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독재 유산에 올라탄 신자유주의
    장하준-정승일은 박정희 유령 부흥사?
    [기고⑤] 한국자본주의 이행 논리…"정승일, 말 좀 가려서 했으면"
        2012년 05월 20일 11: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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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장하준, 정승일이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낡은 화두”라고 폭탄선언을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들의 이런 주장은 신자유주의를 금융 주도자본주의라고 규정한 데 뿌리를 두고 있다.(제1명제) 그러면서 그들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기획의 주체는 ‘세계화된 금융자본’이며 노동운동은 이 세계화된 금융자본을 ‘주적’으로 삼아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제3명제)

    이런 구도 속에서 재벌은 금융자본의 공격 대상으로 내몰리고, 따라서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자리매김 한다. 그리고 재벌과 노동세력이 힘을 합쳐 금융자본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이들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논리의 근원을 따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말처럼 ‘과거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글에서는 박정희 체제에 대한 그들의 인식상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번 내 글은 좀 난삽했던가 보다. 나의 글에 대한 ‘리플’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아래와 같은 리플을 볼 수가 있었다. ‘Super K’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의 리플이다:

    “진보지식인들은 어렵게 얘기해서 독자를 이탈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거 같다 ㅋㅋ 한마디로 박정희 때는 국가와 재벌이 동업자 관계였고, 지금은 재벌이 국가경제정책을 관리한다. 재벌은 규제철폐를 요구하고 그게 신자유주의다. 그 가운데 근로자의 의견은 빠져있다. 그게 북유럽과 다른 점이다.” 

    이 리플은 재벌과 금융자본의 관계, 97년 이후 재벌이 주주가치를 얼마나 수용했고, 어떻게 자신의 이해를 주주가치 추구와 공유, 공생하는 방식으로 가져갔는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한 요점을 아주 쉽고 간결하게 잘 정리해주고 있다. 정확한 요점 정리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1960년대 울산 공업단지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가운데 안경 낀 사람)

    그런데 장하준, 정승일의 한국자본주의 ‘과거에 대한 진단’은 박정희 체제의 구조에 대한 ‘인식 착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나아가 개발독재체제와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민주화와 세계화 시대 출현한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냉전 반공 개발독재체제의 역사적 유산과는 어떻게 맞물려 있을까 하는 것이 그들의 안중에 없다. 정승일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 보자.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내고 전두환, 노태우 장군이 지속시켰던 이른바 ‘개발독재’로서의 박정희 체제, 그 일부인 재벌체제와 관치금융을 긍정한다는 것은 민주화된 오늘날의 이 사회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쾌도난마』, p.230) 

    이 진술에서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 정권 시기의 정치경제를 한 바구니에 같이 담아 ‘개발독재로서의 박정희 체제’가 지속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된다. 같은 군부 출신이기 때문에 일정한 연속성이 존재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문민’정권과 그 이전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을 같이 묶는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건 그렇다 쳐도, 민주화 이후 상황에서, 더구나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가열차게 터져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그 세 정권에 지속된 재벌 체제를 “긍정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건 무슨 까닭일까?

    필자의 글이 난삽하다고 충고해준 닉네임 ‘Super K’의 지적대로, 개발독재체제에서 노동을 배제하면서 독재정권과 ‘동업자 관계‘(partnership)에 있었던 재벌, 그리고 이후 “규제철폐를 요구하고 신자유주의”를 주동한 재벌, 그래서 한국의 길이 “북유럽과 다른” 길로 가게 만든 그 재벌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정승일의 말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박정희 개발독재정권이 엄청난 특혜적 퍼주기 및 비용의 사회화 정책과 노동자 배제로 그 골격을 세우고, 이어 전두환 신군부정권이 참혹하게 노동자와 농민, 서민, 진보세력을 억압 배제하고 ‘사회 기강을 바로 잡는’ 정치경제적 구조조정 및 금융 자유화를 통해 공고화시켰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노태우 김영삼 정권이 쩔쩔 매다 마침내 그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던 문제의 주인공이 바로 재벌체제 아닌가.

    그리고 97년 ‘외환위기’의 주범이었고, 97년 이후에는 민주공화국을 ‘삼성공화국’으로 전락시켰으며, 부당 정리해고로 김진숙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 사태를 낳게 했던 문제의 주인공, 그 와중에 로비 파문을 일으켰던 장본인, 그리고 오늘날 골목 상권을 마구 탐식하고 중소기업을 일방적으로 수탈하면서 한국 시장경제를 승자독식 정글화시키고 있는 게 바로 이 땅의 재벌 아닌가.

    우리에게 정말 그런 ‘재벌체제를 긍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체제가 정치적 민주화뿐만 아니라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길, 제2민주화 길에 파놓은 깊은 함정에 대해 둔감하다는 것, 재벌이 지난 시기 개발독재체제의 지배 동맹자로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길을 가로 막아왔고, 이어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의 지배세력으로서 지금, 여기서 그 길을 여전히 틀어막고 있는 사실을 부정한다는 것, 그러면서 ‘재벌 체제를 긍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 ‘박정희 체제의 사후의 복수’ – ‘노동 없는 민주주의’

    재벌은 박정희 체제에서 ‘발전 지배연합’의 핵심 지배세력의 위치에 있었다. 박정희 체제는 단지 권위주의적 개발 국가 주도 프로그램일 뿐 아니라 국가-재벌 지배연합 또는 양자가 ‘동업자 관계’에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적절히 자기 역할을 재조정하지 못한 국가의 후퇴와 경제적 자유화 과정에서 재벌은 신자유주의를 추동하는 중심 세력이었다. 반면, 노동 세력과 민중 부문은 박정희, 전두환 독재체제의 억압 아래서 피멍이 든 채 손발이 사슬로 묶였다. 그래서 87년 6월 항쟁 국면에서는 정치적 민주화를 주도하는 주역으로 나서지도 못했다.

    우리 노동운동은 개발독재의 짙은 그늘인 기업별 노조라는 멍에를 진 채 세계화의 성난 파도를 맞아야 했다. 이를 두고 신정완은 ‘박정희 체제의 사후의 복수’라고 말한 바 있지만, 한국의 노동은 유럽과 비교할 때 복지국가(자본주의 2.)를 건너뛰었을 뿐 아니라, 노동권의 측면에서도 정상국가를 건너뛴 채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를 휩쓸려야 했다. 그리하여 오늘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빈곤화와 삶의 불안, 미래 불안의 정중앙에 노동의 불안, 고용의 불안이 도사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동아시아에서 한국식 권위주의적 후발근대화 길은 북구의 스웨덴식 길과 판이하게 다르다. 스웨덴적 길에서는 노동 세력이 정치적 민주화의 주역이었고, 노동세력의 성장과 국민적 지지 기반 위에서 사회민주당이 형성, 발전되었다. 즉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그러나 한국은 냉전 반공체제의 혹독한 시련과 척박한 조건에서 ‘약한 노동’과 ‘약한 진보’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장하준, 정승일은 한국이 스웨덴식 복지국가로 가려면 노조가 강해야 하고(『쾌도난마』, p. 227), 노조는 ‘당연히 산별노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선택』, p. 397)

    그 자체로는 맞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들은 약한 노조, 기업별 노조가 개발독재체제의 유산이며, 그것이 한국이 스웨덴식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막는 결정적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도통 불감증을 보인다.

    냉전반공 개발독재의 어두운 유산인 ‘노동 없는 민주주의’(최장집) 위에서 복지국가로 가야만 하는 한국의 길이 강한 노동과 사회민주당이 주도권을 잡았던 스웨덴의 길과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내가 “장하준의 복지국가론은 ‘리얼’하지 않다”고 말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개발독재체제와 신자유주의의 이분법 위에서,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내고 전두환 노태우 장군이 지속시켰던 이른바 ‘개발독재’로서의 박정희 체제, 그 일부인 재벌체제와 관치 금융을 긍정”하는 것은 오늘날 ‘제 2민주화’의 요구에 찬물을 끼얹고, 나아가 ‘쇄신된 박정희의 유령’에 기름을 부어주는 꼴이 –그들의 주관적 의도는 그렇지 않다 해도- 될 우려마저 있다.

    박정희, 전두환 ‘장군’의 어두운 얼굴을 감추면서 재벌을 도려낸 신자유주의 지배체제론을 제시하는 장하준, 정승일의 견해는 그 대가가 적지 않아 보인다. 스웨덴식 복지국가로 가자는 그들의 주장만큼은 진보적이며, 개발독재를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많은 보수 논자들과 구분되지만, 의외로 한국적 길 나아가 동아시아적 길의 역사적 특성에 대한 인식 빈곤과 국가, 재벌 ‘만능’론으로 인해 그 개혁 대안의 현실적 착근성은 매우 부실해 보인다. 개발주의를 준거로 삼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그들에게서 한국적 길의 특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후 더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3. 개발독재 유산 위에 올라탄 신자유주의

    나는 이전 글에서 한국자본주의 역사에서 신자유주의가 갖는 의미와 관련하여 유철규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거기서 우리는 재벌이 한국 신자유주의의 핵심 세력임을 알 수도 있었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경제적 자유화와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박정희 시기 개발독재 ‘발전지배연합’ 체제의 역사적 유산이 어떤 힘으로 작용했는지, 재벌의 위상과 역할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다시 말해서 민주화와 세계화 시대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냉전 반공개발독재 체제의 역사적 유산 위에 올라타면서 출현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즉 장하준, 정승일식 개발독재/신자유주의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한국자본주의의 이행 또는 전환에 대한 설명이 요구되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조영철의 말이 우리의 갈증을 풀어 준다.

    “국가-재벌의 발전지배연합체제는 국가가 재벌을 지원하고 규율하는 체제였기 때문에 198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국가가 후퇴하고 민간 주도 경제가 전개되며, 재벌의 사유재산권적 기반이 강화됨에 따라 그동안 재벌을 규율했던 개발 국가의 역할을 무엇이 대신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었다… 

    개발독재 하에서 노동운동은 철저히 억압되었고, 시민사회도 다양한 이익집단들로 조직화될 수 없었는데 반해서 재벌기업들은 거대한 사회경제적 세력으로 등장했다. 재벌기업의 경제 권력을 견제할 사회세력이 극히 취약한 상태였고, 재벌총수의 전횡을 견제할 기업지배구조도 갖추어져 있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민주화의 공간이 열렸지만 개발독재가 역사적 유산으로 남긴 강력한 재벌과 취약한 은행, 노조, 시민사회라는 매우 비대칭적 사회구조 속에서 민주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화의 압력이 강화되는 대외적 조건, 그리고 강력한 재벌, 취약한 기업별 노동운동과 시민사회라는 사회적 불균형의 대내적 조건 속에서 결국 국가정책은 점차 국가 후퇴와 경제적 자유화라는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다.”(조영철, “재벌체제와 발전지배연합”, p. 156-158)

    또 조영철과 유사한 취지에서 나는 이렇게 쓴 바 있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 자본 세력에 대한 규율력 그리고 갈등 조절의 능력은 어디서 나오나, 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국가에 조절 부담과 규율 부담이 과도하게 집중되고 노동과 시민사회를 통제, 억압해 왔다면, 민주화 이후 자본 세력을 통제, 규율할 역사적 힘이 형성되기 어렵게 된다.

    노동세력이나 시민사회의 힘이 미약할 때, 그래서 민주화 이행 이후 약한 국가, 약한 노동-시민사회, 강한 자본 세력의 구도가 될 때 재벌권력은 고삐 풀린 자본의 자유를 주장하고 나설 수 있다.

    민주화가 오히려 국가의 조절-규율 능력의 후퇴를 가져오고, 그래서 대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민주적 규율체제, 제도적 강제체제를 수립하지 못하면, 나라경제와 국민대중의 삶이 대자본의 볼모로 붙들릴 위험이 있다.

    한국의 경우, 바로 여기에 정치적 민주화 이후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어렵고 경제적 자유화와 양극화가 진행되는 이른바 “민주화의 역설”이 나타난 조건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소급한다면 그런 역사적 함정을 파놓은 “개발국가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졸고, “강한 개발 국가 복원?…장하준의 새로움과 구태의연함”, <프레시안> 2011/3/4).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출현은 개발독재체제의 유산, 독재정권과 ‘동업자 관계’에 서면서 그 중핵을 구성하고 있던 재벌체제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개발독재체제의 해체와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어떻게 국가의 재벌통제, 재벌에 대한 규율이 해체됐는지, 그래서 고삐 풀린 재벌의 전횡이 금융 자유화와 맞물리며 ‘삼성공화국’ 상황이 나타나게 됐는지에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

    여기에 민주화 역설의 핵심 지점이 있다. 민주화와 세계화시대 한국 신자유주의는 냉전 반공주의 개발독재체제의 역사적 유산 위에서 올라타면서 출현했다. 재벌은 한국 신자유주의를 역사적으로 추동해왔으며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핵심 지배세력이다.

    4. 맺음말

    이상과 같이, 탈냉전 세계화 시대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냉전 반공 개발독재체제의 역사적 유산 위에 올라타서 그것과 결합하면서 출현했다는 나의 논지, 재벌이 한국 신자유주의를 추동하고 그 지배세력이 되어 있다는 논지에서 볼 때, 정승일은 말을 좀 가려가면서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이지, 민주화된 오늘날의 이 사회에서, 87년 민주화 25년을 맞는 오늘의 시점에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이를 통한 ‘규율 있는 자본주의’(disciplined capitalism)의 수립이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2013년 체제’의 대합의로, 일종의 ’그레이트 컨센서스‘(Great Consensus)로 성립된 오늘의 시점에서 개발독재체제 그리고 그 일부인 ‘재벌 체제를 긍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계속) 

    필자소개
    강원대 교수, [시민과 세계] 공동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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