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진보신당을 떠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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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07일 04: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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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6일) 진보신당에 탈당계를 냈다. 소속이었던 당을 떠난다는 게 마음이 편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판단의 차이를 존중하고 진보운동의 미래를 위해 노동조합의 활동가로서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히는 것도 필요할 거 같다. 이글은 서울 지역 노동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개인적인 글이다.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당 이유, 다시 합당 주장 이유

    2007년 말 대선을 거치면서 민주노동당의 당내 분열은 극에 달했다. 종북주의와 패권주의가 핵심 문제로 제기되었다. 당시 본인은 당내 사정을 잘 모르는 대중조직이 분당에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려를 하면서도, 패권놀음에 활동가들이 피폐해지느니 풍찬노숙을 하더라도 정상적인 진보적 대중운동을 조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분당에 동의했고 진보신당에 가입했다.

    2010년 6월의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이에 여전히 대중적 차별성이 없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친환경 무상급식이 선거의 가장 큰 쟁점이었지만 진보가 주도하는 게 아니었다. 2002년 지방선거 때 반짝하고는 사라진 진보 진영의 이슈였다. 

    당시 서울본부에서 일하던 본인도 근본주의적 편향 때문이있었을까,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이슈로 승부를 걸 생각은 안하고 친환경 무상급식 정도는 "쩨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무엇이라도 대중운동을 추동할 수만 있는 의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진보정당들은 무얼 했을까? 노동조합의 투쟁하는 곳에 깃발은 보였지만, 전국적 이슈를 선도하면서 대중운동을 조직했다는 기억은 없다. 6.2 지방선거 시기 노동조합에서는 진보정당이 분열된 구도에 대해 너무나 냉담해, 두 당에 대해서는 선거자금 모금도 여의치 않았다.

    모아진 것은 주로 교육감 선거 쪽을 향했다. 통합하지 않고서는 그 나마의 존재감도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감 선거 이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에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지도부와 힘을 보탰다.

    진보신당이 분당할 때 민주노총이 정규직 운동이라며 비정규직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운동을 하자고 주문처럼 외우고 있었지만, 정작 학교 비정규직을 조직하자고 양당에 제안을 했으나, 지역 당원협의회에 일할 사람들이 별로 그리 많지 않았다. 초기에 같이 했으나 갈수록 버거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차라리 통합하게 하여 역량을 강화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더욱 강해졌다.

    힘들게 버티는 민주노조

    현재의 민주노조 운동에는 사회주의권 붕괴 이래 조직 활동가들이 썰물처럼 떠나가면서 활동가 역량이 대폭 줄어들었고, 자신의 조직을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이어 이명박 정부의 노동법 개악으로 민주노조 운동은 갈수록 어려움을 더해 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구조조정의 몸살을 크게 앓은 민주노조운동은 정규직 노동자의 상대적 고임금과 함께 투쟁동력은 바닥을 치고 있다. 구조조정 당하는 사업장이나 특별하게 조직력이 탄탄한 곳 이외에는 임단협은 대부분 교섭으로 타결한 지 오래고, 2006년과 2010년의 노동법 개악을 눈뜨고 지켜만 볼 정도였다.

    복수노조 시행으로 인해 파견노동자들의 노조 조직은 더욱 어렵게 됐다. 교섭창구 단일화 때문에 사업장 하나 조직해서는 교섭권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임자 임금 등 노조활동 전반에 족쇄가 채워진 지금 노동법을 개정하지 않고서는 민주노조운동은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다단계 하청구조와 극단적인 자유경쟁에 의해 비정규 노동자와 영세사업장의 노동자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집값과 전월세비, 교육비의 상승은 중산층화된 정규직 노동자들마저도 삶을 어렵게 만든다.

    투쟁으로 돌파할 역량이 되지 않는 조건에서 민주노총 투쟁하지 않는다고 백날 탓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왜 비정규직 조직하지 않느냐고 힐난해봐야 나름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반감만 살 뿐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20여 명 실무진 중에 미조직비정규 담당은 2명뿐이다. 모두들 불가피한 뭔가를 담당하고 있다. 이게 대중조직의 현실이다.

    향후 비정규 노동자 조직사업에는 그나마 활동가 역량을 갖고 있는 당에서 자신의 선거구에 집권 기반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길 진심으로 부탁한다. 노동조합 운동은 노동조합 간부만이 아니라 당 간부들도 조합원에 가입하면서 조직 확대사업에 임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기능적 실무자나 정책 담당자가 아닌 정치 지도자로서의 뜻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중과 동화되는 과정을 충분히 겪어보면서 선거에 나서라고 권유하고 싶다. 장기적으로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서울의 소지역 단위에서 기존 노조들과 함께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를 조직하는 사업에 힘을 모아 나갈 것이다.

    이 사업에 적극적인 당 활동가들은 어느 당이라도 환영하고 공동사업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민중의 집을 만들든, 협동조합을 만들든, 방과 후 학교를 하든 당 주변에 다양한 공동체를 만들어 노조 이전에 조직의 자립력을 갖기 힘든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이 마음을 의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진보의 지지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민중의 집 등 부분적으로 이러한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업을 밑바탕으로 집권에 다가가는 것은 10년 이상의 목표를 갖고 임해야 하는 매우 장기적인 사업이라는 것이다.

    숨넘어가는 노동운동을 부활시키기 위하여 노동법을 재개정하여 산별교섭을 제도화하고, 전임 활동을 확대하며, 상시 노동자 정규직화를 위한 비정규법을 개정해야 한다, 저임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의료, 연금, 교육(육아), 주거 등 4대 복지 영역에 대한 개혁이 당장 수반되어야 노동조합운동도 다시 활성화되고 삶의 위기에 시달리는 저임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70%가 종로, 중구, 영등포, 강남송파서초에 몰려 있는 서울 지역의 특성상, 노조와 거주지가 별개의 선거구로 분리되어 있어 노동조합 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합법 진보정당은 소선거구제하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이로 인해 정치 지도자를 확보하기 힘들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해도 소수파일 수밖에 없었다. 소선거구제하에서 지금처럼 이슈도 선도하지 못하고 대중적 기초가 취약할 때 진보정당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진보정당의 후보가 보수정당을 누르고 1등 당선될 거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 통합도 안되고 분열되어 있으니 전망은 더욱 암담하다. 따라서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비례제로 전환할 때만이 진보의 집권 가능성이 열린다.

    정리하면 노동법의 개정과 국회의원선거의 전면비례제 도입만이 노동조합운동의 재활성화와 진보정당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런 과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진보정당은 이렇게 하면 될 수 있다는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야권연대와 정책연합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정치세력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재편되는 시기이다. 원하지 않더라도 이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국면에 노동관계법의 개정과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비례대표제 전환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현재의 진보진영의 세력 관계상 민주당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진보진영 단독으로는 노동법과 선거법을 개정할 수 없다. 그걸 관철하려면 민주당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진보정당의 통합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다가올 국회의원 총선에서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정권교체를 실현해야만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또한 진보정당이 유력한 정치세력으로서 20석 이상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려면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분을 확보하여 야권단일후보가 되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그런데 야권 단일화를 하면 절대 다수의 당협 위원장들에게는 출마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야권 단일화는 단 한 번 밖에 할 수 없으며 당의 도약이 가능해야 뒷말이 없게 된다.

    민주당에 대한 불신이 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내내 구조조정과 노동법 개악으로 인해 노동자와 대립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에 대한 불신의 골은 깊다. 민주당과의 연대는 새로운 비판적 지지라고 비난한다.

    이명박 정부들어 주적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로 바뀌었다. 주적을 상대하기 위하여 힘이 약한 세력들이 연대하는 것은 기본이다. 진보가 민주당까지 몰아부쳐 적으로 만들 이유는 없다. 그것은 힘도 없는 데 스스로 고립의 길을 자처하는 것이다. 적은 분열 약화시키고, 아는 확대 강화하라는 전략전술의 원리도 있지 않은가?

    문제는 야권연대에 진보가 요구하는 만큼 민주당이 신실하게 임할 것이냐는 것이다. 가능성은 있다. 작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연대를 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비싼 수업료를 낸 것이다. 반대로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노동당은 인천과 울산에서 구청장을 당선시킬 수 있었다.

    왜 민주당은 이렇게 나오는가? 당연히 권력교체가 그들의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10년의 집권기간 동안 권력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집권에 대한 집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마침 2012년은 현행의 선거제도에서 20년마다 반복되는 대선전에 총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는 해다.

    대통령 권력교체 때문에 총선에서의 야권연대가 가능한 것이다. 또한 야권연대가 국회의원 지분나누기로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앞에서 제기한 의제들을 바꾸기 위하여 대통령선거에서의 정책연합을 실현하여야 한다. 실력만 있다면 공동정부를 구성하고 개혁입법들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이 교체되면 다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처럼 대립관계로 갈 것이라는 단정들을 많이 한다. 논리적 개연성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그것은 또 다시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는 국가부도 위기 상황에서의 구조조정과 김종필 세력을 끼고 있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노동 및 진보진영의 대립은 불가피했다. 노무현 정부는 단독으로 집권했음에도 신자유주의를 개혁으로 포장하고, 또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한나라당과 끊임없이 연대를 추진했다. 당연히 진보는 고립되고, 노동운동은 탄압을 받았다. 한나라당이 뒷짐지고 민주당 정권과 진보정당이 대립하는 모습으로 가서는 또 한 번 지난 10년의 경험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권력교체 후에 곧바로 부패청산을 통해 구체제를 개혁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재집권을 못할 정도로 해야 하고, 보수언론의 개혁과 재벌의 구조개혁을 함께 하여 보수의 물적 토대를 무너뜨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의 비례대표제가 관철돼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 연이어 본격적인 개혁입법을 논할 수 있고, 그 수위에 따라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경쟁하는 관계로 정립되어야 한다.

    진보신당을 떠나며 새로운 통합의 길을 모색한다

    위의 이야기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기대가 섞인 이야기를 한 것이다. 과정은 첩첩산중이기 때문에 기대대로 될지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또한 안철수, 박원순의 등장으로 인해 진보정당은 새로운 어려움을 겪게 됐다.

    과거의 경험 때문에 예단하여 가능성을 일부러 차단할 필요는 없다. 조직이 살기 위하여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 통합은 앞의 과정을 관철시키는 전제였다. 진보가 통합되지 않은 조건에서 무슨 힘으로 민주당을 견인하겠는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안을 진보신당의 대의원대회는 부결시켰다. 자신들의 생존 전략에 따라 그렇게 결정했으니 스스로의 생존 방식을 찾아나가면 될 일이다.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은 자신의 살길을 찾아야 한다. 당장에 자신의 생존을 도와줄 파트너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면한 총선과 대선에서의 실질적인 역할을 위해서는 진보신당의 틀 내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당을 떠난다. 새롭게 진보정당운동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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