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화, 진실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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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09일 1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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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격주로 사진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사진은 분명 예술의 한 갈래지만 찍힌 바로 날것의 그것은 기록의 힘이 강합니다. 그 기록이 작가와 독자가 공감하고 난 먼 미래에 비로소 예술이란 지위를 획득 할 겁니다. 지금은 기록에 충실하려 합니다. 우리 땅, 우리 삶의 아픈 곳에 서있겠습니다. (필자 주)

       
      ▲평화시장 앞, 전태일 열사 분신 장소.

    최근 수 년 동안 유난히 많은 이의 죽음을 보고 그들의 장례식을 찍었다. 내 프레임에 담긴 망자의 모습은 늘 흰색의 국화와 함께 했다. 그 후드득 떨어져 내리는 꽃잎파리에서 육신의 허망함과 죽음의 존재를 떠올린다.

       
      ▲서울대 병원 영안실 앞, 마당.

    9월 7일 새벽, 서울대병원 영안실은 이소선 어머니의 발인 준비로 부산했다. 노제를 위한 상여와 만장, 대형 영정을 만드는 일꾼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찍다가 그들이 던져놓은 목장갑과 쓰다버린 국화의 모습에 가슴이 얼얼해져 왔다. 마치 우리의 육신은 하루하루 노동 속에서 국화의 꽃잎파리 마냥 천천히 떨어지고 시들어 죽음에 이르는 것일까?

       
      ▲혜화동 대학로 운구 행렬.

    국화가 장례용 조화로 사용된 것은 구한말 개화기와 더불어 서양식 장례가 도입되면 부터다. 검은색 복장과 흰 꽃이 장례식에 도입되면서 우리 땅에서 흔한 국화가 그 자리에 들어 온 것이다. 여러해살이 풀인 국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즐겨 감상했던 꽃으로 그 원산지가 우리나라의 감국이라는 설도 있다. 4만년전 구석기 청원군 홍수굴에서 발견된 흥수아이 유골 근처에서 국화의 씨앗이 발견되었다하니 장례와 국화는 그 연원이 깊은 셈이다.

       
      ▲청계천 전태일 다리 노제.

    흰색 국화의 꽃말이 진실과 감사라 한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지난 42년간 진실로 살아오셨다. 아들의 유언을 육신으로 실천했고,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진실로 대했다. 백무산 시인의 말마따나 "어머니는 우리 시대의 미륵, 병들고 억눌린 중생들을 위해 다시 나신 미륵"이셨다.

       
      ▲대학로 영결식장 앞 조문객들.

    하지만 우리는 감사의 마음으로 떠나보낸 것일까? 대학로 영결식장에는 수많은 노동계, 진보계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국화꽃을 들고 영정에 바쳤다. 하지만 국화는 묻는다. 신자유주의와 엄혹한 노동현실에 비추어 우리는 이소선 어머니의 바람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대학로 영결식장 걸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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