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 값 등록금 연고전’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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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19일 04: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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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값 등록금 연고전(고연전). 적어도 이들 대학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연고전이라 칭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앞에 ‘반 값 등록금’이라는 화끈한 접두어까지 붙인 이 행사를 언론을 통해서 들었을 때, 사실 ‘등록금문제에 대한 반가움’보다는 일종의 ‘불편함’의 느낌이 더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과는 달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즉각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름 덕분에 ‘반 값 등록금 연고전’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꽤나 지지와 유행을 받고 있습니다. 허나, 수십년 째 이어져오고 있는 연고전은 그 이름처럼 변하지 않은 것이 ‘학벌주의’입니다. 양대 사학 학생들이 아니면 참여하기 애매한 소외감과 차별들은 소속되지 않은 저에겐 불편한 진실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딴지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반 값 등록금 실현’ 말고는 다른 의도가 없는데, 왜 좋은 일 하는 대학생들에게 딴지를 거냐고 물으실 분들도 계실겁니다. 하지만 연고전은 단순히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특성에서 일어나는 학벌 문제와 연관이 돼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은 학벌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연고전에서 연고대는 한국의 명문사학이고, 그 명문사학이라는 기준도 수능 성적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을 때, 애초에 연고전은 학벌이 없다면 열릴 수 없는 행사입니다.

    한 개인이 사회에 속해 있는 이상 사회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이 우리가 학벌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상 ‘연대인, 고대인’이라는 학벌에 따른 자아인식에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학벌의 상위에 있는 사람들이니 상대적으로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무뎌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자신은 ‘순수하게’ 연고전에 참여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연고전 자체가 순수할 수 없는 구조로 이뤄져있기 때문에 그 구조로 만들어진 연고전을 즐긴다면 개인들도 연고전의 문제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연고전을 참여하고 그러한 가치들을 즐긴다는 것은 연고전에서 발현되는 수많은 차별감과 학벌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겁니다.

    학벌과 애교심은 같은 문제

    물론 자신이 속한 공간에 대해 생기는 애정과 ‘등록금 문제에 대한 열정’에 대해서는 물론 공감합니다. 다른 학교와 하는 축제에서 자신의 학교 소속감도 느낄 수 있고 재미도 느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왜 꼭 우리의 상대가 연세대인지, 고려대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가까이 있는 다른 수많은 학교들이 아닌, 등록금 문제에 공감하는 수많은 대학들이 아닌, 매년 이런 축제를 하고 있는 ‘연세대, 고려대’ 주최의 반 값 등록금 연고전일까요? 연세대와 고려대가 양대 사학으로 매년 수능 점수에서도 엎치락뒤치락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일 겁니다.

    결국은 학벌을 기준으로 본다면, 두 라이벌 학교와의 이번 축제와 운동경기를 통해 애교심을 고취하는 셈입니다. 그 애교심이라는 것도 연고대가 명문 사학이라는 자부심으로 이뤄져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자부심 역시 수능점수의 상위권, 결국 학벌에서 오는 것이지요.

    학벌의 상위권이라는 자부심이 없다면-고려대와 연세대가 학벌의 상위권이 아니라면- 연고전이 지금보다는 아마 덜 재밌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반 값 등록금 연고전’도 학벌의 상위권에 있는 두 대학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용납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애교심이라는 것이 연고대의 학벌체제에서의 위상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측면에 주목한다면 단순히 내가 소속했기 때문에 애정을 느끼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연고대, 사회 경쟁과 등록금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어

    ‘반 값 등록금’ 문제의식을 갖고 진행하는 연고대 총학생회도 등록금 문제와 학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등록금 천만 원 시대와 학벌사회에 살고 있는 이상 혼자서만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학벌주의의 폐해를 알게 된 이상 그것을 ‘같이 연대해서’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데 고작 수능 점수를 기준으로 삼고 그 미약한 기준으로 사람들을 경쟁에 내몰게 하고 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이 주변부로 밀려나는 지금의 학벌사회 현실은 분명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연세대, 고려대에 들어온 우리는 다행히 입시경쟁에서 승리하여 학벌사회의 수혜자가 되었으니 마음껏 ‘반 값 등록금 문제’를 주도해도 된다는 생각은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모두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마음 졸이며 옆의 친구들을 이겨야 한다는 압박에 사로잡혔던 기억들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했던 그 치열하고 비정한 입시경쟁 속에서 해마다 몇 명의 친구들은 자살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대학생이 돼서도 수많은 등록금과 경쟁들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그런 경쟁 속에 내몰려서 서로에게 삭막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모두는 입시 교육체제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능시험 한번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이런 입시체제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피해자인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이런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겁니다.

    우리 모두의 축제를 향해

    어찌되었던 예정대로 반값등록금을 위한 연고제는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연고전과 그에 맥을 잊는 일상문화 속에서 다른 대학 학생이 배제되고 일반시민이 주변화되는 것은 결코 개인의 취향, 노력의 문제로 일축될 수 없을 겁니다.

    이제 우리는 거기서 연고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권력과 그에 따른 일상적인 차별과 억압, 소외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학벌 재생산구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대안적 문화를 구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학벌, 위계 중심적인 축제문화를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연고전은 응원을 즐기는 사람들 간의 소규모 행사로 축소하여 남겨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일반인과 다른 대학 학생들이 올바른 소통구조 속에서 조화롭게 즐길 수 있으며 외부와도 열려 있을 수 있는 축제의 장을 함께 고민할 때, 진정으로 훌륭한 ‘반 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축제’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축제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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