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호 크레인에서 추석 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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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11일 11: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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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차례의 희망버스가 운행됐다. 그 자체가 희망이었고,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해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투쟁 중이다. 희망은 버릴 수 없으나, 이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희망을 실현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부산 영도 85호 크레인에는 추석 보름달 같은 아들 딸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노동자들이 아직 있다. 군대 간 아들을 걱정하는 중년의 노동자가 있다. 이번 추석에도 재능교육, 콜트콜텍 등 100여 곳의 사업장에서 원직 복직 등을 내걸고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다.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오세훈의 사퇴, 이어진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수사와 구속, 안철수 ‘쓰나미’와 10월 재보선에 대한 뜨거운 관심 등 정세는 숨가쁘게 바뀌고 있다. 한진중공업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높은 파고에 휩쓸려 가는 듯하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4인의 스머프’ 가운데 3명의 목소리를 실었다. <편집자 주>

   
  ▲왼쪽부터 정홍형, 박영제, 박성호, 신동순(사진=국제신문)

하루 숙박료 1백만 원짜리 농성장

85호 크레인에는 5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위층 크레인 조종석에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머물고 있으며, 그곳은 천막을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비를 피할 수 있고, 그래서 그런지 하루 숙박료가 1백만 원으로 고급호텔보다 훨씬 비싸다.(한진중 사측은 김 지도위원의 점거로 손해를 보았다며 하루 100만 원씩 배상하라는 소송을 법원에 내 승소했다. 현재 ‘숙박료 총액’은 2억을 넘어섰다 – 편집자) 

숙소인 조종석 이외에도 공간이 많다. 고소공포증만 없고, 마음만 먹으면 등반을 할 수 있는 40미터 높이의 붐대도 있고, 5층짜리 탑도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주위를 왔다갔다 운동을 하며 체력 관리를 한다. 비싼 숙박비에 비하면 너무도 부족한 공간이긴 하지만…

85호 크레인 중간층에는 스머프 4형제라는 이름이 붙여진 4명의 동지들이 먹고 자면서 크레인을 사수하고 있다. 신도브래뉴 아파트에서 바라보면 왼쪽 계단 끝에 설치되어 있는 천막에 본인과 정흥형이, 우측 모서리에 설치되어 있는 천막에 박성호, 신동순이가 ‘보금자리’를 잡고 있다.

   
  ▲신도브래뉴 아파트에서 바라본 85호 크레인과 영도의 야경. 

나와 정흥형의 ‘둥지’는 두 사람이 살기에는 불편함이 없는 공간이다. 단지 잠 잘 때 정흥형이 몸부림이 심해 나는 항상 구석에 내몰릴 때가 많다는 것을 빼면 불편한 것은 없다. 이 공간에서 밥도 먹고, 회의도 한다.

우측 천막은 밖에서 보면 하나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1인용 텐트가 나란히 처져 있는데 바깥 쪽에는 신동순이, 안쪽에는 박성호가 있다. 두 사람은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다소 부럽기도 하다. 신동순 동지가 단식에 돌입한 지가 오늘로 21일째이다.(이 글은 지난 4일 도착한 것으로 추석이면 단식 29일째가 된다)

추석이면 단식 29일째가 되는 신동순

단식이 길어지면서 천막 안에 누워 있는 시간이 차츰 길어지고 있다. 이전에 산재로 허리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 허리 근력이 약해지면서 통증이 심해지고 기력도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좌측에 있는 천막은 개방되어 있다보니 저녁에는 모기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 천막 뒤에는 비닐로 덮어씌워 만든 화장실이 있고, 옆에 노천 세면장이 있는데 샤워는 밤 11시가 넘어야 할 수 있다. 더위와 추위를 잘 못 견디는 정흥형은 추워서 샤워도 못한다.

제한된 공간이지만 먹고, 싸고, 회의하고, 토론하고, 운동하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긴장감이 돌던 날들을 보내고 대치 상태인 지금은 팔굽혀펴기와 윗몸 일으키기, 유산소 운동인 다람쥐 쳇바퀴 돌듯 왔다 갔다 하는 걷기 운동을 열심히들 하고 있다.

우리들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밧줄에 아침 식사를 달아 올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크레인 건너편에서 지원온 동지들에게 손도 흔들고, 큰 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도 한다. 경계를 놓치 않아야 하기에 낮에는 4시간, 저녁에는 2시간씩 근무를 선다.

하루 세 끼 밥을 받아먹고 저녁 집회 때는 난간에 나와 밖에 있는 동지들과 함께 하고, 저녁 집회가 끝나면 하루 점검회의를 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논의가 필요하면 치열한 토론을 한다.

옹고집 스머프들

다들 ‘똥고집’들이 있어 토론 때마다 서로 얼굴을 붉힐 때가 많다. 이것이 85호 크레인의 일상 생활 모습이다. 회사 측 관리자와 용역 깡패들과 치열한 공방전이 없어지면서 85호 동지들은 끝까지 버티어내는 시간과의 싸움이 벌이고 있다.

조남호 회장은 청문회 이후에도 큰 태도 변화 없이 94명 정리해고자들을 농락하고 있다. 우리는 조남호가 질긴지, 우리가 질긴지, 납득되지 않는 정리해고가 철회될 때까지 크레인을 사수하고, 정투위(정리해고 철회 투쟁위원회) 동지들과 함께 할 것이다.

전국의 여러 곳에 많은 사업장에서 힘든 투쟁을 하고 있는데 한진중공업에 관심과 연대를 많이 보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런 것만큼 이번 투쟁을 기필고 승리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져본다.

-85호 크레인 중간층에서 사수대 박영제 드림

                                                  * * *

연대와 지지를 보내준 분들께 감사드리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과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와 지지를 해주시는 동지들에게 동지적 애정을 담아 글을 띄워봅니다. 저는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250일 가까이 85크레인을 사수하고 있는 4명의 스머프 가운데 한 명인 신동순입니다.

가끔 트위터를 통해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여 나라를 걱정해야 하고, 서민과 노동자들을 힘들게 한다는 내용을 접했습니다. 한진중공업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저희들은 정리해고 사태가 발생하기 전 지회장을 믿고, 지회장의 지침이면 죽는 것 빼고는 다 할 정도로 노동조합으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부분파업을 하라고 하면 부분파업에 돌입했고, 거리에 나가서 대시민 선전전을 하라면 군소리 없이 남포동, 서면, 영동 일대, 부산역, 지하철이면 지하철, 당사를 점거하라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가리지 않고 점거했습니다. 정리해고가 발표되고 나서는 그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비닐을 이불 삼아 노숙을 했고, 국회 앞, 회장집 앞에서 싸웠습니다. 

우리들의 투쟁은 부산 시민들의 여론을 모아올 수 있었고, 전국의 여론까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여론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노동자들의 투쟁만 가지고는 국회가 잘 움직여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조남호 회장을 증인으로 세우는 청문회까지 개최하는 것으로 여야가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회사는 정리해고와 임단협을 풀 생각은 하지 않고 지회 집행부를 협박해 청문회를 무산시키고 말았습니다.

금속탐지기를 거쳐야 되는 밥

그렇게 믿었던 지회 집행부는 회사측의 협박에 겁 먹고 조합원들과 해고자들을 배신하는 어용적 행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정리해고자들의 등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85호 크레인이라는 버팀목이 있었습니다.

   
  ▲희망버스 승객들과 함께 한 85호 크레인.

그 버팀목을 중심으로 평범한 시민과 진보적 국민들이 희망의 버스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청문회 자리에 조남호 회장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조남호 회장은 온 국민 앞에서 무지의 경영인 모습과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 자리만 모면하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회사는 얼마 전 1조5천억 매출과 15만톤 수주를 달성했을 시 2년 6개월 후 정리해고자들을 복직시키겠다고 했습니다. 보통 국민들께서 들어보시면 무슨 뜻인지 잘 모르실 수 있을 것입니다. 1조5천억 매출은 조선소가 잘 나갈 때만 가능하고, 그 수치라는 것도 회사가 조작하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쌍용자동차입니다. 우리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열심히 일한 것밖에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달라고 했습니까. 일감도 없는 공장에 용역 깡패가 판을 쳐야 되겠습니까. 그들이 진정 당신들이 말하는 직원입니까. 우리가 그들에게 먹는 밥까지 금속탐지기로 검색을 받아야 하나요.

그 동안 이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까. 목 매 죽고, 떨어져 죽고, 산재사고로 죽고… 조남호 회장님, 또 얼마의 죽음을 더 원하나요.

저는 단식을 하면서 제일 걱정되는 것이 우리 아들입니다. 아들이 군대에 있는데 혹시라도 아버지 때문에 잘못될까 걱정입니다. 휴가 나올 때마다 크레인 건너편에서 손 흔들어 주는 것이 다였습니다. 단식이 길어지자 아들이 선임한테 허락받고 하루 휴가를 나온다고 하여, 나는 괜찮다고 걱정말라고 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지. 내 나이 쉰두 살입니다. 우직하게 노동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85호 크레인 중간층에서 신동순 드림.

                                                  * * *

어떤 기러기 아빠

딸 예슬, 아들 슬옹이 보아라

아빠가 회사 안에서부터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싸움을 시작한 지가 1년이고, 회사의 용병이 된 사법부가 우리들을 잡아가기 위해 용역깡패를 앞세워 강제집행을 하면서 85크레인으로 밀려올라온 지도 벌써 두 달을 넘기고 있구나.

너희들이 도시의 교육문화를 싫어해 아빠의 반대에도 엄마랑 ‘담합’해 결국 시골학교로 내려가는 바람에 이른바 ‘강남맨’들이 말하는 ‘기러기 아빠’가 되어버렸을 때 사실 아빠는 배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너희들이 시골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어 대견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길 위의 농성자 가족들.(사진=용석록) 

이제 아빠 회사 얘기를 해볼까? 얼마 전 아빠 회사 조남호 회장이 국회 청문회장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고 많은 국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저런 놈이 대기업 회장 맞나"며 분노를 넘어서 돌이 있었으면 던지고 싶을 정도였다. 

이와 반대로 아빠 회사 경영진들은 국민의 원성은 잠시뿐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마냥 시간을 끌면서 85호 크레인만 고립시키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아빠와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을 갈라놓는 술책을 부리고 있단다. 94명의 해고자들이 죽어야 1400명이 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고 협박을 하며,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올 것을 강요한단다.

예슬아, 슬옹아, 싸움이 장기화되면 노동자들에게 불리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회사는 돈으로 권력도 사고, 용역 깡패도 사서 노동자를 탄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먹고사는 생활고의 압박으로 싸움 현장을 떠나는 경우들이 생긴단다. 그래서 우리 노동자들은 ‘연대’를 하여, 자기들 욕심만 채우는 사람들과 맞서 싸운다.

그것이 바로 ‘희망의 버스’였다. 그렇게 만들어졌던 희망버스가 4차 희망버스까지 가게 되었고, 자기 일이다, 생각하고 먼길을 버스에 몸을 싣고 오는 사람들을 보았을 것이다. 이런 모습이 더불어 사는 세상인 것이다. 나보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을 도우며 사는 것이 아름다운 마음이 아니겠니.

"엄마 말씀 잘 듣고, 책 많이 읽어라"

그런데 너희들이 보았듯이 그 아름다운 사람들을 가로막았던 놈들이 누구였니? 시민의 지팡이, 민중의 지팡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던 경찰들이 물대포 최루액을 뿌리며 무조건 연행해갔었지. 예슬이도 엄마와 함께 경찰에 연행되어 여고생이 집시법으로 조사를 받는 어이 없는 일까지 당하는 것을 보고 아빠는 가슴이 너무 아팠단다.

예슬아, 슬옹아, 청문회와 시국대회, 4차 희망버스까지만 해도 아빠 회사 문제는 우리 사회 최고 관심사였던 것이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회라는 것은 또 다른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고 정권을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진 자들은 사회 여론들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단다.

때로는 정치권이, 때로는 사법부가 그들의 시녀 역할을 한다. 바로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주민투표 강행과 서울시장 사퇴 이후 여론을 역전시켜버린 검찰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구속 수사가 이어졌다. 이런 것들이 그들의 작태란다.

사회 여론은 서울시장 선거로 넘어가고,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총선 분위기로 넘어갈 것 같다. 그래서 우리들의 투쟁은 우리의 힘이 중심이 돼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연대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 중심을 끝까지 지켜내고자 85크레인 김진숙 이모와 신동순, 박영제, 정흥영 아저씨 그리고 아빠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예슬이, 슬옹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인 것 같구나. 아빠가 너무 힘들어 너희들에게 넋두리를 했구나. 하지만 조남호 회장도 버티는 데 한계점이 있을 것이다. 자기들이 아무리 계획적으로 수주를 중단하여 일감을 없앤다 해도 기업의 존폐를 좌우하는 한계점이 있다는 것이다.

아빠는 그때까지 끝까지 버틸 수밖에 없다. 아들 딸 엄마 말 잘 듣고 책 많이 읽어라. 추석날에는 85호 크레인 건너편에 합동차례상을 차린다. 그때 먼 거리에서 보자꾸나. 사랑하는 아빠가. 

-85호 크레인 중간층에서 박성호 드림.

   
  ▲김진숙 지도위원(사진=금속노조 신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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