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류 진보정당 존재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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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05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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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진보통합 문제는 진보신당에게 근본적으로 난해한 문제였다. 주지하듯이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서 ‘북한에 대한 입장 차이’를 문제로 분당되어 나온 정치세력이다. 이 세력에게 북한 문제의 해결 없이 그냥 다시 들어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뛰쳐나갈 때 선언했던 ‘정체성’을 포기하라는 말이 된다.

54%, 절묘한 집단 지성의 결론

정당 혹은 정치세력에게 특정한 정체성의 포기는 그 자체로 정치적 사망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 부분은 무척 신중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구민노당의 정체성은 원래 그 자체가 자주-평등의 동거체제였기 때문에 민노당은 기존의 자기 입장을 고수하면서 들어오라는 손짓만 하면 되었지만, 진보신당은 애당초 자신이 집나갈 때 갖고 나갔던 정체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자기노선의 소멸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통합을 거부하는 일도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통합논의 과정에서 진보신당은 당 안팎의 매우 다양한 압박에 직면하고 말았다. 민주노총의 압력은 당연했고 심지어는 그동안 소식이 뜸했던 백기완 선생님까지 진보대통합을 요구했다. 당 대회 현장에서는 당 대표가 예고에 없던 불출마 압력을 넣기도 했다.

결국 진보신당은 한마디로 매우 난처한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 민노당에 다시 들어가자니 영혼을 팔아야했고, 그렇다고 안 들어가자니 간과 쓸개를 내놓아야 할 것 같은 상황으로 몰린 셈이었다. 밖에 나가면 얼어 죽고, 안에 있자니 굶어죽을 것 같은 창당 전 상황과 흡사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결과적으로 도출된 대의원대회의 선택은 합의안 54% 찬성이었다. 이것은 내가 보기에 매우 절묘한 집단지성의 결론이었다. 통합파에겐 과반수 득표라는 명분을 살려주고, 독자파에겐 당 사수라는 실리를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지점은 이렇게 볼 때 만약 민노당이 북한 문제에 조금만 더 유연하게 대응해 주었다면, 진보신당 통합파에게 더 많은 명분을 만들어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랬다면 더 많은 대의원이 흔들렸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진보신당 통합파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을 성사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민노당은 통합의지가 있었을까?

하지만 민노당은 진보신당 통합파를 지원하기는커녕 갑자기 국민참여당 변수를 끌고 들어와서 오히려 통합을 더 어렵게 만들다가 막판에 합의안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거의 확인되는 시점에서 큰 인심 쓰듯이 국참당 변수를 포기하는 액션을 취했다. 이것은 일부 옷장사들이 흔히 쓰는 수법, 그러니까 애당초 1000원짜리 옷을 2000원짜리로 올린 다음에 다시 50% 깎았다면서 1000원에 파는 수법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애당초 민노당이 정말로 진보대통합의 의지가 있었다면 북한 문제에 대한 정치적 양보를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북한 문제에 대한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민노당의 강경한 태도는 결과적으로 진보신당 통합파로 하여금 통합의 정치를 펼 수 있는 공간을 무척 협소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진보신당 통합파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파는 것보다는 간과 쓸개를 내려놓는 게 차라리 낫다는 어찌보면 상식적인 판단을 넘어서지 못했다.

진보통합 논쟁 과정에서 가장 치열한 내부 논란을 벌인 정당은 민노당도 아니고 참여당도 아니고 진보신당이었다. 진보신당의 논쟁은 길고 힘든 논쟁이었지만, 어찌보면 그 과정은 좌파가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어떤것인지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2010년 전당대회에서 미래한국연대와 합당을 결의하는데 약 5초 정도 걸렸다. 그러나 진보신당은 민노당과 합당 논의 과정에서 1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당 대회를 3번이나 하고 결국 부결시켰다. 그 과정에서 반대파끼리 주고받은 비판과 논쟁의 부피는 상상을 초월한다.

힘든 과정이었던 만큼 이제 논쟁이 끝났음은 확실해졌다. 논쟁의 결과 진보신당의 철옹성 같은 반북한 정서가 재삼 확인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북한 문제를 기준으로 한국 땅에 크게 두 부류의 진보정당이 존재함을 객관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는 북한을 같은 민족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정당이고, 또 하나는 북한을 김정일 정권이 지배하는 하나의 독재체제로 보는 정당이다.

이것은 우리가 지나온 지루한 논쟁 속에서 얻은 거의 유일한 성과물이다. 향후의 모든 정치 기획은 이렇게 북한에 긍정적인 ‘소위’ 진보와 북한에 부정적인 ‘소위’ 좌파가 분리 정립되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명제를 대전제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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