복무하는 관점에서 사회를 합리화하자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물질적 자본과 인적 자본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의 이러한 사회적 자본도 훨씬 더 풍부하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영국의 폭동이 보여주듯이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다는 곳에서 대대적인 폭동이 일어났다. 왜 그랬을까? 오직 자본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합리적으로 관리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정책은 실질적으로는 사회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 자본의 입장에서 펼치는 경제정책이다.

    유시민도 이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물론 이렇게 할 때 ‘복지지출은 새로운 이름을 가져야 마땅하죠. ’사회투자지출‘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복지정책으로 불리는 현재의 사회정책을 사회투자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결과의 평등을 도모하는 데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쪽으로 정책수단과 사업방식을 혁신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의 경제적 조건을 평등하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기회의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하며 그럼으로써 결과의 평등을 도모하는 것이 복지국가의 철학이라고 할 때 유시민의 사회정책은 전형적으로 자본가들 및 그들의 이데올로그들이 주장하는 평등론인 “기회의 평등”론이다.

    미국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형식적인 기회가 평등하지 않아서 사회가 이렇게 양극화되고 있는가? 그런데도 그것을 시정해야 할 사회정책이 기회의 평등을 내세우며 결과의 평등을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심화되는 결과의 불평등은 방관하고, 그로 인해 초래되는 출발-조건에서의 불평등도 방관하면서, 실패자에게도 재도전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등 기회의 평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데 사회정책을 국한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선도적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물질적 자본에 대한 투자는 민간 기업과 시장에 대폭 이양하고 국가는 인적자원개발과 사회적 자본 확충에 집중”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경제 발전의 주도권은 민간 기업과 시장에 넘겨주고 국가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인적자원개발에 집중 투자하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 현대적인 산업국가로 발돋움 할 것”이라고 한다.

    자본의 무규제적인 축적운동에 대해 백기투항하고 그것을 뒷바라지 하고 뒤치다꺼리 하는 국가가 바로 유시민이 추구한 사회투자국가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제시한 사회투자전략에는 사회가 없다. 다만 사회적 지출의 자본화(이윤-생산적 투자화)만 있다.

    4. 유시민은 무상의료를 반대한다.

    유시민의 사회투자국가가 어떤 나라인지를 가장 장 보여주는 것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에 대한 그의 입장이다. 그는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무상교육이나 무상의료는 국민들에게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가져오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한다. 공짜이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는데도 과다하게 서비스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은 “낡은 복지국가론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개조론』, 「에필로그」 중에서)

    유시민의 복지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는 그가 장관으로 몸담고 실행했던 의료 분야를 보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는 장관 재직 당시 의료급여제도 혁신을 추진했다. 그와 관련하여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료급여제도는 민주노동당이 주창하는 무상의료제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부유세를 걷어 조성한 재원으로 무상의료를 하겠다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터무니없는 구상입니다. 이건 정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구호 또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지요. 국가 전체로 보면 무상의료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의료 서비스는 비용이 듭니다. 그 비용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부담하느냐, 나라마다 그런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만약 본인 부담금이 전혀 없는 것이 무상의료라면, 환자 개인에게는 모든 것이 다 공짜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의료 서비스에 대한 모든 욕구를 다 충족하는 수준까지 수요가 늘어나고, 따라서 공급도 늘어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일입니다. 그에 따라 국민의료비가 무제한으로 폭발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분명할 뿐만 아니라, 본인부담금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유럽 선진국의 사례에서도 이미 입증되었습니다.”(이상 위와 같은 책, 「의료급여제도 혁신」, ‘무상의료제도는 정책이 아니다’ 중에서) 이러니 보건의료 관계자들이 어찌 유시민을 신자유주의자라고 보지 않겠는가?

    지난 22일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보건의료 부문 2차 성명’이 발표되었다. 그 가운데 국참당의 정책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하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초기부터 무상의료 실현과 의료민영화 반대, 영리병원 허용 반대를 외쳐왔던 정당이지만, 국민참여당에 참여한 상당수의 인사들은 오히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의료민영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영리병원을 허용하려고 안달이 나 있었던 이들이다.

    민주노동당은 건강을 ‘권리’로 접근하지만, 국민참여당 주요 인사들은 건강을 ‘시혜’로 접근하는 정책을 폈던 이들이다.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권리를 짓밟고, 이들을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이들로 마타도어를 펼쳐, 지극히 보수적인 의료급여 정책을 관철했던 이들이 국민참여당에 포진해 있다.”(‘보건의료부문 2차 성명’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진보의 원칙을 잃는 것. 2011.09.22 중에서)

    이 정도면 그의 신자유주의 노선과 정책에 대해 세세하게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이클 무어 감독이 만든 영화 ‘식코’를 본 많은 사람들은 ‘무상의료’ 하면 곧바로 쿠바를 떠올리는데, 보건복지부 장관을 했다는 그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쿠바는 소련 붕괴 후의 그 어려운 ‘고난의 행군(special period)’ 시절에도 무상의료를 굳건히 견지했고, 또한 최근 경제에 경쟁요소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개혁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교육과 보건의료에 대한 제도와 정책은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다.

    5. 정녕 누가 국민 사기극을 연출하고 있는가?

    이 사회투자국가론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는 수구세력은 물론이고 진보세력과도 많이 충돌했다. 이와 관련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진보를 표방하는 신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정책담론 경쟁에서 열세로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확보하지 못하는 정부를 ‘신자유주의’로 몰아 공박하는 것으로 자기의 존재 근거를 확인했을 뿐입니다. 정부 지출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는 정책을 실시하라고 하면서도, 세입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수단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심지어는 반대한 것입니다. 민주노동당과 똑같이 무책임하고 일관성 없는 진보인 것입니다.”

    “이제 정직하지 않은 보수와 역시 정직하지 않은 진보가 함께 벌이는 이 소모적인 국민사기극을 걷어치워야 한다고 말입니다.”(이상『대한민국 개조론』,「책임성 없는 진보, 일관성 없는 보수」, ‘정직하게, 일관성 있게 행동하자’ 중에서)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국비와 지방비를 합치면 해마다 2,000억 원이 넘게 들어갈 6세 미만 아동의 무료 예방접종을 시행하도록 하는 법률을 대표 발의했는데, 국회가 그 법률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예정되어 있던 담배 건강증진부담금 500원 인상 법안에 끝까지 반대하면서 일반회계예산에서 그 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으며, 결국 국가예방접종사업 예산은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원회 조정에서 전액 삭감되었다는 것이다. 세세한 전후사정은 잘 알 수 없으나 이것을 두고 ‘국민 사기극’이라고 지탄할 수 있을까? 그러면 유시민의 사회투자정책에는 과연 거짓이 없고 정직만이 있는가?

    유시민 자신도 사회투자국가가 전통적인 복지국가와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시인한다. 사회투자국가론을 비판한 김영순 서울산업대교수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유시민은 그 차이를 이렇게 정리했다.

    “1) ‘과세와 지출’ 대신 사회투자를 강조한다. 투자는 수익을 상정한 개념이므로 복지지출은 명확한 수익을 낳는 것이어야 한다.
    2)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통합성을 강조한다. 사회지출은 수익을 창출할 투자이기 때문에 곧바로 경제정책의 한 요소가 된다.

    3) 사회투자의 핵심은 인적 자본 및 사회적 자본 투자이다. 인적자본 투자의 핵심 대상은 아동이다. 사회적 자본은 좋은 인적 자원을 만들어 내는 사회적 맥락, 경제활동의 포괄적 기반이다.
    4) 사회지출을 소비적 지출과 투자적 지출로 나누어 소비적 지출을 가능한 한 억제한다. 대신 … 특정한 목표집단을 대상으로 투자적 지출 프로그램을 만든다.

    5) … 경제적인 기회 제공, 복지 제공이 국가의 의무라면, 유급노동을 통해 스스로를 부양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이다. 복지를 대가로 근로의무를 부과하고, 여기에 불응하면 급여를 삭감 또는 박탈하는 근로연계 복지정책이 대표적이다.
    6) 결과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을 중시하며, 불평등의 해소보다는 사회적 포섭에 더 관심을 둔다. 시장 실패자에 대한 사후 소득 보장보다는 새로운 지식 기반 경제에 적응해 시장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인적자원개발 투자에 주력한다.” (같은 책, 「전통적 복지정책과 사회투자정책」 중에서)

    사회투자국가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전형적으로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처럼 복지국가를 해체하는 신자유주의 국가다.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은 반-노동당이다. 그래서 블레어의 정책을 모방한 자신에 대해 그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적 시민사회단체가 저를 ‘역사상 최악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목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라고 시인한다.

    그러면서 끝내 자신의 사회투자정책을 “지향은 진보적이되 방법은 보수적으로 하는 절충적 해법”이라고 변호한다. 그러나 그는 사실은 복지라는“ 진보적인 정책 의제에 대해서 보수 지향의 해법”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자본으로서는 아주 좋은 정치다.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치가 노동자를 위한 정치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자본을 위한 정치로 드러났듯이, 유시민의 사회투자정책 또한 노동자와 서민을 빙자한 자본을 위한 정치다. 이것이야말로 오히려 국민에 대한 사기극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끝)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