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통합정당, 붕괴는 필연적이다끝없는 연정노선 논란 지새울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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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9월 02일 08: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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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9월 4일 당 대회가 다가오고 있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이 순간이 다가올수록 그에 대한 논란도 뜨거워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뜨거운 논란들 중에는 사태의 핵심을 비껴난 것들이 많다. 합의문의 평점을 둘러싼 논란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한 쪽에서는 합의문이 협상 결과로서는 최상급에 속하니 가결시켜야 한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반대로 졸속 합의임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 중 어느 쪽도 9월 4일 대의원들이 단행해야 할 선택에 대해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날 대의원들이 선택해야 할 것은 결코 합의문에 점수 매기기 따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날 선택해야 하는 것은 "어떤 새로운 진보정당이냐"이다. 지난 몇 달간의 연석회의 논의를 통해 그 대략의 모습이 이미 드러났으며 이후 그 연속선에서 활동하게 될 정당인가, 아니면 그것에 대한 비판적 판단 위에서 그와는 다른 전망과 세력 구성으로 출발할 정당인가. 이것이 9월 4일 선택의 본질이다.

    즉, 지난 몇 달간 우리 모두 경험한 논의와 협상 과정 전반을 놓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밟아 등장할 정당에 과연 우리의 미래를 걸 만한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과감히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야 하는가? 이런 물음 앞에서 협상 결과가 잘 됐느니 못 됐느니 하는 논란은 막간의 언쟁에 불과하다.

    민주연립정부 노선의 위험 속에서 논란으로 지새울 정당

    한 정당의 성격은 상당 기간, 그리고 상당 부분 그 정당의 창당 과정에 의해 결정된다. 이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역사가 이것을 잘 보여준다. 원내 진출이라는 지상 목표 아래 민주노총의 간부급 활동가들을 주된 동원 대상으로 삼았던 민주노동당의 창당 과정은 이후 이 당의 궤적에 계속 긴 그림자를 던졌다. 몇몇 대중 정치인의 실용주의와 민주노동당 선도탈당파의 이상주의가 서먹하게 공존하던 진보신당의 창당 당시 모습은 지금 이 당의 위기로 폭발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9월 4일 당대회의 선택지 중 하나에 대해 우리는 생각 밖의 풍부한 정보와 예측 근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연석회의 합의문 가결로 등장하게 될 새 정당에게는 연석회의의 논의 과정 자체가 곧 창당 과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당이 보여줄 모습의 예시를 우리는 이미 연석회의 과정을 통해 풍부히 경험했다. 우리는 지난 몇 달간의 반추를 통해 이 당의 미래 성격이 어떨지 충분히 예측해볼 수 있다.

    이 당은 첫째, 진보정당운동의 본령을 지키는 일 자체가 당 내의 끝없는 분란 거리가 되는 정당이 될 것이다. 진보신당은 지난 3월 정기당대회에서 민주연립정부 노선이 진보정당운동의 본령을 위협하는 중대한 전략적 문제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연석회의 과정에서 우리는 민주당 중심의 차기 권력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거기에 적극 참여하려는 흐름이 현재 한국 민중운동 저변에 강력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 동안은 몇몇 지도자들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나 간간이 그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지만, 2012년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 흐름은 국민참여당을 통합 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민주노동당 내의 일관된 움직임으로서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첫 등장치고는 얼마나 당당했던지 진보신당 안에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최우선시하던 분들이 지레 낭패감에 빠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첫 데뷔였을 뿐이다. 차기 정권이 들어서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 그 사이에 민주연립정부 노선은 또 다른 여러 형태로 돌출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내 다수는 국민참여당에 대한 시각을 통해 이미 그러한 의지를 충분히 밝혔다. 따라서 이들과 함께 당을 만드는 한, 이 당은 계속 민주연립정부 문제에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민주연립정부 노선이 ‘진보대통합당’의 방침이 된다면, 어찌 할 것인가? 이것보다 더 비극적인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이것은 곧 ‘진보’정당이 나서서 진보 정치를 범민주당 세력에게 통째로 헌납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2012년 대선은 87년 이후 처음으로 진보 정치의 독자성을 대변할 후보가 한 명도 없는 선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가능성을 막으려면, ‘진보대통합당’ 안에서 치열한 내전으로 나날을 보내는 수밖에는 없다. 창당할 때부터 이미 당 바깥을 향한 대중 정치보다는 당 내 정치로 일관하는 당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직전에 경험한 바 있는 저 지옥과 같은 세월이 처음부터 이 당의 일상이 될 것이다.

    북한 문제에 자신의 입장을 낼 수 없는 정당

    둘째로 이 당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당론도 갖지 못하는 정당이 될 것이다. 연석회의 과정에서 우리는 민주노동당 내 다수가 북한의 3대 세습 문제 등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동안 전혀 태도 변화가 없었으며, 새 진보정당 창당 과정에서 변화할 조짐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견해를 존중한다”는 표현을 유행시킨 저 5. 31 합의문이다. 이 합의문이 나오고 나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와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이 문구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아 논쟁으로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논쟁은 싱겁게 끝났다. 어느 쪽이 옳은 해석인지는 따지지 않고 그저 더 이상 논쟁하지 말자는 것만 합의하고 말았다.

    이것은 이런 해프닝의 연장선에서 탄생할 정당이 북한 문제에 대해 보이게 될 모습의 예고편이다. 북한과 관련된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당 안에는 서로 합치될 수 없는 이견들이 난립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그에 따른 당론 형성은 없을 것이다. 다수결로, 즉 쪽수로 입장을 정하는 최악의 경우가 아니라면, “견해를 존중”하면서 어떠한 당론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한국의 ‘진보’정당이라면서 한반도의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밝힐 수 없는 정당. 또 다시 핵 사태가 돌출하거나 3대 세습의 모순이 폭발할 때 이 정당은 도대체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

    셋째로 이 당은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 등장했던 그 어떤 진보정당보다도 더 단기적인 시야의 현실 정치에 지배 받는 정당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강령(안)’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진보신당의 ‘당헌 전문’보다도 더 소략하고 도무지 철학이나 이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5개의 문장이 ‘강령 전문’을 이루고 있다. 이 문장들을 보고 나면, 민주노동당 창당 당시의 ‘강령 전문’이나 진보신당의 ‘강령 전문’이 얼마나 격조 높은 진보정당 강령들이었는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드디어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은 당 강령을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만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총선 일정에 맞춰 무조건 통합정당을 띄워야 한다는 요구 앞에서 이제까지 진보정당운동이 어렵사리 지켜온 품격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으니 말이다. 당 강령으로 당원들을 어떻게 무장시킬지, 이 강령으로 새로운 시대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는 이미 중요한 고민거리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등장할 당은 분당 전의 민주노동당보다도, 현재의 진보신당보다도 더 현실 정치의 실용주의에 갇힌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진보정치와 범민주당 사이의 경계는, 민주연립정부를 둘러싼 결판 이전에, 이미 이런 방식으로 밑에서부터 허물어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필연적으로 다시 와해될 정당

    넷째로 이 당은 지도부와 당원이 철저히 괴리된 정당이 될 것이다. 애초에 통합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노회찬, 심상정 등 진보신당 지도자들은 당원들과 대화하려 하기보다는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다. 조승수 대표는 연석회의 합의 때마다 매번 진보신당 당원들을 분열, 격앙, 반목시키는 합의문을 들고 왔다. 새 당에서도 지도부 역할을 해야 할 진보신당 측 지도자들은 당원들의 신뢰라는 점에서 이미 만신창이 신세다.

    진보정당을 창당한다고 하면서 그 지도자가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런 처지에 놓인 것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민주노동당 창당 때에는, 이후 거품으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총파업 지도자 권영길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진보신당이 만들어질 때에도 노회찬, 심상정이 그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연석회의의 결과로 등장할 정당에는 지도자와 지지자들 사이의 그러한 신뢰 관계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신이 만연해 있다. 과연 이러한 상태에서 어떤 ‘좋은’ 정당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지난 경험을 잊지 않고 있을수록 통합의 장밋빛 청사진에 더욱 회의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섯째로 이 당은 정파들의 정치 게임이 지배하는 정당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정파’란 단순히 진보정당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의견그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분당 전부터 민주노동당을 지배했던 독특한 당내 조직 문화를 일컫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식 ‘정파’는 특정 정견으로 당원들을 설득하고 그래서 다수의 지지를 획득해가는 일반적인 의견그룹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일반 당원층과는 분리된 직업적 활동가군이 있고, 이 활동가들은 몇 개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조직, 즉 ‘정파’로 묶여 있다. 당 대의기관은 이들 활동가들에게 장악되어 있고, 그래서 중요한 결정은 이들에게 지령을 내리는 정파 수뇌에 의해 좌우된다. 결국 정파 간 협상과 거래, 투쟁과 합의가 당을 지배하게 된다.

    연석회의 과정에서 진보신당 당원들은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 울산연합 등 낯선 이름들을 접해야 했다. 그리고 이들 각각과 때로 반목하고 때로 거래하는 것을 아주 당연한 일처럼 여겨야 하게 되었다. 이것은 ‘진보대통합당’의 당 생활에 대한 예행연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당의 당원이 되려면 이런 모습에 더욱 익숙해져야 한다. 대의원들의 수준 높은 토론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이끌어내곤 하던 진보신당 당대회의 추억은 하루빨리 잊어야 한다.

    이 당은 창당 과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후에도 계속 ** 연합, ** 그룹, ** 캠프 등등의 합종연횡으로 점철될 것이다. 여기에서 당원들의 역할은 이 활극을 되도록 참을성 있게 지켜보며 재정적 후원을 그치지 않는 것이다. ‘정파’에 속해서 당 내 선거 때마다 그 조직인으로 활동하지 않을 거라면, 그 이상을 기대해선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연석회의의 합의가 낳을 정당의 몇 가지 측면에 대해 전망해보았다. 이것은 무슨 예언도 아니고, 근거 없는 저주도 아니다. 연석회의 과정을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을 엄연한 사실들의 지적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연립정부 노선의 위험에 시달리는 정당, 북한 문제에 대해 진보정당다운 입장을 낼 수 없는 정당, 가장 나쁜 의미의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정당, 지도자와 당원이 의혹과 불신 속에 마주하는 정당, 정파 간 게임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정당 … 이것의 총합은 한국 진보정당운동 역사상 가장 취약한 정당, 총선 결과 외에는 별다른 뚜렷한 변혁적 목표가 없는 정당이다.

    이러한 정당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 정당에게 미래 어느 시점의 붕괴는 필연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결코 멀지 않을 것이다. 즉, 이 당은 빠른 시간 안의 재분당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선택할 수 없는 정당인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의 ‘중심’을 지키자

    그러나 9월 4일 진보신당에게는 위의 선택지만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는 전혀 다른 결단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연석회의를 통한 이제까지의 통합 논의를 종결하고 지금부터라도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모색하는 것이 그것이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성공이 보장된 길도 아니다. 그러나 가치 있는 길이다. 또 다른 이합집산이 예정된 당을 선택하여 집단적 방랑을 계속하느니 지금 우리의 ‘중심’을 지키며 그것을 확장하고 혁신하자는 것이다. 바람직할 뿐더러 또한 현실적이기도 한 선택 아닌가. 적어도 이 길로 나아간다면 우리 대오의 해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게다가 이 결단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새 진보정당에 더 없이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이로부터 출발하는 당은, 그게 ‘진보신당 2.0’이든 ‘녹색사회당’이든 아니면 ‘반자본주의신당’이든, 당장의 세론(世論)이 아니라 그보다 먼 시야를 염두에 둔 당원들의 집단적 지혜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일 것이고, 어떤 지도자나 ‘정파’의 지령이 아니라 활동적 당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고와 실천이 만들어가는 정당일 것이며,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접합이라는 진보정당운동의 본령에 충실한 정당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해왔고 또한 선택해야 할 새 진보정당이 아닌가. 이 또 다른 선택지를 역사 속의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묵혀두게 되는 일이 없도록, 9월 4일 진보신당 대의원 동지들의 지혜롭고 단호한 결단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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