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보신당을 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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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18일 11: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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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탈당계를 김은주 대표 권한대행 앞으로 보냈다. 92년 1월, 노점상 출신의 무소속 민중후보 소순관을 쫓아 다니며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고, 그해 겨울 무소속 민중후보 백기완 대통령 후보 선거운동을 치르면서 시작한 20년의 진보정치의 여정.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주술 같은 절규의 구호에 끌려 보수 야당과 구별되는 노동자-농민-도시서민의 진정한 정치적 친위부대를 건설하겠다는 일념으로 세 번의 체포와 구속, 2년 5개월의 징역살이도 기쁘게 견뎌왔던 ‘독자적 진보정당’의 길과 나는 결별한다.

이혼서류에 도장 찍고 나오는 느낌이 무언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것과 가장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더 이상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돌아서는 정리. 하지만 나의 탈당은 ‘독자적 진보정당’의 길과의 결별이지, 진보정치에 대한 포기가 아니다. 더 넓은 진보의 길, 실사구시하는 진보정치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을 뿐이다. 

진보정치세력의 ‘독자정당-독자집권’ 노선의 실패

민주노동당 10년의 역사와 진보신당 3년의 경험은 ‘진보독자정당’을 통한 ‘독자집권’의 길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대통령중심제와 빈약한 비례대표 의석, 1등만 당선되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라는 정치제도는 진보정치가 원내진출 세력은 될 수 있지만, 집권세력이 될 수 없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

문제제기 집단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면 진보정치세력도 집권과 현실 참여, 현실 변화에 대한 자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길은 두 가지이다.

진보정치세력이 민주개혁진영과 손을 잡고 연립정당을 구성하여 집권하는 것이다. 이른바 ‘수권연립정당’을 만드는 길이다. 나의 생각이고, 문성근 문재인 등 ‘혁신과 통합’ 주요 인사의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독자정당’을 유지하면서 대선에서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길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나의 길은 ‘진보가 수적 열세에 놓여 그 안에서 녹아 없어질 것’이라고 하는 우려에 직면한다. 민주노동당의 길은 당을 달리하면서 집권만 같이 함으로써 겪는 불안한 동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근본적 문제이다.

대통령중심제-소선거구제는 끊임없이 서로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갈등을 외부화 시켜야 해서 DJP연대처럼 연립정부 구성 시점부터 2년 뒤 총선을 염두에 둔 분열적 행보를 하게 한다. 국민들은 이 불안한 동거에 점수를 주지 않을 것이다. 

수권연립정당으로 노동자의 세상, 복지국가 만들 것

‘독자정당 독자집권’의 길이 아닌 ‘수권연립정당’의 길을 나서는 이유는 다름아닌 ‘절박함’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국민들 앞에서,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노동자들 앞에서 "진보정치가 노동자 민중을 너무나 사랑하니 앞장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10년 혹은 20년 후에 올지 모르는 단독집권을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진보정치의 단독집권을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당장은 집권세력 내 하위파트너라 하더라도 집권을 통해 진보정치가 그동안 진보세력이 주장하고 외쳐왔던 정책과 이념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수권연립정당’ 구성에 참여하겠다는 모든 세력을 모아 총선-대선에서 단일진영을 꾸리는 데 있다. 그것을 위해 ‘혁신과 통합’에 적극 참여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복지국가와 노동존중’의 기치를 분명히 하는 진보정치의 단단한 블록을 형성해 내고자 한다. ‘녹아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을 실천으로 넘어설 것이다.

그를 통해 개혁정치 세력과 함께하는 정당 안에서 무게 중심을 왼쪽으로 더 기울게 하는 역할, 그 안에서 경쟁과 단련을 통해 진보정치세력의 인물이 정당도 주도하고 집권 과정도 주도하는 희망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나는 나를 버렸다. 그리고 더 큰 가능성을 향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20년 동안 유지해 오던 사고를 전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몸 담았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안에서 나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출세주의자, 배신자 소리도 감내해야 하는 처지이다.

진보신당은 세 갈래의 길로 나뉘고 있다. 내가 선택한 ‘수권연립정당’의 길과, 노회찬 심상정 전 대표가 주장하는 ‘국민참여당을 배제한 민노당과의 통합을 통한 독자정당노선 재정비’, 그리고 당내 독자파의 ‘진보신당 보다 왼쪽진영과의 통합을 통한 독자정당노선 재정비’의 길이다.

총선을 앞두고 각각의 길은 진보정치의 ‘생존’이라는 절대적 과제와 맞닥뜨리고 있다. 우리는 연립정당 내부에서 ‘정파등록을 통한 생존’의 공간을 열어야 하고, 노회찬과 심상정은 민노당의 재창당 수준에 합류해 공언해 온 원내교섭단체를 달성해야 한다. 독자파 역시 총선 원내 1석 혹은 최소한 2% 지지율 달성으로 당을 존립시켜야만 한다. 각각이 자기 과제를 모두 달성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나를 버렸다. 진보정치를 ‘구호’가 아닌 ‘현실과 실천’에서 만들어 가고자 한다. 경쟁과 갈등 구조에 있었던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협력과 동거의 연립정당을 만들려고 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한 동의를 중심으로 가야한다. 복지국가와 노동존중의 사회 건설을 위해 조건없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서 배신자니 출세주의자니 하는 모진 소리는 얼마든지 감수하고자 한다. 12년 전 민주노동당의 창당을 위해 뛰어다니던 나에게 똑같은 소리를 했던 많은 분들이 나중에 민주노동당에 합류하고 지금도 진보정당들 안에서 지도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내년 총선 이후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것을 버려서 두렵지만, 새롭기 때문에 가슴이 뛴다. 민주진보진영 모두가 힘을 합쳐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나의 상실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독자정당, 독자집권의 실패가 진보정치의 실패가 아니듯이, 나의 탈당은 나의 끝이 아니라, 나의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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