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미래를 팔지 말라”
    By
        2011년 09월 14일 09:43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오늘날 급진 좌파가 직면한 최대의 도전은 20세기 사회주의의 파멸적인 경험들로부터 단호하게 결별하는 정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자기 성찰과 적극적인 문제 제기, 그리고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전지구적 노동계급의 투쟁들이 제기하는 새로운 양상들에 대한 열린 접근을 요구하는 어려운 과제이다.

    신자유주의가 지난 30년 동안 노동계급 조직들을 파괴하거나 흡수해버림으로써 이 과제는 한층 어려워졌다. 그 결과 자본의 논리가 지구 구석구석까지 확장되어 버렸다. 2008년 시작된 ‘대불황’이 말해주듯, 자본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지구적이 되었다.

    그 배경 위에서, 남미는 ‘대안이 없다’고 하는 신자유주의의 주장에 도전하는 투쟁의 전면에 서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1989년 베네수엘라의 빈민공동체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부가 시행하려 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저항했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항의하는 칠레 학생들. 

    ‘엘 카라카소(el caracazo)’라 불리는 이 사건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남미 최초의 대규모 민중적 저항이 되었다. 곧이어 연이어 저항의 물결이 뒤따랐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볼리비아의 물과 가스 전쟁, 아르헨티나의 ‘엘 사쿠에도(el saqueo)’ 등이 대표적이다. 이 사례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자 ‘붉은 광장’과는 다른 생각과 행동이라는 공통성을 지닌다.

    모든 경우에서 공동체들과 노동자들은 구좌파들의 전위적 접근 방식과는 달리 스스로 조직하고 스스로 싸웠다. 전위적 접근은 보통 지식인 정치 엘리트들이 하향식으로 대중을 해방한다는 모습을 취한다. 또한, 이 운동에서는 현재와 맞서 싸우는 가운데 새로운 사회관계를 전취하는, 즉 수평주의적 참여 민주주의를 이루어 가는 사례들이 많았다. ‘강한 지도력은 약한 민중을 만든다’, 이것은 1990년대에 사파티스타가 유행시킨 에밀리오 사파타의 유명한 원칙인데, 이마도 이 운동을 가장 잘 묘사하는 말이라 하겠다.

    남미를 휩쓴 분홍 파도(Pink Tide)

    1990년대 후반에 가면 이 운동들은 크게 열기가 식고 그들의 요구는 선거 정치의 장으로 이전되어 새로운 좌파 혹은 중도좌파 정권들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곧이어 남미 대부분은 소위 ‘분홍 파도’(21세기 들어서면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좌파 정당의 영향력이 커지는 현상을 표현하는 용어-편집자)의 물결에 휩쓸렸다.

    이 현상은 많은 좌파 정파들 사이에서 국가권력을 계속 장악함으로써 사회변혁의 과정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불러 일으켰다. 이 새로운 정부들 중 중요한 성취를 이룬 경우들도 있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나면서 이 새 좌파 정부들이 과연 개혁적(혹은 혁명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지 회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기운을 되찾은 우익들이 격렬하게 반격을 가해 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 우익들이 줄기찬 운동을 전개해온 경우들도 있었고, 온두라스에서는 미제국주의의 지휘 하에 우익 쿠데타가 성공하기도 했다. 우익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도 했는데, 칠레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칠레의 세바스티앙 피네라 정권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가장 앞선 신자유주의 정권이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집권 초반 17개월을 경과하면서, 피네라 정부는 첫 번째 도전이자 최근의 남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대중운동에 직면하고 있다. 5월 이후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칠레의 겨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이것이 앞에 말한 과정에서 생겨난 칠레의 새로운 좌파에게도 중차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운동은 아래로부터 운동을 건설하는 과정으로, 부르주아 국가는 이를 수용하지도, 무시하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처했다. 칠레의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다음 단계의 시위를 준비하면서 그 중간의 위태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칠레의 신자유주의 교육 시스템

    지난 30여년 동안 칠레의 교육 시스템은 자본축적을 확장하는 기능을 주로 해왔다. 이 교육 시스템의 첫 모델은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독재정권이 만든 것이고, 이후 민주연합(La Concertacion)의 정부들 역시 기꺼이 그 뒤를 이어 이를 심화시켰다.

    이 모델의 핵심은 초등 및 중등 교육의 재정 책임을 자치단체로 넘기고 사립학교에 재정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불만이 높음을 알고 있는 지금의 우익 신자유주의 정부(피네라 스스로가 억만장자이다)는 초중등 학교의 사유화를 촉진하는 쪽으로 개혁의 방향을 잡았다.

    고등교육 단계에서는 등록금의 지속적인 인상을 이루도록 했다. 현재 칠레의 대학생들은 매월 평균 30만 페소(630 달러)라고 하는, 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을 내야 한다. 교육 사유화가 초국적 자본가들에게 문을 열어 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초국적 은행들은 학자금 대출로 큰돈을 벌어 입이 찢어졌다. 게다가 고등교육은 심각하게 계급차별적이다. 노동계급 학생들은 초중등 교육에서부터 질 낮은 교육을 받고, 재정지원이 부족한 공립 대학에서 뒤쳐진 교육을 받아, 비숙련, 저임금, 비정규 직업으로 내몰린다. 반면에 상층게급 학생들은 사립학교와 사립대학을 다니면서 자유시장과 개인적 성공의 지배 가치들을 내면화하여 대기업의 관리직으로 진출할 꿈을 키운다.

    이런 교육 시스템은 남미 사회의 지독한 불평등을 더욱 강화한다. 실제로 칠레인의 10%는 노르웨이의 평균소득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나, 최하층 10%의 소득은 아이보리코스트의 평균소득과 같다. 게다가 2006~2009년간에 빈곤률은 13.5%에서 15%로 높아졌다.

    당시 미셀 바쉴레(Michelle Bachelet) 사민주의 정권 하에서 사회보장 비용 지출이 크게 늘었음에도 그러했다. 칠레의 경제성장률이 남미 최고 수준인데도 그렇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교육 시스템이 이러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표현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현재 공립학교 학생들의 83%는 월 평균소득 18만 페소(330 달러) 이하 가정 출신이지만, 사립학교 학생들의 2/3는 월 평균소득 152만6천 페소(2,700 달러) 가정 출신이다. 2004년에 대학입학 자격시험 최고점자의 64%는 사립 중등학교 출신이었다. 그러나 공립 학교 졸업자의 93.2%는 대학입학 허가 수준 이하의 점수를 얻었다. 칠레의 최하위 40% 소득층 출신의 학생들의 고등교육 진출률이 10~20% 사이라는 점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학생들이 반격에 나서다

    칠레의 신자유주의 교육 시스템은 중등 및 대학교 학생들로 하여금 교육 시스템 전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 더 포괄적이고 민주적인 공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자각하게 하고 있다. 불만이 증대하고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신호가 2006년에 나타났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피노체트 정권이 처음 도입하고 민주연합 정부들이 지속시킨 신자유주의적 교육법에 저항한 것이다. 학생들은 교육은 상품이 아니라 권리임을 주장하면서 주정부가 공교육의 책임 주체가 되는 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50만에 달하는 고등학생들이 동맹휴업과 학교 점거에, 그리고 가두시위에 나서서 바쉴레 정부를 뒤흔들었다. 운동의 지도부가 정부와의 협상에 빠져 들면서 이 운동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행동은 바쉴레 정부로 하여금 교육 위기의 현실을, 그리고 군사정부 이래의 교육법이 극히 권위주의적인 것임을 인정하지 않를 수 없게 만들었다.

    2011년, 운동의 두 번째 국면이 진행 중이다. 사태의 배경에는 칠레의 여러 부문 노동계급들의 항의 운동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는 점이 있다.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노동 유연화, 공무원 해고, 광산 개발, 그리고 특히 건강과 환경을 해칠 석탄 발전소 건설에 분노하고 있었다.

    1월 11일, 남부 마갈라네스(Magallanes) 주에서 가스 요금을 갑자기 16.7%나 인상한다는 피네라 정부의 조치에 대해 주민들은 대대적인 주민파업을 선언했다. 이참에 24개의 사회조직들이 ‘마갈라네스 시민의회’를 조직하여 주요 도시들의 행정을 직접 접수하고 고속도로를 봉쇄했으며, 시내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심지어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정부에게 가스요금 인상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시민의회는 정당들과 무관하게 7일간에 걸쳐 매일 3만 명의 시민들을 동원하여 자신이 진짜 주 정부임을 과시했다. 피네라 정부는 이에 굴복하여 요금 인상을 3%로 낮추고 빈민 가구들에 대한 가스 보조금을 늘렸다.

    이에 더하여, 5월 12일에는 마침내 중등학교와 대학교 학생들이 전국 저항의 날을 선포하고 형편없는 교육 시스템의 개혁을 요구했다. 북부의 아리카(Arica)에서 남부의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에 이르기까지 칠레의 주요 도시들의 거리가 시위대로 넘쳐났다.

    칠레중앙노조(CUT), 전국교사노조, 주요 대학의 학생회들, 전국공무원노조 등이 이를 지지했다. 산티아고에서만 3만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서서 ‘교육 시장화’를 끝장내자, 학생들의 빚을 탕감하라, 공립대학 지원금을 늘려라, 교육제도를 민주화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하루에만 전국적으로 10만 이상의 학생들과 지지자들이 시위에 나선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학생들은 6월 30일 전국 총파업을 호소했다. 이날의 시위는 매우 전투적이어서, 산티아고의 고등학생들은 100개 이상의 학교를 점거했다. 수도 산티아고에서만 10만 명이, 전국적으로 20만 명이 거리로 진출했다.

    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정치의식도 빠르게 높아졌다. 정부 관료들이 문제는 간단하다,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할 돈이 없다고 말하자, 칠레대학교 학생회장이자 전국대학생연합 의장인 발레오(‘칠레 청년공산주의자’의 활동가)는 초국적 기업들이 칠레의 천연자원 수탈을 못하게 하면 모두에게 무료 공교육은 물론 무상의료도 제공할 수 있다고 맞받았다.

       
      ▲연설하는 발레오 의장. 

    “우리의 미래를 팔지 말라(Our future is not for sale)”, 이 운동의 핵심 슬로건의 하나인 이 구호가 거리의 시위자들 사이에서 넘쳐 흘렀다.

    피네라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 라빈(Joaquín Lavín)을 해임함으로써 학생운동은 첫 승리를 거두었다. 라빈은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차관을 지낸 오푸스데이의 회원으로, 우파연합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데, 그의 지지율은 8%로 떨어졌다.

    (오푸스데이는 ‘신의 일’이라는 뜻으로, 1928년 스페인에서 설립된 ‘비밀스런’ 가톨릭 종교조직. 2010년 현재 가톨릭 사제 2,015명과 평신도 88,245명이 회원임. 극우적인 정치성향을 보이며,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정권을 지원했다고 알려짐. 영화 ‘다빈치코드’에 나오는 그 조직)

    운동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다

    학생운동의 또다른 승리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부모들, 교사들, 구리광산 노동자들이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다.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그들의 불만이 모두 이 학생운동에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조기 겨울방학을 선포하겠다고, 나아가 아예 이번 학기를 마감해 버릴 수도 있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게다가 언론기업들의 학생운동에 대한 악선전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아나키스트 조직인 ‘엥카푸차도스’(los encapuchados. 우리말로 하면 ‘후드 티’이다. 후드가 탈린 티를 입은 사람들이란 뜻. 후드를 얼굴에 덮으면 ‘복면’이 된다)의 돌출적인 폭력 행위를 이용해 운동 전체를 불법적이라고 몰아붙이려 했다.  

    이런 공세에 맞서서 발레오는 이렇게 주장했다. 폭력 선동은 학생운동 전체의 합의된 전술이 아니다, 그러나 그 행위는 체제로부터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 신자유주의 사다리 맨 밑바닥에서 미래를 잃어버린 자들의 저항이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집단들 속에 정부의 앞잡이들이 숨어 있음도 상기시켰다. 그녀의 말대로, 학생운동의 강력한 지지조직인 전국교사노조의 중앙 사무실에 불을 지르려 한 약 100여명의 엥카푸차도스가 적발되기도 했다.

    8월 9일과 18일, 다시 거대한 시위의 물결이 산티아고와 전국 주요 도시들을 휩쓸었다. 산티아고에서는 핵심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정부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학생운동의 결정을 지지하기 위해 15만에서 20만에 달하는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선 가족들, 예술가들, 교사들, 노동자들이 30년에 걸쳐 이 나라를 휩쓴 신자유주의를 마감하고 민주적 사회를 이루려는 운동에 동참했다. 심지어 엘리트 사립학교 학생들도 동참했다.

    4백만의 칠레 학생들 중에서 약 50만이 이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 동시에 사회의 각계각층이 여기에 동참하고 있음도 분명하다. 예컨대 밤중에 ‘냄비 두드리기’로 연대를 표현해 달라는 학생운동의 요구에 모든 주민들이 호응했다.

    주민들은 광장으로, 거리로, 고속도로로 나서서 1980년대 반(反)피노체트 민주화운동의 열기를 재현했다. 8월 21일에는 산티아고의 주요 공원들에서 “교육을 지키는 가족들” 행사가 열렸는데, 여기에 무려 1백만의 시민들이 운집해서 학생들의 요구에 대한 지지를 확인해주었다.

    운동의 파도 속에서 8월 24일과 25일에는 중앙노조(CUT)의 1차 전국 총파업이 있었다. 학생들이 이 파업을 전폭 지지했음은 물론이고, 교사, 공무원, 인권운동 조직, 지식인, 예술가, 도시빈민, 의사협회들도 그러했다. 노동계급의 세대간 연대도 강력했다. 학생운동의 한 지도자인 여학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노조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은 우리 부모들입니다”라고 간단히 말했다.

    중앙노조는 노동법의 개정, 불안정 노동의 철폐, 임금 인상, 건강보험 개혁, 공공 연금제도 도입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전국에서 60만이 참가해, 최대 규모의 시위를 기록했다. 15게 주와 50개 도시에서 시위가 있었다. 경찰의 심한 탄압과 대규모 체포가 있었지만, 시위 조직 주체들은 이 시위가 대성공이었음을 천명하고 요구 수용이 없으면 시위는 계속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학생들 역시 요구의 강도를 높여, 이제는 헌법 개정을 위한 제헌의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

    창조적 전술들

    이 사태를 돌이켜볼 때, 이 운동이 높은 수준의 자율적 조직화와 더불어 기존의 엘리트 정치조직에 대한 혐오를 보여주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역사적인 운동 구호 “단결한 인민은 패배하지 않는다(El pueblo unido jamás sera vencido)”를 “단결한 인민은 정당 없이 전진한다(El pueblo unido avanza sin partidos)”로 바꾼 것이다.

    게다가 운동 과정에서 학생들은 우익 정당과 사회주의 정당의 본부들을 모두 점거하기도 했다. 이 운동에 깊이 각인된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성격은 학생들이 계속 총회에서 논쟁하고 토론하며 지도부가 끝까지 대중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과정 속에서도 확인될 수 있었다.

    텔레수르(중남미 지역에 방영되는 스페인어 위성 TV)의 한 뉴스 보도는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했다. “젊은이들은 스스로의 힘만을 믿는다.” 이런 감정은 널리 확산된 듯하다. 믿을만한 여론조사 결과들은 피네라 대통령과 정부, 모든 주요 정당의 인기도가 최저 수준임을 보여준다.

    학생들이 민주연합 국회의원들의 대화 요구, 그리고 현직 교육부 장관이 제의한 개혁안들을 거절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학생들은 국가 자원의 회복과 조세 개혁에 기초한 대안적인 발전 모델에 의거한 근본적으로 다른 교육 시스템을 거듭 요구했다.

    (민주연합은 1988년 창당한 중앙좌파 정당. 사민주의, 좌파 기독교당, 사회자유주의, 기독교민주주의 등의 연합 정당.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집권. 하원 54석(120석 중), 상원 19석(38석 중), 자치단체의 약 50%를 장악하고 있는 제1야당이다)

    학생운동이 고도의 전술적 독창성을 발휘했음도 강조해두어야 한다. 예컨대 정부가 조기 방학을 선언하자 학생들은 수영복에 스노클링 장비를 차고 길거리로 나왔다. 한 겨울에! 학생들은 거리 곳곳을 초현실주의적 카니발의 장소로 만들었고, 주류 언론도 이를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사톤 퍼포먼스. 

    유튜브를 검색하면 학생들 스스로 제작한 환상적인 퍼포먼스 비디오들이 넘쳐난다. ‘가가소(el gagazo)’는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노래에 맞춘 연속 춤을 산티아고의 광장들에서 추는 내용이고, ‘베사톤(el besaton)’은 떼를 지어 키스를 나누는 퍼포먼스이다. 번개 모임(flash mobs)을 열어 가상 자살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다.

    언론들이 이 운동을 폭력적인 것으로 곡해하고 있을 때, 학생들은 수백 개의 최류탄 깡통들을 모아 길거리에 커다란 평화의 상징들을 그림으로써, 학생운동의 날카로운 정치적 본능을 이미 입증한 바 있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단지 경찰력 유지 비용만 줄여도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재정이 된다는 점을 꼬집어 지적하기를 잊지 않았다. 텔레수르도 보도했듯이, 학생들은 시위 중 피해를 본 집들을 다시 칠해 주고, 돈을 모아 엥카푸차도스에 의해 불에 그슬린 자동차 주인들에게 보상을 해주기도 했다.

    결론

    이런 상황을 볼 때, 칠레의 학생운동은 칠레뿐만 아니라 남미 전체에 걸쳐 좌파 운동의 주요한 진전을 대표한다. 학생들은 이 지역의 주도적인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해 심각한 정치적 도전을 감행하고 있다. 기존의 정치제도 외곽에서 독자적인 힘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운동은 국가를 우회하려 하기보다는 그에 정면으로 맞서 국가의 변혁과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선거를 통한 사회변혁의 길이 가로막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금, 이러한 상황의 진전은 훨씬 더 큰 잠재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수많은 위험들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학생들은 지난 3개월간 전력을 다해 밀어 붙였는데, 얼마나 여력이 남아 있는지 불안하다. 조직된 노동자들과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의 전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조 지도부는 매우 관료적이며 전투적인 가두투쟁을 제약하려 한다. 더욱이 전술상의 이견이 여전하고 특히 엥카푸차도스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그러하다.

    피네라 정부를 무너트린다고 해도 신자유주의적인 민주연합이 뒤를 잇거나 여전히 권위적인 칠레 공산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또 다른 위험이다. 끝으로, 이것이 가장 우려되는 점인데, 최근 정부 관료들은 1970년대 초와 마찬가지로 폭력적인 탄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런던, 마드리드, 벨파스트, 아테네, 바르셀로나 등 유럽 여러 도시의 거리와 광장에서 빈곤과 실업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칠레의 학생운동이 이와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투쟁들과 마찬가지로 칠레의 운동도 젊은이들이 이끌고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 모두는 1929년의 세계대공황 이후 최대 규모의 지구적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칠레의 운동이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실제로 젊은 활동가들은 계속 새로운 급진적 조직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 각국 좌파들의 국제 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국제 포럼을 조직하고 연대 방문단을 조직하고 토론 그룹을 조직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칠레의 전통적 좌파들(공산당, 기독교 좌파당, 인본주의당, MAS, 아옌데 사회주의자-현재는 모두 소수파 정당)과 최근의 신좌파들, 이들의 과제는 이 전복 운동을 지원하고 현재의 투쟁과 과거의 투쟁을 연결하는 것, 그리고 ‘아래로부터’ 싸우는 모든 이들의 에너지와 창조력을 받아 안아 이를 탈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치적 길로 이끄는 것이라 하겠다.

                                                         * * *

    * 이 글은 캐나다의 진보 매체 ‘사회주의 프로젝트'(Socialist Project)(2011년 9월 6일)에 수록된 글로 한국노동운동연구소의 회보 <노동지평> 9월호에 번역게재 된 것이다. 이 글의 필자 마누엘 라라부페(Manuel Larrabure)와 카를로스 또르치아(Carlos Torchia)는 캐나다 토론토의 요크 대학교(York University)에서 공부하고 강의하며 남미 연대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활동가들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