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인 헌법재판관의 어거지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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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09일 01: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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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감 좀 양보하세요"
    이런 초등학생 꼭 있다. 우는 동생을 내버려 두고 장난감을 혼자 가지고 노는 초등학생 말이다. 엄마가 ‘동생에게 양보하기’ 항목이 써진 반성문을 보여주며 규칙대로 장난감을 양보하라고 타이르면 이렇게 우긴다. ‘장난감’ 양보라고는 안 써있잖아요. 내가 언제 ‘장난감’ 양보라고 했어요? 몇 시, 몇 분, 몇 초?

    국방부가 구체적 대안도 마련했는데

       
      ▲병역거부 지지 헌재앞 1인 시위(사진=전쟁없는세상)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30일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토록 하는 병역법 88조 1항 1호에 대한 위헌심판에서 합헌결정을 내렸다. 합헌결정의 논거 중 이런 게 있다.

    한국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인권규약 제18조 1항(사상·양심·종교의 자유)에 가입돼 있지만 조항에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명문화 돼 있지 않다는 거다.

    하지만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동일 조항에 따라, 한국 정부에 병역거부자의 권리를 인정해 입법 조치 할 것을 2006년, 2010년, 2011년 수차례 권고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반성문에 ‘장난감’을 양보한다는 말이 명문화 돼 있지 않다는 초등학생의 주장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웃고 말 것이다.

    이젠 웃음도 안 나온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같은 병역법 조항에 대해 7대 2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이번에도 7대 2 합헌 결정이 났다. 입법 권고마저 약해졌다. 7년간의 기다림은 물거품으로 변했다.

    헌법재판소는 900여명의 병역거부 수감자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희망의 끈을 가차없이 잘라버렸다. 잘린 끈조차 쥘 수 없는 예비 병역거부자들과 함께 16,000여명이라는 병역거부자의 수는 앞으로도 기약없이 늘어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안보 상황, 병력 자원의 손실 문제, 심사의 곤란성, 사회 통합의 저해 등을 이유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이는 헌법재판관 이강국, 송두환의 한정위헌 의견만으로도 충분히 반박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운영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의 경험을 살펴보면 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 해도 병역거부자가 급증하지 않았고, 엄격한 심사와 관리로 국가안보, 민주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라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백지화됐지만 노무현 정부 말기에 국방부가 대체복무제의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을 만큼 대체복무는 현실적이다.

    관습법 마니아 헌재

    헌법재판소의 합헌 논리는 구차할 뿐이다. 관습법 ‘마니아’ 헌법재판소는 합헌 이유로 ‘국제관습법’을 꺼내들기까지 했다. "전 세계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보장에 관한 국제관습법이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국제법 존중의 원칙을 선언하는 헌법 제 6조 제 1항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관습법은 영어의 ’do’나 전라도의 ‘거시시’가 아니다. 막 쓴다고 다 말이 되는게 아니다. 헌재의 결정문은 단어만 바꿔도 논파된다.

    ‘한국과 같이 일부 국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한 유엔 권고가 무시된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유엔권고를 무시해도 좋다는 국제관습법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유엔권고 무시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로서 우리나라에 수용될 수는 없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라는 유엔권고를 무시하는 한국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국제법 존중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 헌법 제6조 제 1항에 위반된다.’

    공은 넘어갔다. 장난감을 손에서 놓지 않는 헌법재판소의 똥고집에 모든 걸 맡길 수 없다. 동생이 잘못하면 언니, 오빠가 바로 잡아야 한다. 국회와 정부는 ‘국제관습법’에 따라,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애타게 권고하는 유엔의 반복되는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초등학생은 교육을 받고 경험을 하면 나아지기라도 한다.

    2011. 9. 3. (토)
    서울구치소에서 조은

    * 이 글의 필자 조은씨는 ‘전쟁 없는세상'(http://www.withoutwar.org/)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로 서울 구치소에서 수감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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