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통합안에 반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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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02일 05: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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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논의하고, 함께 가자

    9월 4일 당 대회에서 나는 통합안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통합안이 가결된다면 나는 당의 결정에 따를 것이다. 그것이 이 지난한 논쟁을, 끝까지 진지하고 애정있게 함께 하고 있는 모든 동지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참을성 있게 바라보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당원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더라도 이러한 자세는 모두 함께 일치하기를 바란다.  

    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에 찬성하지 않는가

    누구나 인정하듯이 우리는 소수파다. 소수파인 우리 당이 다수파인 민주노동당과 합당을 하기 위해서 중대한 결단이 필요하고, 그 결단의 근거가 되는 진지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것은 첫째, 통합당 내 소수파로서 우리가 제한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또는 그보다 더한 정치적 식물 상태가 되어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신념으로 가지고 있는 더 큰 원칙은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다수파와 일정한 부분에서 견해가 달라도 아주 중요한 우리 운동의 대의, 특히 ‘진보정당’ 운동의 대의에서 다수파와 일치한다는 믿음이 있다면 비록 아쉽긴 해도 통합의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둘째, 우리가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조직적’ 판단이다.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면 우리와 견해가 달라도 그나마 진보진영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정당과 통합하여 미력이나마 우리의 힘을 보태는 것이 운동의 대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수파가 견해를 바꿀 수 있도록 꾸준히 분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신념과 대의와는 어긋나는 상황이 오더라도 좌절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독자적으로는 무엇인가 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우리 스스로 결단한 것이므로 우리는 지난한 시간 동안 당의 변화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금 당장은 다수파와 우리가 견해가 다르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정세가 변화하면 우리의 내용으로 다수파를 변화시켜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믿고 있는 신념이 새 정당의 공식적인 당론으로 승화할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궁극적으로 지금의 다수파가 계속해서 다수파의 지위를 점한다 한들 우리는 아쉬울 것이 없다. 우리는 진보운동의 대의를 지키면서 정말로 중요한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통합 논의 결과는 이러한 믿음에 부합하는가 

    이러한 기준에 비춰볼 때, 통합 논의 결과는 그 믿음에 부합하는가. 나는 통합 논의의 과정과 결과가 이러한 믿음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진보신당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보다 오히려 현저히 후퇴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통합에 찬성할 수 없다. 

    먼저 북한에 대한 자주적 입장의 문제다. 알다시피 민주노동당을 주도하고 있는 자주파 동지들은 우리가 보기에 북한이 잘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옹호해왔거나, 3대세습에 대해서도 발언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통합론에 서 있는 몇몇 동지들은 그건 자주파 동지들의 사상인데 왜 그걸 자꾸 들추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맞다. 그것은 자주파 동지들의 사상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사상을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통합정당에서 소수파로 살아갈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다수파의 견해에 변화가 있는지, 아니면 그대로인지 물어보는 것이 과연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나의 견해는 이렇다. 우리는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발전시켜야 하고, 남한 내 수구세력에 맞서 북한과 관계개선을 해야 하는 정치적 책임을 갖고 있지만, 북한 정권이 잘못하는 문제에 대해 자주적이지 못한 정당은 결코 집권에 이를 수 없다.

    집권에 이르는 과정에는 수많은 질문이 따른다. 그중에 북한 문제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주제다. 향후 이런 문제가 불거졌을 때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수결로 결정하든가 아니면 합의정신에 따라 아무런 ‘공식적’ 발언도 하지 않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민주노동당의 당론이 아니던가. 이러한 상태는 당의 집권 능력에 대한 대중의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당의 진보성에 대한 당원들의 불신을 더욱 높일 것이며, 특히 진보신당 출신 또는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성향의 당원과 시민들에게 더욱 큰 절망과 냉소를 안겨줄 것이다. 그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둘째, 2010 지방선거부터 국민참여당 논란까지의 문제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보여준 태도를 우리는 알고 있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비롯해 많은 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일방적으로 민주당, 국민참여당 후보를 지지했고, 강원도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한 우리 후보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고 사퇴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당시 보여준 행보는 향후 통합정당 내에서 우리가 맞닥뜨릴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국민참여당 합당 문제가 있었다. 나는 국민참여당을 필요 이상으로 폄하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 입장이다. 다만 국민참여당은 진보정당과 함께 하기 어려운 당이고, 함께 하려면 상당 기간 동안 ‘과연 함께 당을 할 수 있는지’ 서로 검증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정당이다.

    몇몇 상층 인사의 공감 수준이 아니라 정책, 노선부터 시작하여 당원들의 가치나 문화가 맞는지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 이것이 상식 아닌가. 

    지금 국민참여당이 진보정당에 함께 하면 양쪽 모두 많은 상처가 날 것이다. 특히, 지역의 당원들은 허구헌 날 당 모임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나 민감한 문제를 두고 다툴 것이고 그로 인해 당의 활력은  더 저하될 것이다. 노선과 신념이 달랐던 정당의 통합은 그만큼 중대하고 시간을 요하는 문제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적인 문제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보여준 태도는 무엇인가. 5.31합의문이 나오고 나서, 아니 그 이전부터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 합류를 말해 왔다. 진보신당과의 합당문제를 둘러싼 민주노동당내 주류와 비주류의 머리 싸움 때문에 시기나 표현을 조절해왔지만 국민참여당을 받아들이려는 그들의 입장은 일관된 것이었다. 

    특히, 유시민이라는 정치인을 통합정당에 합류시키겠다는 것은 사실상 그를 통합정당의 대선후보로 만들거나 용인할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연립정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야권 대선후보 중 대중지지도 1~2위를 다투고 있던 대선후보를 합류시켜놓고 다른 후보를 내보내겠다는 것이 일반적 상식으로 가능키나 한 일인가. 결국 유시민 후보가 통합진보정당의 대선후보가 된다면 2012년 대선은 박근혜, 손학규, 문재인, 유시민 등의 인물 중에서 선택하게 된다는 얘기인데, 이런 중요한 문제를 검증도 없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민주노동당 자주파의 태도는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2012년 대선에서 진보 대선후보가 없거나, 설사 있더라도 ‘무조건’ 사퇴하고 연립정부 수립의 길로 달려가는데 매진할 것이며, 우리는 그 과정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 사태를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통합정당에 국민참여당이 합류하건, 그렇지 않건 2012년 내내 우리가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다. 

    대선후보 없는 진보정당의 미래? 

    앞서 말한대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민주노동당의 태도, 국민참여당 합류 논란, 그리고 애초부터 그들이 밝혀왔던 2012년 민주연립정부 수립 방침까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본다면 2012년 우리 진보진영은 대선후보가 없거나, 아니면 누가 봐도 아예 ‘사퇴’를 준비하고 나가는 후보만 있는 양상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왜 이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냐고 물어본다면 그 물음은 질문자에게도 되돌려져야 한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하느냐고. 

    우리는 1992년, 1997년, 2002년, 2007년 근 20년 동안 대선후보를 출마시켜왔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진보세력은 진보운동을 이어나갈 후대 주체들에게 진보정치운동의 영감을 전했고, 육성했으며, 나 역시 2002년 민중당의 총선 활동, 백기완 후보 선거운동, 2007년 권영길 후보 선거활동 등을 통해 진보정치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키워왔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정치세력에게 있어서 대선은 중요한 문제다. 

    물론, 2012년 대선은 어려운 선거다. 반MB의 파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의 분노, 그리고 이로 인한 야권단일화 요구까지 정말 어려운 선거가 될 것이다. 설사 우리가 그 과정에서 단일화에 응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이는 이 운동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눈물과 탄식, 그러면서도 다시는 이러한 결과를 만들지말자는 단단하고 눈물어린 결의에 의해 이뤄져야한다. 언제든 사퇴할 준비가 돼 있는 후보와 후보사퇴를 대가로 연립정부에 들어가게됐음을 기뻐하는 다수파 앞에서 분루를 삼키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진보신당 독자노선의 미래는 있는가 

    그럼, 진보신당을 독자적으로 존속시켰을때 미래는 있는가… 당연히 있다. 우리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러나, 이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논의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다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독자노선으로 결론이 나든 통합노선으로 결론이 나든 우리가 함께 미래를 개척한다는 약속과 믿음이다. 나는 앞서 말한대로 통합으로 결론이 나면 그에 따를 것이며 통합당 내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그것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통합파 동지들도 이러한 자세로 함께 당의 미래를 논의해주기 바란다.

    당이 공식 결정을 내리면 처음에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지 못한 당원들의 좌절과 울분이 있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진지한 상황 판단을 할 것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우리가 다시 힘을 합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나는 길게 보아 우리 당이 녹색과 비정규운동(특히 지역)의 색채를 더 강화하고, 기존의 우리 자산이었던 노동운동과의 결합, 보편적 복지국가 노선의 확대, 소수자 권리의 옹호 등 우리의 역량을 더 확대해나가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판단한다. 이는 기왕에 제출했던 녹색신좌파 노선에서 문제의식을 서술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당장 눈앞에 닥친 2012년 총선에서도 나는 우리의 당이 의석을 배출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정당득표 3%를 획득하여 2석을 확보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나아가 선거연대를 통해서도 지역구에서 3석 이상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통합론에 서 있는 분들도 통합정당을 만들면 총선에서 선거연대를 거쳐 일정한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때 언급되는 지역 등의 전망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도권이나 호남 등에서 민주당이 선거연대에 잘 동의를 안해줄 것이기 때문에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통합당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통합정당이 되면 협상력은 좀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올라가는 협상력으로 움직일 민주당이라면 다른 방법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충분하다. 그리고, 정말로 협상력을 높이려면 국민참여당까지 포함해서 창당을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현실에서 얻을 이익으로 인해 느껴지는 안락함은 미래에서 잃을 것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일 뿐이다.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렵더라도 이렇게 돌파한 총선을 통해 2012년 대선을 주체적으로 맞이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지금 1석밖에 되지 않는 우리 진보신당이지만 야당 사이에서 늘 당당한 역할을 해왔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아도 총선에서 지금보다 한발짝 나은 성과를 낸다면 2012년 대선은 물론, 새롭게 변화하는 정세에서도 우리는 더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당’은 우리의 ‘전략’ 

    진보정당 운동으로만 치자면 개인적으로 13년차를 맞았다. 1998년 12월 30일, 권영길 대표를 수행하여 평택에 있는 만도기계 노조 교육에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진보정당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 그 시간 동안 여러가지 것을 느꼈다. 지금 논쟁하고 있는 통합-독자 동지들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경험 속에서 나는 당과 관련하여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당’은 우리 진보 정치인과 진보 활동가들의 ‘인큐베이터’라는 것이다. 자주파의 경우는 우리와 활동가 육성의 경로 자체가 다르다. 자주파 운동은 그 나름의 이념을 비롯해, 조직관, 대중관, 활동관 등이 일체로 정리돼 있고 그에 기반하여 자신의 활동을 펼쳐왔다.

    노동운동부터 학생운동까지 일관된 정치노선과 활동노선을 가지고 운동을 일궈온 것이다. 그래서 자주파 운동은 별도의 정당 없이도 강력한 조직을 만들어냈고 활동가들을 육성해 올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한 활동가들이 지금 민주노동당을 자신의 노선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좌파 운동세력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90년대초 사회주의가 무너진 이후, 국가사회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노선을 정립해야 했으며 그 노선은 지금도 계속해서 정립 중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 와중에도 세 가지 원칙이 우리에게 유지돼 왔다고 생각하는데, 첫째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의 계승, 둘째는 노동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에의 결합, 셋째는 진보정치운동의 독자적 세력화라는 것이다. 여기에 살을 붙이고 경험을 더하여 지금까지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진보정당은 우리를 모이게 해주었고, 우리를 지지하는 당원들과 활동가들이 모이는 우리의 집과 같은 고마운 역할을 해주었다. 당이 아니었다면 우리 좌파진보운동이 어디에서 수천 명의 활동가와 수만 명의 구성원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인가. 

    실제로 우리의 당은 진보운동에서 여러 모범적인 젊은 활동가들을 만들어냈다. 민중의 집을 세운 정경섭을 비롯해 지역 비정규직 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강상구, 인천 지역에서 10여년 동안 헌신적인 활동을 해온 문성진과 전북 전주에서 시의원으로 재선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윤근……

       
      ▲필자.

    선배활동가들을 비롯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생각나지만 이 사람들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뭉클하다. 그리고, 우리의 ‘당’이, 우리의 ‘당원’들이 이들을 키워내는 언덕이 되었고 인큐베이터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당’은 우리의 ‘전략’이다. 

    민주노동당 자주파 동지들과 ‘당’을 함께 하는 것은 이러한 우리의 ‘전략’을 공유할 수 있다는 믿음이 더 성숙된 뒤에 하는 것이 옳다. 그 동지들과 다시 우리의 ‘전략’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때는 우리의 ‘당’을 진정한 하나의 당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9월 4일, 이제 이틀 앞이다. 모두들 당의 미래를 위해 소신을 가지고 분투하셨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논쟁하고 있지만 세상에는 이 정도로 가까운 사람들도 없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다시 힘을 모아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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