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 부결을 환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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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06일 11: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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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번 대의원대회의 결정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또한 적색을 동심원으로 하는 대중정당 노선도 아낌없이 지지합니다. 현 정세에서 바라보면 두 결정(통합 부결과 대중정당 노선)이 모순되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보정당 운동의 분열

사람마다 다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두 보수 정치세력만 정치적 시민권을 얻은, 노동 의제가 없는 불완전한 한국 민주주의(소위 87년 체제)에 균열을 내기 위해 진보정당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판단합니다.

이것은 시작부터 이미 민주노동당이 전위정당이나 혁명정당이 아니었다는 말일 것입니다. 어떤 보수정당이 정권을 잡건 노동은 그 요구를 의회에 의제로 올릴 수 없었고, 그러므로 초기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목표는 단 1명의 의원이라도 원내에 진출시키는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헌신과 노력 끝에, 민주노동당 의원 10명은 17대 국회에 진출합니다.

하지만 진보정당 운동의 불운은 비판적 지지 세력과 함께 한 것에 있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들의 노동 현장에서의 헌신성과는 별개로, 당과 노동운동을 통일운동을 위한 수단으로 사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그들과 함께한 순간부터, 진보정당 운동은 냉전세력의 집권기마다 민주당류를 향한 비판적 지지에 휩쓸릴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연방제 통일로 대표되는)민족해방 노선이 대체 어떠한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보수양당 구도에 균열을 내고 노동정치를 실현하려 했던 민주노동당은 수렴할 수 없는 두 노선의 갈등 끝에 분열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당을 만들었던 창당 세력이 쫓겨납니다.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민족해방 노선에 동의할 수 없지만, 민주사회에서 그들이 결사를 이루어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100퍼센트 존중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분열이, 창당세력이 쫓겨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당히 우습게도 비판적 지지 노선은 민주노총과 전농이라는 대중조직의 배타적 지지와 물질적 지원을 오롯이 받아서 그 역량을 민주당류의 정권 창출에 소진하게 생겼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세력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민주노총 바깥에서 그 생존을 도모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보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현재 상황입니다.

부족했던 합당 논의

이 상황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합리적 전술은 민주노동당에 다시 들어가 당을 독자적 노동자 정치세력으로 돌려놓자는 것이고, 이것이 어제까지 당을 반으로 분열시켰던 소위 통합 논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정파 리더들의 지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민족해방 그룹’이 ‘전략 전술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가지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그룹(이라고 거칠게 정의해야 할 사람들)’ 보다 조직을 만들고 당을 장악하는 데에는 훨씬 유능하다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04년부터 07년까지의 민주노동당 역사가 증명하고 있고, 이런 경향은 불과 3년 만에 변한 것 같지 않습니다.

민주노동당 주류 활동가들의 신념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통합 논의 과정에서 그렇게 추정했습니다) 그들의 신념에 동의하는 수만 명의 진성당원이 포진하고 있는 곳으로 진보신당 당원 1만5천 명이 들어간다 한들, 당의 민주당 편향성을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지 못하겠습니다. 내년 정권교체기에 진보신당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정치세력화 그룹마저 중심을 잃고 휩쓸려가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더 그럴듯하지 않나요?

그렇다고 제가 통합을 무조건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대중조직의 조직적 지원이 없는 진보정당운동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으므로, 대통령제 하에선 지속가능하지도 않을 연립정부 노선 대신 선거제도 개혁을 매개로 민주당을 압박하는 전술을 채택하고, 음지의 정파가 양지의 의견그룹으로 거듭나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정도를 합의했다면, 저는 흔쾌히 합당에 찬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오히려 국참당과의 합당까지 추진하며 연립정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제스처를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1대1의 지분을 얻는다 한들 과연 미래를 담보할 수 있었을까요? 부정적으로 봅니다.

마치며

전 우리 당의 총명한 정치인들과 활동가들이 제가 아는 이 정도의 분석도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을 무리하게 추진한 이유는 그만큼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고요. 허나 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그 동안 축적해 온 자본을 허물어 버린다면, 노동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꿈은 영원히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이번 대의원 대회의 결정이 현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통합안이 부결된 지금, 우선 현실 정치에서 살아남을 정교한 정치공학을 고민해야만 합니다. 진보정당 운동 및 노동운동과 함께 성장한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라는 대중정치인들은 전 당적 역량을 투입해서라도 내년 총선에서 꼭 생환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진보정치의 독자성장을 담보할 선거제도 개혁을 매개로 누구와도 유연한 선거연대를 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작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노회찬 후보는 보수양당 사이에서 진보정치 세력이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정권 교체에 혈안이 되어있는 민주당과 중점적으로 협상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통합논의가 아닌 선거전술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현명한 해결책을 만들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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