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아(亞)제국주의, 반통일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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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23일 05: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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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시민은 미국에 예속되고 약소국들을 예속시키는 아제국주의 국가를 지향한다

    유시민의 주장 가운데 크게 논란을 빚은 것 가운데 하나가 그가 아(亞)제국주의를 옹호한 것이다. 문제가 된 부분을 옮기면 이렇다.

    “장하준 교수는 뛰어난 교수임에 분명하다. … 그는 세계를 산업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분할한 다음,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론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봉쇄하는 ‘사다리 걷어차기’임을 치밀하고 집요하게 논증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역사적 진실이나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 국가이익을 추구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치열한 국민국가 수준의 생존경쟁이 펼쳐지는 지구촌에서 국민을 이끌고 국가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때로는 자기의 개인적 도덕관념과 철학에 어긋나는 선택도 마다할 수 없다.

    장하준 교수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떤 대답이 올지 궁금하다. 대한민국은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걷어차려고 하는 사다리의 어디쯤에 올라와 있는가? 누군가 이 사다리를 걷어차는 데 성공했다고 할 때,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 일반이 그런 것처럼 담벼락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팔다리에 상처야 좀 나겠지만 담벼락 위를 붙잡고 기어 올라갈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 만약 올라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누군가 사다리를 걷어차는 게 우리에게 마냥 나쁘기만 한 일일까?

    이 질문을 더 노골적이고, 정치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보자.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라 하자. 사다리를 걷어차면 대한민국은 필연적으로 그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는가? 만약 미국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아제국주의 국가로 성공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보편적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 코즈모폴리턴이라면 당연히 부당한 ‘사다리 걷어차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직무에 충실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그 반대쪽을 택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장하준 교수의 책에서 한미FTA 반대론을 끌어낸다. 우리 국민들은 누구나 자신의 도덕적·정치적·철학적·이론적 견해의 경제적 손익계산에 입각해 한미FTA를 반대할 수도 있고 찬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다리 걷어차기’를 비판하는 장하준의 보편타당한 이론을 쌍방 간의 관세·비관세 장벽의 폐지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한미FTA 반대 논거로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차원 혼동의 오류’에 해당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경제학자의 주장과 대통령의 선택을 같은 잣대로 재단해 규범적 평가를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상 『후불제 민주주의』,「장하준」중에서)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하나. 국가의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익이냐 손해냐를 기준으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둘. “대한민국이 미국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아제국주의 국가”로 되는 것이 ‘성공’이다.

    이런 전제에 따라서 ‘사다리 걷어차기’가 대한민국에게 유리하다면, 즉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이 아제국주의 국가로 성공할 수 있다면 다른 약소국들에게 불리하더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은 ‘사다리 걷어차기’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찬성하는 쪽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과 그 대통령은 한미 FTA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을 추진하면서 그와 동시에 다른 선진국들 및 개발도상국들과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예속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예속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유시민의 논리는 자신의 철학 부재를 정당화하는 궤변이다. 교수의 보편타당한 이론을 근거로 국익을 추구하는 국가의 대외정책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정치는 보편타당성과는 무관한 영역, ‘가치의 정치’가 아니라 ‘이익의 정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니카라과 등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은 ALBA(우리 아메리카 민중을 위한 볼리바르 동맹) 라는 호혜무역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더불어 살자는 ‘가치의 정치’가 약육강식의 ‘이익의 정치’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정무역’이 미국식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유시민에게는 국제경제에 대한 이런 진보적 대안이 안중에도 없다.

    2. 유시민이 역설하는 해외원조 확대정책은 신식민주의 책략이다.

    공적개발원조 확대

    유시민은 추상적으로 아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제국주의적인 국제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도 이제 국제사회에 기여하여야 한다, 약소국들에게 공적개발원조(ODA)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수시장이 아니라 수출시장을 기반으로 경제를 일으켰고, 한미 FTA를 비롯해 지구촌 선진국들과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맺어 세계시장으로 나가는 대한민국은, 특히나 돈을 잘 쓸 필요가 있습니다.”

    “공적개발원조라는 게 있습니다. 국가가 다른 나라 국민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대한민국이 건국 이후 ODA 예산을 가장 많이 쓴 것이 2005년입니다. 얼마인지 아십니까? 7억 5천만 달러, 당시 환율로 7,500억 원 정도였죠. 국민의 정부 시절까지는 2억 달러를 넘지 않았다가 대폭 늘어난 게 그 정도입니다. 2005년 우리의 국민총소득(GNI)이 7,901억 달러였으니, GNI 대비 ODA 지출 비중은 0.1%가 됩니다.”

    “참고로 다른 나라들은 어떤지, 잠깐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GNI의 0.1%를 ODA에 쓴 2005년에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0.94%를 썼고, 네덜란드와 덴마크는 0.8%를 넘겼습니다. … 제일 야박하다는 일본도 많이 노력해서 0.28%를 기록했지요.”

    “우리에게 ODA 확대는 단순한 국제자선사업이 아닙니다.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채택해야 할 국가발전전략이기도 하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이상 『대한민국개조론』,「공적개발원조」중에서)

    이렇게 이 공적개발원조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가 선진통상국가로 도약하는 국가발전 전략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그는 선진통상국가로 가는 전략에 맞게 ODA를 제공할 것을 주장한다.

    인적자원 개발사업 중심의 양자 간 원조로 한국형 발전전략 수출을

    이런 견지에서 그는 다자간보다는 양자간 ODA를 늘리면서 인적자원 개발사업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한다. 양자간 ODA에서는 보건과 교육이 특히 중요하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교육이란다. 인적자원 개발 중심의 양자간 ODA를 통해 한국형 발전 전략을 수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나라들이 문제해결 능력을 높이려면, 그 나라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지도자를 길러주는 게 최선입니다. … 특히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나라들의 인재를 한국으로 데려와 교육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에 대해서도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의 우수한 학생들이 거기서 더 잘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주고, 제일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 젊은이들이 조국으로 돌아가면, 다 한몫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수가 되고 공무원이 되고 기업의 일꾼이 됩니다. 나중에는 장관도 나오고 대통령도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 기업이 그 나라에 진출할 때,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문학을 익힌 그들이 한국 기업의 파트너가 됩니다.”

    “한국은 미국보다 독일과 훨씬 더 닮은 나라입니다. 우리도 독일식으로 개도국 학생들을 데려와 공부를 시킨 다음, 그 나라로 돌아가 일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대한민국 개조론』,「공적 개발원조」, ‘인적개발 중심 ODA는 선진통상국가의 필수전략’ 중에서)

    이런 글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종속국의 지식인들을 공부시켜서 돌려보냄으로써 제국주의 모국에 우호적인 지도층이 형성되도록 만드는 책략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문서는 외국 유학생의 대부분이 미국 유학생인 한국의 지식인들이 미국 사람보다 더 미국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시민의 정책 제안은 미국을 비롯한 기존 제국주의 나라들이 우리나라에 구사하고 있는 식민주의 책략을 우리도 우리의 원조를 받는 약소국에게 그대로 모방, 적용하자는 아제국주의 정책이다.

    3. 유시민의 사고 속에는 반(反)제국주의는 없고 반(反)북만 있다

    반(反)제국주의 관점의 부재

    그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잘 살지 못하는 이유를 미 제국주의의 경제 봉쇄 때문이 아니라 ‘쇄국’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전형적으로 미 제국주의의 경제 봉쇄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수구세력의 논리이다. 그는 ‘남북한 보건협력이 필요한 이유’라는 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큰 나라도 정도는 덜하지만 고립되면 결국 망합니다. 중국처럼 큰 나라도 개방하지 않고는 잘 살 수 없습니다. 반미 투사 카다피가 이끄는 리비아도 견디다 못해 핵개발을 포기하고 국제분업체제 속으로 다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북한은 국제사회의 ODA 지원도 제대로 받아가지 못합니다. 보건 분야를 보면 2005년에는 남북협력기금에서 나간 지원금까지 합쳐도 630만 달러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는지를 확인해야 국제기구도 계속 지원할 수 있을 텐데, 다 막아놓고 들여다 볼 수 없게 하니 국제기구들도 지원을 포기하고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이상 위와 같은 책, 같은 장, ‘남북한 보건협력이 절실한 이유’ 중에서)

    서구 제국주의의 압력에 굴복하여 핵개발을 포기하고 시장을 개방하여 국제분업체제에 다시 편입한 카다피 정권이 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침략당하고 있는 지금의 리비아 사태를 보라!

    그런데도 미국이 북한을 봉쇄하여 고립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스스로 쇄국정책을 써서 고립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유시민의 눈에는 미국과 제국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지구촌의 모든 나라들이 대등하게 모여 있는 데가 국제사회이고, 이 국제사회는 어느 나라든 그 안에 들어오면 우호적으로 대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늘날의 국제사회가 제국주의 지배체제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눈을 감는다.

    또 그 국제사회가 사회주의에 적대적이고 약소국에 대해 지배자적이며, 다른 강대국들에 대해 미국이 패권을 휘두르는 체제라는 것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인도주의적이라는 국제기구들이 사실은 제국주의의 촉수라는 점에 대해서도 눈감고 있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라크가 핵무기 개발을 했다고 조작함으로써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데 명분으로 제공했던 것을 기억하면 충분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자유주의 세력도 권위주의 세력과 다를 것이 없다!

    깊이 각인되어 있는 반북반공 이데올로기

    “만약 독일의 경우처럼 갑작스런 체제 붕괴에 이은 통일이 찾아올 경우, 북한 지역에서 최근 유행했던 각종 전염병이 한반도 전체를 덮칠 것입니다. 홍역과 말라리아, 결핵 등 인간 전염병뿐만 아니라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등 동물 전염병도 새롭게 창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보건 분야는 북한이 체제 부담을 비교적 덜 느끼는 비정치적 사업이기 때문에 협력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같은 책, 같은 장, 같은 절 중에서)

    그는 수구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 붕괴가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그랬듯이 도둑처럼 불시에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급변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북한이 동독처럼 붕괴되고 동독이 서독에 흡수 통일되었듯이 북한 또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남한으로 흡수 통일될 듯이 가정하고 있다.

    갑자기 체제가 붕괴한다는 가정도 근거가 빈약할 뿐더러 중·미가 대치하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북한이 남한으로 흡수될 거라는 가정은 더욱 비현실적이다. 더구나 그는 이런 근거 없는 가정에 기초하여 북한으로부터 전염병이 남한으로 옮아와서 새롭게 창궐할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전염병을 비롯한 보건 분야 응급상황 대응 능력 향상을 위한 지원, 영유아와 산모 영양지원사업, 약솜과 일회용 주사기 등 기초적 의료소모품 생산기반 설치 지원 등은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데 정말 시급하고 긴요한 사업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위하고 흡수통일을 위해서 지원하겠다는 원조를 북한이 과연 받아들이겠는가?

    지난해 우리나라에는 북한으로부터가 아니라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는 구제역이 발생하고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전염되어 수백 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지하에 생매장되었다. 그 원인은 조류 인플루엔자든 구제역이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공장 식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자본주의 축산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유시민에게서는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은 찾아볼 수 없고 북한에는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생각만 자리잡고 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왕처럼 생각한다며 고정관념이라고 타박하는 그가 정작 조중동이 주입시키고 있는 반북 이데올로기를 고정관념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의 반(反)북 반(反)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북한의 경제제도와 정치제도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북한은 어떤 나라인가?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김일성이라는 ‘왕’이 살아서 통치했고 죽어서도 통치하는 왕조국가라고 하는 편이 더 진실에 부합한다.”

    “내가 자유주의자로서, 사유재산 제도가 안고 있는 수많은 결함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처분에 대한 사적 소유를 옹호하는 것은 사회적 자산에 대한 전면적인 집단적 소유는 반드시 전체주의로 귀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이상 『후불제 민주주의』,「재산권」중에서)

    4. 유시민은 조국의 자주적 통일이 아니라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원한다

    통일보다 평화공존을

    그는 통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민족의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통일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 준비하면서 단계적으로 천천히 일을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세기 헤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시 만나 서로 적응하는 데도 무척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통일부를 없애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이야기를 자꾸 하면 서로 긴장하고 경계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내부에서도 긴장이 생깁니다. 상호협력과 번영 이야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꽃게철 서해안 공동어로작업, 이런 것처럼 서로 이익이 되는 사업을 찾아서 함께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통일부를 없애고, 그 자리에 이런 사업들을 만들어나가는 민족협력부를 두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까 합니다.”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미움과 대립이 있던 자리에 화해와 협력을 꽃피우고, 그렇게 해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능력 있는 정부와 지도자만이, 현명한 국민만이 할 수 있습니다.”(이상 『대한민국 개조론』중에서)

    “통일문제에 대한 정답은 오직 하나뿐이다. 우선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북한 체제가 장기 지속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경제, 사회, 정치,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대한민국과 같지는 않지만 상호 소통이 가능한 시스템을 내부에서 형성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남북의 모든 국민들이 공히 한 지붕 아래에서 가족을 이루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질 때까지 교류하고 통상하고 합작하고 공존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여 북한과 미국이 수교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면서 국제사회에 통합됨으로서 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상 『후불제 민주주의』,「통일」중에서)

    여기에서 보듯이 그는 민족의 통일을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라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먼 훗날의 일로 미루어 버린다. 그 대신 화해와 협력 및 불가침 선언 같은 과제를 최상위에 놓는다. 남한 측이 유산시킨 1991년의 남북 기본합의서처럼 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의 미국의 세계지배체제 안에서 실현 가능한 것만을 추구하자는 것이 그가 말하는 현명함이다. 이것은 결국 외세에 의해 이루어진 분단 상황을 미 제국주의의 세계지배 체제가 저절로 무너질 때까지 오래도록 그대로 가져가자는 것이다. 통일부를 없애고 민족협력부로 하자는 것은 바로 그의 이러한 생각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것이다.

    통일보다 아(亞)제국주의 성공을 위한 평화를

    그에게는 조국통일보다 아제국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 더 우선적인 과제다. 남북관계는 남한이 아제국주의 국가가 되는 데 복무하는 방향에서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하려면 안마당의 전쟁 위험을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북한과 미국이 정식 수교를 하고 정전협정을 불가침협정이나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남북관계를 결정적으로 파탄내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북한 체제 붕괴는 대한민국에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사회적 재난을 몰고 올 것입니다. 그러니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자느니, 평양 주석궁에 국군 탱크를 몰고 가자느니 하는 따위의 유치한 선동에 귀 기울이지 않으시기 바랍니다.”(『대한민국 개조론』,「공적개발원조」,‘통일부를 민족협력부로 바꾸자’ 중에서)

    이처럼 그에게는 통일 문제는 안중에 없고 아제국주의로 발돋움하는 데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전쟁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자는 생각, 반전·평화에 대한 생각만이 자리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평화의 정착조차도 남한의 정부나 민중이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이루는 문제가 아니고 북·미간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바라보고 있다.

    그에게는, 남한이 끼어들어 북·미간의 평화협상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있지만, 북·미간의 평화협상이 잘 진척되도록 남한 정부나 민중이 미국에게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정도의 생각조차 없다. 다만 수구세력처럼 남북관계를 결정적으로 파탄내는 반(反)평화적인 짓만은 피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통일에 대한 자신의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를 선진통상국가로 가기 위해서라며 합리화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통일이 아니라!)이 자기나라 경제가 발전하는 데 매우 긴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이 자기중심적이고 현상유지적인 사고방식이다.

    두 나라로서 협력을 추구하는 관계로

    그는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 지출 통계에 남북협력기금 예산을 포함시키자고 주장한다. 북한도 다른 나라라는 뜻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ODA 지출 통계에는 남북협력기금 예산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남북한은 특수관계라는 겁니다. 이것도 조금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각종 지원은 금강산 관광 대가처럼 영업적인 거래의 대가로 지급하는 것이 아닌 한, ODA에 포함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말이지요.” (『대한민국 개조론』,「공적 개발원조」, ‘남북한 보건협력이 절실한 이유’ 중에서)

    그가 그렇게 남북협력기금 예산을 공적개발원조 지출 통계에 포함시키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남북관계가 특수한 민족 내부관계가 아니라 엄연히 다른 두 국가 사이의 관계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유시민은 수구세력과는 다른 모습을 띠고 있지만 분단고착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반(反)통일 세력의 한 변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통일은 자유민주주의 단일 체제로

    그는 통일에 소극적임과 더불어 통일은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결국 가까운 시일 안에 통일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이어지거나 아니면 무력통일을 불사하자는 수구세력의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 가운데 유시민은 무력통일에는 반대이므로 결국 지금은 통일을 추구하지 말자는 생각을 취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헌법 제4조를 보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우리 헌법은 헌법을 준수한다고 취임 선서를 한 대통령이 평화적 통일정책이 아닌 다른 통일 정책을 추진할 수 없도록 못박아둔 것이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평화통일을 하라는 건 아니다. 반드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하라는 게 헌법의 명령이다.” (『후불제 민주주의』,「통일」중에서)

    이 말은 6.15 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간다.” “남측의 연합제와 북축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간다.”고 하는 방향이 아니다.

    그는 “반드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하라는 게 헌법의 명령”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 6.15선언을 부정한다. 이것은 결국 독일의 통일처럼 오랜 기간의 평화적 공존의 기간을 거친 후 북한체제가 붕괴할 때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통일하자는 이야기다.

    5. 유시민은 자본주의 흡수통일주의자다

    유시민이 흡수통일주의자라고 하면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흡수통일은 수구세력이 주장해 온 것이지 자유주의 세력이 주장해 온 것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세력 가운데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민족주의 성향의 자유주주의가 있는가 하면 탈-민족주의 성향의 자유주의도 있다. 유시민은 후자에 속하고, 이들의 통일관은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흡수통일이다. 그들의 생각은 이렇다.

    “어떤 보수 지식인과 보수 언론, 보수 정당들은 통일에 대해 근거 없는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연방제니 국가연합이니 하는 평화적 통일방안이 나오면 덮어놓고 몸서리를 친다. 그것은 다 적화통일론의 변종이라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나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는다. 만약 평화적 통일이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그 통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질서에 부합하는 통일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닌 다른 평화적 통일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북한이 장기적으로 존속할 능력이 없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인민을 먹이지도 입히지도 건강하게 돌보지도 못하는 체제가 다른 체제를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르든 늦든, 한반도에는 하나의 민주공화국만 남게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후불제 민주주의』,「통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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