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뇌하는 대의원 동지들 힘냅시다"
    By
        2011년 09월 03일 09:39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독자파의 굴복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의 상황은 통합파가 주도한 것입니다. 책임도 통합파가 지는 게 맞습니다. 독자파는 어쨌거나 그냥 진보신당을 열심히 하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방어적일 수밖에 없고, 더 고집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 여러 차례 요구했습니다. 독자파에게 압력을 넣는 방식,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 굴복을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자파의 마음을 지지하고 독자파의 구상을 응원해주는 방식, 통합을 호소하더라도 그런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통합파는 여전히 상황논리를 얘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9월 4일 당 대회에서 합의문이 부결되면 우린 다 죽는다는 논리 말입니다. 통합파의 급한 마음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죽기로 각오한 사람한테 다 죽는다는 건 전혀 통하지 않는 논리입니다. 현실정치를 모른다고 말해봐야 소용없습니다. 독자파는 현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입니다.

    “통합은 무조건 싫다”, “지도부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비논리적인 고집이 아닙니다. 독자파라면 응당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통합 논의 속에 ‘진보의 재구성’은 없었습니다

    통합논의는 훌륭한 활동가들을 고무시키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진보신당 창당의 정신이자, 진보정치 10년 평가의 핵심이었던 ‘진보의 재구성’은 합의문 어디에도 없습니다.

    저는 수차례의 기고 및 토론을 통해 지역노동정치 혁신위원회 건설, 이를 위한 지역 거점 마련, 당원참여활성화 등을 골자로 한 진보의 재구성 방안을 제안했고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물론 독자파도 제 제안을 대수롭지 않게 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당 때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핵심은 노동정치와 지역정치의 소멸이지만, 논쟁은 패권주의와 북한문제에 맞춰져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 점 자체가 대중운동을 기반으로 한 진보정당 운동 쇠퇴의 증거입니다.

    지겹게 반복하는 것이지만,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만드는 과정은 그 당이 대중을 운동의 급진적 주체로 세울 계획과 전망을 세우는 과정일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진보운동의 뿌리 전략이 통합을 통해 실현 가능하다는 확신을 주지 않으면 가치와 노선을 생명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활동가들은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도 책임질 일이 있습니다

    민주노총도 잘 한 것 없습니다. 민주노총의 10만 당원 조직 계획은 노동자들을 돈 대고 몸 대는 진보정치운동의 들러리로 만들 것이라고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1만 추진위원이라도 모집하면 새통합정당이 기존 정파들 말고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고 따라서 정파싸움을 덜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1만 추진위원은커녕 이제 겨우 그 반쯤 모았다고 합니다. 양당 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하니 추진위원 모으는 게 어렵다고 민주노총 위원장께서 말씀하셨는데 언제는 진보대통합에 대한 현장의 열기와 요구가 뜨겁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진짜 현장의 요구가 뜨겁다면 몇 만 명의 추진위원쯤은 금세 모으고 그 힘으로 지지부진한 양당 통합 논의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갔어야 합니다.

    다른 대중조직들에게도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통합 문제를 놓고 진보신당 당원들과 대의원들이 이 오랜 기간 동안 토론하고 논쟁하고 고민할 때, 5.31합의문과 국민참여당 참여 문제, 8.28합의문에 대해 대중조직들은 얼마나 진지하게 논의하고 고민했습니까. 그저 당이 통합되는 게 ‘국민들의 요구’이자 너무 명약관화한 ‘진리’이기 때문에 큰 논의가 필요 없었다는 대답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통합논의를 통해 진보의 재구성이 고민되길 바랐지 다른 걸 바랐던 게 아닙니다. 동지들은 이번 통합 논의가 진보혁신의 길을 열었다고 보십니까. 양당이 통합하고 대중조직 회원들이 당원이 되면 대중조직 전반이 맞닥뜨리고 있는 운동의 위기가 극복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언제부터 대중조직이 자기의 위기를 제도정당의 규모 확대를 통해 극복하려고 했습니까. 이런 것 자체가 운동이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아가지 마십시오

    통합파나 독자파 모두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 대회 이후 어느 한쪽은 좌절하고 분노할 건데 그걸 극복할 힘만은 우리 내부에 남겨놔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조장할 것이 아니라 독자파/통합파 양쪽 다 냉정하게 현실을 봐야 합니다. 또 우리 하기에 따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길은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독자로 가면 살아남는 데 세월 다 보낼 것이고, 통합으로 가면 내부 투쟁하다가 시간 다 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분석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모두 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합니다. 독자파는 통합당이 내부투쟁 말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처럼 말하고 통합파는 독자로 가면 무조건 죽을 것처럼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저는 당 대회 부결 이후 독자파만 남고 통합파가 곧바로 탈당한다면 진보신당의 명맥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는 ‘가정’에 동의합니다. 진보신당 3년을 했어도 상근자 있는 당협이 30개 정도뿐입니다. 부결되고 나면 이걸 복구하는 것조차도 벅찰 것입니다.

    부결 후 광역시도당 위원장 상당수의 사퇴로 몇 개 광역시도당은 사고상태에 빠질 것이고, 당분간 민주노총 등과의 협력은 기대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내년 총선은 3%는 커녕 2%에도 못 미쳐 당 해산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당 당시에도 지금 독자파의 상당수 동지들이 총선 10%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2.94%였습니다.

    사퇴할 지도부뿐만 아니라 중앙당 실장급 활동가들을 다시 충원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대표 직속이면서 정무직인 대변인, 부대변인은 당연히 사퇴해야 하는데 대체자를 세운다고 하더라도 당분간 언론 대응을 현재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당직자는 대폭 축소될 것이고, 중앙당은 좀 더 값이 싼 지역으로 옮겨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당 내부 혼란이 어디까지 갈지 과연 수습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이런 가정은 통합파가 탈당했을 때의 일입니다. 만약 부결 후 통합파가 탈당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좀 나아질 수 있습니다. 당을 다시 수습하고, 새롭게 집행부를 꾸릴 수 있습니다. 야당과의 선거연합, 총선에서의 선전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감정을 추스르는 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것도 어쨌든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통합이 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참여당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9.25 창당대회 전까지 ‘진지한 논의’를 하되 참여당 참여 문제는 진보신당이 거부하면 그만입니다. 게다가 국민참여당 내부는 진보양당 창당 후에는 자신들의 합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이후가 안심이 되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의지는 생각보다 강하고 비당권파들 대부분도 국민참여당 참여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도적 대의기구가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기타 세력이 1:1:1로 구성된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나중에라도 국민참여당 참여 문제가 다시 불거졌을 때 이들의 참여를 완전히 불가능하게 할 완벽한 방지장치인지에 대해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독자파의 ‘의심’이 이유가 없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선 방침 및 연립정부 문제에 관한 한 진보신당 통합파 동지들 전체가 독자파나 혹은 저 같은 사람과 동일한 입장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합니다.

    노동정치, 지역정치의 혁신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망만 있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통합이 될 경우 지역노동정치 혁신은 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독자파는 통합당 내에서 정파싸움만 반복될 것이라고 했고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나마 그 속에서 지역노동정치 혁신을 위한 노력을 할 수는 있습니다.

    민중의 집을 통한 지역노동정치 혁신 문제에 공공노조의 활동가들이 관심을 갖고 저에게 연락도 주셨습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도 관련 논의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통합 정당이 안 될 경우 이런 논의는 당분간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 분들이 진보신당과 뭔가를 도모할 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통합정당이 될 경우 이 움직임은 탄력을 받을 것입니다. 지역노동정치 혁신 실험도 웬만큼은 가능할 것입니다.

    정파 싸움을 하더라도 우리끼리 호흡만 잘 맞춘다면 그 안에서 하나씩 둘씩 진보정치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넓히는 데 진력할 수 있습니다. 1~2년 사이에 민주노총과 진보정치운동의 우경화를 막을 힘이 우리에게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래서 독자로 남든 통합으로 가든 지금부터 다시 대중 속에 들어가 진보운동의 뿌리부터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저는 통합정당 속에서의 생존 모색이 그나마 나은 길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노동정치와 지역정치의 대안을 지역에서 함께 만들어 내는 것이 진보의 재구성의 핵심입니다. 조만간 도래할 자본주의 위기에 맞서 비교적 이른 시일 안에 급진적 대중운동을 활성화시킬 사회운동적 정당 운동의 흐름을 복구해야 합니다. 이것을 할 수 있다면 북한 문제, 패권주의 문제 같은 건 다 양보할 수 있습니다. 실리에 영혼을 파는 게 아닙니다. 영혼을 지키기 위해 다른 실리들은 포기하는 것입니다.

    진보신당 대의원 동지들, 힘내십시오

    지난 1년 동안의 통합 논의 과정에서 운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2012년 정세에 대해서, 그 이후 과제에 대해서 진정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한 사람들은 진보신당 대의원들뿐입니다. 누구도 진보의 재구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고민을 했습니다. 누구도 조직 내적으로 진지한 논의를 하지 않고 마냥 당위만 외칠 때 우리는 진지하게 논의했습니다.

    이제 결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대의원 동지들이 자기 계획을 가지길 바랍니다. 자기 운동의 계획이 있으셨던 대의원들은 그 계획이 독자/통합 어느 쪽으로 갔을 때 더 실현가능한지를 중심으로 판단하시면 좋겠습니다. 계획이 없으셨던 분들은 이번 기회에 진보신당 당원으로서의 자기 계획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자기 입장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갈등하고 고민하되, 불안해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로 가서 이대로 주저앉을까 두려워하지 마시고, 통합으로 갔다가 연립정부의 흐름에 휩쓸려 갈까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지역과 현장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와 함께 하는 동지로 변모시킬 자신의 계획에 대해 고민하십시오. 그 계획이 모이면 가진 것 없고, 힘도 없어서 늘 이렇게 서러운 일만 당하는 우리 처지를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반드시 바꿀 수 있습니다.

    대의원 대회 결정을 옹호하겠습니다

    대의원 대회 결정은 우리의 최종 결정입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결정은 정당합니다. ‘국민’의 바람을 반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 역시 우리 대의원들의 고민 속에서 나온, 반드시 존중받아야 하고 그 의미가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해석되어야 할 결과물입니다.

    저는 우리 당 대회 결정을 진지하게 따를 것입니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당대회가 합법적으로 결정한 사항을 무시할 배포 같은 건 저한테 없습니다.

    그리고 당 대회 결정에 대한 비난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통합하면 통합 정당 속에서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싸울 것이고, 국민참여당 참여/연립정부 참여 노선과의 전투 준비에 곧바로 들어갈 것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진보신당 특히 독자파 활동가들이 당선되는 데 힘을 다할 것입니다.

    만약 독자로 간다면 당대회 결정을 비난하는 외부 집단에 맞서 통합 논의 자체에 진보의 재구성이 없었음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싸울 것입니다. 진보의 재구성 없는 통합에 대한 당의 거부는 고집스러워 보이지만 정당하다는 것을 설명할 것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운동 전체가 다시 뼈아픈 혁신을 거쳐야 함을 진보신당 대의원들이 비난을 무릎 쓰고 문제제기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필자.

    지역의 어떤 대의원은 며칠씩 술만 마시고, 착하게 일만 해왔던 어떤 사무국장은 울고, 20년 경력의 어떤 위원장은 잠을 설치기도 하면서 또 어떤 중앙당의 상근자는 늦게까지 사무실에 앉아 한숨으로 몇 시간을 보내면서 그런 인간적 고뇌의 결과 심사숙고 끝에 표결했다는 것을 증언할 것입니다.

    동지들 힘내십시오

    저는 내일 우리의 결정이 어려운 길을 견뎌내며 살아왔던 자랑스러운 진보신당 대의원들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가며 혼신의 힘을 다해 고민한, 그래서 누구도 함부로 폄하해서는 안 되는 책임 있는 결정일 것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결정을 받아들고 저는 더 고민하고 더 성찰할 것이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을 것입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