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인기업 자유, 민주주의 잠식
        2011년 09월 11일 03: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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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로버트 달 지음, 배관표 옮김, 후마니타스, 12000원)는 평생 민주주의 연구에 헌신해 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 정치학자인 저자의의 법인 자본주의에 대한 본격적 비판과 대안을 담은 책이다.

    <누가 통치하는가>(1961), <폴리아키>(1971) 등을 통해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론을 심화시키는 데 몰두했던 달은, 1981년 버클리에서 있었던 세 차례에 걸친 강연을 예일대 현직에서 물러나던 해이자 그가 70세 되던 1985년, 이 책으로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법인 자본주의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진단에 그치지 않고, 법인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정교화하려 하고 있다.

    사유재산권을 절대 불가침의 자연권으로 정당화하는 법인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데서부터 시작해, 법인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보겠다고 선언한 로버트 달이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국가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던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를 기업에 대해서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기업은 민주화할 수 없는가?” 무엇이 미국 정치학계의 주류에 우뚝 선 노학자에게, 퇴직 이후 발간한 첫 책에서, 이토록 대담한 주장을 하도록 만든 것일까?

    법인 기업의 자유가 민주주의 잠식

    -2011년 7월 2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 기준 5조 원 이상 55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주식 소유 현황 등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38개 재벌그룹 총수 일가의 평균 지분율은 4.47%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총수가 있는 38개 재벌그룹을 보면, 에스케이그룹(0.79%)과 삼성그룹(0.99%)은 총수 일가가 1% 미만의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 개인으로 보면 구자홍 엘에스(LS)그룹 회장이 0.04%,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0.05%의 지분율로 그룹을 지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분율도 0.54%에 불과하다. 평균 5%도 되지 않는 주식 소유로 수백조 원대의 기업들을 한 가족이 또는 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한진 중공업 경영진은 경영 실적 악화를 이유로 170명을 정리해고한 다음날, 176억의 배당금을 나눠 가졌으며, 20억 원을 들여 용역을 투입,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최근, 6대 기업에 정치인을 할당해 집중 로비를 벌이도록 한 전경련의 문건이 공개되어 새삼 충격을 던져 주었다. 여기에는 정치권을 향한 재계의 공공연한 로비뿐만 아니라 최고 경영자의 국회 청문회 불참까지 공모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21세기 법인 자본주의의 얼굴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과연 이와 같은 법인 자본주의에서 재벌 총수와 노동자는 정치적으로 평등하며, 똑같이 정치적, 경제적 기본권을 보장받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로버트 달이 1장에서 토크빌을 빌어 지적하는 것 역시 바로 이와 같은 현실이다. 1831년 아메리카 대륙의 평등한 조건 속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바라보았던 토크빌은 평등이 자유를 위협할 것이라고 진단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다.

    법인 기업의 자유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이것이 정치적 자원의 불평등에까지 이어지면서 결국 민주주의가 허울에 불과한 것으로 되어 버린 사회가 바로 그것이다.

    달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불평등을 초래한 자유는 경제적 자원을 무제한으로 축적할 자유와 경제활동을 위계적 통치 구조를 지닌 기업으로 조직화할 자유이며, 따라서 오늘날 우리의 운명은 법인 기업의 자유에 맞서 평등을 보호할 대안을 모색하는 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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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로버트 달 (Robert Alan Dahl)

    1915년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태어나, 알래스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40년 예일대학교에서 “사회주의 프로그램과 민주정치 사이의 양립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6년부터 예일대학교에서 민주주의 연구에 매진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1986년부터 예일대학교 정치학과의 스털링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작으로는 『누가 통치하는가?』(1961), 『폴리아키』(1971), 『다원민주주의의 딜레마』(1982), 『경제 민주주의 서설』(1985),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1989), 『미국 헌법은 얼마나 민주적인가?』(2001) 등이 있다.

    역자 : 배관표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행정대학원에서 “한국 국가기구의 변화와 연속성, 1948~1972”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현재는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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