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 세대가 정치세력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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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07일 06: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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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독재 프레임의 한계

    반한나라당, 후보단일화, 정권교체 등의 담론 이면에는 어떻게든 차기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열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열망의 기저에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져 온 민주화가 MB 정권 들어 후퇴했다는 역사인식이 깔려 있다. 과연 그럴까?

    한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민주-독재 구도가 본격화된 것은 70년대 초반 40대 기수론을 앞세우며 김대중, 김영삼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다. 양김씨가 주도하는 민주화 투쟁은 87년 6월항쟁에서 직선제를 쟁취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이후 민주화는 1987년 6.29 선언에서 1995년 전노 구속까지 유사독재 체제를 해체하는 작업과 2002년 노무현 정권의 출범과 탄핵이라는 우여곡절을 거치며 완성되었다.

    2004년 이후 시대정신은 민주화를 뛰어 넘는 새로운 과제가 제기되었고, 그것은 ‘경제’로 집약되었다. MB 정권은 민주-독재 구도가 일정하게 마무리된 후 한국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초하여 출현한 정권이다. 따라서 MB 정권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유린 또는 후퇴했다고 해서 이를 중심에 두고 프레임을 짜는 것은 현 시대 가치를 왜곡하는 것이다.

    상황이 위와 같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현상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첫째,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사망 이후 친노 세력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출하지 못하고 노무현을 회고하는 회고적 감성을 유지하고 있다. 둘째,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4.27 재보선 등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민주개혁 진영이 연승했지만 정작 민주당과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들의 지지도는 정체되어 있었다. 셋째,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벌이는 날선 공방에 대해 사람들은 민주당에 환호하기보다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민주화의 회복을 넘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대안적 리더십이었던 것이다.

    2. 복지국가론의 한계

    2004년 민주-독재의 프레임이 막을 내린 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탄핵으로부터 구해낸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세력을 응징하고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과 함께 나타났던 주목할 만한 현상은 문국현 후보의 등장과 선전이었다. 문국현 현상은 한때의 해프닝처럼 끝났지만 사람들이 참신한 경제적 대안을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2010년 지방선거를 거치며 복지국가 논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2010년 초 대두되었던 무상급식을 둘러싼 공방전은 복지를 둘러 싼 다양한 정파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민주당과 개혁진영은 무상급식에서 나아가 복지론을 전면에 걸며 정세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복지론을 둘러 싸고 양분되었다. 박근혜는 일찍부터 한국적 복지를 주창하며 여기에 합류했고 4.27 재보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 내의 내분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해프닝과도 같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도발은 역설적으로 복지 확대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확증해 주었다.

    그러나 복지 논쟁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복지라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담론을 제기하지만 당장의 절박한 민생 과제인 고용, 부동산, 물가 등의 문제를 가릴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2008년 이후 불거진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과의 관련성이다.

    복지논쟁은 다분히 ‘민주-독재’라는 전통적인 프레임 안에 담겨 있던 민생이라는 의제를 복지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포장하여 내놓은 정치적 담론이다. 복지론이 주로 사민주의, 북유럽 등 전통 담론에서 그 뿌리를 찾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3.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의 제기

    2007년 문국현의 도전이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나름의 참신성을 갖고 있었다. 문국현은 복지라는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중소기업-일자리-노동시간 단축과 평생 학습’이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대적인 의제를 제기했다.

    2008~2010년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 속에서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의 출현이 지체되는 듯하다가 2010년 전후하여 트리클 다운 효과의 붕괴와 애플 충격을 통해 부활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관은 전형적인 수출 대기업과 토건 개발이라는 전통 담론에 기초하고 있었다. 문제는 한국경제가 수출과 토건을 통해서는 국민경제 전체를 먹여 살리기 어려운 매우 현대적인 경제구조로 변모한 점이다. 수출 대기업은 워낙 글로벌화되어 수출과 국민경제 사이의 연관고리가 파괴되었고, 이미 시대는 삽과 망치로 건설하던 70년대의 한국이 아니었다.

    2010년을 전후하여 이명박 정부와 주요 인사(정운찬, 곽승준, 최중경 등)들이 제기했던 동반성장, 공생발전 등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나름대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적 과제는 새 술에 담아야 하는 것이 역사의 철리인 것처럼 이명박 정부와 그들 세력이 트리클 다운 효과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제출하기에는 너무 낡거나 부패했다.

    2007~2009년 도래한 애플 충격은 90년대 일본 전자산업을 따라잡으며(catch-up) 발전했던 한국 IT 산업의 맹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애플은 한국의 재벌 대기업의 약점, ‘소프트웨어-생태계-개방.공유’라는 시대정신을 앞세워 한국 IT 산업을 뒤흔들었다.

    90년대 이병철로부터 삼성을 물려 받아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했던 이건희의 삼성 또한 이명박 정부가 직면했던 동일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시대적 과제는 그것을 체현한 새술에 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건희, 정몽구 이후를 준비하는 이재용, 정의선 등 재벌 3세와 그들과 유착한 파워 엘리트 집단은 이명박, 이건희가 직면했던 동일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 공백을 파고든 것이 안철수이다. 안철수는 애플 충격의 여파를 ‘수직형 효율화 모델’과 ‘수평적 네트워크’ 모델로 명료히 정리했고, 정권과 재벌의 어설픈 동반성장론에 대해 공정한 경쟁 질서부터 지키라며 날을 세웠다. 그리고 20대 청년들을 위한 순회 강연회에 착수했다.

    안철수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은 민주-독재의 탯줄을 끊지 못한 추상적인 복지론이 아니라 정보화 시대 범지구적 무한경쟁에 걸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출이라고 볼 수 있다.

    4. IT 세대의 정치 세력화

    7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된 이후 한국사회는 두 가지 시대적 과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민주화의 과제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화의 과제였다. 산업화가 본격화될수록 지식인과 중산층이 대거 양산되기 시작했고 이들은 자신들을 길러낸 산업화 세력에게 산업화에 걸맞는 정치체제를 요구했다. 이 요구는 6월항쟁을 정점으로 한국사회에 순차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발전은 민주화 세대와는 또다른 세대를 길러 내고 있었다. 80년대 초반 일군의 대학생들은 광주항쟁 이후의 상황을 군부독재 타도라는 명료한 정치적 언어로 집약했다면, 다른 일군의 대학생들은 첨단 정보통신 산업에 매료되었다.

    역사의 발전 속도는 민주-독재라는 과제를 먼저 제기했지만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보면 사회경제구조를 보다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기술과 그에 따른 사회 구조의 변화이다.

    80년대 초반 일군의 대학생들로부터 시작된 정보통신 문명은 90년대 PC 통신-인터넷을 거쳐 한국사회의 지반을 흔들기 시작했다. 2002년 노사모와 촛불시위는 정보통신 문물의 발전이라는 사회역사적 지반 위에서 벌어진 새로운 유형의 정치투쟁이었다.

    2002년의 투쟁은 한국 주류사회에서는 이단에 가까운 새로운 인물, 노무현을 출현시켰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이 IT 문물에 대해 친화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담지했던 시대정신은 민주화의 완성이었다.

    90년대 PC 통신과 인터넷, 2002년 붉은 악마, 노사모, 촛불로 이어졌던 저변의 흐름은 2008년 촛불시위로 분출되었다. 이 시위는 오프라인 매체, 기존 정당질서와 맥을 달리 하는 새로운 질서가 출현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온라인, SNS 등은 정보통신 문물이 기술과 산업의 영역, 문화적 트렌드를 거쳐 마침내 정치의 영역에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은 것은 새로운 정보통신 문물을 배경으로 성장한 새로운 시대를 대변할 인물과 세력이었다. 안철수, 박경철 등의 부상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노무현 사후 기존 패러다임의 주창자들이 민주와 독재 프레임과 그 연장선하에 있는 복지에서 활로를 찾은 반면, 안철수와 박경철은 과학기술과 IT, 주식 등 한국사회의 현대적인 부분에서 배태되어 청년세대로부터 자원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대총선을 앞둔 대격변이 전통 민주화 세력을 계승한 집단 그리고 그들이 사활을 걸고 싸우고 있는 민주-독재 구도밖에서 출현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5. 소결

    안철수 현상이 보여준 것은 민주-독재라는 전통적 프레임을 뛰어 넘는 새로운 지반이 형성되어 있는 점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기존의 민주-독재 프레임에 기초한 어설픈 대안이 아니라, 80년대부터 한국 사회 저변을 흔들고 있는 새로운 문물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이다.

    문국현의 시도가 해프닝처럼 끝난 반면 안철수 현상은 보다 견고한 흐름으로 성장할 것이다. 안철수 또한 실패할 수 있지만 역사의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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