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뿐 아니라 민중 투쟁 위해 함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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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03일 0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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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경하는 진보신당 당원 및 대의원 여러분,
    진보대통합에 기초한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을 결정할 최종 시한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 건설될지 여부는 전적으로 진보신당 당원 및 대의원 여러분들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난관과 악재를 넘어

    돌이켜보면.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그간의 논의 과정에는 참으로 많은 난관들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연석회의 5.31 합의 이후에 갑자기 불거진 국민참여당 문제는 그간의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돌릴 수도 있었던 대형 악재였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양당 합의가 이뤄짐으로써 지난 8월 27일 새통추가 출범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 8월 28일의 민주노동당 당 대회에서 통합진보정당 건설안이 통과되었고, 이제 마지막 관문인 진보신당 9.4 당 대회만 통과하면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 출범하게 됩니다.

    진보신당 당원과 대의원들께서는 9.4 당 대회의 중차대한 의미를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 앞에 마음이 무거울 것입니다. 진보신당에 대해 동지적 연대의식을 지니고 있는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이하 진보교연) 역시 여러분의 무거운 마음을 같이 하려고 합니다. 이런 마음을 안고 우리 진보교연은 진보신당 당원과 대의원님들에게 이렇게 호소하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진보신당 당원 및 대의원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합의안에 대해 회의적인 분들이 많음을 알고 있습니다. 합의안을 마련하는 데에 일조했던 우리 진보교연 역시 합의안에 미흡한 점들이 많음을 인정합니다. 대북관계에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구해 나가는 데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을 것이고, 분당 사태를 만들어낸 주요 요인 중의 하나였던 패권주의적 작태가 재발할 지도 모릅니다.

    국민참여당이 새통추에 참여할 길은 봉쇄되었지만, 창당 이후 국민참여당 문제가 다시 거론 될지도 모릅니다. 제반 사회경제적 의제들과 정치방침의 설정 및 새로운 진보적 가치들의 수용 등에서 지금의 진보신당 노선보다 더 우경화될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통합진보정당의 진로는 이전 보다 더욱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은 무조건 싫다”는, 과거에 같은 당에서 활동하면서 입은 상처 때문에 통합에 반대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마도 바로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반대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우리 진보교연 역시 이런 점들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러분들에게 감히 통합에 찬성해 주실 것을 호소드립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보수-자유-진보 3분 구도의 정치적 의미

    첫째, 한국의 정치세력은 오늘날 크게 보아 보수세력, 자유주의세력, 진보세력으로 삼분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분은 단순한 분류를 위한 구분이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구분입니다. 그런데 진보신당 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역시 사회당, 사노위 등과 마찬가지로 보수정당과 자유주의정당과 구별되는 진보정당입니다.

    진보신당 독자파에 속하는 분들 중에는 민주노동당을 진보정당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제기하는 분들이 있지만, 이런 분들의 주장만큼 정치세력들의 성격을 잘못 평가하는 주장은 없습니다.

    이런 분들의 주장은 민주노동당에서 국민참여당이나 민주당과의 연대나 통합이 진보신당을 포함한 다른 진보정당들과의 연대나 통합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분들의 주장만큼이나 진보세력의 단결을 방해하고 진보정치의 올바른 전개를 왜곡하는 데에 기여합니다.

    민주노동당도 진보정당이기 때문에, 진보신당에게 민주노동당은 싫든 좋든 연합을 추구할 경우에는 ‘최우선적 연합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통합을 추구할 경우에는 통합의 파트너로 삼아야 할 정당 중의 하나입니다. 나아가 진보신당에게도 민주노동당이 진보의 대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세력에 비해 진보세력의 힘은 미약하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으로 분열되어 있는 현실은 진보세력의 위력 있는 정치세력으로의 성장-발전을 가로막는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진보대통합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진보대통합을 이뤄냄이 없이는 진보세력이 보수세력, 자유주의세력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성장-발전해 나갈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만의 하나 진보대통합을 성취해 내지 못한다면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추구하는 세력은 지금보다 더욱 왜소해지고, 자유주의세력과의 통합을 추구하거나, 이들 세력과의 연합을 우선시하는 세력이 득세하는 등 진보정치가 일대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진보세력이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을 대체하는 정치세력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을 구축하고, 진보세력의 분열이 야기할 진보정치의 위기를 막기 위해 진보대통합에 기초한 통합진보정당을 한시 바삐 건설해야 합니다.

    대중의 비판과 기대 외면 말아야

    둘째, 오늘날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물론 소수 부유층을 제외한 전 국민이 유례없는 신자유주의적 착취와 수탈로 고통을 겪으며 절망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타개할 대중조직들의 힘이 갈수록 약화되어 온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희망의 버스’ 운동 등 일반 노동자들과 민중들이 전개하고 있는 자발적 연대투쟁은 독점재벌 지배체제의 신자유주의적 착취와 수탈 및 이를 비호하는 권력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분노가 얼마나 깊은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오늘날 불씨를 던지면 언제 활활 타오를지 모르는 마른 섶으로 덮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커지는 만큼 진보정당들에 대한 대중의 기대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진보정당들이 분열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대중의 불신 역시 깊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 우리는 진보대통합 요구가 오늘날 누구보다도 진보정당들의 일차적인 대중적 기반인 대중조직들의 요구이자,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 희망을 찾기를 원하는 노동자-민중 자신의 간절한 요구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는 진보신당이 창당되었을 때 민주노동당의 이전의 활동에 실망한 대중의 진보신당에 대한 기대가 일정하게 커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현재 조성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여러 이유로 인해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을 대체할 정당으로 발돋움하는 데에 실패했고, 인정하지 않고 싶지 않겠지만 그럴 전망조차 보이지 않다는 점을 여러분은 냉철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중 속에서, 대중의 편에 서서, 대중과 함께 사회변혁을 추동해 나가고자 하는 진보정당이라면, 물론 대중의 요구라고해서 무조건 추종해서는 안 되겠지만, 현 시기에 제출되고 있는, 진보대통합을 바라는 대중들의 간절한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갈수록 커지는 진보정당들의 분열에 대한 대중적 비판을 외면하는 한 진보정치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노동자-민중의 분노와 투쟁을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정치적 힘으로 조직해내기 위해서도 노동자-민중의 절박한 바람을 저버리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합의 내용 미흡하나, 과소 평가 말아야

    셋째, 구민주노동당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열된 데에는 여러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이 점에서 분열을 만들어낸 원인들이 제거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재합당이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 진보대통합에 반대하는 진보신당 당원들이 가장 문제삼고 있는 것이 그간의 합의 내용의 미흡함이라는 점을 우리 진보교연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진보교연은 비록 연석회의 5.31.합의와 새통추 구성을 위한 대표자회의의 8.27합의 및 양당 간의 8.28합의 등이 재통합을 가로막는 여러 문제들을 말끔하게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합니다.

    먼저, 연석회의 5.31. 합의문은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 남한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북한 사회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간존중, 노동존중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진보정당”이자 “남과 북 정부 모두에 대해 자주적 태도를 견지하는 정당”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과 북 어느 정부의 정책이든 … 민주주의와 인권, 생태 등 각 분야의 진보적 가치를 신장시키는 정책은 지지 지원”한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합의문이,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한계를 명시하고 있고,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을 위해서도 활동하는 북한 정권에 대해 자주적인 정당임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커다란 성과임에 틀림없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6.15 정신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의 권력 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라는 규정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의 타협의 산물이긴 하지만, 북체제에 대해 명백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북의 권력승계 문제에 대해 어떤 대북 입장의 표명이 현실적으로 올바른가에 대해서는 상이한 의견들이 제출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 말은 북의 권력승계 문제나 북의 핵개발 문제 등에 대해 진보정당다운 입장 표명이 무엇인가가 진보신당 독자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뜻합니다. 게다가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이른바 ‘종북주의’도 문제되지만, 진보신당 독자파들의 주장에서 발견되기도 하는, 뉴라이트의 주장들과 거의 유사한 주장들도 우리가 함께 노력해 극복해야 할 잘못된 주장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이른바 NL파(민족해방파)와 비NL파 간에 대북관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대북정책 면에서는 그 차이를 넘어 서로 견해를 같이하는 부분들이 많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NL파이든, 비NL파이든 확고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및 남북한의 화해-협력관계의 증진 등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의 달성에 기여하는 정책의 강구 등이 대북정책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정책이라고 보는 데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당 운영 방식 등에서 패권주의를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고, 창당 이후 국민참여당의 참여 문제가 공식적으로 거론될 수는 있지만 당 노선으로 쉽게 관철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 등도 그간의 논의의 중요한 성과들입니다.

    나아가 합의문은, 진보대통합의 목적이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세력과 구별되는 진보세력의 독자적 발전과 승리’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신자유주의 반대 노선’을 통합진보정당의 정강정책의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적(노동)―녹(생태)―보라(여성) 연대’를 추구할 수 있는 규정들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록 미흡한 점이 많고,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 창당된 이후 참여하는 세력들이 합의의 정신과 내용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합의 내용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당의 상처를 씻고 다시 함께 당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진보교연은 진보신당 당원과 대의원들에게 양당과 다른 여러 세력들이 함께 노력하여 진보대통합을 바라는 대중의 여망에 부응하고 진보정당다운 진보정당의 노선과 정강정책을 담지할 수 있는 합의를 이끌어낸 것을 과소평가하거나 폄하하지 않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NL vs 비NL의 낡은 구도 해소 가능성 열려

    넷째, 우리는 진보대통합을 위한 그간의 논의를 통해 통합진보정당을 건설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을 기뻐합니다. 이는 무엇보다 (‘분단체제의 극복’의 기치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반대’ 기치 아래서 1980년대의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지형이 만들어 낸, ‘NL 대 비NL’이라는 낡은 대립구도를 해소해 나갈 가능성이 열렸음을 가리킵니다.

    물론 NL파와 비NL파들이 협력해 창당한 구민주노동당이 이들 양대 분파의 대립을 해소시키기는커녕 더욱 격화시켜 최종적으로 분당 사태를 가져온 역사적 상흔이 진보세력 모두의 마음을 여전히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진보신당 독자파의 어느 한 분은 앞으로 출연할 통합진보정당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연립정부 노선의 위험에 시달리는 정당, 북한 문제에 대해 진보정당다운 입장을 낼 수 없는 정당, 가장 나쁜 의미의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정당, 지도자와 당원이 의혹과 불신 속에 마주하는 정당, 정파 간 게임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정당 … 이것의 총합은 한국 진보정당운동 역사상 가장 취약한 정당, 총선 결과 외에는 별다른 뚜렷한 변혁적 목표가 없는 정당”이 될 것이라고 혹평합니다.

    우리 진보교연은 진보대통합에 기초한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 진보정당이 나아갈 수 있는 최악의 사태로 빠질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의 진로가 이전보다 더 많은 불확실성 속에 놓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보정당 당원과 대의원들에게 우리 진보교연은 묻고 싶습니다. 진보대통합을 바라는 대중의 요구를 외면한 채 통합진보정당 외부에 선명한 순결주의적 등대정당을 건설하는 것을 통해 진보세력의 가장 큰 정파가 진보정치의 우경화를 주도하면서 대중을 자유주의세력의 품안으로 끌고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통합진보정당 우경화 막는 힘은 통합파 속에서 나온다

    그런 등대정당으로는 그런 흐름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등대정당은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시키고, 대중을 획득하기 위해 통합진보정당이 그렇게 발전해 가기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통합진보정당의 우경화와 자유주의세력의 2중대화’가 필연이라는 주장은 통합진보정당이 그런 길로 가라는 주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수대중이 자유주의세력의 헤게모니 하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대가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는 정당은 진보정당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는 정당이 아닙니다. 남이 따가고 남은 것만을 겨우 챙길 수 있는 초라한 정당이 어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진보정당다운 진보정당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단언컨대, 통합진보정당의 우경화와 타락을 막을 일차적인 힘은 진보대통합을 바라는 대중의 여망에 부응하면서도 진보의 가치를 지키고 진보정치 전체의 재구성과 혁신을 위해 통합의 대열에 참여한 사람과 세력들의 노력으로부터 나올 것입니다.

    국민참여당 합류와 민주연립정부 수립 등이 당권파와 비당권파를 망라한 현재의 민노당 다수파의 당론적 합의사항이므로 당내 투쟁을 통해 통합진보정당의 우경화를 막을 수 없다는 주장도 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창당 이후에도 국민참여당의 참여는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원할지라도 현실적으로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연립정부 참여 역시 통합진보정당에 참여하는 많은 부분들이 반대하므로 그것 역시 당론이 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면 허구한 날 당내 투쟁에 시간을 허비할 것인가라고 물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필패가 정해진 싸움이 아니라, 싸우기에 유리한 제도적 장치가 일정하게 갖추고 있고, 대중을 획득하기에 더 유리한 지형 속에서 싸우는 그런 투쟁을 왜 마다해야 합니까?

    당내 투쟁만이 치열하고 대중을 획득하기 위한 정당간의 투쟁은 치열한 것이 아닌가요? 왜 하필이면 거대 통합진보정당과 왜소한 순결주의적 등대정당간의 싸움이라는, 필패가 정해진 싸움을 고집해야 하는지요?

    민주노동당의 변화 직시해야

    더 나아가, 민주노동당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합니다. 분당 이전 이른바 ‘자주파’는 주로 민족문제를 중심으로, ‘평등파’는 사회경제적 의제를 중심으로 당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도 ‘민생정당’의 성격을 강화시켜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문제에 진지하게 대결하고, 이전의 지나친 친북적 태도와 패권주의적 작풍 등을 반성하는 세력들이 생겨났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남북한 간의 갈수록 커지는 발전의 격차, 북한체제가 지닌 비민주적 측면에 대한 인식의 증대,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인해 NL파가 이전에 가졌던 신념에서 동요가 일어나고 있는 현상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노동당이 비록 NL파가 지도하는 정당이긴 하지만 노동자 대중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정당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때문에 현재의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통합진보정당의 노선을 계속 우경화시키려고 시도하면 이를 통해 진보세력의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출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기대에서 그런 우경화시도에 휩쓸리는 노동자당원들도 있겠지만, 신자유주의 반대 입장을 강화하고 있고, 계급적 노선을 견지하려 하는 노동자 당원들의 점증하는 반대도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통합진보정당에는 진보신당과 진보교연만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급진화를 추구하는 다른 세력들 역시 폭넓게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더욱 중요하게는 오늘날 대중의 급진화가 눈부시게 진척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세력이 대중과 함께 하고 진정한 민중의 벗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진보정치의 우경화를 추구하는 세력은 바로 이 급진화되고 있는 대중들의 날로 거세지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점들에 비춰 볼 때, 통합진보정당이 건설되면 ‘민주노동당 대 진보신당’라는 이전의 대립구도와는 다른 새로운 ‘세력들 간의 대립-연합구도’가 형성될 것이 분명합니다. 때문에 국민참여당의 참여를 막는 것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국민참여당 통합 봉쇄 비관적이지 않아

    사실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국민참여당 참여를 고집하는 것은 통합진보정당 내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지키려는 마지막 승부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보정치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싸움이긴 하지만 승산이 결코 없지 않는 이 싸움을 왜 우리가 먼저 포기해야 합니까?

    “내분으로 말미암아 통합진보정당은 결국 붕괴할 것이다”라는 주장도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통합진보정당에 참여하는 주요 세력들 간의 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통합진보정당은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붕괴가 어떻게 이뤄지는 가입니다.

    진보정치의 우경화를 막지 못해 진보적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세력이 철수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진보정치의 우경화를 추구하는 세력이 통합진보정당에서 탈당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참여하는 세력들은 타 세력들을 설득하고 대중의 지지를 더 많이 획득하는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통합진보정당에 참여한 세력들이 다시 헤어져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진보정치의 우경화를 추구하는 세력이 탈당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진보대통합은 선거용 아니라 투쟁용

    존경하는 진보신당 당원 및 대의원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이유를 들어 여러분에게 진보대통합에 찬성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호소가 일정하게 설득력을 지닌다고 할지라도 진보의 재구성과 혁신을 위해 진보신당을 창당한 지 3년밖에 되지 않는 진보신당을, 자신의 모든 애정을 바친 정당을 접기에는 너무나 많은 아쉬움이 남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그런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결단을 요구하는 시점입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먼 미래만을 기약하는 정당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현실적 개입력을 지니면서도 미래를 쟁취해 나가는 정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결단해야 합니다.

    이 결단은 단지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더욱 중요하게는 진보대통합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진보정치 전체에 대한 대중적 실망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에 대한 대중의 날로 커지는 분노를 정치적 힘으로 조직하고 임박한 경제적 파국이 가져올 거대한 재앙이 안겨줄 절망을 희망으로 전화시키기 위해서 결단이 필요합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결단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결단은 불확실성에의 도전을 선포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불확실성에의 도전, 이는 새로운 ‘구성의 정치’를 적극 실천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구성의 정치는 불확실성 속에서 더 큰 의미를 획득하게 됩니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주체가 정세와 성립된 세력관계 등에 어떻게 개입하는가에 따라 미래가 더욱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진보정치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구성의 정치입니다. 진보정치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불확실성 속에 기꺼이 뛰어 드는 정치여야 합니다.

    과거 경험 절대화하면 안돼

    그런데 새로운 구성의 정치를 실천하려면 무엇보다 과거의 자신의 경험을 절대화하거나 그 경험이 안겨준 사고의 폐쇄회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진보신당 당원과 대의원 여러분, 과거의 경험이 안겨 준 악몽에서 벗어나 주십시오.

    과거의 경험이 아무리 쓰렸다 할지라도 그 악몽에 가위눌려 있는 한, 정세의 변화를 따라잡을 능력도, 자신의 실천을 확산력과 진취적 기상을 지닌 것으로 만들 활력도 가질 수 없습니다. 동굴 속에서 움츠리고 있지 말고, 동굴 밖으로 나와 세상 속에서 활동해야 합니다.

    친근한 동지들 간의 협동적 활동에만 자족하지 말고, 다시 투지를 불태우면서 자신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세력들이 서로 연대하면서도 싸우는 진보대통합의 마당으로 나와야 합니다. 계급투쟁은 ‘계급 간 투쟁’이지만 ‘계급 내 투쟁’이기도 합니다.

    ‘정체성의 정치’, ‘동아리 정치’에 매몰되지 말고, 계급 간 투쟁만이 아니라 계급 내 투쟁도 활발하게 일어나는 ‘계급정치’의 장에 당당하게 나서야 합니다. 누가 더 많은 대중을 획득하는가가 계급 간 투쟁만이 아니라 계급 내 투쟁의 승패도 좌우합니다.

    진보대통합의 장에서 계급정치와 생태정치, 계급정치와 여성정치의 접합을 위해서도 치열하게 투쟁해야 합니다.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 잘 정리된 정연한 강령이 없음을 아쉬워하지 말고, 실천과 개입을 통해 강령 내용을 새롭게 채워나갈 기회가 찾아온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잘 정리된 정강정책들이 없음이 문제가 아니라, 적을 지라도 강력한 실천적 무기가 될 최적의 정강정책들을 제대로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보대통합을 찬성하면서도 그것을 진보정치의 재구성과 혁신을 위한 ‘전술적 후퇴’로 규정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진보신당의 창당이 전술적 후퇴였던 반면, 진보대통합의 추구는 불확실성 속에서 진보정치 전체의 성장을 이룩해 내려는 적극적인 전술적 공세입니다.

    등대정당론은 패배주의적 주장

    순결주의적 등대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만큼 전술적 후퇴를 극단까지 끌고가려는, 그보다 더 패배주의적인 주장은 없습니다. 이젠 오히려 과감하게 수세를 공세로 전환시키기 위한 활동에 나서야 합니다.

    민중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기 위해, ‘진보신당의 독자성’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쟁취하기 위해, 진보대통합의 대의를 변질시키려는 세력들과의 일전을 위해, 광범위한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의 형성을 위해, 이 반대전선의 급진화를 위해, 진보정치 전체의 재구성과 혁신을 위해, 최종적으로 노동자-민중 승리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불확실성에 도전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미래를 개척하는 적극적인 ‘구성의 정치’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와는 달리, 여러분이 불확실성에 도전하고 적극적인 구성의 정치에 나서기를 거부한다면, 그 결과 통합진보정당 건설안에 부표를 던진다면, 지금까지 통합 논의를 주도해 온 중요한 한 축인 진보신당은 물론 계급적 좌파정치가 입을 피해는 막대합니다. 이는 다시 독자적 진보정치의 발전 및 진보정치의 전체의 재구성과 혁신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희망을 찾기 위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 진보정당운동 역사상 가장 취약한 정당”이 아니라 가장 역동적인 정당이 될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을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진보대통합의 길로 나오는 한 우리 진보교연은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우군이 될 것입니다. 우리 진보교연은 여러분과 함께 활동하고 싶습니다. 진보정당들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진보정당 운동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 진보교연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동지들이 진보대통합의 마당에서 여러분과 함께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간절한 바람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용기 있는 결단을 호소합니다.

    2011. 9.3.
    진보정치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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